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에만 해도 무수히 많은 연애지침서가 쏟아져 나오고 대부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예를 들면 “남녀는 어느 정도 밀고 당기기를 통해 사랑해야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와 같은 이야기 말이다.
역시 마찬가지로 연애는 사랑에 기반이 되어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이라는 것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명명하지는 않는다.
단순히 사랑은 어느순간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일이라고 치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의 지성인인 흑인 페미니스트 벨 훅스의 「올 어바웃 러브」에서 보면 먼저 사랑에 대해 개념화한다.
그녀는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할 길」에서의 사랑의 정의를 기초로 삼는다.
사랑이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 자아를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라고 규정했다.
나아가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사랑은 실제로 행할 때 존재한다.
사랑은 사랑하려는 의지가 발현될 때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사랑은 의도와 행동을 모두 필요로 한다.
여기서 의지를 갖는다는 것은 선택한다는 뜻이다. 아무나 다 사랑을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려는 ‘의지’를 갖고서 사랑을 ‘선택’하는 사람만이 사랑을 할 수 있다.”
이 말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사랑을 하게 되어 있다는 널리 퍼져있는 생각과 대치된다.



또한 그녀는 서로가 사랑을 하는 것에 있어서 권력의지가 팽배한 곳에서는 결코 사랑이 충만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남성은 가부장제사회로부터 파생된 남성성이라는 것에 의해 물들어진다.
예를 들면 남자들의 권력의지(여성을 지배하려는 의지),
남자들이 구사하는 각종 거짓말들(흔히 사랑하는 사람이 상처 입을까봐 하는 거짓말이라고 반박한다.
하지만 여성들에 비해 남성들의 거짓말이 사회에서 관용적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자를 통제하고 복종시키기 위해 정보를 독점하는 양태들을 들을 수 있다.

사랑에 눈뜨기 위해서는 권력욕과 지배욕에서 벗어나 사회적으로
삶의 모든 영역에 사랑의 윤리가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변해야 한다.
사랑 구성원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은 그 사회의 문화가 어떤 가치와 윤리 위에 세워져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사랑의 윤리를 실천하는 가운데 남성성과 여성성에 기반을 둔 사랑이 아닌
주체와 주체의 하나의 인격체 관계로서 형성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사랑은 “빠지는 것”이 아닌 “선택하는 것”이다.
또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단지 감정적으로 굉장히 끌린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결정이고 판단이며, 또한 하나의 약속이다.
사랑이 단지 감정일 뿐이라면 서로 영원히 사랑하자는 맹세는 아무런 근거나 토대가 없는 공허한 것이 되어버린다.
왜냐하면 감정이란 왔다가도 언제든지 떠나갈 수 있는 것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