박근혜 의원님!

박근혜 의원님, 그리고 님의 두 동생분들은 이나라에 살고 있는 어느 누구보다도 격동기의 한국 현대사를 아주 특수한 신분으로 보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간의 행복 지수를 평가하는 잣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통상인의 시각에서 보아도 님들은 결코 행복한 성장기를 보내셨다고 볼 수는 없을듯합니다.  특히 모친과 부친 두분다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불의의 사건으로 운명하셨을때 님의 형제자매들이 느꼈을 고통은 필설로 다할 수 없겠지요.

일전에 필자는 한 시민단체에서 현재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는 김창룡이란 자의 무덤을 파내야 한다는 시위소식을 접했습니다.  김창룡이라는 자가 도대체 어떠한 삶을 살았기에 무덤을 파내라는 주장을 할까 궁금하여 본 필자가 백과사전을 한 번 찾아보았습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더군요.

『김창룡: 함남 영흥(永興) 출생. 1941년 일본 관동군(關東軍) 헌병대에 입대하였다가 8 ·15광복 후 귀국하여 1947년 육군사관학교에 입교, 3기생으로 졸업하였다. 1951년 육군 특무부대장이 되었고, 1953년에 준장, 1955년에는 소장으로 승진하였다. 공산당색출과 군대 내의 적색분자 제거에 공헌하여 대통령 이승만(李承晩)으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얻었으나 권력을 남용하고 군의 지휘계통을 무시하는 일을 자행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육군대령 허태영(許泰榮)의 하수인 송용고(宋龍高) ·신초식(申初湜) 등에 의하여 1956년 암살당하였다. 그 후 허태영의 부인 황운하(黃雲夏)의 탄원으로 사건의 최고 배후자는 육군중장 강문봉(姜文奉)이었음이 밝혀졌다. 사건 직후 이승만은 김창룡에게 1계급 특진을 추서하였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위 김창룡의 인생을 보면서 본 필자는 님의 부친의 일제 식민지 시절의 모습이 떠올라 그 또한 백과사전을 찾았보았습니다.  다음과 같이 되어 있더군요.

『경북 선산(善山) 출생. 가난한 농부인 박성빈(朴成彬)과 백남의(白南義) 사이에서5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3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만주의 신경(新京:現 長春)군관학교를 거쳐 1944년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8 ·15광복 이전까지 주로 관동군에 배속되어 중위로 복무하였다.
(중략)
1961년 5·16군사정변을 주도하고 7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되었으며 1962년 대통령권한대행을 역임, 1963년 육군대장으로 예비역에 편입되었다. 이어 민주공화당 총재에 추대되었고, 그 해 12월 제5대 대통령에 취임하여 1967년 재선된 후 장기집권을 위하여 1969년 3선개헌을 통과시켰다. 제3공화국 재임동안 '한·일국교정상화'와 '월남파병문제'를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하였다. 1972년 국회 및 정당해산을 발표하고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한 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이로써 유신정권인 제4공화국이 출범하였다.
(중략)
1974년 8월에는 그의 부인 육영수가 북한의 지령을 받은 조총련계 문세광(文世光)에게 저격당해 사망하였다. 이러한 정권의 위기는 결국 ‘부마사태(釜馬事態)’를 야기시켰으며,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만찬석상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金載圭)의 저격으로 급서(急逝)하였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박의원님께서도 알고 계시겠지만, 님의 선친과 김창룡의 일제 식민지 시절의 삶의 궤적이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군요.  둘다 일본 육군사관학교에서 황국신민의 서사를 암송하고 히로히토 왜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후 위세당당한(?) 일본군의 장교에서 인생의 청년기를 보냈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그러한 과거를 지닌 두분중 한 분은 일본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된 조국에서 새국가 건설에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대표적인 독립투사인 김구선생의 암살에 깊숙이 관여했고 다른 한분은 군사쿠테타를 통해 최고통치자가 되어 20여년을 절대 권자에 눌러 앉았지요.  대한민국은 정말 불행한 나라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한 이력의 소유자들이 어떻게 독립된 국가에서 그와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있었는지를 다른 나라 사람들이 물어본다면 본 필자는 얼굴이 화끈거려 도망칠 수밖에 없을 것만 같군요.  

하지만, 어찌하겠습니까.  그것이 우리의 역사인 걸요.  그렇다고 본 필자가 님의 선친께서 대통령으로서 재직중에 이룩한 경제성장의 성과를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김창룡 무덤의 국립묘지 퇴출운동이 의원님의 선친에게까지 확대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위 2인의 행적을 보면 붕어빵 그 자체이지 않습니까.

박근혜 의원님.  흔히들 효는 백행의 근본이라 하지요.  또, 효중에서도 부모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을 최고로 치는 것이 성현의 가르침이지요. 현재 님의 선친께서는 이나라의 전직대통령의 자격으로 동작동 국립묘지에 잠들어 계시지요.   박근혜 의원님께서는 어찌 생각하실지 모르나, 본 필자가 (무례하지만) 님의 선친의 입장이라면 독립유공자들이 잠들어 있는 그곳 국립묘지가 바늘방석처럼 느껴질 것만 같습니다.  더욱이, 김창룡의 경우처럼 일부 시민단체가 선친의 묘를 국립묘지에서 이장하라는 요구하게 된다면 그 망극함을 어찌 하겠습니까.

하오니, 박의원님께서 선친의 깊은 속마음을 헤아리신다면 선친과 모친의 묘지를 선친의 고향인 선산땅의 양지바른 곳으로 이전하는 것이 오히려 자식된 도리를 다하는 것이 아닐런지요.  또, 박근혜 의원님이 정치를 하시는 목적도 부친의 민족에 대한 부채를 계승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이가 남긴 업적을 계승하고자 하는 것이니, 만일 의원님과 의원님의 가족분들이 그와 같은 용단을 내려주신다면 의원님에 대한 국민적 평가도 고양될 것이며 부친께서 가치관이 충분히 형성되기 전에 범한 민족에 대한 죄를 씻는 길이 될 수도 있을 거구요.  

그럼, 박의원님의 정치인생에 늘 광영이 있기를 빌며 글을 줄입니다.  덧붙여, 본 필자가 이글을 통해 의원님의 아픈 가족사를 건드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나, 결과적으로 그런 감정을 가지시었다면 민족사라는 대승적인 견지에서 큰 이해있으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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