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이 동시다발적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에 따라, 공간/시간/경험/프레임의 차이는 생겨날 수 밖에 없고,
어떤 사실에 대한 합의를 하고 싶다 해도, 암묵적/비암묵적 전제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상기하렴.
예컨대
이 사과는 빨갛다 같은 단순한 문장을 확인하려고 해도,
그 '문장'에 대한 이해도가 있음을 전제로 할 수 밖에 없고, 이는 문법지식에 대한 앎의 전제,
사과를 보고 추론할 수 있다는 몸의 감지/인식작용에 대한 기능적 합의, 몸의 기능의 전제,
이런 것을 깔고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며
동시다발성이란
오후 7시에, 니가 밥을 먹고 있다면, 그 순간엔 그 자리에서 너만 밥을 먹고 있으며,
그 자리를 조금만 벗어나면 다른 사건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너네 어머니는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고 있을지도 모르며, 너네 아버지는 무한도전을 보고 있을 수도 있다.
이 모든 사건이 같은 시간에 같은 범위의 공간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으며, 이를 확장시키면, 세상은 이것뿐만이 아닌 동시다발적 사건으로 가득차 있다는 사실이나 먼저 깔고 들어가렴.
그러면 이 사실은 도대체 뭘로 검증할건데?
기호를 왜 쓰는데?
언어라는 기호를 쓰기 이전에 합의는 어떻게 하는데?
너는 전제를 검증한다는 걸 왜 이렇게 묻고 따지는데? 니 물음의 전제는 뭔데?
전제는 앞전/끌제, 라는 의미로 잡힌 기호란다.
그 말의 뜻은 배경이란 뜻이란다. 앞에다 깔아놓는다.
이것이 검증을 위한 것인가? 그렇지 않단다. 검증을 하려면, 기본적인 합의를 해야한단다.
왜?
니가 정상인지 아닌지,
니가 지구인인지 아닌지,
니가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지, 이런 합의가 있어야, 어떤 것으로 어떻게 검증을 하겠다는, 그런 합의를 하고 들어가는 거란다.
니가 기호에 대한 이해가 있는지,
이 자체부터 합의가 되지 않으면, 영락없이 프레임의 문제에 들어가게 된단다.
프레임(Frame)은 인간이 성장하면서 생각을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생각의 처리 방식을 공식화한 것을 뜻한다. 프레임은 어떤 조건에 대해서 거의 무조건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프레임을 "마음의 창"에 비유되곤 한다. 즉 어떤 대상 또는 개념을 접했을 때 어떤 프레임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해석이 바뀌기 때문이다.
이는 니 기호가 쏟아 나오기 이전부터, 니 머리속을 지배하고 있는 필터이며,
동시다발적인 현상에서, 니가 갖고 있는 수많은 궤도의 차이들, 그런 것들을 깔고 들어가는 문제란다.
달리 말해
니가 밥을 먹고 있을 때,
니 여자친구는 엄마랑 싸우고 있을지도 모른단다.
그래서 니네둘이 만나면 애초에 다른 프레임을 갖고서 만나게 되는 거란다.
그럼 합의를 해야지? 그러나 둘은 이런식의 다른 궤도 위에서 살아온 시간이 그리고 경우가, 워낙 누적되어있기 때문에, 좁혀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란다.
이 말의 전제는 뭐고 근거는 뭔데? 전제 어떻게 검증할까? 또 기호를 쓸까?
니 앞에서 뻔히 지금 당장 벌어지고 있는 일을, 난 또 말해야할까?
이 글을 너는 지금 뭐하고 있는데? 어디서 읽고 있는데? 넌 나를 아느냐? 넌 누구냐? 넌 어디서 자란 애냐? 난 어디서 자랐을까? 너랑 나랑 같을까?
애초에 다른 프레임을 갖고 들어가는 거란다. 즉, 이 프레임이 이미 전제로 들어가는 거란다.
전제에는 '전제가 되는 문장' 하나만 들어가는 게 아니라, 암묵적으로, 그 전제를 내뱉는 사람의 관점도 전제로 들어가게 되는 거란다.
그리고 이런 합의는 쉽게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문제가 되고, 이런 전제하에서 나오는 귀결은 언제나 충돌의 여지가 있는 법이란다.
그것의 사례는? 너네들의 논쟁 아니겠니?
이런 동시다발성, 발생적 차이, 프레임, 기호
이런 문제를 갖고 있을 때, 이걸 어떻게 합의시키느냐? 합의를 굳이 왜 해야하냐는 질문부터 먼저 던져봐라.
그리고
전제를 검증 어떻게 할거냐는, 니 질문부터 다시 물어봐라. 너는 왜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
그리고 너의 질문의 전제를 확인해라.
그러면 니 프레임이 보인단다.
너도 모르게, 너의 질문 자체에 이미 프레임이 담겨 있는 거란다.
니가 두리뭉실하게 말하지 않을려면, 조작정 정의를 내세울 수 밖에 없는데
그것 자체가 이미 니 입장에서 '어떻게 정의하겠다고 하는, 조작에 해당하며,' 그건 말 그대로, 니가 내세우는 정의이므로,
니 해석이 들어간 정의가 될 수 밖에 없단다.
그리고
그 정의를 확인하는 방법, 그것 어떻게 할건데? 그건 기호로 하는 게 아니란다.
하지만 논리라는 단어가 지시하는 그 사고과정이 뭐냐?
그건 전제에서 결론으로 도출되는, 구조를 지시하는 거란다.
그렇다면 이 말이 뭘까? 너는 이것에 전제를 검증하고 전제를 검증한다는 물음을 던지기 전에,
니가 어떤 프레임 위에 있는지부터나 스스로 물어보렴.
전제는 꼭 검증되야된다는, 어떤 지독한 검증 프레임에 빠져있지는 않은지나 생각해보렴.
그딴식의 프레임에 빠져있으면, 당연히 의미가 없다는 쪽으로 가게 된단다. 왜? 전제는 또 검증을 요구하는데, 그 전제는 또 검증을 요구할테니까.
그딴식으로 가면, 결국 궁극은 몸으로 가고, 몸을 어떻게 볼 것인가? 몸을 믿을 수 있는가? 또 기호로 뽑아내며 회의에 빠지게 된단다.
그러나
프레임의 문제라면,
전제를 다르게 볼 수도 있단다. 어떻게 보느냐? 어차피 사실합의는 어렵단다. 그 자체는 이미 주어져있지만, 인간은 이런 프레임의 문제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가장 먼저 해야할 건, 프레임을 점검하고, 범위를 확인하는 문제부터 해야된단다.
결국
내가 어떤 것을 사실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도, 어떤 전제하에서 말하는지 밝혀야된다면, 이 조건이 어절 수 없다면
이것은 어떤 누군가의 쓸데없는 검증프레임으로 전제를 지속적으로 리프레이밍 시켜야되는 쪽을 택하기 보다는,
애초에 내가 왜 이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는지, '내 사유의 시작점'을 밝히기 위해서 쓴다는, 프레임으로 가는 것이 효율적이란다.
단
내 프레임은 있기 때문에
내 프레임의 전제 하에서는, 저 사람의 얘기의 전제를 계속 검증하도록, 요구하게 될 수는 있지만,
저 사람의 프레임에서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란다. 검증 프레임에서 벗어나있다는 얘기는, 그건 그것대로 두고,
일단 내 사고가 어떻게 잡혀있는지를 밝히기 위해서 쓰는 것이니,
이렇게 접근하면 심리적인 접근이 가능하단다.
나머지 문제는 이 위에서, 이제 그 사람의 사유과정을 토대로,
기존에 개척된 틀 위에서, 그것을 평가하는 과정만이 남는데, 니가 어떤 틀에서 평가하고 있는지는 니 스스로에게나 물어봐.
그리고 왜 그런지도 니 스스로에게 물어봐.
4차원의 세계에서 6차원적발상을 요구하는건 조금 무리가 있으나 예상은 가능하고 이해와 의심과 수많은가능성을 열어두는 사람에게는 추측정도로 가능하겠지
천년더덕글 보고 오시길 추천
한 사람의 말 한마디에 이미 수많은 전제가 담겨있는 셈이군요. 그 사람의 이 말 한마디를 하게된 배경, 입장, 상황, 목적, 함의하는 바 등등. 한 사람이 어떠한 말 한 마디에서 얼마나 많은 전제를, 정보를 최대한 도출해낼 수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비상함을 판가름하는 잣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