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가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은 모래를 다져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비록 비바람을 완벽히 막아주지는 못했으나,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옹기종기 모여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마을은 소박한 행복으로 가득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풍경은 변해갔습니다. 마을에 오래 머문 이들은 모래집을 재건축해나가며 그 규모를 키워나갔습니다. 개중에는 더 이상 집이 아니라 성이라 불러야 마땅할 만큼 거대한 건축물을 소유한 이들도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수많은 인부를 고용해 자신의 성을 더욱 높고 웅장하게 쌓아 올리는 데 몰두했습니다.


가끔 거친 파도가 마을을 덮칠 때면 저지대의 집들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자연스레 사람들은 안전한 고지대를 선망하게 되었습니다. 기회만 닿으면 저지대를 떠나 고지대에 터를 잡고 성을 쌓으려 했습니다.


시간은 더 흘러, 마을은 이주민들로 북적이기 시작했습니다. 집을 지을 땅은 턱없이 부족해졌고, 고지대의 땅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저지대에 남은 사람들은 더 이상 성을 확장할 공간조차 확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럴수록 저지대 사람들은 고지대의 성주들을 동경하며 그곳으로의 진입을 꿈꿨습니다. 인부들조차 작업 환경이 좋은 고지대를 선호했습니다. 결국 고지대의 성주들은 저렴한 비용으로 손쉽게 인력을 구해 자신의 성을 더욱 견고하고 화려하게 키워 나가는 반면, 저지대 사람들은 박탈감 속에 그들을 올려다볼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먼 타국에서 온 한 청년이 마을에 당도했습니다. 그는 마을 전체가 모래성으로 이루어진 광경을 보고 아연실색했습니다. 그가 살던 곳에서는 모두 콘크리트로 집을 짓는 것이 상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청년은 마을 사람들을 붙잡고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래는 위험합니다. 이제라도 콘크리트로 튼튼하게 집을 지어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청년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습니다.


"타지에서 온 자네가 뭘 알겠나? 콘크리트로 성을 개축하는 데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짐작이나 해?"


물론 청년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이들이 아주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비록 거대한 성은 아닐지라도, 작고 단단한 콘크리트 집을 짓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마을 차원의 인프라와 지원이 절실했으나, 마을의 주류 세력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간신히 작은 콘크리트 집을 지으려는 시도조차 거센 반발에 부딪혔습니다.


"네가 잘났다고 고지대에 콘크리트 집을 지어버리면, 인부들이 다 그쪽으로 몰리지 않겠나? 혼자 튀려 하지 마라. 이 마을에서 사람 구실 하며 살고 싶으면, 남들처럼 모래로 지어."


그러던 중, 마을에 거대한 쓰나미가 닥쳐올 것이라는 예보가 울려 퍼졌습니다. 콘크리트 주택을 주장하던 이들은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지금이라도 콘크리트로 집을 지어야 다 같이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태도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경고를 비난과 조롱으로 맞받아쳤습니다.


"그렇다면 모래성을 더 두껍고 튼튼하게 쌓으면 그만 아닌가? 자네가 고지대에 성을 갖지 못해서 심통을 부리는 건 아니고?"


"너 같은 소리를 하는 치들을 한두 번 본 줄 아나? 우리라고 쓰나미가 온다는 걸 모르는 게 아니야. 다들 나름의 대비책이 있다고. 잘 모르면 함부로 떠들지 마라."


"너도 나중에 번듯한 모래성을 갖게 되면 생각이 바뀔 거다. 솔직히 너도 저 웅장한 모래성을 갖고 싶은 것 아니냐? 현실을 좀 직시해라."


이성적인 설득이 통하지 않음을 깨달은 이들은 결국 입을 다물었습니다. 개중에는 절망감을 안고 집을 버린 채 마을을 떠나버린 이들도 있었습니다. 경고하던 이들이 사라지자 마을에는 다시 평온한 정적과 모래 섞인 바람만이 감돌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보대로 거대한 쓰나미가 마을을 덮쳤습니다. 수십 년을 공들여 쌓은 웅장한 모래성들도, 그 속에서 안주하던 사람들의 논리도, 파도 앞에서는 한줌의 모래알에 불과했습니다.


마을은 흔적도 없이 쓸려 내려갔고, 그곳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