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바위는 제 몸의 벌어진 틈새에 물이 들어간것을 보고서도 지 몸 부서질까봐 근심하는 법 없이 허정하기만 하다
(무심하고 평정한 덕으로 고통이 사라진 바위의 마음가짐을 니들은 부러워해야 할 거다)
두 경우에서 보여지는 태도가 지극히 판이한것은 어떻게 된 일일까?
똑같은 위태로움속에서도 한쪽은 평온하기만 한데 다른쪽은 그렇지 못하고 몹시 고통스러워 한다
대관절 무엇의 탓으로 둘의 현우(賢愚)가 구분되는 것일까??
본디의 온온하고 무심한 정태를 인간으로부터 빼앗아가 몹시도 호들갑스럽게 만들고 고통에 몸부림치도록 만든 개새끼는 누구인가?
바윗돌 속에는 뇌가 자리잡을 수가 없으므로 바위에게는 흉악함이 없고 탐욕스러움이 없다.
바위에게 없는 것들이 바윗돌에게 다시 생겨난다면 아마도 바위는 지극한 평온을 두번다시는 맛볼수가 없게 될 거고 활활 타는 지옥의
맹염속에서 온 마음이 불에 타들어가는 고통에 시달리면서 죽어가게 될거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바위에게는 소위 '뇌없음증'이라는 은덕이 주어져서, 산산히 부서져 모래가루 될 때까지 지극한 평온함에서 유유히
자적할 수가 있다고 한다
바위를 부러워하는 너희는 그러므로, 교악한 뇌가 자리잡을 터를 마련해준 너희 대가리 뼈에게 책임을 막중하게 물어야 할 거다
주춧돌로 달려가 머리를 부딪혀 죽는 것은, 너희를 달달 볶고 못살게 굴고 일각의 쉼도 없이 압정을 온몸에 들이붇는 등의 좃스러운 만행판
을 지금도 벌이고 있는 너희 뇌에 대한 원수 갚음으로서는 특히 으뜸이라고 할수가 있겠다.
ㄴ니애미가 지금막 실천했다는 속보가 들어옴
바위는 근심 없이 허정하기만 했는데 근심이라는 것은 생각으로부터 온것이고 고로 바위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말임 그런말을 해놓고 나중에 보면 바위는 뇌가 없기 때문에 근심과 흉악함과 탐스러움이 없다고 주장하고있다는것 자체가 오류
바위는 뇌가없다 라는 말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인것같은데 그에 따르면 애초에 자신의 상태를 걱정하거나 만족하는 생각이라는 행위 자체를 하지 않는데 바위가 무슨 평온함을 느낀다는건지..
그리고 만약 바위가 생각하는 존재여서 걱정이나 만족따위를 느낀다 해도 어떻게 바위가 갈라졌다는 것만 보고 바위가 만족하고 근심하는지 판단 할 수 있다는건지..
지둔아들을 위한 비유들기의 현명함은 예수 산상설교에서도 효과를 거뒀단다. 바위가 생각이 없다는 사실은 금붕어도 아는 사실이다. 고통이 없는 것을 허정함과 같다고 보는 시각을 취한 까닭을 모르겠냐? 고통의 참담함에 대한 부각효과와 뇌없음의 이점에 대한 강조표현을 일거에 취하려고 바윗돌의 비유를 사용한 거란다. 생각이 게으르면 너처럼 개망신을 당하게된다
프라이버시가 존중되는 요즘시대에서는 실례될수 있는 질문이지만서도 너 아이큐가 몇이냐? 정말로 멍청한게 아닌지
예를 든다. 과학교사가 학생들에게 만유인력이론을 잘 교사할 방도를 물색하다가 \'잡아당긴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고 치자. 그런데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자슥이 \'중력효과는 인장으로써 발생되는 현상이라고 표현할 것이 아니라, 공간왜곡 또는 그라이테이쇼날 필드라고 말씀하셔야 옳지요\'라고 쫑알댄다면 선생질 하는 놈이 얼마나 같잖게 보고 기가 차겠어? 한심하고 둔한 놈아
비유라는것은 아는데 그 비유자체가 오류라는거
본시 비유는 적절한 오류를 허용한단다. 지랄人이 쿠션을 물어뜯네
그럼 장론으로 설명하지 않고 잡아댕긴다는 말을 뱉어서 학생들의 이해를 도운 교사는 그릇된 비유를 든 죄로 해직처리가 되어야 하나? 너는 지금 시비를 걸려고 내 글에 들어와있다. 한심하고 더러운 놈아
생각이 짧다못해서 기어코 플랑크 길이 미만으로 축소되어버린 놈아. 그래서 생각이라는 것을 아주 상실해버린 반병신아
바위를 보고 평온하다 하는것은 문제가 없는데 그것은 바위가 뇌가 없기에 평온하다 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는거죠
바위가 뇌가 있다면 평온함을 잃을 것인데 뭐가 문제시될 수 있다는 말이야. 내가 글 쓴 진의에 주안해야지. 한심하고 생각없는 놈아
짧게 축소하면 사람은 뇌가 있기에 고통을 느끼고 바위는 뇌가 없기에 평온하다는 말인데 평온하다는 감정 자체는 바위가 느끼는 것이고
수심이 없는 상태를 곧 허정함과 같다고 보았다. 뇌가 없으면 형극도 없다. 고로 뇌가 없는 바윗돌은 항시 수심없는 허정함을 유지할 수가 있는 거지. 남의 글을 잘 이해하지 못한 채로 댓글을 싸버리면 너희 일가가 만백성의 웃음거리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넌 지금 병신짓을 하여 내 글을 망치고 있다.
악의를 품고 독자들이 내 글의 작성의도를 헤아리게 하는 데 심대한 훼방을 놓고 있다는 말이다.
그럴라 치면 너는 지금 당장 사물의 마음을 거론한 장자莊子의 저자 장주가 거하고 있는 하늘나라로 찾아가 그놈의 뺨싸대기를 날리고 장자 내편이 불쏘시개로나 쓰이게 조처해야 할 걸
바위 비유는 언뜻 도가의 무위를 떠올리게 하는데, 인간은 어차피 바위처럼 무위할 수 없는 존재니까 차선으로 자살을 택하는 것이 낫다는 뜻? 자살이 인위적인 것이긴 하지만 뭐 어차피 인간은 뭘 해도 인위의 틀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저 병신에게는 실지와 비유에 대한 구분이 없다. 그래서 네가 책을 읽지 못하는 거다
우리는 분별력을 상실해버린 놈을 미친놈이라고 부르지 고로 저 아이는 미치광이임에 무의하다
그러니까 보통의 경우는 인간과는 다른 속성을 지닌 존재로서 바위의 예시를 들면서 저 바위를 좀 닮아라 하는 건데, 이 글은 \"니들은 어차피 죽었다 깨나도 거기에 이르진 못할 테니까 걍 죽는 게 그나마 낫다\"는 걸로 읽히네. 재밌는 발상인 듯
제가 생각을 잘못 한듯 바위가 실제로 생각하고 생각하지 않고 그에따른 오류가 있어도 그것에 대해 논하는것은 글에 취지에 벗어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걸 늦게나마 깨달았네요 賢穆님 죄송합니다.
바위를 이해할수있다고 생각하는데에서 오류~
바위를 이해할수있다면 좆빵새님아! 신도 말해줘~
인간이 죽지 못하는 것은 아직 해야할 것이 남아서? 삶에 대한 집착이 있어서? 아니다. 모든 생명체는 죽음 자체에 본능적으로 두려움이 있다. 이 글을 보는 사람이 바로 죽을 수 없는 이유는 내일 여자친구가 생겨서, 복권이 당첨되서가 아니라. 죽음 자체가 원초적으로 두렵고 무섭기 때문이다.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서 다양한 삶의 선택이 있는데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인간을 이렇게 잘 알면서도 평생 이미 주어진 불행과 한계에 대해서 증명하고 살아가는데 기를 쓰는 방법이 있고 이미 주어진 불행을 받아들이고 덜 불행하고 그 안에서의 재미를 찾는 방법이 있겠다. 고통을 느낄줄 알아야 고통이 없음이 행복한 줄 알 수 있고 불행함을 알아야 불행하지 않음에 감사할 수 있다.
심심하다면 노예, 천민으로 살아가지 않고 무식하고 머리나쁘고 인물이 후달리고 하드웨어가 부실해도 과거에 비해 평등하게 살 수 있고 굶어죽을 고민 없이 인터넷에 글을 싸질를 수 있게 만들어주신 남의 인생을 위해 희생한 분들에게 감사하게 살면 되겠다.
쩔어
인간은 생물이고 다른 생뮬허고 크게 다르지도 안어 ㅡㅡ;
말이 너므어려워서 자살을못하게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