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노예들아


엊그제부터 혼자 생각하던게 있어 휘리릭 써보려고 글 남긴다.


최근에 성공이라는 단어가 주변에 유난히 많이 들리기 시작했다.

물론 연말이니 성공하는 내년을 위하여! 같은 건배사 같은 문장이 자꾸 들리는건 어쩔 수 없지만 그게 왜 박사과정이나 박사들 입에서 나오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0. 박사로서 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


박사. 대부분의 어그로를 제외하면 본인이 하고싶은 연구를 위해 1차관문으로 거쳐야하는 중간 도착지점이다.

그렇다. 박사를 받는다고 변하는건 없다. 그저 가족들이 몹시 기뻐하고 주변에서 너를 부르는 호칭이 X박사라고 바뀌는걸 제외하면. 도리어 박사를 받는 순간부터는 본인이 이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에 발을 들이는게 굉장히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그 말인 즉슨 너는 인생을 평탄하게 사는게 니 인생 최고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학사 출신으로 공채를 통과해 회사를 다니다 연봉 보고 다른 곳으로 이직하고 이런 행위자체를 할 가능성이 매우 낮아진다는 의미이다.


박사에게 이직이 가능한 경우는 몇가지 없다. 원 직장이 사기업일때 몇년 다니다가 정년보장이 되는곳으로 가고싶다. 그러면 대학이나 정출연을 바라본다. 근데 연봉이 반토막 혹은 그 이상 적어진다. 그래도 정년이 있으니 넘어간다. 이런것밖에 없다. 뭐.. 돈이 중요하다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겠지만 현재 정출연 재직 중임에도 박사학위를 가진 연구직의 경우에는 반대의 경우를 본적이 단 한번도 없다. 교수되서 넘어가는건 몇번 봤다.


1. 그러면 박사를 왜함? 고생만 하는데


그렇다면 연구를 왜 하는걸까? 대부분 대학원을 들어갔던 이유가 있을거다. 나는 이론적으로 해석되는 않는 현상을 이론화 시키고 그걸 수식으로 만들고 싶어서 대학원을 갔다. 학부연구생부터 8년을 보낸 뒤 박사를 받았다. 그럼 나는 원래 목표를 이뤘을까?


당연하게도 못 이뤘다. 범용성이 있는 수식을 만들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거대한 목표인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개좁밥이지 ㅋㅋ 하면서 시작했지만 점점 읽는 문헌이 많아지고 최신 연구의 동향을 쫓다보니 내가 생각한걸 구현화한다면 노벨상 후보정도는 노려볼만하다는걸 알게됐다. 결국 나는 현실과 타협하고 방향성을 일부 돌려서 보정식을 범용화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자동화시스템에 결합 한 뒤에 박사졸업을 했다.


그럼 나는 대학원에 간게 후회스러울까? 놀랍게도 후회가 전혀없다. 평생을 궁금해하던걸 내 손으로 못 푼다는걸 알고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을뿐이다. 그저 알아내기위해 작은 흔적이라도 따라가는것이 즐거울 뿐이고 업무와는 별개로 개인연구를 하는 시간이 참 즐겁게 느껴진다.


대학원생이라면 이 말을 작게나마 공감할거라고 생각한다.


2. 근데 왜 성공을 못함?


성공이라는 단어를 어떤걸로 정의하냐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의 성공을 물질적인 풍요 혹은 거대한 명예 등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내 주변에서 이것과는 다른 성공을 말하는 경우는 본적이 없다.


물질적인 성공을 목표로 했다면 사업을 하는게 좀 더 가능성 있고 명예를 바라봤다면 정치를 하는게 맞다. 근데 왜 평생을 연구에 발담구는 연구자의 길을 들어와놓고 성공을 논하고 있을까?


그건 최근 대학원 진학자들이 대학원을 하나의 스펙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스펙. 참 좋은 말이다. 토익 몇점 토플 몇점 자격증 몇개. 다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고 취업에 있어 큰 요인임에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XX대학 석사, 박사가 정말로 스펙이 될거라고 생각하나?


박사학위는 대부분 최소한의 요건일 뿐이다. 특히 본인이 연구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는 순간부터 반드시 거쳐야하는 필수관문이지 취업을 잘 하기위한 스펙으로서의 역할은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가 TV에 나오는 경우는 단 하나뿐이다. 과학계 인사와의 인터뷰. 이것 이외에는 TV에 나올일도 없고 나와서도 안된다. 그런데 대학원을 스펙으로 바로보고 지원을 하면 본인의 학위를 본인의 큰 스펙으로 여기고 나대기 시작한다. 예능에 파트타임 박사학위 들고 나와서 전문가 행세하는 사짜들 처럼 말이다.


확실하게 말하지만 본인이 연구에 뜻이 없다면 대학원에 갈 이유가 없고 돈낭비 시간낭비일 뿐이다.


3. 이 글을 쓴 이유


이틀전쯤에 해외박사와 관련된 글을 읽었다. 외국박사가 무조건 좋다. 국내박사는 쓰레기다. 이런 뉘앙스의 글이었다. 진심으로 중졸이나 됐을지 걱정되는 멍청한 새키라고 생각했다.


학위는 스펙이 아니다. 물론 비교우위가 전혀 없다고는 말 할 수 없지만 학위를 받아오며 본인이 쌓은 논문실적이 최우선이다. 그게 본인에게 핏하게 맞아떨어지는 연구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마치 외국에서 학위 받는걸 하나의 스펙으로 여겨 받기만 하면 된단 식의 글을 읽고 있자니 진지하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학위는 스펙이 아니고 해외박사출신이라고 경쟁에서 무조건 이기는 것도 아니다. 본인이 유학을 갈 수 있다면 감사해하고 최선을 다하는게 옳은거지 그걸 가지고 내가 어디출신이네 뭐네하며 깝치는건 1찍이 2찍이 하며 소리지르는 가스통 할배들이랑 다를게 없는 무지한 행동이다.


4. 마치며


국내에서 박사를 받은 내 입장에서는 지금의 분위기가 참 이상해보인다. 진심으로 어그로였으면 좋겠는데 이게 어그로치고는 지나치게 많아보이는 점이 더 문제같다. 


먼저 길을 걸었던 사람의 입장에서 한가지만 확실히 하고싶다.

연구를 하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는것은 좋다. 그런데 자만하지 마라.

박사가 아닌 대학원생은 아직 미생이다. 아무것도 아니란 거다. 그런데 벌써부터 줄세우기를 하고 스펙다루듯이 한다는건 결국 본인이 그게 맞다고 생각하는건데 막연한 문제를 풀어내는 끝없는 달리기를 하는 입장이 된다면 그걸 견딜 수 있을까?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생각을 좀 바꿔라. 물론 넷상이니 낄낄거리며 써갈긴 똥글일지도 모르지만 학위는 스펙이 아니다. 유학은 본인의 스펙일지도 모르지만 결과물이 없으면 그냥 시간낭비일 뿐이다. 그러니 미생이라면 어떻게 완생이 될지에 고민하지 쓸데없는 줄세우기에 시간 들이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