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노예들아


새해도 어느덧 2주나 지났구나. 다들 올 한해도 열심히 구를 준비가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도 이제 겨우 숨좀 돌리는 일상에 접어들었고 여름쯤 졸업하는 박사들이 심사위원으로 와줄 수 있냐고 은근슬쩍 물어보는거 들으면서 시간이 참 잘도 흐르는구나라고 느끼는 중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가볍게 글 써보려고 한다.

내가 노력을 더 했으면 인생이 달라졌을까?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경험을 빗대 생각을 정리해볼까한다.


0. 노오오력이 부족하다.


참.. 대학원때 질리게 들었던 말이다. 실험하다가 불운한 사건으로 실험체에 머리를 맞아서 입원한 적이 있다. 안전모가 깨질 정도였기에 지도교수는 걱정했지만 이외의 교수들이 준비가 안된거다. 노력이 부족했다.라는 말을 돌려가면서 나를 욕했다. 당시에는 중처법이 없었지만 최근에 이런일이 일어났으면 안전관리자는 최소 벌금형부터 시작할정도의 사건이었다.


재밌는건 당시 교내에 해당 실험에 대한 내용을 가장 잘 아는건 나였단건데.. 과연 내가 노력이 부족했던걸까? 재밌게도 나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인리히의 법칙에서 1:29:300의 사고 확률이 운없이 내 선에 터진거였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었으니까. 물론 내가 그거맞고 죽었거나 머리가 이상해졌다면 억울했겠지만 그런건 아니니까. 뭐.. 이런부분에서 노력이 모든걸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노력이 모든걸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결국 내가 죽지않은건 안전모를 쓴 것도 있겠지만 운이 나를 살린거기도 하니까.


1. 그럼 노력으로 안되는건 어쩌냐


노력으로 안되는건 참 많다. 이상하게 내가 쓴 논문은 리젝이 나오는데 별로인 논문이 항상 게재되어있는 저널을 보면 논문도 심사위원도 다 운빨인가?라는 생각도 든다.


결국 운빨이라는게 있다는건데 운이라는건 내가 노력해서 되는것도 아니고 그냥 하늘에 맡기는게 가장 속편한 선택지라는 것도 우습게 느껴진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그럼 노력을 왜하냐.. 그냥 살자.. 이런 생각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해결할 수 없는 연구주제를 맡게되면 처음에는 열정이 넘치던 사람도 서서히 현실을 깨닫고 회피하다가 결국 도망치는것과 같이 인생에 있어 운이라는 요소는 철저하게 내 노력을 배신하고 짓밟는다. 그런 삶을 살다보면 자연스레 노력이라는 가치를 낮게 볼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노력이 부족하다. 의지가 약하다.라는 얘기를 들으며 학위과정을 보내왔고 과정 중인 대학원생들도 비슷한 상황일거라 생각된다.


2. 왜 노력에 대해서만 언급할까?


그것 이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게 없으니까.

연구라는 것은 참으로 단순한 녀석이다. 얼마나 많이 공부했고 얼마나 많이 해석해봤느냐가 새로운 토픽에 대한 접근 방법을 구상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니까. 그럼에도 운이라는 요소가 주제를 휙휙 뒤집어버리는게 참 우스운 일이다. 


10년전쯤 안전공학을 하던 친구가 국내 아파트에 불이나서 건물 전체가 불탔다며 건축 외장재의 중공층 시공 방식을 전면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를 했다.


당시에는 그 얘기를 들으며 참.. 너도 연구주제 잘못골랐구나 인생 조졌다 싶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않아 영국 아파트에 화재가 나서 70명이 넘게 죽는 대형 참사가 터지고 국토교통부, 소방청 등 안전관련 기관에서 건축 외장재와 그 시공방법에 대한 RND를 미친듯이 뿌리기 시작했다.


당시 그 친구는 그 흐름을 잘 타서 석사를 마친채로 연구원에 임용되는 경사를 누렸고 지금도 그 주제로 연구를 하고있다.


그런 반면 디지털 트윈이라는 개념을 10여년전부터 얘기하던 친구도 있었다. 당시에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서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같은 개념이라고만 이해하고 말았는데 이제와서 보면 당시에 그 친구가 접근한 방향이 매우 좋았다고 생각된다. 다만 아쉽게도 이 친구는 당시 관련 연구가 부재한 상황에서 피토하는 심정으로 버티다가 지금은 전혀 관련없는 직종에서 근무하고 있다.


두 가지 예시만 봐도 명확하게 보일것이다. 운이라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요소인지. 두 친구 모두 연구에 대한 집착과 노력은 우위를 따지기 애매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한명은 아직도 연구를 하고 다른 한명은 연구와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고 있다.


운이라는 단 한글자가 두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게 만들었다는게 참 인상적이다.


3. 그럼 운만 믿고 사는게 맞는가?


재밌게도 운이라는 것은 노력하는 자에게만 영향을 주는 요소이다. 인생을 그냥 던지고 사는 사람에게도 나름의 운이 따를것이다. 로또를 샀더니 3등이 되었다라거나 클럽가서 원나잇한 여자가 말도안되게 취향에 맞다거나 뭐 그런것들? 


근데 그게 인생에 있어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모르겠다. 내 생각에 연구를 하는 사람에게 최고의 운은 본인이 하고싶은 연구를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거다. 즉 모든 대학원생이 연구를 직업으로 삼지는 못하는거고 여기서도 운빨이 인생을 흔든다는 거다.


그런데 선택하지 않을거면 아예 모르고 살겠지만 이미 연구라는 도파민을 봐버린 상황에서 이미 연구라는 것이 삶의 한부분이 되버린 상황에서 운빨에 인생이 휘둘리는걸 깨닫고 포기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대부분 여기서 희망회로를 돌리는 경우가 많다. 


나는 어떻게든 될거야. 위에 선배들 보니까 교수되고 연구원되고 대기업간다. 이런식으로 본인의 불안감을 애써 숨기며 나아가는것이다.


그래서 갤 내에도 대학원 진학 희망자들의 글을 보면 묘하게 내가 열심히만 하면 다 되는거냐?라는 식의 질문이 많아보이는 것이다. 한가지 답을 하자면 그렇지는 않다. 그런데 열심히 안하면 그 기회조차 없다.라고 하고싶다.


분명한건 노력으로 모든걸 해결할 수 없는 삶이라는 것이다. 특히 내가 죽어라 연구한게 인류의 위대한 자산이 될지 수많은 종이쪼가리의 일부가 될지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노력하지 않으면 그저 하루하루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같은 삶이 이어지는것뿐이니 뭐라도 하자..라고 생각하며 나아가는것이라고 생각한다.


4. 연구 주제를 정하기위한 노력


노력이 모든것을 해결해줄 수는 없다. 연구자가 뭔가를 선택하는 것은 순전히 본인의 취향을 따를수밖에 없다. 그러니 박사논문 주제도 본인이 픽해서 그걸로 몇년간 머리 뽑아가면서 쓰고나면 인생의 허무함과 동시에 이 주제를 왜 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좀 더 돈되는 주제.. 좀 더 인사이트를 넓히기 쉬운 주제를 할걸..이라는 후회를 하며.


그런데 미래에 뭐가 유망해질지.. 어떻게 아냐.


12년전 세월호가 침몰하며 수학여행중이던 고등학생들이 사망한 대형 참사 이후에 대한민국에서 안전이라는 요소가 매우 강하게 부각되었다. 중대재해처벌법도 그 사건의 후속결과 중 하나이다. 그런데.. 20년전에 학위하던 사람들 중에 미래를 알고 아..! 난 안전공학을 해야지. 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을까?


없다. 그냥 본인이 선택한 연구주제는 끼고 사는것뿐이다. 연구로 인해 유명해지고싶고 잘살고싶고.. 그러면 연구보다는 다른걸 해라. 진심이다.


연구는 그냥 평생을 함께하는 와이프같은거다. 좋을때도 있고 싫을때도 있지만 간혹 색다른 느낌도 있고 그렇게 평생을 함께하는것뿐이다.


5. 마무리


운과 노력이라는 단어는 상극이지만 의외로 어떤 일을 하든지 노력이 수반된 결과물에는 운이라는 것이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준점이 될때가 많다. 그러니 운이 없다고 느낀다면 할 수 있는건 노력뿐이다. 삶을 살다보니 노력말고는 내가 할수있는게 없다고 느낄때가 참 많다. 운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니 항상 노력하며 사는게 정답이다 느껴진다. 


어그로를 위해 뻘글을 쓰는 머저리들을 제외하면 연구를 하는 대학원생이 이 갤에 상주할거라 생각된다. 운이라는 것은 절대 무시할 요소가 아니다. 그럼에도 모든걸 운에 걸지는 마라. 우리는 연구를 하는거지 도박을 하는게 아니니까.


올 한해도 모두 화이팅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