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22년 5월 중순,어느 목요일, 논산 육군훈련소 앞에는 수 많은 짧은 머리를 가진 남자들이 빽빽하게 몰려있었다. 나는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 중이었고 곧 입대할 훈련소 앞에서 가족들이랑 사진을 찍곤 했었다. 먼저 훈련소를 갔다온 산업기능요원 친구들에게 훈련소 생활이 재밌고 미친놈들도 많고 휴가도 없는 중소기업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유일한 휴식이라고 이야기를 들었기에 나 또한 인생 마지막의 호캉스를 간다는 기분으로 훈련소 안에 들어갔다. 안에는 군복을 입은 조교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따라 연병장으로 걸어갔고 관람석에 앉아서 대기를 하다가 입영 카드 리더기에 카드를 찍고 아무데나 줄을 서라는 조교의 말을 듣고 아무 줄이나 섰었다. 저녁이 되고 모든 빡빡이들이 모이자 그 수 많은 빡빡이들은 ( 10 + n ) 연대로 걸어갔다. 우리는 생활관에 들어왔고 자리는 배정되어있던 것으로 가서 침상에 앉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점호 대기를 하던 그 정적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하루가 지나서 옆 자리 분대원과 이야기를 해 보았고 그는 매우 친절했었다. 당시에는 코로나 피크 시대였기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1주일동안 대기를 하였고 그 후에 훈련을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점차 분대원들과 친해졌고 대화를 나누던 중 대뜸 대학 이야기가 나왔다. 한 명은 자기가 의사라고 하였고 경북대, 전남대, 서강대,.. 등등 대부분이 연구원이라고 하였고 그 분위기에 한밭대생인 나는 그냥 고졸이라고 말했다. 몰랐을 때는 그냥 착한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다들 명문대를 다닌다는게 신기했다.
그들은 내 친구 무리와 다르게 욕을 하지 않았고, 어떤 와인을 좋아하는지, 어떤 초콜렛을 좋아하는지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하였고 섹스 이야기를 하더라도 천박하지 않게 이야기를 하였다. 살면서 처음으로 사람들과의 벽을 느낀 것 같았다. 신분제도가 없다고는 하지만 난 훈련소에 가서 느꼈다. 제도가 없을 뿐이지 신분은 있다고 느끼게 했던 순간이었다.
그들은 조교들의 말에 잘 순응하였으며 남에게 나눠주는 것을 할 줄 알았고 여유로웠고 고상함과 근거 있는 자신감이 있었다. 또한 그들의 목소리 톤에는 신뢰를 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고 이 목소리 톤은 대학교에 복학하고 교수님들에게 느낄 수 있는 톤이었다. 그 3주 동안은 나는 그동안은 겪지 못했던, 즉 상위 계층 세계를 간접체험을 하였다.
이 이야기는 한동안 잊고 있었다가 오늘 상하차를 하고 집에 오던 버스에서 지난 학기에 있었던 모델링&시뮬레이션 팀과제에 대한 생각을 시작으로 대학원은 어떨까라는 생각과 함께 훈련소에서 같이 지내던 그 분들이 생각났다. 이 훈련소에서 이야기를 나눴던 형들은 잘 지낼까. 수료일 전 날에 자기 서울대 농대라고 밝히던 내 앞자리에 있던 분은 수료하고나서 결혼식을 올리신다고 하였는데 잘 지내실까. 다들 박사학위를 따고 여러 분야에서 국가 발전에 보태고 있으실까, 혹은 해외에 나갔을까. 오래된 추억이다.
난 다다음주에 전문연 훈련소 감 ㅠ - dc App
그냥 자격지심이 있었던거지 고상은 무슨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