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민상담해결글이 아니다.
좆백수의 상황으로 보는 상황-태 이론에 가깝다.

나의 이론적 관심에 치중해있으니,
알아서 가려읽기 바란다.




도로씨의 고민과 크게 다를 건 없는데,






먼저 철학적 문제부터 짚고 들어가자. 

                                                                   
                                                          ㅁㅁㅁㅁㅁㅁㅁ
                                                      ㅁㅁㅁ          ㅁㅁㅁ
                                                        ㅁㅁ     ㅇ     ㅁㅁ
                                                         ㅁㅁ           ㅁㅁ
                                                             ㅁㅁㅁㅁㅁ

ㅇ = 좆백수
ㅁ = 철갤러


대략 이렇게 해두자. ㅁ이 ㅇ을 둘러쌓서 보고 있고, 
이 그림은 전체를 헬기샷으로 보고 있다고 해보자.
저기 ㅇ이 좆백수 라고 해보고 ㅁ이 철갤러들이라고 해보자. 
비유컨대, 파이트클럽처럼 빙 둘러 싸서 좆백수를 보고 있는거지.



이게 시작이다.
철갤러 A가 좆백수를 본다면,
외부존재 좆백수
인식자 철갤러 A 

이렇게 나뉠 수 있다.
근데 인식자 철갤러 A에게서는 2가지가 고려되는데,
첫째로 철갤러 A의 머리속에 떠오른 이미지의 정체
둘째로 외부존재로서 좆백수

이렇게 나뉜다.
철갤러 A에게서 떠오른 이미지가 좆백수는 아니다. 다만 좆백수에 의해서 나타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좆백수는 아니다. 왜? 좆백수의 입장에서는 아니라고 봐야 되기 때문이다. 좆백수는 좆백수다. 좆백수가 있는 곳이 좆백수가 있는 곳이다.
철갤러 A에 의해서 철갤러 A 머리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좆백수가 위치한 곳이 아니란 얘기다.

이 때에
철갤러 A가 이 이미지를 활용하게 되면, 이를 어떻게 봐야되는가?
예컨대 좆백수를 봄으로써 떠오른 이미지를 '모방'해버렸다고 해보자. 이것은 좆백수를 모방한 것인가? 아니면 이미지를 활용한 것인가?
















또 이 좆백수를 봄으로써, 철갤러 A에게서 떠오른 이미지는, 기술가능성의 원천이 된다.
따라서 이에 대해서, 수많은 얘기를 할 수가 있는데,
제각각이다.

개콘에 나오는 상황을 빗대본다던가,
자기 기억을 떠올려서 대조해본다거나,
자기가 느낀 것을 통해서 이입을 해본다거나,

또 기질적인 문제로,
호전적인 성향이라면, 약간 공격적인 태도로 이미지를 대하게 될 수도 있고,
부드러운 성향이라면, 이정섭처럼 부들부들한 목소리를 가지고 대할 수도 있고,
약간 정신병이 있는 성향이라면, 그 좆백수를 봄으로써 떠오른 이미지를 두고, 약간 이상한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거다.


요는 '그것에' 대응하는 '태'의 문제다. (모양새)









여기서 이런 문제도 가능하다.
그러면 철갤러 A가 어떤 이미지를 떠올렸다고 해보자.
근데 이것을 외부존재와는 괴리가 있다고 판단하고 영역을 구별했다고 해보자.

그럼 이것은 철갤러 A의 것일 거다.
근데 과연 그럴까? 그게 철갤러 A의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 건 다음과 같다.



첫째 - 그가 그 이미지를 내뱉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본다.
곧 그것이 좆백수라는 것을 알아보게 되고, 그것이 철갤러A가 내뱉은 것임을 알아보게 된다. 둘은 섞여 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이걸 접하는 순간, 철갤러 A와 비슷한 상황이 생긴다.
즉, 외부존재를 봄으로써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 순간이 생긴다. 그러면 이것은 철갤러 A의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는가?
위에 언급한대로, 수많은 문제가 생긴다. 마치 가족오락관에서 말을 건네면 말이 변형되서 옮겨가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철갤러 A는 '내가 내뱉었어'라는 자기의식에 중독될 수도 있다.














둘째 - 철갤러 A가 기억상실증이라던가, 망각에 빠졌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철갤러 A는 자기가 내뱉은 것에 대해서도 자각하지 못한채로, 다시 그것을 '외부존재'로서 받아들이고,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그가 '마치 데자뷰같다'라고 말하게 될지는 몰라도, 어쨌건 이런 상황일 때, 이것은 철갤러 A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셋째 - 첫째의 상황을 좀 더 얘기해보자. 이제 철갤러 A가 내뱉은 것을, 타인이 접함으로써, 
예컨대 철갤러 B가 철갤러 A에 의해 나온 이미지를 접했다고 하자. 이번에는 그 이미지가 외부존재고, 철갤러 B가 형성한 게 철갤러 B의 이미지가 된다

이 때 '명명'의 문제가 생긴다.
이것을 누구의 것이라고 봐야하는가?

좆백수의 것인가?
철갤러 A의 것인가?
철갤러 B의 것인가?

원본이 어디에 있는가?
좆백수인가? 철갤러A인가?

이 때 원본의 정체는 이미 지나쳐버린 것이고, 그 자리에는 원본이 없음을 알게 된다.
있다 하더라도 기억이다. 그리고 태생 부터가 이미지다. 기억이다. 이미지는 또 섞인다.

철갤러 B가 이걸 내뱉는 순간,
좆백수도 그렇고, 철갤러 A도 그렇고, 철갤러N도 다시 그것을 '외부존재'로서 접하게 된다.




바야흐로
이것의 문제는 시작과 끝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상호주관의 관계의 문제이고, (얽힘의 문제이고)
이 안에서의 경로의 진화의 문제다.

그리고 이것은 '태'를 요한다. 태가 반영된다.
바로 이것이 

                                                          ㅁㅁㅁㅁㅁㅁㅁ
                                                      ㅁㅁㅁ          ㅁㅁㅁ
                                                        ㅁㅁ     ㅇ     ㅁㅁ
                                                         ㅁㅁ           ㅁㅁ
                                                             ㅁㅁㅁㅁㅁ


이 둘러쌈의 상황에서, 벌어지는, 인식의 사건이다.


















아다라시즘은, 이 중에서 나오는 하나의 '태'에 불과하다.
그렇지 않을까?

아다라시즘은 근본적으로 다음의 결핍에서 비롯된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한번 더 언급한다.

1. 정보의 결핍.
2. 전략적 마인드의 결핍

근데 이렇게 써놓으면, 아다들은 잘 감을 못 잡는다.
정보가 뭐냐?

이건 사건의 흔적이다. 에피소드 같은 것이다.
예컨대 상대방 여자가 뭐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좋아해서 뭘 했는지,
이런 식의 사건의 기록이 있냐는 문제다. 또한 일반적으로 여자들이 어떠한 본능과 환상을 품는지, 이런 것을 알고 있냐는 문제다.















전략적 마인드는 뭐냐?
전에 말했듯이, 대칭을 할 수 있냐는 문제다.
상대가 이렇게 나오면 나는 이렇게 나오고, 상대가 저렇게 나오면 나는 이렇게 나오고,
이런 식의 대칭적 관계가 잡혀 있는가? 이것이 있냐 없냐의 문제다. 

여자가 유머를 치면 나는 리액션을 하고, 이런 식의 대칭이 있어야 될 거 아냐?
너 혼자 사냐?
혼자 생각을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해라. 
이렇게 안하면 니가 생각한대로 기억에 잡혀서, 정작 실전에서는 니가 생각한방식대로만 정보가 인출된다.

물론
이것은 바로 방법론을 필요로 한다.
하나 충고를 해주지. 인간은 기본적으로 학습하는 동물이다. 인간의 생각은 기본적으로 강화되는 측면이 있다. 반복된다는 거지.
따라서 방법론 없이 생각을 반복하면, 방법론 없이 생각이 반복된다. 간단한 이치지. 이걸 알면 프랙티스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될 거다.
방법론이 있냐 없냐의 문제다. 생각을 할 줄 아냐? 생각이 무엇에서부터 시작되는지 아냐? 그걸 모르면 생각한다는 걸 모르는 거다.











어쨌건
사회적 관계라는 건, 나 말고 타인이 있다는 얘기에 불과하다.
그러면
내 유아독존적 상황에서, 이 외부의 존재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요거는 대칭적 관계로 설명된다.
여자가 꼬르륵 하면, 내가 '뭐 먹을래?'라고 묻고,
여자가 엉엉 하면, 내가 크리넥스를 건네주고,

이런 식의 관계를 맺는 거다.



근데
이것이 실패하는 이유는, 상대의 것에서 대칭을 잡지 않고,
내게서 시작해서 대칭을 '호소'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좀 인정받고 싶으니, -> 상대는 나를 봐줘라.


이런 식이다.
그러니까 상대가 안봐주니까 초조해지고, 뭔가 실패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왜? 거절당했으니까.
혹자는, 이 상태에서 정신승리 명상으로 들어가는데, (지가 유아독존에서 실패해놓고, 왜 갑자기 또 마인드컨트롤에 들어가냐? 미쳤냐?)
애초에 관계설정을 잘못했는데, 왜 뒤에서 수습하고 난리지? 대칭부터 똑바로 잡아야 한다.

그리고 대칭이 안잡히면 인연이 없다고 여기는 게 적절하다. 
입장바꿔서 오크처럼 생긴년이 너한테서 꽃을 준다고, 니가 관심을 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근데
이렇게 써놓으면 역시 모른다.






가장 실감나는 예를 들려주지.

기본적인 전제는, 주와 객이 만난 것이다. (더 냉정하게 따지면, 내 입장에선 참여자 2명이 만난 것에 불과하다.)
좆백수 <--------------------------------------------> 여자


이렇게 거리를 두고, 서로 접하는 상황에서 시작한다.
이 때에 너에게 찾아오는 것은 긴장감 같은 것인데,
만약 니가 그걸 느꼈다면 상황에 대한 통제욕구를 느꼈기 때문이다. 또 상대가 전달하는 감각적 전율 때문이다. 몸이 떨린다. 이 상태는 긴장이다.
이게 통제가 안되기 때문에, 니가 괴로운 것이고, 통제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상담을 요청한 것이지.
니 물음은 결국 '이거 어떻게 해야해?' 이건데,

이건 결국 태의 문제로 간다.
니가 어떻게 태도를 설정하고 있는가? 니가 선택 내리는 방식은 뭔가?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이 뭐냐는 거다. 
태. 입장(스탠스). 스타일. 다 같은 얘기다. 
니가 여자를 대하는 모양새가 어떠한가?

여자가 이렇게 나오면, 너는 이렇게 나오고
여자가 이렇게 나오면, 너는 이렇게 나오고,
또 이런 걸 초월했다고 해보자.
여자가 이렇게 나오든 저렇게 나오든, 너는 이렇게 나오고 (이미 초월했다. 이게 바로 스타일이 있다는 것이다. 뭘 하든 너만의 태도가 있다는 거지.)

왜 성공률에 대해서 말하지않는지 궁금할 것 같은데,
이것은 말할 수가 없다. 사후판단적 문제거나 확률의 문제인데, 결국 확률의 문제이고, 사후판단으로 갈 수 밖에 없다.
일이 벌어지기 전에는 확률일 수 밖에 없다. 높다 하더라도 높은 확률일 뿐이고, 낮다 하더라도 낮은 확률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게 최선이다.
그래서 일이 뒤집히면 '헐'이 되고, 확률대로 일어나면 '그럴 줄 알았다'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공률에 집착하면, 반대로 실패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므로
자기도 모르게 이 의식을 하면서 반응점을 갖게 되고,
일이 벌어지지도 않았는데, 이 반응점을 염두에 두다가, 의식이 이어지고, 곧 행동으로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아직 뭐라고 할 재료가 없으니,
이것을 스탠스로만 표현해두는 것이다.










좆백수가 그전까지 보여준 태도는 아다라시즘이었지.
좆백수 말대로
여자가 어떻게 나오면 - 리어카에 폐품 몰래 넣어주는
순딩이 모양새로 반응을 했다는 것이지. (이게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건 나는 너를 아다라시로 규정한다.)


아다라시는 통제욕구는 있는데, 통제방법을 모르는 상태에서
- 지긋이 멀리서 바라봄
- 리어카에 폐품 집어넣듯이, 그런 식의 행동을 하면 여성이 너를 봐줄거라는, 너 위주의 대칭관계를 설정함, 소망의식까지 품고 있음.


대충 이렇다고 보면 되는데, 

바쿠만이란 만화가 있다.
거기 나오는 주인공이 좆백수랑 상태가 비슷하다.
좋아하는 여자를 멀리서 지긋이 보다가
어느날 목표를 설정하고 고백을 하지.
일본에서 최고의 만화가가 되면 나랑 결혼해달라고,

이런 식의 전개를 보여주는데, 아다라시들이 좋아할만한 묘사이지. 간질간질한 게 말이야.
내 생각인데, 작가가 아다라시들의 환상을 포착해서 그에 맞게 대칭적 묘사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환상에 부응하는 묘사들로 보여준 거지.
물론 만화가들 중 누군가는 그러한 성향이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으나,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으니. 이렇게 해석해둬도 무방하다고 본다.

소셜네트워크의 갈등관계도 처음에는 이렇게 시작하지.
굴욕을 준 전여친한테 복수하려고 일을 크게 벌리게 되지.








아다 정신에 대해서는
전에 도로씨 관련해서 글 쓰면서 몇 개 언급했는데, 
좀 다른 얘기를 하면

이 아다 정신과 관련해서,
통제 욕구가 있다. 이 통제 욕구가 실현이 안될 때, 아다들은 가끔 폭력적이게 굴게 되는데,

폭력성을 보임으로써 상대를 수동적이게, 복종상태로 유도하려는 것이지. 감정적 상태는 지성과 무관하게 일어나는 거니까 말이야
그리고 이게 사람들에게 반응을 쉽게 하게 만든다. 찝쩍거리기 쉽다는 얘기지.

내가 평소에 그냥 말걸면 나를 쳐다도 안보는 사람이지만
내가 씨발씨발 거리면서 접근하기 시작하면, 명분이 서게 되는 것도 있고, 상대방이 '왜 그래..?'하면서 약간 약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고, 감정적으로 반응하면 그것이 수평적으로 관계를 맺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지. 빡쳐서 반응한 것을 '나에게 반응이 오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내가 씨발씨발 거리면서 접근하는 건,
화난 사람은 화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내가 화났으니, 너는 내가 왜 화났는지 들어야 한다, 또는 나는 화났으니 이렇게 할 이유가 있다.
이런 식의 자의적 세팅을 한 다음에, 상대에게 접근하는 것이고 (버서커 모드로 비유할 수 있다)

상대방이 약한 모습을 보인다거나, 감정적 반응을 보이면,
그제서야 이 얼음같았던, 통제되지 않던 것이, 미약하게나마, (좀 다른 방향이지만) 허접한 수준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상대가 반응했으니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면서 자기가 좀 쿨해졌다고 믿는다. 좀 특이한 상태다.)







근데
이건 아다정신과 관계가 반드시 있는 건 아니고,
주로 이 아다들이 짓눌림에서 이기지 못할 때, 대안으로서 가게 되는 게, 이런 폭력상태에 해당한다.









어디까지 쓰여지는지 모르겠는데,
이 글에서 제일 중요한 걸 요점으로 잡아준다.

1. 외부존재-관측자-인식 
ㅁㅇ으로 표현한, ㅁ의 둘러쌈, ㅇ의 놓여있음, 관계맺기.
이것을 염두에 둬라.

여기서 2개가 나왔다.
외부존재
이미지
둘은 다르다.

이미지가 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다음의 이유로 내 것이라고만 생각하기도 어렵다.

- 기억상실증/망각
- 이미지가 내뱉어지면 '외부존재'가 된다는 점. 그걸 타인이 접하여 이번엔 타인의 입장에서 '외부존재-이미지'의 관계가 잡힌다는 것



2. 아다라시즘은 '태'의 한 유형에 해당한다는 것.
- 그러나 의식의, 달리 말하면 마인드 셋업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이 부분은 내가 할 이유가 없다. (내가 구원할 이유는 없다. 내가 뭔데.)

그러나 한가지 조언할 건.
'태'를 유념해보면 특이한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어떤 특정한 '태'를 갖고 있다고 해보자.

그는 왜 그런 '태'를 갖고 있을까?
다음의 원인을 추려내볼 수 있다.

-기질이다
-기억이다
-습관이다
-생각이다

이런 경우가 있을 것이다.

기질의 경우 '나 원래 그래' 이래버리면 끝이고
기억의 경우 '내가 겪은 게 이러한데'라고 해버리면 끝이고
습관의 경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이러면 끝이고
생각의 경우 '생각해보니까 이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던데' 이러면 끝이다.



누가 근거 물어봤냐?
근거 있어야 되냐?

내 행동에 근거 필요하냐?
그냥 그렇게 생각했는데, 라고 말하면 그건 근거가 안되냐? 실증할까? 물증 제시해야하냐?

여자를 대할 때 어떤 '태'를 세팅하는데, 반드시 경험적 근거만 필요하냐? 왜? 누가 그랬는데? 왜 그래야되는데? 뭐가 문젠데?




태어나면서부터 그렇게 행동한 새끼가 있다면
근데 이 새끼가 하는 행동이 선수들이 하는 행동과 크게 다를 게 없다면?
예컨대 카사노바의 피를 물려받은 새끼라서, 천성적으로 여자를 대하는 '태'가 그러하다면?


이거 어떻게 볼 건데?





그래서 좆백수의 아다라시즘은 '태'의 한 유형에 불과하다는 것이고
이 '태'를 보유한 좆백수의 마인드 셋업 상태가, 바로 그러한 '태'를 유발했다고 보는 것이 적합하다.

물론 전형적이기도 하겠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