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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고 왔다.



일단 오늘 쓴 글들을 짧게 정리한다.



문제의식은 단순하다.
1. '매번 마주치는 이 순간의 연속'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2. 그 때의 인지전략이란 무엇인가?
3. 이 인지전략이 있고 없고에 따른 차이는 무엇인가?

그 대답은 단순하다.
능동적이게 되거나 수동적이게 된다.
또한 이것은 계속 지속된다. 능동적이게 되면 계속 능동적이게 되는 것이고, 수동적이게 되면 그 이후도 수동적으로 굴게 된다.
따라서 순환을 끊어버릴려면 어느 하나를 택하거나, 둘 다를 의식해서 때에따라 몸을 맡기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를 말해보자.


앞부분에 썼던 것이 있다.
그 상황을 가지고 계속 얘기할 것이니,
지금 머리속에 이 상황을 때려 박길 바란다.

케이스 
<지하철에서 이상형과 마주한 상황>

내가 내릴 역은 다다음인데,
보자마자 심장이 멎어버릴 정도의 아름다운 여자가 지하철에 들어왔다.
나는 순간 경직됐고, 정신이 마비가 된다.
나는 다다음 역에서 내린다. 그 말은 지금 말을 걸지 않으면, 이 여자를 놓치게 된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나는 말을 걸 것인가? 말을 걸지 말고 갈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물론 이것은 단순화시킨 것이다. 
여기에는 말을 어떻게 걸것인가? 하는 구체적인 부분이 논의될 수 있다.









여기에는 4가지 큰 문제가 생긴다.

첫째 수동성과 능동성이다. (즉 속박이냐 자유냐.)

둘째, 프레이밍의 문제.
이 순간을 해석해내는 수많은 방식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프레이밍의 문제라고 한다.
그리고 프레이밍의 문제는 근본적인 바닥이 '인지'라는 것에 있다. 

셋째 기호의 문제
머리속에서 기호가 나타날 경우, 이번에는 이 기호가 구체적인 대상이 경우가 생긴다.
즉 기호가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 경우 기호에 갇히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넷째 기억의 문제
내가 기억해놓은 것들이 환기된다.
또한 내가 기억하려고 한 것들이 망각된다.
인지전략을 개발했다 하더라도 이것이 망각되는 순간, 나는 잊어버리게 된다. 따라서 속수무책이 되버린다.


이제 이 4가지 문제를 두고, 
몇 가지 정보와 개념에 대해서 짚어보자.





혹시나 해서 다시 요점을 잡자면
문제는 '매번 마주하는 순간' 어떤 인지전략으로 대처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 문제의 심각성이란, '수동적이게 될 수 있다는 위험성이다. 자발적으로 수동적이게 된다. 발전이 없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니가 그 이상형 앞에서 꼼짝없이 굳어버린다는 얘기다. 그 이상을 할 수가 없다. 수동적이게 되기 때문에 눈치만 본다. 
그러면 너는 갖고 싶은 것도 갖지 못하는 상태가 생긴다. 물론 니가 갖고 싶다고 해서 다 갖는 것도 아니지만, 그 순간을 눈뜨고 속수무책으로 보낸다는 얘기다. 이 상태에서 정신승리법으로 개발된 것이 무소유다. 이것은 아들러가 정식화한 열등감을 해결하는 전략 중 하나다.


이 문제를 상기시킬 전략이 있다.
케이스로 <지하철에서 이상형과 마주한 상황>을 갖고 시작하자.
즉, 뭔가 구체적인 게 잡히지 않으면, 계속 이 케이스로 돌아가면 된다. 

어차피 이런 경험은 한 두 번쯤은 갖고 있을 것이니, 
현장감도 충분하고, 그 안에 감정적인 것들도 분명 들끓을 것이다. 이런 케이스가 좋은 케이스다.




이 문제의식을 좀 더 세분화시키면 다음의 문제들이 나타난다.
첫째 - 수동성과 능동성의 문제
이는 내가 철갤에서 자주 언급했던 부분이다.
천재성을 가로막는 원인에 대한 글.
권위와 복종 그리고 학습의 관계에 대한 글.
이는 주로 상대방의 반응과 관계없이 너의 사고는 능동적이어야 된다는 것으로,
최근에는 실용적 유아론이라는 글로 정리를 해두었다.

둘째 - 프레이밍의 문제
사실 이게 윗 링크 중 <언어로 알 수 있는 것들>에서 주로 제기되었던 문제다.
인간의 언어에는 근본적인 바탕이 있다. 그것은 기호에서 의미가 끌려나오는 '방식'들에서 찾은 것이다.
그것이란 무엇인가? '인지'다. 그 중에서 인지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프레이밍'이다. 즉 보는 방식을 결정짓는 어떤 특정한 작용방식이다.
이것을 공통에 두고 가자는 것이다. 즉 여기서는 2개로 언급한다. 첫째 인지가 공통이다. 둘째 프레이밍이 그 중 핵심적인 것이다.
(달리 말해서, 니가 '인지적인 것을 공통으로 '본다'라는 표현은, 바로 그것을 프레임으로 삼겠다는 얘기다. 그러니 프레임은 가장 밑바닥에 있는 것이다. '본다'는 것과 관계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아직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 문제는 더 논의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심리학의 가장 뜨거운 개념 중 하나다.)

셋째 - 기호의 문제
역시 <언어로 알 수 있는 것>이라는 링크에서 다루고 있는 것이다.
SP와 관련된 문제를 다룬다. 이 안에 내재된 것, 이 기호들을 공통으로 묶어주는 것이 '인지'라는 얘기를 했고
이 때에 '인지'에 주목한 게 프레이밍의 문제라면, 그것이 형태로 나타난 것에 주목하는 게 '기호'의 문제다.
여기서는 기호의 폐해를 지적했다. 기호를 대상으로 취급한다는 말은, '기호를 직관'하면서 기호 자체에서 속성을 뽑을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넷째 - 기억의 문제
밑에 <씨발 돌아버리겠네>라고 쓴 글에 담겨있다.
이렇게 분석을 했더라도, 이것을 망각하게 되는 현상을 지적한 것이다.

이건 철갤러들도 겪는 일이다.
어떤 사람이 굉장히 통찰력 강한 글을 썼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그 글을 기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가 정리시키지 않았다면, 그가 어떤 식으로든지 그걸 기억하는 방법을 정해두지 않았다면
그는 자기가 통찰을 해놓고도, 그걸 떠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와 관련된 몇 가지 개념을 제시한다. 도구라고 보라.
첫째 - '~할 때' 를 중심으로 접근하는 방법.
정적인 사고와 동적인 사고를 구분하면서 쓴 표현이다.
전자는 박제된 사고방식이다. 앎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상황, 실존을 대처하는데는 속수무책이다.
사람들은 매번 연속적인 것을 마주하고, 선택을 해야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지,
골든벨처럼, '이것의 속성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답받도록 요구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위의 케이스를 보자.
지하철에서 저 여자가 너한테, 갑자기 골든벨 퀴즈를 낼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니가 그 여자에 대해서 호르몬의 종류별로 뭔가 분류를 했다거나, 여자의 해부학적 구조를 분류해냈다고 하여도,
그것이 그 여자와의 '마주침'에서 결정적인 어트랙션 포인트가 될 수는 없다. 정적인 사고의 위험성은 안다는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중요한건 '그 때' 뭘 해야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리스트가 나오느냐의 문제다.
 '~할 때' '~ 때' 어떤 식의 대처를 하느냐? 

즉, 그 여자가 지하철에 나타났을 때, 니가 몸이 경직되었을 때, 
너는 대처할 전략이 있느냐? 노하우가 있느냐?
이에 따라 니가 행동하는 방식이 결정되고, 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지, 다른 것은 없다는 얘기다. 진짜 문제의 범위는 여기에 해당한다.
나머지는 안드로메다로 보내야 될 범위들이다.
그 여자는 너에게 해부학적 지식을 물어보지 않는다.

둘째 - [이 사태에 대해서 (______)적으로 본다면, 이러이러하게 얘기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이러하게 행동할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의 망각을 대처하는 방법 중 하나다.
내가 개발해놓고 내가 놓치는 경우가 있다.
그 중 하나가 '내가 개발'했기 때문에, 나는 당연히 기억하고 있을거란 사고에서 기인한다.
황당하게도 내가 개발하고도 내가 잃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내거라고 생각할 때 더 그렇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듯이, '내가 개발'했기 때문에, 당연히 기억할거란 생각에서 더 기억하려 하지 않게되고, 
내 기억의 메커니즘은 그와 관계없이 환기되지 않은/반복되지 않은 정보는 자연스레 기억에 잡아두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잊어버리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프레이밍 접근법을 내 사고에도 적용시키는 것이다.
즉, 내가 접근하는 방식을 '도구'로 개발시킨 다음
'~적으로' 라는 기호로 바꾸고.
매번 사태에 이 문장을 정식화시킨 다음, 그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다.
어색하게 느껴지고
왠지 실패할 것 같이 느껴지더라도, 이렇게 하고 안하고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이 정식화된 문장의 자매버전은 "내가 ㅇㅇㅇ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에 해당한다.


셋째 - 물음에 대해 대답하는 방법

알고 모르고를 결정하는 것은, 대답할 수 있느냐 없느냐다.
자기기만은 금물이다. 대답하지 못한다는 것은 머리속에 없거나 정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근데 알기는 아는데,
대답하는 방법을 몰라서,
기억에 접속하는 방법을 몰라서 모르는 경우도 있다.

이 때 대답하는 방법은, 직관의 순서를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이것은 뭔가 역행하는 느낌이 들 것이다.

예를 들자.
누군가가 묻는다.
"새란 무엇인가?" 
이 때 이 물음에 꼭 속성으로 대답해야된다는 착각이 생긴다.
즉, "새란 날개가 있고 날아다니는 무엇이다" 이렇게 답하지 않으면 틀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문제는 이렇게 답하는 게 맞다 하더라도,
머리속에서 이렇게 떠올리면 안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머리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인간은 기억을 인출할 때, 저렇게 기호 자체를 인출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지를 먼저 떠올림으로써 그것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기호가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인지 작동 과정을 밟아야 제대로 된 대답이 나오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멍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남들의 머리속에서 벌어지는 과정이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서 달변인 사람을 보면, 마치 저 사람은 천재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이미지를 번역하고 있을 뿐이다. 이 견해의 지지자 중 한명이 움베르트 에코인데, 그의 소설 작법을 보면, 우선 세계부터 만들고 몇 가지 규칙을 설정한 다음 그것을 기호로 '번역'한다는 표현을 쓴다. 이것을 잘 유념할 필요가 있다. 언어가 왜 나오는지? 그것은 SP만 제대로 관찰해도 나온다. '화제'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직관된 대상이다. 그래서 그것이 주어 자리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을 보면 뭐가 나오는가? 안에 있는 성질이 나온다. 그래서 '속성'이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작동과정을 밟아서 번역하는 것을 
물음에 답하는 방식으로 지시해두는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답하는 샘플을 보자.

물음 = 새란 무엇인가?
생각과정
1. '새의 대표적인 사례가 무엇인가?
2. 참새(를 떠올렸다고 가정하자)
3. 직관/인식
4. 참새가 날아가고, 날개를 푸득이고, 모이를 쪼아먹는 것을 본다. (상상에서)
5. 개별적인 것을 제거하고, 속성만 잡아보자. 곧 [날다. 날개가 있다. 모이를 쪼아 먹는다] 라는 것이 P로 남게되는 것을 보게 된다.
6. 이걸 그대로 발화해주면 된다.
즉, S+P로 붙여주면 이 [ ]에 해당하는 것이 기호로 채워진다.

넷째 - S+P로 환원시키는 접근

모든 언어가 나오는 방식은, 실세계의 효과가 지칭되는 방식,
즉 대상에 직관/인식이 일어나고, 그것들이 SP로 배열되는 방식이다.
위에 셋째에서 얘기한 것들이다.

이것은 사전에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물음 = 실존주의란 무엇인가?
실존주의란 ~~~~~~ 한 것을 말한다.
    (S)                (P)

이것을 사례로 풀어도 SP로 설명한다.
1) 어떤 여자가 지하철에 있다고 해보자.
      (S)                   (P)
2) 당신이 그 여자에게 다가갈지 아니면 다가가지 말지를 고민한다고 해보자.
       (S)                             (P1)                      (P2)



뭔 말이냐면
어차피 기호가 이렇게 대상에서 직관되면서 나오기 때문에
이 구조 자체는 불변이란 얘기다.
그리고 환원을 할 때 다른 환원은 문제가 될지 몰라도
인간의 신체쪽에 해당하는 환원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
최종적인 이해는 결국 인간이 해야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부분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그 자체에 대한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할 수 있어도,
그 자체를 '인간이 인간으로서 이해할 수 있는 최선'으로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가 된다.

인간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을, 어떻게 인간이 이해하겠는가?
그것은 존재하더라도 읽어낼 수가 없는 것이다. 설령 이렇게 모순된 표현으로 쓸 수 밖에 없다 하더라도. 그렇게 되는 것이다.
물론 정확한 표현은 '읽어낼 수 없는 것은, '존재한다는 사실 조차도 떠올릴 수 없다'는 것이 적합하다. 읽어낼 수 없는데 뭘 떠올릴 수 있는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추상적인 부분이다. 즉 '자각조차 못하는 것이 있을 수도 있다'라고 얘기하는 것인데,
이는 현실적으로 보면, 애초에 자각되지 않는 것이다. 단지 그러한 게 있을 거라는 자각이다. 
마치 '선'이 언어로 표현되지 못함에도, 그것을 계속 언어로 표현하려는 것과 같다. 왜? 언어로 표현되지 못한다는 것을 제시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자각되지 못하는 것은 애초에 언급될 수가 없다. 다만 자각되지 못하는 게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언급함으로써 계속 이 가능성을 자각하는 것이다. 근데 이건 경각심을 자극하는 것에 해당한다. 그래서 실용적으로 받아들이면 의미는 있으나, 이것 자체가 크게 논의될 이유는 없다.
어차피 논리는 이정도까지가 한계다.


다섯째 - 직관영역은 선형적 구조가 아니다. 차라리 포함관계 구조에 가깝다. 또는 내재성이다.
다시 윗 내용을 이어가면
어떤 용어가 있을 때,
그 용어를 해독하는 방법은 SP관계로 환원시키는 것이다.
선형적으로 굳이 읽지 않더라도, 이 관계로 풀어서 접근하면 가능하다.

다음의 예를 생각해보라.
사과는 선형적인가?
사과의 성질은 선형적인가?

그렇지 않다.
사과의 성질은 포함관계에 해당한다.
사과 안에 있거나
사과 자체에 내재되어 있거나
이런 식으로 표현되지

사과 - 껍질 - 알맹이 - 달콤함
이런식으로 지시되는 성질들 하나하나가 라인으로 연결되어서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인간이 인지할 때,
그러한 형식으로 번역을 하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지
실제로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기호의 문제 (3) 
이것이 여기서 개입되면 언어의 환상에 빠지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즉 언어의 구조로 사고의 구조를 재단하려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오류이며
이 사고에 빠지면 답이 없다.









일단 여기까지 해두자.
이것도 나중에는 99단 수준으로, 태종태세문단세 수준으로 시스템화시킬 예정이다.
사용되지 못하는 지식은 죽은 지식이다. 그런 지식은 전략으로 쓸 수 없다. 전략으로 쓸 수 없으면 대처할 수 없다. 대처하지 못하면 속수무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