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가능성은 바이러스는 생명과 비생명의 중간에 있다. 그렇다면 바이러스를 다리로 하여 무기질 물질에도 생명의 잠재성이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논리도 전체와 정합적으로 논리를 구축할 수 있다면 훌륭한 이론이 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러한 논리를 구축하는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두 번째는, 만약 물질에서 의식에 이르는 통로가 있다면, 의식이 물질에 이르는 통로도 있다고 해야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경로가 있다고 가정할 때 어떻게 의식은 물질에 힘을 사용하여 물질의 위치를 옮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세 번째, 뇌활동을 포함한 전체 시스템의 상태를 우리는 의식이라고 한다는 견해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물리현상들 간의 관계가 복잡해지면 상위 수준에서는 하위 수준에서 예측할 수 없었던 성질들이 돌연히 떠오른다. 그러므로 뇌의 복잡성을 생각해보면, 뇌에서도 당연히 새로운 성질이 떠올라야 하고, 그것을 의식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의식이 다만 물리적 현상들 간의 인과관계에 따른 결과만을 반영할 뿐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아니면 물리적 현상들 간의 복잡한 관계에서 떠오른 의식은 당연히 물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자 결정론이 옳을 확률과 아니면 자유의지론이 옳을 확률, 어느 것이 클까?


따지고 보면, 우리 인류가 기계론을 정말로 확고히 믿게 된 것은 뉴턴역학이 성립하면서이다. 특히 해왕성의 궤도 예측과 핼리혜성이 도래할 시점을 예측하면서 뉴턴역학은 절대적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자연현상은 입자 자체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와 외부에서 부여된 운동에너지를 통하여 공간상의 위치의 이동으로서 나타난다. 일단 초기조건으로서 표현되는 최초의 위치를 알게 되면 원리적으로 미분방정식을 수립하여 그 해를 찾음으로써 그 입자의 운동을 함수로써 표현할 수 있고,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그 입자의 위치를 영구히 알 수 있다. 이것이 뉴턴역학이다.

이것이 각종의 가정 위에서 수립된 이론이다. 특히 계산가능성이라는 중요한 가정 위에 서 있는데, 이것이 일반적으로는 성립되지 않는다. 이 우주에서는 대부분이 비선형함수이고, 이 비선형함수는 본질적으로 예측불가능한 것이며, 다만 우리는 축차적으로 근사를 해 가면서 답을 찾는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론이 단순히 거시적 물체의 운동을 예측하는데 사용되는 것으로 제한된다면 별다른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인간이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는 이유로 인간도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존재인 고로, 당연히 뉴턴역학의 법칙의 지배를 받아 인간의 마음조차도 결정적으로 예측가능하다고 하는 것은 각종의 가정의 연쇄에 따라서 논리를 극단까지 몰아 부친 가설에 불과한 것이며, 인간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인간은 지구상에 이제까지 존재했던 적이 없다.


그렇다면 동일하게 의식이 물질에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을 일단 수립할 수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첫째는 생물을 포함한 인간의 활동은 분명히 자연법칙과 유전 및 환경에 종속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은 또한 극단적 환경에서는 창조성을 발휘하여 생존의 길을 뚫어낸다. 그것이 아니라도 지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내가 단순한 물리법칙의 지배 때문에 이렇게 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은 진정으로 믿기 어렵다. 만약 내가 타자를 치고 있는 것이 필연적이라면 반복하지만 그러한 나의 행동을 지배하는 필연적인 법칙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 현재 물리학을 포함해서 나의 행동 자체를 지배하는 자연법칙은 없다.

뉴턴역학의 핵심을 만유인력의 법칙 또는 중력의 제2법칙 가속도의 법칙이라고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관성의 법칙을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

이제 관성의 법칙을 탐구해보자.

관성의 법칙은 물체는 진공 하에서 영원히 동일한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법칙이 성립하려면 먼저 진공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대의 물리학에서는 순수한 진공은 없다는 것이 확립되었다. 또한 우주 공간에서 어디를 가든 항상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뉴턴의 절대공간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우주에서 관성의 법칙이 순수한 형태로서 적용되는 경우는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 된다. 즉 관성의 법칙이 적용되는 경우는 순수한 이념형으로서 고려될 뿐인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이념형을 가지고 현실로 존재하는 인간의 마음까지도 규제한다는 것은 실용적인 적용가능성을 넘어서 가설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 우주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확률의 법칙으로서 표현되는 열역학 제2법칙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뿐인 것이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확률의 지배를 받는다.


둘째는, 의식이 물질에 미치는 가능성이 진지하게 탐구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많은 책에서 예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 메카니즘을 자세히 소개하지는 못하지만, 식물의 광합성은 양자현상의 중첩현상을 이용한다는 것이 실험적으로 증명되어 있다. 이것은 물론 부분적인 것이지만, 생명은 그 생존을 위하여 자연의 양자현상에서 파동함수의 붕괴를 극미하지만 지연시켜 효율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러하다면 우리는 의식에 대하여 새로운 가설을 강력히 수립할 수 있게 된다.

펜로즈는 양자적 두뇌 가설을 주장하고 있다.

윌리엄 캘빈은 두뇌에서 뉴런의 패턴간의 다윈적 경쟁이 인간의 결정을 지배한다고 한다.

이것은 모두 확률의 지배에 있으며, 인간의 마음이 물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통로를 열어 두고 있다. 양자현상은 관측자를 필수적으로 요청한다는 노이먼의 증명을 생각하라.


셋째는, 의식이라는 존재가 단지 물리현상의 부산물에 불과한가라는 의문은 진화론을 고려할 때 가중된다.

인간은 출산시의 고통과 사망의 위험을 무릅쓰고 대뇌피질을 확장시켰다. 자연은 자원과 에너지에 경제적으로 작용하므로 사치나 장식물을 허용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인간의 두뇌는 잠재되어 있다고 하나 사실과 다르다. 인간의 모든 두뇌는 생존의 필요상 전반적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이러한 두뇌확장은 결국 환경에 힘을 가하여 변형시킴으로써 그 생존가를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환경을 변형시키는 인간의 활동 자체가 환경에 의하여 결정되어 있다는 주장은 진정 이상하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의식이 단지 부산물에 불과한가?

인간의 창조성의 문제는 또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또 결정론이 맞다면 인간의 책임 문제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넷째, 펜로즈는 창조성, 논증의 증명가능성 등의 문제는 단순한 논리로서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즉 의식을 갖는 강한 의미의 인공지능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푸는 문제를 컴퓨터는 풀지 못하는 종류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괴델의 불완전성의 정리를 인공지능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불완전성의 정리는 메타논리를 통하여 전체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메타논리를 인공지능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의식은 단순한 논리적인 존재를 뛰어넘고 그 독자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