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썼던 글 이어가자.
내용상 연결되는 게 아니라,
좀 다른 부분에 주목한다.
근데, 제목을 정하기가 귀찮아서, 비슷하게 써둔다.
참고로 말하면
이번 글은 굉장히 어렵다.
왜냐하면 추상적이다.
그래서 철갤러들은 이 글을 이해하기가 힘들 수도 있고
글이 좀 불친절하단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한 반응은 받아들인다. 그것에 대해서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이 글이 좀 더 쉽게 쓰였으면 좋겠다는 수요가 있다면, 그렇게 써줄 용의도 있다. 이미 계획해두고 있다.
그러나 일단은 이렇게 초석을 깔아둔다.
나중에 이 글을 보면, 왜 이렇게 쓰였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영리한 철갤러라면 지금 내가 한 말이 무엇인지 알 것이다.
1. 언어의 문제.
너무 산발적이다.
이 단어들이 사실상 '대상'을 직관하면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단어는 2개의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
S가 있다.
둘째
P가 있다.
이 때 S에는 또 문제가 있다.
첫째 - 존재
둘째 - 사태
셋째 - 화제
이게 문제다.
존재는 오브제라고 봐도 무방하다. 물. 인간. 건물. 등등의 오브제라고 보자.
사태는 좀 더 포괄적인데 배경을 포함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존재에 배경을 포함한 것이다.
화제는 인식적인 것도 포함한 것이다. 예컨대 '실존주의는 ~~~하다' 라고 할 때, 이것은 존재가 아니며, 사태도 아니다. 이것은 화제다.
S에는 이런 것들이 들어오게 되고,
사실 존재와 사태를 제외하면, 화제는 일종의 존재론적 은유에 해당하는데
이것은 사실 존재/사태를 직관하여 P로 뽑아낸 것을, 말그대로 S에 옮겨놓은 것이다.
즉 이번에는 그렇게 뽑아낸 P에 대해서, '직관'해보자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래서 이 사실상 P에 해당하는 것이 S라는 수술대에 올라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인지언어학자들 중 일부는 '존재론적 은유'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말이 이해에 도움이 된다면 이것을 유념해볼 필요가 있다.
P는 무엇인가?
이제 이것이 인간 사고가 뽑혀져 나와서, 패턴으로 정리되는 부분인데,
크게 2개로 나뉜다.
첫째 - 성질
둘째 - 관계
근데 관계가 성질을 포함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소유관계가 될 것이다.
이것은 은유적인 것인데, 예컨대 '저 사람은 착한 성질을 갖고 있어"라고 표현해보자.
이것은 '저 사람은 착하다'라는 것을 소유구문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 SP를, '~이다'와 '갖고 있다'라는 두 차원으로 쪼갤 수 있는데,
이 때에 발견하게 되는 것은, 이 둘의 쓰임새라기 보다는, 이 둘에 '프레임'이 개입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시답잖은 논쟁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말해, 둘의 차이는 '프레이밍 방식(취급하는 방식)이 좀 다를 뿐, 그외의 차이는 없다는 것이며,
이것의 기준은 '보는 방식'이고, 그에 따라 유형이 나눠진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접근하면 다루는 게 쉬워진다. (이제 이 접근을 니가 받아들이냐의 문제가 달린다. 왜냐하면 결국 문제는 선택을 할거냐 말거냐이기 때문)
일단 이 신체적인 기능을 토대에 두고 가자.
철학이란 이 신체성을 유념하면서 사유를 해나가는 것이다.
근데
내가 왜 이 이야기를 했냐면
여기에 공통적인 것이 있는데,
이것은 여태 언어학에서 나온 것과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지' 또는 '사고'라고 불리는 것이다.
사실 언어학의 프레임은 이런 사고측면을 다루지 않는다.
솔까 말해서, 음운론 통사론이 사고에 대해서 뭘 알려주는가? 그런 건 없다. 이미 깔려있는 사고를 전제하고 접근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식화된 적 없는 사고'를 가지고, 언어를 분석한다는 건, 무슨 가치가 있는가?
자칫하다 그것은 하나의 권위가 될 뿐이며, 복종의 대상이 될 뿐이다. 그것은 사람을 굉장히 피곤하게 만든다.
냉정하게 말해보자.
주어-동사-목적어가 알려주는 게 뭔가?
이것 자체는 알려주는 게 없다.
그저 쪼개진다는 것만 알려줄 뿐이고, 어떤 기준에 의해서 저렇게 분류되는 걸 알려줄 뿐이다.
그것은 1인칭의 주체의 시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심리의 측면에서 보면,
이것은 '지각의 분화'를 설명한다.
즉 내게서는 S를 잡힌, 주의된 대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또한 P가 된, 추론된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또한 S와 P 중에서는 '관계'의 측면에서 볼 때, 주/객의 관계를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소위 타동사라고 하는 것은 '주어-동사-목적어'로 볼 수도 있지만, '참여자간의 엮임'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접근 기존 문법에 이미 '프레임'이 걸려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한다.
즉, 1인칭 프레임이 들어있는 것이다. '주체'를 중심으로 한 프레임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경우는 없다.
오히려
상황 자체에서, 무엇이 더 '주'가 되고, 무엇이 더 '객'이 되는가?
이런 문제가 있을 뿐이다.
당신이 책을 보고 있다면,
당신의 눈에 '주'가 되는 것은 '책'이고, 당신에게서 '객'이 되는 것은, 책의 주변 시야다.
바로 이것이 지각이 분화되는 과정이며,
또한 이것으로 인해, 당신과 책의 관계가 잡히게 된다.
즉 당신이 '주'이고, 책이 '객'이다. 그리고 그것의 '관계-얽혀있는 양상'이, P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유형의 P는 태생적으로 서술어 자릿수를 2개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애초에 직관으로 인한, 지각분화가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설명을 잠깐 여기서 끊고,
언어의 공통이 뭔지를 다시 묻자.
그것은 인지다.
뭔 말이냐면,
인간의 언어가 굉장히 산발적이지만
사실 S->P로 추론되는 과정은, 철저하게 직관과 인식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S를 쳐다보면 자연스레 거기서 끄집어내지는 게 있다. 그것이 P다.
그래서 S에 들어있다 하여 '속'성'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는데,
이것은 사실상
S
= 성질1
= 성질2
= 성질3
= 성질4
이런 식으로
S에 더덕더덕붙어잇는 것을 '직관으로 인해, 접하게 됨으로써'
그것을 찾아내고
그 다음에 그것을 '언급'함으로써,
(여기서 부터 중요하다 잘 봐라.)
그것이 '구강구조/손의구조'에 맞게끔, 선형으로 나타나게 된다.
문제가 여기서 발생한다.
실제로 S와 P는 선형적 형태가 아니다.
사과는 그 성질을 선형적으로 보유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포함관계로 봐야 한다.
사과 안에 포함되어있는 것이거나, (이것도 상상력이니)
사과 자체가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그것을 접하게 되면,
지금 내가 글을 이렇게 선형으로 늘여쓰는 것처럼
그 직관/인식된 것을, 인간의 구조로 끄집어내게 되는데, 그것이 다름아닌 '선형(시간적 배열)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태생적인 괴리다. 이것이 사람을 오해하게 만든다.
실제로 생각은 선형적이지 않다.
오히려 벤다이어그램에 가깝다.
인지언어학적으로 말하면 '포함도식'에 해당되는 것이다.
가장 큰 집합차원에서는 '일반진술'이 있고, 그 밑으로 '개별진술'이 있고, 그 밑에 '결론진술'이 있는데,
다시 이를 통으로 비유해서 얘기하면
가장 밑에는 가장 자그만 통이 있고, 그것을 포함하는 좀 더 큰 통이 있고, 그것을 다시 포함하는 더 큰 통이 있다는 얘기다.
근데
이것이 인간에게서 발화될 때,
이 발화구조에 맞게 (입을 잘 봐라) 형태가 번역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것을 해결할 수가 없다. 근본 구조가 이렇다.
그리고 정말 큰 문제는 인간은 '감각'에서 사고를 형성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것이 곧 일반화가 된다는 얘기다. 즉, 실제로는 선형적이지 않은데, 선형적인 것을 일반으로 취급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벤다이어 그램의 제일 큰 부분이 '선형'이라는 것으로 특징잡히게 되고
다시 그게 연역으로 밑으로 쭉 내려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근본 구조를, '선형 구조'로 덮어씌우고 오해하게 만드는,
근본적 괴리에 해당한다. 아주 골치아픈 문제다.
이 얘기를 한 이유가 무엇인가?
모든 단어는 S나 P에 해당하는데
문제는 이것들은 니가 의식하든 못하든, 이미 그 규칙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단어는 사실상 '체계'를 갖게 된다. (이것은 좀 어려운 사고방식이다. SP의 사이에 인식 작용을 이해하지못하면 이해불가능이다.)
그 이유는 S에서 P가 나온다는 것부터가
비슷한 공통의 토대를 갖고 있는데
그것은 '오브제가 있음.' '직관/인식이 들어감' - '그것에서 나옴' '분화가 일어남'
이런 것인데.
이를 이 수준에서 유형을 잡으면
'직관 - 인식 - 분화'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엔 각각의 프레이밍이 있을 테니 프레이밍까지 넣을 수 있다.
내가 지적하는 건 이 부분이다.
언어를 쓸 때에 가장 공통의 부분이 어디인가?
언어를 꿰차는 통의 부분이 어디냐는 것이다.
언어는 단순히 산발적인 것인가?
아니다.
그것을 묶는 가장 상위 단위가 있다는 얘기다.
개개별의 사람을 지금 표현한대로 '사람'이라고 쓰듯이
언어 하나하나를 묶는 표현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직관 - 인식 - 분화]라는 작용을 다시 한번에 묶어주는 것.
그것이 인간의 '인지'라는 것이다. 이게 가장 상위 단위이고, 지금 당장은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러면
나머지는 이 인지에 해당되는 것에서 세부적으로 나뉘어질 수 있는 것들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언어의 이면에서, 언어를 작동시키는 토대가 되는 것이며
사실상 이 작업을 시도 했던 사람이 '로널드 래내커'라는 사람이다.
그 사람의 책 제목이 '인지문법의 토대'라는 것이었는데, 이 '토대'라는 것을 그 사람이 찾으려고 했던 것이다.
(물론 이 글은 그 책의 서평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난 그 책을 다 못 읽었다. 사실 그 책은 지금 내가 쓰는 글 만큼이나 추상적이다.
그래서 타인이 개입하기가 어려운데가 있다. 게다가 언어를 언어로 설명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프레이밍 문제에 걸려든다. 읽는 순간에 그 책처럼 읽지 않으면 읽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복해서 프레임을 교정해가면서 읽어야하는데, 아주 고난한 작업이다.)
본론을 다시 이어서,
S->P
존재
사태
화제
직관/인식/분화
성질
관계
이것들을 잘 보자.
이것들을 묶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인지이고.
이 부분이 가장 추상적인 부분인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분이 나머지 밑에것들을 다 한번에 묶어주는 장치가 된다.
'학생'이라고 부르면, 나머지를 얘기할 필요가 없어지듯이 (일반진술이기 때문, 개개별의 학생들은 이 학생의 속성을 대부분 공유하고 있다)
언어가 가지는 수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으로 꿰어지는 것을 이 '인지'라는 단어가 갖고 있다는 것이다.
(너무나 어려울 것이다. 기존의 사고방식과 작별을 고하는 게 너무나 많다. 해석 부터가 완전 다르다.
즉, 앞으로의 독해는 단순히 책을 읽는다. 저자의 주장과 근거를 안다 수준이 아니라, '인지분석'이라는 용어로 바뀌게 된다.
오히려 문학적인 접근에 가깝게 된다. 상황/정서/태도/표현기법'을 요구하기도 한다. 기존의 글쓰기에 기분까지 고려하는 것이다.)
일단은 여기서 잠깐 끊자.
이 글의 가장 중요한 요지는, 언어에는 공통의 원리가 있다는 얘기며, 그것이 모든 단어를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근데 그것은 '인지'라는 것이다.
그러면 문제가 생긴다. 이 '인지'는 도대체 무엇인가?
아직 이걸 확정할 수가 없다.
왜냐?
지금도 이 연구가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지언어학자들이 말하는 것이, '연구결과가 진행될때마다' 그것이 언어현상을 연구하는데 반영된다, 라는 표현을 쓴다. 한마디로 이 언어의 토대는 '인지'에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인지'가 되는 것이며, 이 연구의 결과로 '언어'를 설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지'는 현재까지 강력한 가설로 제시되는 것을 취급하게 되며,
그것은 앞서 말했던, 직관(주의), 추론(인식), 분화(지각), 대략 이런 것들이고,
이것이 공통의 원리이자, 토대로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 말했지만
지금도 굉장히 혼란스러울 수 있는데
원래 사고의 형식은 선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포함관계에 가깝다.
사과는 선형적이지 않다.
사과의 성질이 선형적으로 '나타나'있지 않다는 얘기다.
인간이 그것을 선형적으로 번역한다.
그리고 인간이 그것에 주의한다
그리고 인간이 그것을 일반화한다
그리고 인간이 그것을 '연역'한다.
여기서 비극이 생긴다.
일단 이렇게 알아두자.
근본적으로 '피상'이 아닌, '속'을 들여다봐야 한다.
이것이 그 껍질을 제끼고 들어가는 접근이다.
굉장히 어려운 것이다.
이 글의 단점은, 내가 쓰고도 내가 기억을 하기 힘들다는 것인데
첫째 이 글을 쓰는 나도 기억의 구조에 영향을 받는다
둘째 글을 쓰는 것과 글에 대해서 내가 적용을 하는 것은 좀 다른 차원이다
비유를 하면, 쿤데라가 그런 얘길 한다. 작품이 위대한 것이지 작가가 위대한 것이 아니다
안나 카레니나가 위대한 것이지, 톨스토이가 위대하진 않다는 얘기다
작품보다 작가가 위대하다면 그는 다른 직업을 택해야 한다
이것은 \'사고\'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다. 그 인간성은 높은 수준이 아닐 수도 있으나 \'사고\'는 위대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언행일치에 대해서 두려움을 겪기도 한다. 특히 어떤 사람이 냉철한 글을 썼지만, 그 자신은 현실에서 냉철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그 때에 이 얘기를 떠올리면 도움 될 것이다. 당신의 생각이 냉철했던 것이지, 당신이 냉철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다. 얼핏보면 지적질을 하고 싶은 부분이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이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본다
물론 신뢰의 측면에서 보면, 변명에 해당한다. 하지만 일단 이런 현실적인 오류가 발견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가겠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