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한 사람이 전공자가 되면
더 정확히 말해서 그라는 X가 '전공자'라는 서술어를 부여받게 되면,
그는 마치 그것이 되었다고 가정하는 경우가 있다.
즉 이것이 자격부여인지 존재인지, 따지지 않고 동일성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있다는 얘기다.
나의 존재는 무엇인가? 내가 전공한 것이거나 내 직업이다. 이런 식이다.
그런데 그 사람의 작업방식을 규정해주는 건 무엇일까? 무엇 때문일까?
보통 학생들은 '선생님한테 배운대로'라는 말을 쓴다. 여기에서 문제가 시작된다.
왜 그는 선생을 믿고 있는가?
그가 잘못된 선생을 만났더라면 어떻게 되는건가?
철학에서 논리를 우선시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이 있다고 하여도 궁극적으로는 믿음으로 간다.
믿을거면 왜 철학을 하나? 라는 물음을 던질 수도 있는데, 이건 심리적 문제라고 봐두자.
믿음은 형성되는 것이다.
여기에 주목할 만한 이론이 있다.
자유로워지기 위한 신뢰, 비겁함을 덮어주는 신뢰

그런데 어떤 대상이 충분히 신뢰할만하지 않은데도 믿어버리고 싶은 욕구가 우리에게 있는 것은 아닐까?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앞서 논의했듯이 신뢰를 주거나 권위를 부여해 버리면 내 행동의 잘잘못이 가져야 하는 책임이 나로부터 떠나기 때문이라는 암묵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닐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자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픈 강한 욕구가 존재하며 이러한 합리화를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 내 행동의 원인을 나 자신이 아닌 외부의 다른 곳에 두는 것이다. 한편으론 비겁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론 어리석은 생각일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세상은 그 행동의 책임을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훨씬 더 강한 정도로 물을 테니 말이다.
이후의 신경과학 연구에서는 더욱 구체적으로 이를 설명해 준다. 사람들은 최후통첩 게임에서 불공정한 제안을 받을 경우, 배외측 전전두피질(DLPFC: 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이 평상시보다 훨씬 더 많이 활성화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이 뇌영역이 ‘불공정함’을 알아차리게 만들어주는 곳일까? 이후의 연구들은 조금 더 복잡한 이야기를 해 준다. 이 영역 중 일부가 바로 ‘신뢰’를 담당하는 곳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이 영역이 손상된 환자는 제안을 하는 사람이 얼마만큼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를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대부분 마냥 믿는 경향성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믿기 때문에 불공정한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이를 자주 경험한다. 가족 혹은 가까운 친구들로부터 부적절한 제안이나 지시를 받을 경우 ‘이러지 말아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일을 결국 하는 이유가 그들을 믿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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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실험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실험자가 책임을 지겠다는 메시지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실험자는 심리학 연구에 상당한 경험이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따라서 일종의 ‘권위’가 있는 셈이었다. 450V의 버튼을 눌렀던 참가자들은 실험이 모두 끝난 뒤 왜 전기충격을 계속 주었느냐는 질문에 “지시대로 따랐을 뿐”이라는 핑계를 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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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 실험자가 어리숙하고 경험이 적어 보이는 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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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조교라 해도 그런 핑계가 가능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일이 왜 가능했었는지 답이 나오기 시작한다. 권위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책임을 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핑계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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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을 가장 빠르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단순하다.
첫째
권위가 있거나
권위는 없어보이지만 실력은 있어보이는 사람을 찾아라!
둘째
권위를 부여하고 책임회피의 논리를 만들어라!
즉 저 사람이 시켰고, 나는 따르지 않으면 안되었고, 내가 잘못되더라도 내 책임은 아니다! 라는 논리를 세워두어라!
셋째
실행하라!
그러면 너는 아무런 죄책감없이, 거리낌없이,
너의 마인드 컨트롤로 의해, 한 사람을 카피하는데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되고, 오히려 그것이 주어진 역할이라는 판단을 하게 된다.
달리 말해, 너가 그 순간 실험에 참여한 조교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너의 뉴런의 연결. 습관.
너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습관이 되는 것이다.
;;; 히틀러시대에 태어났으면 유태인 킬러영웅될사람일세
이렇게 심각하게 안써도 될거 같은데 간단한걸 ㅋㅋㅋ 어차피 기준은 누군가 설정할수 밖에 없다.설령 그사람이 아니더라도 핵심은 누군가의 권위가 아니라 순서적인 문제일 뿐일수도 있지.그리고 이해의 범주에 들어가게 되면 네가 말하는 권위는 사실이 되지 않을까?
인간은 기억 구조에 영향을 받는다. [부호화->저장->인출] 이 때에 학습도 [부호화->저장->인출]의 구조에 해당하는데, 이 때 어떻게 부호화시켰는지가 인출시켰는지를 결정짓는다. 텍스트 공부를 한 사람은, 그 텍스트를 요약했던 방식대로 떠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람이 매번 새로운 문제를 마주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가 그 문제를 탐구하고 대처했던 방식을 \'부호화\'시켜놓은 적이 없다면, 그는 문제를 대처하는 방법을 인출할 수가 없다
자기 의심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구태여 구분한다는게 그 역시 필요할지는 모르지만 단순히 학습영역에서까진 불필요할거 같다.단 사회현상으로 해석하면 굉장히 심각한 문제이다.
사람이 마주친 문제에 속수무책이 되고, 조용한 자리를 찾아서 분석할 시간을 갖는 것은, 바로 그 문제상황에 대한 분석을 해야할 필요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의 문제는, 바로 이 때 조용한 곳에서 분석하던 과정은, 다시 새로운 문제를 마주할 때의 상황과 다르다는 것이다. 즉 그 분석했을 때의 모습을 인출하게 되면, 그것은 또 다시 문제상황과 일치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또 꼬이게 되는 일이 발생한다. 문제를 마주했을 때는, 그 문제의 리듬과 비슷한 항목들을 머리속에 떠올리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인출해도 잘못된 인출을 하게 되는 것
학습방식에 일단 권위는 필요함. 단 그걸 뛰어넘는 보충기제를 해줘야하는 것이지. 난 오히려 자율적 토론 이란 미명하에 대학교육이 애들을 망치고 있다봄. 그냥 레포트 써갖고와서 발표하고 같잖은 토론 하고 땡임. 얻는 것도 없고 의미도 없는 무의미한 토론. 누군가 일단 기초를 주입하고 강독을 해줘야 그걸 뛰어넘을 수도 있는 것임. 계몽이란 빛을 보여줘야 소통도 가능함. 저런식의 대학교육이 지가 똑똑한 줄 아는 바보들만 키워댐. 그 결과가 한심한 한국사회고.
천재/ 글을보니 너 주변에서 너의말을 공감할수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꺼같네. 수준이 너무높아서 일반인이 절대공감할수가 없어. 이걸 인정한다면 자기가 바보라는 소리잖아
많은 사람들이 교육을 받아도 현실에 대처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과서는 요점정리가 되어있다. 하지만 현실은 문제구조로 되어있다. 그리고 대개 사람들은 배운대로 실천하지 못한다. 왜? 근본적인 회의가 있기 때문이다 \'이게 맞을까?\'하는 회의. 이것은 순간 행동으로 옮기기 힘들게 만든다. 이 때 좋은 처방전은, 바로 그 행동이 권위가 부여된 명령이라고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하면 스스로 마인드컨트롤을 하는 것이다.
자고로 바보는 자기가 바보라는걸 절대로 모르니 바보짓을 계속하지.
달리 말해, 처음부터 문제를 대면하는 리듬에 맞게 요약정리를 해야하는데, 그렇게 못하고 있다는 실정이다. 왜 그럴까? 너네들 뭘 가지고 공부하니? 공부하는 방식이 어떻니? 대개 교과서와 선생의 요약정리로 되어있다. 이 말의 뜻은? 윗 글에 비춰보면 왜 학생들이 교육을 받고도 현실에 대처하지 못하는지를 설명한다. 그들은 암묵적으로 \'교과서의 방식, 선생이 가르친 방식(요점정리 및 낭송)을 권위로 깔고, 그렇게 공부하는 게 최적이라는 믿음을 갖고, 행동으로 임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입식이 학교의 문제라고? 지랄하지마
밑에 빈벤더스라는 사람이 힌트 줬네.어차피 인간은 전부 거짓이야.그건 어쩔수 없지.복제가 없으면 구조 자체가 무너진다.사다리로 해석하면 되지뭐.
너네가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이 [부호화-저장-인출] 이라는 과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문제구조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한발자국도 나갈 수가 없단다. 왜? 이것은 만들어진 게 아니라, 인간의 정신활동을 기록해놓은 것이기 때문이지. 니네들이 지금 쓰는 글들도 부호화된 것들의 인출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된다. 문제는 여기에 알게 모르게 권위에 대한 복종이 작동한다는 거야. 그게 언제냐? 니네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암묵적으로 너에게 권위를 부여하는 지식체계를 참조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어떤 학습법을 새로 배워도, 그 학습법을 실천할지 안할지를 결정하는 건, 그 학습법의 효과여부만이 아니라, 그 학습법을 누가 만들었느냐? 누가 제안하고 있느냐? 그 사람이 가진, 그 사람의 집단이 가진 영향력이 크기가 문제가 된다. 그 권위만 확보된다면 내가 책임을 감당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고, 내가 문제가 되더라도 집단에 문제를 돌릴 수 있고, 그 집단에 속한 사람도 같은 고민을 갖고 있을 것이므로, 나 혼자 죽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첫째, 니가 공부할 것에, 공부하는 방법에 권위를 부여하라, 앞으로는 이 학습법과 공부내용이 세계의 맥락이 된다는 걸 가정하거나, 니가 그렇게 실현시키거나(이건 불가능하겠지 니가 권위자여야 된단 소리니) 그런 걸 찾아라! 둘째 적극적으로 같이 죽을 물귀신들을 찾아라. 그러면 적어도 심적 부담은 덜하게 된다
니가 씨부리는것도 니논리에 의하면 전부 다 복사품이야 알겠냐?
그리고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무시할수는 없지.효율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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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대로 FM대로살면 잘살수있냐글면ㅋㅋ
동의.
천재 / 이런 사고는 누구나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 체계적으로 글로 표현 하지 않을 뿐입니다.
흔한 자기위로가 아닐까 합니다. 이미 쓰여진 글을 보고나서 사후판단적으로 '누구나 생각했던거다. 글로 표현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하는데 얼마나 치졸한가.. 사람이 생각한바를 말이나 글로 인출,표현할 수 없다면 그 지식은 죽은 지식이다. 인출 불가능해서 실생활에서 써먹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이나 글로 표현조차 안되는건 필요할때 '떠올리는 것' 조차 할수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