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중순 숭실대학교 박사과정 연구노동자가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학부생 인솔 실무를 담당한 고인(故人)이 해당 업무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보도되었다. 고인의 지도교수는 그 과정에서 고인에게 폭언을 일삼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인의 유족은 2023년 2월에 학교 인원위원회에 사건을 신고했고, 조사 과정에서 고인의 지도교수는 자신의 책임을 부인하는 것은 물론 고인의 유족에게까지 폭언을 일삼았다고 전해진다. 숭실대 교원 징계위원회는 올해 11월 고인의 지도교수에게 경징계에 해당하는 '견책' 처분을 내렸다.(곽진산 기자, 한겨레신문, 2023.12.26.)

우리 숭실의 동학이자, 함께 공부했던 동료가 올해 1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생전에 고인(故人)을 직접 보거나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같은 학교의 대학원생으로서 참으로 암담하고 씁쓸한 심정이다. 고인의 죽음을 개인적인 질병에 따른 '자살'로 치부해버린 숭실대 인권위원회와 교원 징계위원회의 판단에 매우 큰 유감을 표하고 싶다.

대학원생은 해당 분야의 연구를 하고 싶어서 혹은 미래의 커리어를 위해서 대학원이라는 진로를 선택한다. 대학원생은 학교 내에서 공부와 연구만 하는 것이 아니다. 대학원생은 등록금 및 생활비를 충당하고자 혹은 해당 학과의 커리큘럼 상의 이유 등으로 조교, 연구원 등 다양한 직책의 업무를 학교의 '근로자'로서 수행한다. 고인(故人)이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학부생 인솔 업무를 맡게 된 까닭도 그 때문이다. 해외 박람회에서 학부생 인솔은 결코 쉽지 않은 업무이며, 지도교수의 폭언과 더불어 해당 업무를 통해 고인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라고 유추해볼 수 있다. 이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상 '업무상의 재해'에 해당될 수 있는 사항이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1항에서 말하는 '업무상의 재해'라 함은 업무수행 중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근로자의 부상· 질병 · 신체장애 또는 사망을 뜻하는 것이므로 업무와 재해발생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그 인과관계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증명하여야 하지만, 반드시 의학적,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며,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한다. 따라서 근로자가 자살행위로 인하여 사망한 경우에, 업무로 인하여 질병이 발생하거나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가 그 질병의 주된 발생원인에 겹쳐서 질병이 유발 또는 악화되고, 그러한 질병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 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결여되거나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서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추단할 수 있는 때에는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자살자의 질병 내지 후유증상의 정도, 그 질병의 일반적 증상, 요양기간, 회복가능성 유무, 연령, 신체적, 심리적 상황, 자살자를 에워싸고 있는 주위상황, 자살에 이르게 된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대법원 2014.10.30. 선고 2011두14692판결

위의 판결문에서 드러나듯이 업무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에 따라 질병이 발생하여 자살에 이르게 되면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숭실대 인원위원회와 교원 징계위원회는 고인(故人)의 업무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또한 ‘업무상의 재해’가 아닌 개인적인 질병에 따라 고인이 ‘자살’에 이른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고인은 분명 '업무'를 수행했지만 그에 따른 ‘업무상의 재해’의 ‘업무’로는 인정받지 못한 셈이다. 해외 박람회 학부생 인솔 실무라는 업무와 고인의 사망은 전혀 상관없는 일인가?

고인(故人)은 대학원생이고 연구자이면서도 동시에 해당 학과, 연구실의 업무를 수행한 '근로자'이다. 하지만 학교 측은 '업무상의 재해'의 책임을 오로지 고인에게 떠넘기기 위하여 자의적으로 '근로자'가 아닌 '학생'으로만 취급한 것이다. 더욱이 ‘직장 내 괴롭힘’이 너무나 분명한, 지속적인 언어폭력을 일삼은 고인의 지도교수에게 학교 당국은 그 책임에 합당한 수위의 징계조차 내리지 못했다. 그러니 고인의 죽음은 얼마나 억울한 죽음인가. 대학원생은 공부를 하는 학생이지만 학교 내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 연구노동자이기도 하다. 고인의 사망이 해외 박람회 학부생 인솔 실무라는 업무와 명백히 관련되어 보임에도 불구하고 학교 당국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 듯 쉬쉬하고 넘어갔다. 지도교수뿐 아니라 고인의 고용주로서 숭실대학교 총장과 학교법인도 당연히 책임이 있다. 언론 보도가 없었다면 조용히 지나갔을 것이다. 우리 동학들, 우리 연구노동자들이 얼마나 더 죽어야, 죽어야, 죽어야 나아질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2023년 12월 27일
민주노총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
숭실대학교 구성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