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이 배우 원빈과 신작을 논의 중이라고 한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이에 대해
다음의 트윗 반응이 나왔다.
[단독]원빈, 이창동 감독 극비 만남..신작 의견조율中 http://t.co/gvEi9GIu4f 후덜덜;; 만약 성사된다면 이건 뭐... 원빈도 좋고 다 좋으니 빨리 신작 좀 찍으세요. 현기증 난단 말예요. ㅠㅠ
2013.05.27 리트윗 12
난 기타등등이군“@jedraftbeer: "꽃,비틀거리는 날이면" 노대통령 서거4주기 대한민국 시인들이 보내는 시집/이렇게 시로 다시 만난다. 이창동,유시민,김정은,노혜경,명계남조덕섭,박무,도종환..기타등등 http://t.co/DOMcXzNgbm”
그런가요? 원빈이 새로운 영화로 어서 팬들 곁으로 돌아오길..기대하고 있어요..RT"@extmcomunity: [영화수다] 원빈과 이창동 감독의 극비 만남 http://t.co/G7EYFVj6zz"
2013.05.27
내가 볼 때는 이창동 영화가 투자가 쉽게 안 되니까 원빈을 캐스팅 해보려는 것 같다는 생각ㅋㅋㅋㅋㅋㅋㅋㅋ 고사왕 원빈은 과연 이창동 영화마저 거절할 것인가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이창동 영화는 힘들어도 출연료 삭감해서라도 배우로서 출연할 만한..
여기에서
레디@1st_rd를 보자.
"내가 볼 때는" -> 여기에 자기 생각이 개입되었음을 명시하고 들어간다.
사실 이건 좀 불필요한 표현이지만
주관성 강조라는 측면에서, 나름의 표기법이라고 봐두자.
'다른 사람과 달리 나는'
'객관적이라고 우기지 않겠다,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런 식의 표현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이제 이 새끼의 추리를 보자.
이창동 영화가 투자가 안되니까, 원빈을 잡아서 투자를 유도하겠다는 추리를 하고 있다.
이건 식상한 추리다.
원빈이 출연하면 티켓과 이슈는 보장이 되므로, 어느정도 수익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이런 추리를 했을 수도 있고, 투자자들의 판단요소 중 하나가 배우에 있기 때문에, 이를 고려한 판단일 수도 있고
직감적인 판단일 수도 있다. 이런 것을 밝히지 않았으니, 어떻게 추리를 그렇게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확실한 건
이 아이는 추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글도 일부는 이 아이에 대한 추리를 하고 있다.)
여기까지 썼지만,
이 글이 뭘 말하고 싶은지 이해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창동 감독 측은 어떤 입장일까?
이창동 감독이 원빈을 캐스팅한 게 어떤 입장인가 하는 점이다.
티켓을 유도한 것인가?
작품에 맞기 때문인가?
아니면
거장의 작품이니 당대 최고의 배우가 출연한다는 게 당연한 것인가?
사실 이건 기술가능성이라고 할만하다.
여러가지가 도출되어 나올 수 있다.
저 아이가 추리한 방식은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겟다
1. 상황을 본다.
그리고 입장을 이창동과 원빈쪽으로 옮겨본다.
이창동의 역할
원빈의 역할
마치 체스판에서 게임을 하듯이, 둘 사이의 수를 읽어본다.
2. 자기 입장으로 돌아온다.
이제 입장이 바뀌었다. 방금 것이 상대의 입장으로 들어가 추리를 해본 것이라면
이번에는 그것을 구별하고, (왜냐? 그건 자기가 추리한 것이지, 실제 이창동 감독이 그랬으리란 보장이 없으니까)
자기 입장으로 들어온다.
여기서 재밌는 게 발견된다.
바로 이 포지션의 전환이 사고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수수께끼'는 여기서 탄생한다.
잘 생각해보자.
이창동의 입장으로 들어가면
수수께끼를 할 필요가 없다. 왜? 수많은 가능성 중의 하나일 거니까. 선택의 문제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창동이 아니기 때문에
그 위치에서 빠져나올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할 때,
이후 이 문제는 '그렇지 않을까?'라는 추리로 가게 된다.
따라서
전자는 추리자체가 필요없는 영역이지만 (그냥 선택 중 하나다)
후자는 추리로 가는 영역이다. (왜? 내가 이창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 아이의 '내 생각에는' 같은 식의 발언은,
사실 자신이 저 사람이 아니라는 발언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벌어지는 게임에 해당한다.
사람들은 이 게임을 좋아한다. 중독되어있다.
어떤 여자가 남자의 심리를 추측하는 것도 이런 게임의 일환이고,
어떤 갤러의 글을 보면서 심리를 추측하는 것도 이런 게임의 일환이다.
입장을 바꾸면
수수께끼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
그는 단지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장을 구별해서 쳐다보면
수수께끼의 세계가 펼쳐진다. 왜? 내가 그는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기 때문에 확신할 수 없다. 남는 건 추리의 영역이다.
이건 포지션의 의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창작자 역시
마찬가지로 이 관계에 영향을 받는다.
창작자가 관객의 포지션에 서면, 그냥 선택하면 된다. (좀 더 나아가면, 관객이 창작자를 추리한다는 사고까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창작자가 '나는 관객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그는 관객을 추리하게 된다.
수수께끼의 놀이는 이런 원리에서 작동된다.
* 사족인데, 이 부분이 재밌는 건 다음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이창동 감독과 저 트윗의 작성자가 만난 상황을 생각해보자.
내가 볼 때는 이창동 영화가 투자가 쉽게 안 되니까 원빈을 캐스팅 해보려는 것 같다는 생각ㅋㅋㅋㅋㅋㅋㅋㅋ 고사왕 원빈은 과연 이창동 영화마저 거절할 것인가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이창동 영화는 힘들어도 출연료 삭감해서라도 배우로서 출연할 만한..
이렇게
이런 말을 이창동 감독에게 했다고 가정해보자.
이창동 감독의 반응은 어떨까?
이것역시 추리가 되겠지만,
다음의 것이 예상된다.
1. 잘 아네
2. 어쩌라고?
3. ㅇㅇ
4. 추리 잘했다.
물론
그가 기대한 건
5. 어떻게 아셨어요?
6. 눈썰미 예리하시군요
이런 것일 수도 있다.
요지는 뭐냐면
저런 말은 필요없다는 것이다.
단지 추리를 작동시켰기 때문에 나온 표현법에 해당한다.
왜냐?
이창동의 입장에선, 저런 추리가 의미없기 때문이다. (저런 발견이 이창동에게 주는 바가 뭐가 있겠나?)








물론 이창동의 입장에선,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회자되고 있는가? 측정하는 바로서 살필 수 있는 단서 정도로는 쓰일 수 있겠다만
이 글은 다른 의도가 아닌, 창작자의 선택과 관객의 추리에 대한 관계를 다뤄본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관객의 입장에 선다. 그리고 그들은 구별점을 갖고 있다. 타인은 자신이 아니다 라는 전제 하에 접근하는 것이다. 따라서 매번 추리가 일어난다. 이 추리의 정체는 뭐냐? 이 경계의 인식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물론 적절한 이유다.) 다만 이 추리 게임이 가끔은 맞추고 맞춘 것에 대해 기뻐하는 식으로만 구획이 잡히는 단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거 맞춰서 뭐할래? 싶다.
봉준호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런 얘길 한 적이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나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이런 고민을 해보셨으면 좋겠다.\", 그러나 관객은 그렇게 접근하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할까? 단순하다. 감독의 의도를 추리하려 들고, 수수께끼를 찾으려 든다. 그리고 찾았다면 그것이 메시지고 주제고 따라서 감독이 하고자 하는 바고, 나는 이걸 알았으니 우월한 존재다 같은 식의 전개로 가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감독을 추리하는 게임에 빠져서, 그 게임에서 스스로 미션을 부여하고 달성하는 것을 틀로 잡은 것이다. 그래서 그 결과는? 저 나름의 추리게임의 플레이와 보상/실패의 구도 안에서 노니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이런 게임을 강하게 부추기는 감독일수록, 당대의 거장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다. 놀런, 워쇼스키, 핀처, 박찬욱, 이들의 특징이 뭐냐? 그건 관객들에게 강렬한 수수께끼 게임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관객들은 그들에게서 \'유도되었다고 믿는\' 추리게임을 시도하고, 저마다의 해석을 올려놓으려 한다. 그리고 마치 그것에 행정평가가 있다듯이 행동하게 된다.
영화 비평의 최상의 방식은, 다른 영화를 제작해서 제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존의 비평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영화를 영화로 비평하고, 스토리로 비평하는 것이다. 만약 이렇지 않다면, 그것은 기껏해야 수수께끼 게임이 될 뿐이다. (물론 수수께끼 게임도 재밌고 유익한 효과가 있다. 그것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무슨 말이냐면 기껏해야, \'그렇지 않을까?\'라는 게임에 들어가는 것 뿐이라는 것이다. 그 틀에 빠지는 꼴이다. 오히려 더 강력한 비평은 반 또는 새로운 관점에 해당되는 구조를 충돌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그 범위에 종속되지 않고, 배틀을 벌이게 된다. 감독과 배틀을 벌인다. 이게 더 강력한 비평이지 않은가?
윗 마지막 문장에 오해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예 추리가 필요없다는 건 좀 오버일 수도 있다. 이게 없으면 살아가기가 힘들다. 하지만 여기서 관건은 선택이란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추리보다 더 필요한 건 그 상황에 들어가보는 것이다. 최소한 유사한 상황이라도 가져봐야 한다. 그러면 선택과 추리 두개가 동시에 나에게 잡히는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선택이겠고, 이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다른 사람을 생각할 때는 (구별한다면) 추리가 되는 것이다
더 짧게 정리하면, 관계에 대해 어떤 포지션을 취하느냐에 따라, 선택적 표현/추리적 표현으로 갈라져서 나온다는 것이고, 그 말은 포지션이 의식에 개입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번 짚어본 것은, 그 추리적 표현이 추리의 대상에게서는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걸 잘못되었다고 딱 단정짓고 싶지는 않다. 이걸 통해서 의식을 확장시키기도 하니까 말이다. (다만 여기서 지적한 문제는, 이것이 과녁을 빗나가는 게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관객(관찰자)의 추리목적이 자기 생각의 표출 그리고 그 생각의 훌륭함을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때문에 그것을 공개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창작자(행동하는 사람)의 행동의 의도에 관한 생각의 내용 자체가 창작자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그런 것보다 더. 그러니까 내 말은 관객의 의도가 자신이 발언한 내용이 당사자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혹은 당사자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가 에의 유용성이라기보다는 그 추리에서 드러나는 사고의 훌륭한 면을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욕구의 분출이 아닌가? 남들 보기에 그럴듯한 해석을 추구함으로써 말이야.
그리고 또 한 가지 덧붙이자면, 본문에서 나온 관객의 추리는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해석\'일 따름이므로 그것이 유용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중에 일어날 수 있는 비슷한 사건에 대해 한 가지의 좋은 가설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 (다른 모 영화감독이 유명한 모 배우를 캐스팅하려 한다더라. 아마도 이 감독이 그런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 예로만 보자면 그것은 그다지 알아도 별 쓸모 없는 이야기가 될 수 있지만, 만약에 좀 더 쓸모 있는 예에서 어떤 사람들의 \'심리\'에 대한 해석이 나온다면 그것은 사람들의 행동을 예측하는 데 도움을 줄 수가 있겠지. 그런 점에서 관객의 추리가 꼭 무의미(쓸모없다)하지는 않다는 것.
즉 관객의 추리가 그 추리를 읽어 본, 그리고 그러한 방향의 해석을 미처 생각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런 의도로 행동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가능성을 보게 해 준다는 것이지.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실제 삶에서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예측하는데 얼마간 도움이 될 수 있을 거고.
관점차이의 모순을 영화비평에 접목시킨건 흥미로운 읽을거리였음. 관점차이의 논제를 벗어나 영화이야기로 포커스를 맞추자면, 모든 영화의 포인트가 감독의 의도 알아맞추기 게임은 아냐. 때론 대놓고 감독의 의도를 드러내놓고는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도 있고, 때론 감독도 잘 모르겠는 주제이니 너흰 어떻게 생각하느냐도 있고 등등이지.
jayce // 지적하면 무안해질 것 같은데, 댓글 3과 6에서 이미 말해놓은 거다. 댓글을 읽길 바란다.
순간. // 이 문제를 관점과 포지션에서 비롯되는 의식의 생성이라고 보는 게 좋다. 놀이라는 것이지. 그리고 이것도 미리 말했지만 이러한 추리로 비롯된 의식의 발생, 확장 이런 것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다만 지금 다루는 문제는 그런 문제보다는, 그걸 다루는 사람의 사고방식의 문제라는 것이지. 뭔 말이냐? 바로 그렇게 얻어진 것을 선택의 입장에서도 취급할 수 있고, 추리의 입장에서도 취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의 시작은 \'저 사람의 상황\'을 나의 것으로 보느냐? 나와 다른 사람의 것으로 보느냐? 이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것이고, 나머지 문제는 다 거기서 도돌이 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물은 것이 \"그거 알아서 뭐할래?\'라는 것이다.
앎에의 사태가 여기서 발생한다고 봐도 된다.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하는 현상인데, 나는 이것을 수수께끼의 놀이라고 본 것이다. 근데 이것이 왜 생기느냐? 그것은 애초에 \'모른다\'라고 가정했기 때문에, 이것을 설명하는 진술을 \'제시\'하겠다 쪽으로 가게 되고, 따라서 이게 \'맞느냐 안맞느냐\'를 검토하게 되는,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놀이로 가게되는 것이지. 이게 일견 앎에의 사태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내가 볼 때에는 단순히 놀이로 보인다는 것이다. 왜? 이창동 입장에서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거든. 그냥 한 것일 수도 있거든. 근데 지금 저 트위터러는 혼자 추측하고 난리났다는 것이다.
이건 내가 쓴 글에 대한, 다른 사람의 댓글을 생각해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어떤 이들은 나의 글에 대해서 \'이러이러한 이유로 썼지?\' 뭐 이런식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에 대한 내 입장은 \'그러면 어쩔건데?\'이런식인데, 그들은 맞췄다고 좋아하기도 한다. 내가 생각할 땐 이건 수수께끼의 놀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의 포지션이다. 여기서 벗어난 사람들이 있겠지. jayce가 말하듯이, 감독의 의도에 대해서 수평적인 위치에서 같이 고민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감독이 모르는 관점까지 제시하는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은, 이런 포지션에 있지 않고 수수께끼 포지션에 빠져버린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의 정체를 단순히 포지션의 문제라고 취급해본 게 이 글의 요지가 된다.
포지션에 대한 의식이 인간 의식에 강력하게 개입한다. 계급의식을 얘기하고 있다고 봐도 된다. 근데 이게 참 애매한 게, 사람 자체만 보면 달라진 게 없다. 그냥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근데 자기 자신에 대한 포지션을 어떻게 잡았느냐? 이에 따라, 그 사람의 태도와 관점 사고방식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한다는 것이지. 감독의 포지션에 서면, 관객의 저런 수수께끼 포지션에 대해서 관심이 없어진다. 왜? 수수께끼 자기가 다 이미 설정해놓은 거거든. 이걸 찾아서 해독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건 단순히 앎에의 사태를 모방시킨 것에 불과하다.
좀 더 정리해주면, 니가 잡은 것은 감독과 관객의 관계가 아니라, 관객이 다른 관객에게 표하는 것이고, 또한 여기에서 어떤 설득력있는 가설들이 나타나서 그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이건 내가 다룬 문제가 아냐. 내가 다룬 문제는 다음과 같다.
수수께끼가 시작되는 것은, 포지션을 구별한 상태에서 \'그렇지 않을까?\'라는 물음이 시작될 때 부터다. 여기에서 무수한 기술가능성이 뽑아져 나온다. 그 안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들이 나올 수도 있겠다고 볼 수 있지. 헌데, 내가 지적한 것은, 바로 이것이 포지션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것이고, 이 차이를 조절하면, 바로 이 행동이 조절된다는 것이다. 즉 \'추리\'를 하는 행위도 통제할 수 있다. 어떻게? \'구별이 되지 않는다\'라는 쪽으로 잡아보는 것이다. 그러면 오로지 선택만 나타나게 된다.|
밑에 쓴 댓글은 그와 관련해서, 혹시나, 유용하지 않다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서 반기를 들까봐, 그 문제도 차근차근 다뤄준 것이고, 본문에 쓰인것은 포지션의 문제를 다룬 것이다. 포지션의 차이에 따라 의식이 달라지고, 거기에서 수수께끼의 놀이가 나온다. 단순히 이건 놀이의 전개라는 거다. 이건 현실에서 아주 자주 발견되는 거야. 사람들은 집단적으로 수수께끼 놀이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수수께끼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사람들도 있지. 내 생각엔 이게 불필요한 것 같은데 말이지. 이게 선택의 문제로 넘어가지 않는다면 그저 게이머가 될 뿐이다.
윽... 네가 관객의 추리를 네가 말한 놀이로 해석하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저기 네가 인용한 트위터리안의 글만 보고 네가 그 심리에 대해서 짐작하고 있는데 관객이 꼭 \'그 추측이 현상의 내면을 가장 정확히 추리하려고 노력하는 놀이를 하고 있다\'라고 볼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는 \'현실의 내면을 가장 그럴듯하게 멋지게 추리하려고 노력하는 놀이\'를 하는 것 같은데. (꼭 현실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그리고 그렇게 하는 원인은 남들에게 자신의 생각의 훌륭함을 인정받고 자랑하려는 의도의 발로로 보는 것이지. 너는 관객의 추리가 현실에 대한 어떤 정보도 제공할 수 없기에 유용하지 않다라고 말하는 모양인데, 그건 네가 위에 말한 것처럼 해석하기 때문.
내 말을 좀더 잘 이해해보기 바람.
니네들이 자꾸 빗나가는 이유가 뭐냐면, 관점 자체를 모르기 때문이야. 이 글에 나온 포지션을 역할게임으로 바꿔서 이해해봐라. 저 추리가 맞고 안맞고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그리고 내가 저런 추리를 한 게 맞다 안맞다도 중요한 게 아냐. 뭐가 중요하냐면, 내가 그 역할을 자처함으로써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는 거다. 달리 말해서, 순간. 이나 1같은 경우도, 이 글에 대해서 왜 그런 식의 댓글을 다는지 생각해보라는 거지. 니네가 결국 하는 건 그런 포지션을 잡고 있기 때문이야. 내 물음은 이거다. 누가 궁금하다냐? 왜 묻지도 않은 얘길 하고 있냐 이거지. 그건 니네들 스스로가 이 글에 자처해서 포지션을 잡았기 때문이야. 그 놀이에 빠져들고 있다는 지적을 한거다.
어차피 저 트위터리안이 두 사람에 대해서 알면 얼마나 알겠어? 그에게 있어서 어쩌면 저 두 사람은 \'어떤 유명 감독과 어떤 유명 모배우\'일 뿐인데. 즉 현실과 딱히 관계지을 필요가 없는 어떤 예가 된다는 것이고, 그는 이 사건에 대해서 그럴듯한 가설을 내는 것에 만족하는 것일뿐 그 사건의 내막을 정확히 맞추려고 하는 게 아니라는 것. (자신 또한 자신의 가설이 맞다고 생각해서 저렇게 말하는 것도 아닐테고. 자신이 두사람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다고 감히 그렇게 말하겠어?)
그리고 순간. 은 자꾸 본문에 요지를 보지 않고, 내가 밑에 본문에, 그리고 댓글로 쓴 \'유용하지 않다\' 이 표현에 집착하고 있는데, 그건 내가 하나의 의견으로서 이창동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다. 라고 한 것이고 이를 내 입장에서 바꾼 게, 일부 갤러들이 내 글에 의도를 추측하여 댓글을 쓸 때의 상황으로 제시한 것이지. 그래서 내가 여기에다 두고, 물은 것이다. [어쩌라고?], 근데 이것에 오해를 살까봐 이 추리 자체가 필요없는 것은 오버고, 다만 여기서 포지션의 선택에 따라 갈라지는 문제가 생긴다고 얘기해놓은 것이다.
내가 견지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현실에의 유용성임. 네가 말하는 관객의 추리를 놀이로 해석하는 모형이 그다지 관객의 심리와 들어맞지 않다면, 그것이야말로 의미가 있겠느냐는 말이야. 너는 분명히 네 관점을 들어서 이야기하고 있고, 나는 거기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너는 어떤 사건에 대한 네 관점을 이야기하고 있고, 나는 그것이 현실과 멀어질 수 있다면 별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
순간. // 니 댓글에 답변하는 게 좀 가지치기 같단 생각이 드는데, 니가 자꾸 지적하는 것을 하나로 잡으면 [너는 관객의 추리가 현실에 대한 어떤 정보도 제공할 수 없기에 유용하지 않다라고 말하는 모양인데] 이게 니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야, 너는 자꾸 여기에 집착하고 있는 경향이 있는데, 이건 그렇게 봐도 되고 안봐도 되. 니가 생각하고 싶은대로 생각해도 상관없다는 거지.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이것을 일으키는 요인은 포지션에 대한 의식이고, 그것은 [규칙이 있고 수행을 요구하는] 게임 구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 이걸 하느냐? 자기가 자처해서 한다는 거다. 이걸 인정받고 못받고는 별도의 문제고, 이 포지션 설정을 하면서 부터 이 수행은 자연스럽게 일어난다는 거다.
그리고 내가 \'뭐 하고 앉았냐? 의미없다\' 라고 얘기한 건, 이창동의 입장에서는 저런 얘기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저 라디의 추측은 라디의 입장에서는 새롭고 인정욕구가 있고 그러든 간에, 내가 초점을 준 건 이창동의 입장인거다. 니가 여기에 초점을 부여하지 않으면 저 말의 의미를 잡지 못하는 거야. 그리고 너는 실제로 저 사람의 추리 자체에 대해서 관심을 두고 있지. 그러니까 일종의 격려모드로 보고 있는 중이고
이것도 기술가능성이지만, 이창동의 입장에서는 저런 라디의 추리가 무슨 의미가 있냐 이거다. 그래서 내가 뒷받침할 때 내 상황을 예로 든거다. 내 글에 대해서 누군가가 의도를 추측하면, 걔 입장에서는 의미가 있을 수도 있지. 하지만 내 입장에선 무슨 의미가 있냐는 거다. 그 발견이 내게 주는 바가 없는데. 뭐 확 새로운 게 아니라면 나한테 주는 바가 없다는 거지. 확 새롭다면 내가 이질적으로 느낄거다. 저게 무슨 내 의도냐? 하면서. 그리고 저 마지막 문장은 라디의 저 의견과 관련하여 이창동과 연관지은 것이고, 그래서 저런 의견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는 것인데, 이건 막판에 내가 디저트로 넣은거고, 이 본문의 요지는 포지션 설정에 따라 수행방식이 달라진다는거다.
네가 그것을 중점적으로 말하고 싶었든 그렇지 않든 간에, 너는 네가 쓴 모든 표현에 책임을 져야지. 그 부분에 있어서 나는 그다지 태클 걸 여지가 없기 때문에 너의 다른 주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 네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얘기에 대해서만 나도 같은 만큼의 중요도를 매겨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나.
그리고 이 글에 약간의 비관적 뉘앙스가 흐른다면, 저 선택적 입장과 추리적 입장이 충돌할 때, 저건 대칭적 관계를 이룰 수 밖에 없다는 거다. 그래서 매번 추리하는 사람은 추리만 하게 된다는 것이지. 그래서 이를 언급해본 게 게이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게임을 만드는 사람은 매번 게임을 만드는 거지. 라디의 한계가 저기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창동 입장에서 의미가 없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어렵게 하는것 같이 보이는데. 누가 그것이 그에게 의미가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던가.
애초에 추리의 목적이 \'자신의 향후 대응\'을 생각해 보기 위함이라고 할 때, 레디가 그런 추리를 함으로써 이창동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진다 이런 목적이 아닌 이상 딱히 언급할 이유가 없다고 보는데. 그리고 저렇게 자신의 상황에 큰 관련 없는 사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 목적은 내가 위에 말한 대로 \'자신의 의견을 널리 인정받기 위함\'의 욕구의 발현이라고 보아야지 이창동한테 \'너 맞지?\' 이럴 목적으로 보는것은 제한적이라고 봄 (레디는 이창동에게만 인정받을 생각이 아니라 이 사건에 관심있는 불특정다수에게 인정받고 싶은 생각이기 때문)
이런 추리의 목적을 가정하는데 있어 핀트부터 엇나간 논리 전개가 얼마나 실제로 유용할까 (그러니까 이 말은 \'네 글의 유용성\'에 대한 얘기임) 에 대해서 나는 의문이라는 것임.
순간. // 니가 이 글에 그런 선입관을 깔고 들어가니까 글을 그렇게 읽는거야. 그리고 넌 계속 니 선입관을 이 글의 바탕에다 둘려고 그러지. 그러니까 내 논의 자체를 옮길려고 하는거야. 유용성이고 나발이고 간에, 내가 주목한 건 저 라디의 수행방식과 포지션 설정에 대한 거다. 라디가 관계설정을 저렇게 하면, 쟤는 추리하는 입장을 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라디의 수행방식은 그에 따라 결정될 수 밖에 없다는 거다. 그러니 몇 번 말하냐? 쟤가 인정받고싶어하든 아니든 그딴 건 추가하든 안하든 알아서 하면 되고, 쟤가 빠져있는 상황 자체가 게임적 상황이라는 거다. 이 얘기가 그렇게 어렵냐? 니 논리는 [인정욕구발현->추리->메시지전달] 이런 쪽으로 가는데, 내가 문제삼는 건 포지션 자체의 문제라는 거다.
애초부터 레디의 추리의 목적이 이창동의 행위를 변화시키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던 것인데, 행위를 변화시키지 못한 것(이창동에게 의미없는 추리를 한 것)에 대해 유용하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건 이상하지.
네가 오히려 레디의 트위터글에 네 관점을 투영한거라고 생각지는 않나?
네가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한다고 뭐라 할지라도, 그는 어차피 적극적인 대응을 할 의도가 없었던 것인데 말야.
그러니 이 글을 라디가 또 읽는다 하더라도, 라디는 추리 모드로 들어가게 될 것이고, 매번 그런 역할을 수행하게 될거라는 얘기를 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포지션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 글을 라디가 만약에 읽는다면, 걔가 이 글에 대해 의도를 추리를 할 때에 나는 그 추리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거다. 왜? 내가 추리하는 포지션에 있지 않기 때문이지. 나는 그저 선택을 하고 내세우는 거다.
순간. // 너 진짜 답답하다. 이게 지금 관점 투영과 투사의 문제로 보이냐? 포지션 설정과 역할 문제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이 말 자체를 모르냐?
내가 설명해주지. 라디가 이창동과 자기의 관계를 설정했다. 이게 자기 포지션을 잡았다는 거야. 근데 여기에 라디가 설정한 건 \'이창동이 나와 다르다\'라는 것이기 때문에, 이창동을 알려면 \'추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택한 것이다. 그러면 남는 게 뭐냐? 이것을 수행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지. 이게 라디가 맡은 역할이고 라디는 이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라디는 매번 이 과정을 밟을 수 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라디가 포지션을 설정을 그렇게 했기 때문이지. 애초에 전제되는 게 \'내가 저 사람과 다르다\'이기 때문에, 이 라디는 매번 추리를 할 수 밖에 없는 거다. 이게 합당한 것이지. 왜? 내가 아닌데 어떻게 확정지을 수가 있나?
그러니 이런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매번 추리를 할 수 밖에 없고, 그럼으로써 자기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만족감도 느끼겠지.
봐, 네가 이 글을 쓴 목적에 합당하려면 예제를 바꾸어야 한다고 봐. 그러니까 지속적으로 난폭하게 구는 상사가 있을 때, 화장실에서 혼자 \'저 인간말종 어렸을 때부터 가정 교육을 제대로 못받았으니까 저러지 ㅉㅉ\' 이러고 있다고 본다면 네 글이 더 어울릴지도 몰라. 근데 위의 예시는 네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거리가 꽤 있는데.
저 예제를 아무리 봐도 이창동을 알기 위한 추리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야. 그에게 이창동인들 다른 유명 감독인들 별로 상관이 없을지도 몰라. 그리고 나머지 할말은 이미 위에 다 했어.
순간. // 넌 내가 하는 말에 대답해봐라. 내가 이 글을 왜 썼다고 생각하냐?
네 생각을 남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순간. // 정신나갔냐? 윗 글의 개념들을 토대로 얘기해보라고. 윗 글의 개념을 어떻게 써서 어떤 얘기를 하고 있는지, 그래서 내가 왜 이 이야기를 굳이 쓰고 있는지 얘기해보라고,
정신나가? 인내심 없는 녀석이로군. 글도 산만한 주제에. 됐다. 더이상 이야기할 마음이 싹 사라지는군.
더 이야기할 생각이 없지는 않고 내가 이후에 오독했다고 느껴지면 인정할 생각도 있었는데 네 글에 대해 이해하든 그렇지않든 댓글 수십개로 관심을 보인사람한테 고작 그런 태도라니.
순간. // 딴소리 집어치우고, 요구한 물음에 대해서나 대답해봐라. 윗 글의 개념들을 토대로 이 글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써보라고, 왜 이걸 안하고 딴 소릴 하고 있어?, 니가 이거에 대답을 해야 니 이해도를 알 수 있을 거 아냐?
순간. // 니가 앞으로 깝칠까봐 미리 경고해두는데, 이해 못한 채로, 어설프게 댓글 달지 말어라. 모르겠거늘 그냥 아가리 닥치고 지나가. 그리고 그 따위로 [댓글 수십개로 관심 보인 사람한테 고작 그런 태도라니]라는 개소리 지껄일거면 댓글 달 생각하지 말아라. 니 새끼가 뭔데 관심 줬다고 대접을 바라나? 너 존나게 착각하는 것 같은데, [2013.05.29 13:19] 니가 쓴 댓글 니가 처읽어봐 새끼야. [니가 중요도를 부여한 것에 대해서, 내가 중요도를 부여할 필요가 있냐?] 고 니가 직접 썼지?, 미친 새끼. 니 댓글에 내가 중요도를 부여할 필요가 뭐가 있나? 이새끼야 넌 굉장히 착각하고 있는거야. 니 새끼가 왜 내 글에 그 따위로 댓글달고 있는지 포지션 차원에서 따져봐라. 넌 그냥 내게 확인받고싶은
니가 멍청하다고 가정하고 내가 정리해주지. 니 새끼가 자꾸 짜증나게, 요지를 보지 않으니까 삽질하고 앉았는데, 추리의 목적 따위는 이 글에서 고려하는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고려한다하더라도 그것은 포지션의 차원에 용해된다. 왜? 이것은 총체적 관점이기 때문이다. 놀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규칙과 방식 전개 결말이 있다는 하에서, 이 행동이 이 절차를 따른다는 측면에서 하는 것이고, 대개 놀이/게임 이라는 표현은 이렇게 쓴다. 이 때에 \'포지션\'이란 \'관계설정\'을 말하는데, 또한 이에 따른 역할로서 보기도 한다. 이것은 총체적 관점을 가져야 이들의 연결을 알 수 있다. * 참고로 내가 이걸 너한테 교육할 의무는 없다는 거 알아라. 니 새끼가 존나 멍청하다는 가정 하에 쓰는 거니까.
이 때에 \'수수께끼의 놀이\'라는 것은, 이러한 상황을 명명한 것이다. 나름의 규칙이 있고 방식이 있고 전개가 있다 그리고 결말이 있다. 이것은 래디가 이창동에 대해서 수수께끼 놀이를 건 것과 같다. 모르는 상황에서 나름의 정보를 가지고 추리를 하고 이 추리는 맞냐 틀리냐의 결말을 갖는다. 이 과정을 거치는, 행동이 일어나는 것이 수수께끼의 놀이이다. 이 때에 \'욕구\'라는 것은 이 놀이 안으로 용해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어떤 인정욕구를 가졌든 뭐를 가졌든, 간에, 그것은 이 놀이라는 것 안에 집어넣어서 해석이 가능하다. 왜냐? 욕구라고 하면 마치 어떤 원인이 있는 것처럼 가정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이 과정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 만이 따로 독립적인 경우는 없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라디가 추리를 하는 과정에서 욕구라는 것이 기술가능성에 의해 뽑혀져 나온다. 라디가 욕구가 있어서 행동을 한 것인가? 행동을 하고 있으니까 욕구라는 것을 추리한 것인가? 이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런 식의 추리는 아무것도 주는 게 없다. 추리란 어떻게 하는가? 보이는 것을 토대로 하는 것이다. 보이는 것 자체를 먼저 봐야 한다. 그러니 행동의 문제가 먼저 드러나는 것이고 이걸 설명하는 표현이 포지션과 역할놀이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욕구라는 것은 이 안에서 정신적으로 추리가 일어날 때 그 상태를 설명하는 용어로서만 발견된다.
어떤 사람이 이 추리자의 욕구에 대해서, 추리의 목적에 대해서 탐구하고 들어가는 건, 단순히 말해 그가 이 추리자를 대상으로 기술가능성의 수많은 가락을 뽑아내는 것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발견되는 건 행동이다(놀이/게임) 그리고 이 안에서 \'욕구\'라는 것으로 추정하여 뽑아낸 것은 어떤 사람의 추리이고, 이것은 그 자체로서는 기술가능성일 뿐이다. 즉, 그 사람은 다시 이 사람에 대해서 수수께끼 놀이에 빠졌을 뿐인 것이다. 그러면 이 사람에 대해서 또 누군가가 언급을 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 역시, 그를 대상으로 \'기술가능성에서의 가락을 뽑아내는 놀이에 들어가게 된다. 이것을 명명한 게 수수께끼의 놀이가 되는 것이다. 욕구를 지적하면 니가 뭘 포착한 것 같나? 다양성을 주는 것 같나? 기술가능성일 뿐
그러나 명료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기술가능성이라면 그것이 나타난 배경이 뭔지를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라디가 하듯이 어떤 행동이다. 그 행동에 대해서 이 사람의 욕구/추리의 목적에 대해서 추리하고 앉은 것은, 다름 아니라 그 행동에 대한 수많은 명명 중 하나일 뿐이 되는 것이다. 이런 것은 수수께끼의 놀이에 빠진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대단한 것처럼 보일 수 있어도, 이것을 벗어나서 보게 되는 사람은 이 사람이 단지 놀이에 빠져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왜? 그가 하는 것이란 \'대상을 보고- 뭔가를 추리하고- 그에 대해 추리한 바를 제시하는\' 일련의 행동절차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보이는 건 행동절차일 뿐이다.
그는 왜 이 상태에 빠졌을까? 그게 이 본문에서 제시한바다. 관계설정이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다. 즉 \'구별되는 상태\'로 규정되어있기 때문에, 그는 그 관계설정에 걸맞은 역할수행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창동은 이창동에 대해서 그런 추리를 하지 않는다. 왜? 그는 그런 관계설정이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글로써 이창동의 입을 가정하여 내가 말한 것은 \'그런 거 해서 뭐하나?\'라는 것이다. 이건 포지션의 차원에서 물은 것이다. 그런 역할을 맡아서 뭐할 건가? 이걸 물은 것이다.
이것에 대해 옹호하는 바가 있을 까봐, 하나의 제안을 보여준다. 만약 니가 수수께끼의 놀이에 들어가지 않고, 벗어나려면 뭐를 하면 되느냐? 이건 소꿉놀이와 비슷하다. 역할을 바꾸는 것이다. 즉, \'구별된다\'라고 보지 않고 \'관련된다\'라고 규정을 바꾸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될까? 니 대가리로 추리할 생각하지말고, 상황을 바꾸면 된다. 이게 이상이다. 표준이다. 즉, 너는 이창동에 대해 추리하면 안되고, 이창동에게 전화를 하던지, 이창동 아는 사람을 통해서 비슷한 장소로 넘어가야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는 추리를 할 필요가 없다. 왜? 그 때부터는 아는 것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니가 이창동을 추리할 필요가 뭐가 있나? 바로 옆에 보이는데.
버러지상대하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천재님 손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달을 논하지 않고 손가락만 물고 늘어지는 벌레에게 그리 친절히 대답해줘도 천재님에게 돌아오는건 답답함 뿐이었겠지요..
언제나 천재는 이렇게 현상과 구조이론을 설명해두곤 도망간다. 도대체 포지션 변경은 어떻게 할 수 있느냐? 정말 어떤 사람이 나는 '추리꾼'에서 '창조자'
로 간단히 자신의 세팅을 바꿔 낼 수 있느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