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연, 이지연, 이지연...

 

지난 수년간 얼마나 갈구하고, 또 갈구 하던 이름인가....

 

그녀는 모두의 워너비 였지만 모든 마녀가 그렇듯 그녀는 나에게만 특별하게 보이는 무언가의 행동을 했었다.

 

넘어올 듯 말듯...  애매한 행동들... 언제나 따스하고 포근한 그녀 였지만.. 결정적 순간엔 미꾸라지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듯... 나에겐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 뿐이었다.

 

 

5년 전이었나...

 

  ' 영천아 자고 있니?? 나...  있잖아... 잠시 할말이 있는데... '

 

그때만 해도 지연이랑 꽤 친했던거 같다. 한밤중에 문득 온 전화는 날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 어.. 지연아 무슨 일인데?? '

 

  ' 아.. 저기 있잖아... 나 내일 급한 약속 생기는 바람에... 영화 못보러 갈 것 같아.. 미안해... 다음에 보자~ '

 

결국 그날 이후로 그녀와 난 어떤 데이트도 하지 못했다. 물론 어떤 전화 통화도... 그 이유는 얼마 안가서 알 수 있었다.

우리 학교는 전통적으로 약학과 한약학과가 같이 하는 동아리가 있었다. 난 그 동아리에서 지연이를 만났고.. 난 그 동아리 방에서 그날 듣지 말아야 할 대화를 듣고야 말았다.

 

  '야  그 한약학과 2학년 신영천이라고 아냐?? '

 

  '아 그 키좀 크고 어리버리한 놈?? 뭔일인데?? '

 

  ' ㅈㄴ 웃긴게 ㅋㅋㅋㅋ 지연이가 그새끼 버린게 디씨겔에서 한약학과 555드립친거 보고 버린거래ㅋㅋㅋ

 

  ' 와 대박 진짜??? ㅋㅋㅋㅋ ㅈㄴ 웃기네 근데 한약학과가 555등급이란 소리냐??? '

 

  ' 응 ㅅㅂ 막차는 666등급도 있단는디ㅋㅋㅋㅋㅋ대박 아니냐 이거 '

 

  ' 와 ㅅㅂ 그러면서 그놈들 ㅈㄴ 고상한척 한거여?? 꼴통들이ㅋㅋㅋ 한약666 대박 '

 

 

그날은 아직도 지금 생각만 하면 씹어 삼키고 싶은 날이었다.  난 솔직히 공부를 아주 잘하진 못했지만 21223 등급으로 수능을 마쳤고 나름 만족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근데 이유가 555라니... 내가 알기론 그 둘은 우석대 자대 전형으로 왔었는데....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과라고 그런식으로 함부러 싸잡아서 욕하는 놈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기 영천아??? 나 알지??? '

 

   '와 지연아 이게 몇년만이야 진짜 오랬만이네 참.... 잘 지냈니?? '

 

  '응 그렇저렇. .. 너 근데 되게 많이 변한거 같다... 되게 깔끔해 졌어 ^^ '

 

  '응 그래.. 고마워 지연아... 근데 여긴 어떻게 알고 온거야??? '

 

  ' 아~ 나 이번에 대학 졸업했거든~ 니 후배한테 듣고 온거야~ '

 

  ' 응?? 뭔 소리야?? 너 4년전 졸업한거 아니었어?? '

 

  '아~ 약사 면허 따고~ 한약학과 수능으로 다시 들어갔거든~ 이래뵈도 나 한약사야 ^^ '

 

 

약사면허 따고 굳이 한약학과 까지 가다니.... 약사의 위상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래도 대불대에서 약사에서 한약사라니... 엄청난 인생역전이다 이건...

 

  '근데 왜 굳이 여길 온거야??? 너 한약사라서 다른곳 취직할 곳 많을 텐데.. '

 

  ' 아~ 나도 너처럼 이런 작은 약국 하나 차리는게 내 소망이거든~ 같은 한약사라 배울것도 많은 것 같고.. 뭐 가끔 너 생각도 나고 ㅋㅋ'

 

또 시작됬다... 그녀의 애매한 행동들... 그녀는 항상 말 끝 뒤에 눈웃음을 잃지 않았다. 난 이 감정에 절대 휘둘리지 않으려 애써 태연한척 했다.

그리고 면접 일정을 시작했다.

 

  ' 자 다들 주목해 주세요~ 오늘 2차 면접 까지 오신 여러분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구직 싸이트에 나와있든 오늘 2차면접에서 3명을 뽑고 다음3차 개인면접에서 마지막 최후의 1인 근무약사님 뽑도록 할게요~  '

 

그리고 난 옆에 있는 덩치 큰 기계 하나를 가리켰다.

 

  ' 여기 가전 제품 하나 보이시죠?? 이건 컴퓨터도 아니고, 티비도 아닙니다. 뭐 아실분은 아시겠지만.... 요게 이번에 나온 삼성신약 tb002라는 제품입니다.

 의원에서 처방전 가져와서 바코드만 살짝 대면 정확한 약포장은 물론 유명한 약사 방송인의 영상지원 또한 무한으로 제공됩니다. 초기 TB씨리즈는 약 포장의 정확도나 타 지역에서 처방받은 약물간의 상호 작용면에서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었지만 이번에 계발된 버전은 이러한 문제점을 확실히 개선시켰습니다. 자체 인터넷 망을 통한 환자 관리 시스템도 한몫 하였죠.

 

지금 보급률이 30프로가 채 안되지만 아마도 1년뒤엔 90프로에 수렴할 것으로 보입니다. 마치 몇년전 핸드폰이 스마트폰으로 바뀌는데 1년도 채 안걸렸던거 처럼 말이죠.

그럼 여기서 간단한 질문하나 던지겠습니다. 여기 있는 약사님들 중에서 이 기계를 이길 수 있는 사람 있을까요?? '

 

지연이 까지 11명의 지원자가 몰렸지만 다들 눈치만 볼 뿐 말이 없었다.

순간의 정적이 지원자들의 긴장감을 배가 시켰다. 난 다시 말문을 열었다.

 

  ' 결국 약사면허는 간판일 뿐이에요. 약사면허가 있어서 약국이 허가가 나오느냐 안나오느냐 이 차이일 뿐입니다. 결국 일은 기계가 하기에...  그렇다면 우리 약사님들은 어떻게 해야 기계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요?? '


역시 11명은 모두 벙어리가 된 듯 대답 한번 없었다. 또 다시 정적감이 감돌았다.


  '답은 투철한 서비스 정신입니다. 손님들에게 얼마나 양질의 서비스를 공급하고 시각적 아름다움을 제공할 후 있느냐 이게 핵심이죠. 오늘 면접은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보도록 하겠습니다. '

 

  ' 먼저 얼마나 정확하고 크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부터 볼게요. 제가 말하는 부분을 복명복창 해주세요 '

 

   ' 난 피트 노예다 '

 

순간 약국엔 깊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꽃같이 아름다운 소녀들의 붉어진 낮빛은 밝은 톤의 화사한 분 조차도 그녀들의 얼굴은 가리질 못했다.

 
  '보자 보자 하니까 너무 하네 시발 변태 새끼 아니야 이거 '


갑자기 한 소녀가 자리를 박차더니 약국문을 발로 차고 나갔다.

 

난 차분하게 다시 말을 이어갔다. 

 

  ' 피트 졸업생 한해 1800명입니다. 이 많은 사람들 다 어디 갑니까??? 그렇다고 어디 약사들이 대기업 회사원 처럼 사오십대 되면 은퇴해서 금방 물갈이되는 것도 아니고... 여기 취직하기 싫은 분들... 나가셔도 되요... 수치는 한순간일 뿐입니다. 나중엔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낄거에요.

 

 '다시 시작할게요. 나는 피트 노예다. '

 

내가 한말이 먹혀 들었는지 하나 둘 복창 하기 시작했다.

 

  '나는 피트 노예다'

 

  '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약싸는 일 뿐이다. '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약싸는 일 뿐이다. '

 

  ' 나는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777이다. 아흑 '

 

  '나는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777이다. 아흑 '

 

이로써 첫번째 면접 테스트는 끝났다.

 

난 여기서 목소리가 작고 소심한 두명을 탈락 시켰다.

 

남은 지원자들은 서러웠는지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몰랐다...

 

 

지옥은 이제부터 시작이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