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효...
나는 원래 사범대를 지망했던 놈이다.
대학 입시에선 물리1,2를 중복으로 선택해서 서울대를 가지 못했고
대충 수시로 연대 이과대 (연대는 사범대가 없다)중 하나와 고대사대, 성대, 한양대 사범대를 붙었다.
원래대로라면 사범대를 가야겠지만 그 당시 어린 마음에 자연과학을 한다는 것 자체에 묘한 매력을 느꼈고,
또 왠지 고대보다는 연대가 좋다는 인식이라 그냥 연대를 갔다.
근데 막상 가보니 저학년땐 술만퍼먹고 공부 좃도 안했다.
자연과학도에 대한 겉멋만이 있었을 뿐 나는 텅 빈 쓰레기였던 거다.
학점은 바닥을 쳤고 2학년까지 평균평점 2.5정도가 찍히더라.
그래도 나는 억울했던게, 우리학교 미적1,2 고등미적1,2는 별로 공부를 안했지만 전부 A+이었다.
그런데도 평점이 저정도 곱창난거면 얼마나 병신인건지 감이 올거다.
내 학번부터 재수강이 졸업때까지 3회 제한이었어서 존나 이렇게 놀면 안됐었음을 나는 뒤늦게 깨닫게 된다.
입학할때는 수능 성적이 좋아 이공계장학금을 수혜받고 다녔으나
연이은 저조한 학점으로 칼같이 짤렸고, 연대의 다른 누군가가 평점우수자 전형으로 이 장학금을 타갔으리라.
아무튼 4학기가 끝나던 시점까지 2.5찍는 꼬라지를 보던 부모님은 나도 모르게 군대를 강제로 박아넣었고,
난 영문도 모른채 군대를 갔다왔다.
갔다오고부턴 정신을 좀 차렸던 것 같다.
군대를 갔다오니, 지방대 다니던 친구들은 피트같은거 쳐서 전문직 루트를 탔고, 또 다른 친구들은 편입으로 학벌을 크게 높이는 걸 보았다.
또 여자 동기들은 그새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고 대학원에 진학하더라.
괜히 뒤쳐지는 느낌이 들더라.
나는 내가 이루어놓은 결과물을 보면서
지금까지 내가 무슨 미친짓을 해놓은 건지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그때까지도 철이 없었는지 "이학도"라는 타이틀은 죽어도 못 버리겠더라.
집에서는 졸업을 늦추고 공대복전을 하라고 했는데
괜히 나는 순혈 이학도라는 멋진 타이틀을 버리기 싫어서 반대로 같은 이과대 내의 전공을 복전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꽤나 재밌더라.
그냥 게임도 재미없어지고 노는것도 재미가 없어져서 공부가 재밌었는지
내 원래 과 공부보다 복전한 과 공부가 훨씬 더 재밌더라.
나는 3학년 1학기부터 4.0을 넘기기 시작했고
3학년 2학기부터 재수강 3회를 제외하고 전부 A+을 받았다.
전공과목은 거의 1,2등이었다.
우등상 최우등상의 존재도 이때 알게 되었다.
같이 수업듣는, 복전하는 의대생도 있었는데
이 친구랑 수업이 많이 겹쳐서 뭔가 싫었다.
이친구 때문에 A+ 한 자리가 줄어드는게 안그래도 소수과 입장에선 타격이 커서
어떻게든 A+받으려고 존나하다보니 그냥 성적은 따라서 오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를 못 만났다면 아마 지금까지 이렇게 실력을 키우지는 못했을 거다.
여기 연대 대학원을 다니는 원생도 있을건데
당신이 조교를 해봤으면 알거다.
우리학교 공대든 이과대든 애들 그렇게 잘하는거 아니고 그렇게 열심히 하지도 않는다.
아니, 적어도 이과대만큼은 그렇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그냥 뒤쳐지는 느낌이 싫어서 마냥 공부를 해서 학점만 따다 보니
졸업할 때는 평점이 대충 4가까이 되더라. (3.8x)
2학년까지 2.5인데 졸업평점이 4가 어떻게 되냐고?
F랑 D만 몇개 지우니까 4가까이 되기는 하더라..
그런데 졸업시즌이 가까워지니까 막상 내가 뭘 하고싶은지도 잘 모르겠고 영어성적도 준비해놓은 게 없는데 공채 보면 거의 스피킹점수가 많이 필요하더라.
영어를 개인적으로 그닥 잘하진 않아서 그냥 대학원이나 진학해야겎다 싶었다.
그런데 웬걸 자대대학원에 갑자기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서 bk가 짤린거다.
특히나 나는 이론 분야에 관심이 있어서 박사까지 학비나 생활비 충당이 안되는건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진짜로 눈앞에 백수가 된 내 모습이 아른거리더라.
그러다 타대 대학원을 알아보게 되었는데
카이 대학원은 전공무관하게 어느정도 인건비 보장이 된다는걸 알았다.
혹시몰라 그냥 bk건재한 서울대도 넣었다. 근데 듣기로는 서울대도 이쪽 분야는 펀딩상황이 좋지는 않다더라.
카이 쓸려고 토익을 대충 봤는데 생각보다 많이 높게 나와서 좋아했는데,
서울대용으로 텝스를 보니 그냥 커트라인 간신히 넘더라.
존나어려웠다. 시발 이게 시험이냐?
아무튼 무난하게 두 곳 다 붙었고 재정적인 지원이 더 낫다던 카이로 진학했다.
이런 시발 근데 막상 카이 가니까 코로나 터지고 싹다 비대면이더라.
내 흥미따라 뭣도모르고 전공만 맞춰서 연구실을 정했다.
그런데 이 연구실은 내가 첫 학생인 신생랩인거임.
알고 지원하긴 했지만 선배가 없다는거 꽤 크게 작용하더라.
교수님께서는 1:1로 내 공부를 많이 봐주셨는데 정말로 좋으신 분이었다.
난 선배가 없어도 이렇게 좋은 교수님 얼굴에 먹칠하기는 싫어서 남들보다 더 많이 삽질해가면서 하나하나 내공을 키워나갔다.
내 분야는 전망이 좋지못했는데
이론분야이기 때문도 있지만
이 분야의 전공자들이 대체로 나보다 월등히 똑똑했기 때문도 있다.
나는 카이에서도 코스웍 성적은 최상위권을 유지했는데
그럼에도 다른 학교들과 조인트미팅을 할 때라던가 보면 그냥 내가 제일 멍청한 것 같더라.
이론분야가 맞지 않았던 것일까.
우리 교수님은 미국 탑스쿨 출신이시다.
이런 분께서 나에게 상당히 많은 투자를 해주시고 좋게 봐주시는 것에 나는 쓸데없는 압박을 너무 느꼈던 것 같다.
매주 미팅때마다 조금이라도 더 겉으로만 잘 보이기 위해 공부방법을 바꿨다.
이해하고 넘어가는 식이 아니라
이해가 안되니까 일단 외우고 넘어가자는 식이었다.
그러나 그건 오래 가지 못했고 내 밑천은 점점 드러날 위기에 자주 놓였다.
그럼과 동시에 동기들 얼굴도 거의 못보고 온라인 수업과 혼자 공부하는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정신적으로도 많이 지쳤다.
우울증 비슷한 것이 온건지
아침에 일어나면 그냥 디폴트로 기분이 너무 나빴다. 왜인지 모르겠음
쓸데없이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결국 이것이 학업에서도 안좋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나는 멘탈이 매우 약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 분야는 그 누구보다 멘탈이 강했어야 했다.
아니, 대학원에 간다는 것 자체가 멘탈이 약해서는 안됐던 것 같다.
나는 또다시 학부 신입생때처럼 게임에 손을 댔다.
힘든 현실을 잠시나마 외면할 수 있었는데
결국 자력으로 힘든 현실을 마주할 수가 없어져서 계속 게임에 더 파고들었다.
그러다보니 단기간 암기에 의존했던 학습법은
자연스러운 망각현상과 함께 모래성은 무너졌다.
뭔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도 하루하루가 넘 우울해서 미칠 것 같더라.
그냥 친구가 없어서, 연구실 선배나 동기가 없어서 같은 이유라기 보다
현재 내 상황이 돌이키기엔 너무 늦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대학원 생활을 그만두기로 했다.
교수님께 가장 죄송하더라.
진짜 너무 죄송해서 앞으로 얼굴을 못 볼듯
교수님 연구실에 세명의 지원자가 있었는데, 나 말고 다른 아무나 뽑았어도 나보단 나았을 거다.
게다가 몇달 안됐지만 나한테 투자해주신 시간과 다른 실험 연구실 못지않은 금전적 지원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교수님께서는 내 자퇴의사를 존중해주셨고,
자퇴 후에 무얼 해야할지 신중하게 생각해보라 하셨다.
나는 다시금 교직을 희망하게 되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학도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6-7년을 살아왔는데
관둘 때는 너무나 좋더라.
사실 이쪽 바닥 공부에 슬슬 힘이 부치기 시작했어서
앞으로 연구를 위해 최소 2-3년을 이런 어려운 공부들을 더 해야 한다는게 막연하게 공포스러웠다.
이즘되면 내가 무슨 전공인지 알 수도 있겠다.
알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초끈이론으로 진학한 것이다.
내 신상이 특정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굳이 캐내지는 말기를 부탁한다.
아무튼 찝찝한 마음을 뒤로하고 내년 전기모집 설대 교육대학원(정확히는 일반대학원 사범대학)에 지원을 하고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교직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물론 여기는 학비 지원이 되지 않아서 대출의 힘을 보태야 한다.
그래도 괜찮다. 석사만 딸 정도면 감당할 수 있다.
사실 이쪽으로 진학하게 된 또다른 큰 이유는
내 과목의 임용시험이 그냥 너무나도 쉬워 보였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덜 고생하고 괜찮은 직업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누군가의 앞에서 가르치거나 발표하는 것은 나름 좋아했기에 적성도 잘 맞을 것이다.
먼 길 돌고돌아 다시 교직으로 방향을 틀게 되었지만
결코 좋은 이유때문은 아니기에 어디가서 함부로 이야기를 꺼내기도 조심스럽더라.
이미 대기업에 취직한 친구들, 의전 로스쿨 간 친구들, 재경직 5급에 붙은 친구, 전문직종으로 진작 튄 친구들에 비교해보자니
이제와서 교사를 꿈꾼다고 하면 너무 스스로가 초라해보일 것 같았다.
그래서 한동안은 친구들에게도 비밀로 했얶다.
부모님께도 뒤늦게 통보식으로 이야기했다.
뒤늦게 사연을 다 설명하기는 했는데 오히려 불투명한 이론분야 석박보다 신분보장되는 교사가 더 나을 거라고 하시더라.
그냥 좀 오늘 멜랑콜리한 기분에 한잔빨고 써봤다.
내일 아침이면 쪽팔려서 지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무튼 이 글을 보는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길을 잘못 들어서 고생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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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좌절 딛고 자기 길 잘 찾아가네 화이팅
화이팅
그럼 지금 몇살인거임? 글쓴거 보니까 좀 배운티가 나는거 같네
한국나이로 슴일곱임.. 글도 잘 못쓰고 그냥 의식가는대로 막 썼는데 고평가 ㄱㅅ - dc App
힘내라 그래도 자기가 하고싶은걸 계속 찾아서 한다는건 멋진일이야
다양한 인생이 잇구만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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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이딴 진지글이 념글도 가네. 다들 고맙고 대학원생활 잘 하길 바란다!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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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년아 기만하냐?
근데 요즘 임용힘들지않나요
화이팅!!
선배님 학번 132 맞으십니까? 저는 133인데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교직 이수중인데 저는 교직에 큰 뜻이 없어 고민이 많네요 애초에 보험들듯이 교직 지원한거라..
와 하필 초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