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견이고
일베충 까는 글 아니고
일베충에 대한 관심글도 아니고
일베충에 대한 역사적 분석도 아니다

단순하게
[외부존재-관측자-인식작용]이라는 배경틀을 깔고서
접근해보는 것이다.

이렇게 접근할 때 무엇이 나오는가?
그 때에 나타나는 것은 한 사람의 '선택'이다. 
선택에서 일베충이냐 아니냐가 갈린다.

따라서 이 글은 인간 유형을 다룬다. 
제목과 접근법의 명시대로 일베충의 탄생을 다루되, 상호작용의 관점에서 다룬다.






원래 이 글은 언어의 틀을 설정하고서 접근해야 마땅하다.
왜?
이 글을 읽는 방법이 있거든.
이 글을 표음으로 읽으면 곤란하다.
이 글을 표의로 읽어야 하는데
이 글을 표의로 읽는다는 건 '회화적'으로 읽는다는 거다.

머리속에 이미지를 스케치하면서 시뮬레이션하지 않으면
이 글은 읽히지 않는다.

근데
그 이유와 접근법을 설명하자니
분량이 너무나 과해지는 탓에 설명을 짜르고 간다.

따라서 이 글은 오해의 여지가 다분하다.
그러나 쓴다. 어쩔 수 없다. 난독은 버리고 간다.










일베충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많다. 분석하는 사람들도 많다.
예컨대 표창원 교수는 발견된 사실을 나열하면서 정리와 분석을 해두고 있는데
크게 보면 3가지가 잡힌다.
- 부정적 사고방식 및 감정
- 욕설과 폭력성, 약자에 대한 공격성 분출
- 조직화 

그러나 접근방식에 약간 문제가 있다.
그들이 접근하는 방식은 특징을 잡고, +/-를 구별하고, 그에 따라 규정한다.
그런 쪽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일베충'이라고 규정을 하고, 교화를 하려 하거나, 딱지를 붙인다.

그러나 이 접근은 상호작용에 대해서 말하기가 힘들다.
실제로 현실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는 게 뭐냐? '타이밍'이다.
선택을 내리는 시점
결정을 내리는 순간
갈림길에 놓인 상황

이것이 실제 현실에서 매번 마주하는 것이고
경우에 따라 사람을 짜증나게 하고, 사색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다.

이 지점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설명은, 마치 앎은 주는 것 같은데, 막상 그걸로 어떻게 해야하지? 하는 의문을 준다.
따라서 '규정'하고 '분류'하는 것으로서 이어가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만 접근하진 않는다.

상호작용의 순간, 
타이밍을 고려함으로써, 이 역동적 상황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게 더 현실적이라고 본다.

물론
위의 접근대로 해도 된다.
왜? 상호작용의 순간에 놓였을 때 '규정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일베충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행동일 뿐, 나는 이런 행동으로만은 가지 않는다. 물론 이것도 버리진 않는다. 이게 있다는 건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ㅁㅁㅁㅁㅁㅁㅁ
                                                      ㅁㅁㅁ          ㅁㅁㅁ
                                                        ㅁㅁ     ㅇ     ㅁㅁ
                                                         ㅁㅁ           ㅁㅁ
                                                             ㅁㅁㅁㅁㅁ


다음을 보라.
ㅁ = 일베충
ㅇ = 외부존재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이 그림을 머리속에 박아둬라.
이건 실제 상황에 놓인 것을 표현한 것이다. 이걸 기저에 깔고 가야된다. 인간의 사고는 기본적으로 유추의 형식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니가 이 글을 읽을 줄 안다는 건, 기저로 투영이 된다는 전제 하에서 아는 것이다.)







다음의 3가지가 고려된다.

1. 상황 통제의 실패
2. 프레임 워크
3. 조직화 및 인지부조화 (패권장악)


시작은 상황 통제에 실패했다는데서 시작한다.



이건 굉장히 사소하다.
경미한 수준에서 경이적인 수준까지 간다.
경미한 수준은 단순한 통제 실패다. 매번 겪는 건데, 언어 분석부터 잠깐 들어가자.

통제統制에서의 한자형태를 분석하면 (자세하게 다루진 않겠다. 내 노동의 회수를 생각해서 말이지.)
실, 머리에 묶은 비녀, (統을 회화로 분석하면 그렇게 나온다고 한다.)
나무가지와 칼 (制를 분석하면 그렇게 나온다고 한다)

따라서 이를 몽타주시키면
실뭉치를 꽉 묶는 것.
꽉 잡은 것.
이를 옛날에는 혼기 나이가 꽉 찬, 가득하다는 뜻으로 썼다고 하는데,
이건 부수적인 표현이고, 실뭉치를 꽉 묶는 것.
이 이미지를 잡아둬라. 그리고 자연과의 모방관계를 맞춰라. 머리속에서 '아하!'가 일어나면, 된 거다. 더 설명하려 하지 마라. 
한글은 혀의 움직임을 모방한 것일 뿐이니.

나무가지와 칼을 잘 봐라.
나무가지가 칼로 정리가 된다는 것이다. 즉 잘랐다는 것이지. 그래서 정리가 된 것이다.
이것은 곧 준비한다는 것과도 연결된다. 니가 면접을 보기전에 머리카락을 치거나, 면도를 해서 털을 자르기도 할 거다.
왜 그런지 생각해봐라. 어쨌건 이런 이유에서 이 단어는 제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상황 통제에 실패했다는 것.
이것은 상황을 내가 꽉 묶는 것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실失이란 뭐냐?
수手에서 온 것인데, '손'을 말한다. 
이 手의 혀의 움직임 모방은 '손'에 해당한다.
근데 이것의 왼쪽 상단에 빗금쳐져있는 걸 보자. 
그게 失이다.

중앙에 뭔가가 있는 건 '균형'을 말한다.
줄타기를 생각하면 알거다.

中에서 세로줄은 꿰뚫는 것이다. 
꼬챙이가 그렇다고 하지.
患 꼬챙이가 심장을 찌르고 들어온 것이다. 

중심에 놓였던 것이라고 본다면, 그것이 위치가 옮겨져서 왼쪽 상단에 (게다가 왼쪽은 대개 안좋은 의미로 쓰이지)
빗금이 쳐져있다는 것, 이게 관건인데, 
이는 그래서 손에서 뭔가를 놓쳤다는 거다. 실이라는 표음의 회화는 그렇게 되어있는 것이다.









과학에 중독되지 마라.
과학이 그 보고서 자체로 너한테 알려주는 건 거의 없다.
통계 데이터?
니 머리속에 집어넣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단다. 형식적 검증에 불과하다.
심리 실험은 대개 사건에 대한 것을 보여준다. 사건에 대한 것을 습득 하지 못한다면 심리학 책 펴놔도 이해할 건 없단다.
그렇다고 이 표현을 심리학의 무용론으로 받아들이진 마라. 그렇게 보라고 쓴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심리학이 주는 건 상당히 많다. 
통제된 상황에서의 '사건'관찰, 이것이 심리학 실험의 또 다른 정의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건
이 사건에 대한 기록
이것이 기호로서 잡히게 된 것인데,
이 단어들을 이렇게 설명한 이유는 이미지를 잡아주려고 한 것이다.
지금부터는 필요에 의해서만 한다. 필요하지 않으면 설명하지 않는다. 알아서 찾아라.







상황 통제에 실패했다는 건, 니가 놓인 그곳에서의 상호작용의 주도권이 너에게 있지 않다는 것이다.
너는 갖고 싶었으나 갖지 못했다는 것이지. 그 때에 마음속에 억눌리는 것들, 불만들이 쌓이게 된다. 
차지 못했다는 것이지. 근데 나는 이것보다 불교에서 말하는 '慢'이 더 설명을 많이 해준다고 보는데, 
이것 역시 한자로 풀이하면 마음이 늘어지는 것을 말하는데, 위의 눈이 밑에 손으로 인해, 끌어내려가는 걸 말한다. 졸린 눈처럼 말이다.
http://ko.wikipedia.org/wiki/%EB%A7%8C_(%EB%B6%88%EA%B5%90) 자세한 걸 여길 참조해라. 그리고 해설서를 참조해라.





이제 언어놀이는 그만하고.
지금까지 설명한 이미지들을 머리속에 집어넣길 바란다.
이제부터 그냥 간다. 





이런 상황에 놓였을 때
사람들은 불만을 갖는다는 것인데,

이건 매번 생기는 상황이다.
왜?
사람을 만나면
주-객의 상호작용의 관계에 놓이게 된다. 
내가 너와 현실에서 직접 만나면 알게 모르게 주도권 싸움이 생긴다는 것이다.
설령 그게 없다 하더라도 타이밍의 오고감이 있다는 것이다. 타이밍의 오고감에서 누가 주도권을 잡는가? 이 문제가 들어선다.

내 쪽에서 발언할 기회가 있고, 니 쪽에서 발언할 기회가 있다는 얘기다.



동시에 발언이 가능할까? 가능하다 하더라도 불가능함에 가깝다.
동시에 동시로 말하면, 소통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다.
물리적인 이유로 불가능하다. 소리가 겹쳐서 안들리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행동이 동시에 터질 수도 없다.
누군가가 '밥 먹으러 가자'고 했다면, 그것을 하던가 하지 않던가 둘 중 하나다.
누군가가 여기에다 두고 '야 우리 춤추러 가자' 이렇게 해버렸다고 해보자.

밥을 먹으면서 춤을 출 수는 없다.
니가 밥을 입에 물고 춤추고 이렇게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설렁탕을 먹으면서 클럽에서 춤출 수는 없다는 얘기다.
또한 비보잉을 하면서 삼계탕을 먹을 수는 없다. 이건 물리적인 문제다.
넌 윈드밀하면서 치킨을 먹을 수 있냐? 니가 강남스타일 말춤을 추면서 설렁탕을 먹을 수 있을까? 
입에서 밥알 튀어나온다.




위의 경우는 동시에 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고
다른 경우를 보자. 이번에는 니가 원하는 것이 실패하는 경우다. 근데 동시가 아니라 턴플레이식이다. 니 현실의 모습을 떠올려봐라. 이게 맞다.
서로 다른 행동이 충돌된다 하여도, 어느 순간에는 둘 중 누가 먼저 신호를 보내는지 합의를 봐야한다. 대표적인 경우는 이렇다.
둘이 동시에 말을 꺼냈다고 해보자. 그러면 이렇게 된다. "너부터 말해." 또는 "나부터 먼저 말할게."
이것은 마치 턴플레이 게임과 비슷하다.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발견된다.

이제 박탈되는 상황과 관련지어 보자. '너부터 말해'같은 것 따위가 일어나지 않는 경우다.

여자가 원빈을 원하면
너는 자격을 박탈당한다.
왜? 여자가 원빈을 원했기 때문이지.

니가 지나가다가 예쁜 여자를 보고, '와 예쁘다'라고 할 수 있다
근데 그 여자는 수치심을 느껴서 '성적 수치심을 유발한 눈빛'이라고 
너를 신고 할 수도 있다.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까지 가지 않는다 해도
니가 관심을 담아서 쏜 눈빛이, 관심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사소한 통제의 실패.
이것이 너에게 균형을 깨지게 만든다. 

이런 사소한 것으로, 그렇게까지 된단 말야?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그건 니가 인간을 너무 거대하게 보고 있다는 뜻 밖에 안된다.
어떤 특정한 인간일 수도 있지만, 인간은 굉장히 소심하다. 소심한 인간들을 생각해봐라. 소심한 인간들은 뭔가 돌아오지 않으면 금방 서운해한다.

예컨대
니 여자친구가 있었다는 전제하에
이런 상황을 생각해보자.
여친이 3줄 정도의 문장을 메시지로 보냈다.
근데 니가 "ㅇㅇ"라고 답했다.

그러면 여친이 이렇게 얘기한다.
"메시지 좀 성의있게 써. 답신하기 짜증나."





상황 통제의 실패라는 것은, 굉장히 사소한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것이 감정을 일으키는 동력이 된다. 불만 말이다.

이해가 되냐?
상호작용의 틀 위에서 본다면, 불만은 매번 쌓인다.

표창원처럼, 거기까지 가지 않아도,
불만은 쌓인다는 것이다.









근데
정확하게 물어보자.
불만이 뭔데?

마음이 늘어지는 거.
가득차지 못하는 거.
근데 이게 뭐냐는 거다.

이런 식으로는 설명이 안된다.



마음에 대해서
감정에 해당하는 용어를 붙이는 건.
마치 명찰표를 붙이는 것과 같다. 그냥 다 보고 나서 감탄사 붙인 거다.

이런식으로는 상호작용을 느낄 수가 없다.





불만이 있다.
어쩌라고?


이게 아니라
내가 갖고 싶었으나 갖지 못했다. 이게 상호작용을 느낄 수 있는 표현이고.

불만이 있다.
이건 자동사에 가까운 표현이다. 항상 그래서 또 물어볼 수 밖에 없다. 
'뭐 왜?' '그게 뭔데?' 

상호작용을 느낄 수 있게 표현해야 한다는 거다.
그렇지 않을까? 
넌 감정이 있어서 감정을 내냐?
뭔 개소리야?

작용을 하는 것과 중첩해서 감정을 나타내는 거지.
작용을 떼고 말하나? 그게 가능하리라 생각하냐? 생각을 하다가 현실을 놓치는 거 아니냐? 정신차리고 보자.









그런데 그 이후를 보자. 상황 통제의 실패 다음에는 뭐가 있는가? 뭐가 있겠나? 또 작용이 있을 것 아닌가? (이 연속됨을 분절시키지 마라. 니가 뭔데?)
상황 통제의 실패는 불쾌감을 부르지만, (이렇게 표현해두자. 이 때의 '불쾌감'이란 단어는 내면의 상태를 명명해둔 것이다.)
곧 이후의 반응은 다시 한번 상황 통제의 시도로 간다.



즉,
니가 상황 통제에 실패하면, 

삐진 척을 한다거나,
욕을 한다거나,
상대방에게 '앞으로 니 말 안들어줄거다'같은 식의 으름장을 논다거나,

이런 식으로
다시 한번 상황 통제를 시도하는 것이다.
리쌍과 임차인의 사건을 보자. 리쌍은 빼달라고 했지만 (상황 통제 시도) 임차인은 '갑의 횡포(상황 통제 시도)라고 반박했다.
다시 한번 리쌍은 '해명글'(상황 통제 시도)을 올렸고, 임차인도 비슷한 대응(상황 통제 시도)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법원에서는 리쌍의 손을 들어주었다. (상황 통제 시도)




그러나 위의 경우는 왔다갔다 하다가 어느 순간 끊어준 것이고 (사실 저것도 완결된 합의라고는 볼 순 없겠지. 임차인은 또 상황 통제를 시도할 수 있으니) 

이것은 계속 실패할 수 있다. 
왜?

예를 들자.

니가 길가다가 예쁜 여자를 봤다.
너는 눈빛을 보냈다. 이것 자체가 상황 통제를 시도하는 것이다. 
이 때 2가지 방향으로 간다.
상대가 반응하든 말든 너는 그렇다는 쪽과
상대가 반응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쪽

전자는 어떤 초월을 한 상태이고
후자는 눈치를 보는 상태다.
지금 말하는 건 후자에 해당한다.

이 때 통제를 실패했다고 해보자.
너는 상황이 너의 시나리오대로, 니가 관심을 표하면, 상대가 관심을 돌려줄 줄 알았는데, 
그 상대가 '재수없어 병신'같은 표정을 지었다고 해보자.

너는 상황 통제에 실패한 것이고
그 순간 머리속이 깨진 듯한 충격을 받는다. 창피하거나 당혹스럽거나, 그런 것이다. 
얼굴이 후끈후끈 달아오르는 것 말이다. 거짓말하고 싶어지는. 쌘 척 하고 싶어지는.

근데
이번에 다시 재시도를 했다고 해보자.
너가 화난 모습을 짓는 것이다. 즉 '저 년이 돌았나'하면서 쳐다봄으로써, 바로 그 전의 행동에 대해 '머리를 조아리는'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근데 이번에도 빗나갔다고 해보자.

여자가 "뭘 봐 씹새끼야."라고 욕했다고 해보자.



너는 그 순간 또 한번 깨진다.



근데 입장을 바꾸면
여자도 깨진 것이다.
왜?
여자가 '재수없어 병신'이렇게 쳐다봤다는 건,
눈 깔아라는 거다.

그것이 여자가 통제하고 싶었던 것이다.
근데 니가 '화를 내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여자에게서도 통제가 깨진 것이다.

따라서
여자도 통제를 하려 한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뭘 봐 씹새끼야."

이제 더 나아가면
4호선 지하철녀 처럼 격투기 스킬을 시전할 수도 있다. 이것도 상황 통제의 일환이다.

그리고 이를 스탠스로 보자.
스탠스가 스타일이 되고 스타일이 주도적으로 선택될 때 스트래티지가 된다. 
이것을 고정시켜 표현하면 스탯이 된다. 





뭔 말이냐? 
일베충 역시 하나의 스탠스가 스타일이 되었다는 것이다.
일베충과 스타일을 엮으면, 이 '스타일'이라는 단어가 주는 효과 탓에, 뭔가 부적절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일베식 스트래티지로 보자. 근데 나는 이것을 '프레임 워크'로 본다. 왜? 하나의 프레임 워크가 되서 무한 복제된다는 것 때문이지.

일베에서 쓰는 유행어
일베에서 반복되는 소재와 전개방식
일베에서 스스로 자기규정하는 방식, 타인을 규정하는 방식, 즉 주-객이 관계맞는 방식

이것들은 아예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정리가 되어있다.
그래서 초딩이 들어가도, 그 프레임 워크를 접하는 게 어렵지가 않다.

그래서 초딩이 일베충의 말투를 쓰고, 일베충의 행동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다.
왜 이게 가능할까?

내가 전에도 말했지만
인간의 정보는 결국 기억의 구조하에서 작동된다.
어떤 것을 습득한다는 건, 그것의 이미지를 머리속에 잡아둔다는 것이고, 그것을 출력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니가 닮고 싶은 사람, 배우고 싶은 사람을 관찰해서 이미지로 잡아두면
나중에 그걸 출력하기만 해도, 너는 그것을 쓰게 된다.
이것에 대해서 감각이 많이 없다면, 이걸 쓰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결국에는 기억의 문제라는 거다.

똑똑해지고 싶냐?
그러면 똑똑한 사람을 만나라.
그리고 관찰하고 패턴을 파악해라. 그리고 기억해라. 그리고 기억된 것을 출력해라.
그러면 그 사람을 모르는 사람이 너를 보면, 니가 똑똑한 줄 안다. 만약 그게 제대로 출력이 되었다면 말이다.
왜?
니가 이미지로 잡은 게, 너에게서 출력이 되고 있고
만약 너같은 사람이 또 이거를 본다면, 너를 보면서 똑똑하다고 느낄 거니까 말이다.





프레임 워크를 설명했다.
근데
이게 왜 문제가 되느냐?


보통 분석할 때
무슨 좌절감 어쩌고 여기까지만 쓰는 경우가 있는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좌절감이 있긴 있다.
상황 통제를 실패하면 경미로운 수준에서 중대한 수준까지 좌절감이 생긴다. 그래서 일베충적 방향으로 가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무슨 기계처럼 좌절감 느끼면 일베충이 되나?
그건 아니다.

머리속에 프레임 워크가 깔려버려서,
자동 출력하는 경우를 봐야 한다. 이게 문제가 된다.

자기도 모르게 일베충 언어를 구사하는 경우가 그런 경우겠지.
재밌어서 쓰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입에 베어버리고
상황에 놓이면 일베충식 프로그램이 환기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민주화'해버리다가 좆되버리는 경우처럼,

자기도 모르게
상황에서 프레임 워크가 작동되고, 툭 튀어나가는 것이다.








(사족인데, 이거 진짜 문제인게, 작정하고 분탕질 치면, 악용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하다.
가정해보자.
삼성 본사에서, 어떤 미친놈이 작정하고 (라이벌 기업이라고 해보자.) 삼성 본사 TV에다가, 일베충의 상징적인 사진을 올렸다고 해보자.
그러다가 어떤 사람이 지나가다 그걸 본거다. 그리고 이걸 캡쳐를 해서 커뮤니티에 띄었다고 해보자.
제목은 "삼성 미쳤네요."라고 해서, 일베충과 연관짓는 거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홈플러스 같은 경우, 이것에 크게 손해를 본 케이스지.
근데 잘 생각해봐라.
홈플러스 사장이 그 지랄 했냐? 아니다.
홈플러스랑 사실 전혀 관계가 없었을 수도 있었을, 어떤 알바 새끼가 그지랄했다고 하잖아? 근데 사과는 홈플러스가 한 거다.

이게 시사하는 바가 뭘까?
이걸 작정하고 악용할 수도 있다는 거다.

니 휴대폰을 누가 살짝 훔쳐서
거기에 로리타 사진을 잔뜩 넣어두고, 중간중간 노무현 합성짤을 넣어뒀다고 하자.
그리고 그 휴대폰을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는 곳에 올려두었다고 하자. 근데 어떤 사람이 (실수거나 예의가 없어서 그랬든) 그걸 들여다봤다고 하자

바탕화면에 노무현 능욕짤이 있고, 사진첩에 들어갔더니 로리타가 있었다고 해보자.

너 어떻게 될 것 같냐?
누명을 썼는데 누명에 대한 해명이 안 먹히게 될 수도 있다.

왜?
"쟤 누명하려고 하나봐." 라는 식으로, 매장될 확률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너에게 평소 불쾌감을 갖고 있던 사람은 대놓고 몰아갈 수도 있다. 가장 단순한 경우는 아무런 정황도 모르면서 그냥 심심해서 그럴 수도 있다.
 이런식으로 너의 인생이 항상 순탄치많은 않다는 것도 고려할만한 것이지.)






사족이 상당히 길었는데,
어쨌거나 프레임 워크와 관련된, 문제를 말했다.
이건 갑톡튀할 수도 있는 문제라고 말했고, 괄호로는 이로인해 일어나는 파장은 심각할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








조직화의 문제
인지부조화의 문제는
상황 통제 실패에 대한 대처이자,
상황 통제 실패를 대처하는 과정에서, 어떤 대처법을 가능케 하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고, 
그에 반대되는 것은 어떻게든지 쳐내는 것을 말한다.

또한 이것은 상황 통제 실패를 대처했다는 것이므로,
그 상황 통제 실패 대처는, 곧, 한편으로는 이제는 어느정도는 이 방식으로 상황 통제가 된다는 것을 말한다.




무슨 말이냐? 단순하다.
니가 여성에게 시선을 쏘았는데, 재수없다는 표정으로 반응했다고 해보자.

그럼 니가 이렇게 반응할 수 있다. (상황 통제 시도)
"역시 존나 씨발년 김치년은 주제를 몰라. 3일에 한번 줘패야되."

여기에 일베충식 스트래티지가 보일 거다.
욕을 넣고, 여자에 대해 씨발년/김치년이라는 구별을 시키고, 사운드를 빡세게 만들고,
3일에 한번 이라는, 특유의 프로그램 (에피소드 기억, 절차기억, 상호작용에 대한 기억,)

이를 넣어두고 바로 처리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이게 없으면 순간 먹먹해서 뭘 해야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최소한 지침이 발견되는 것이다.
원하던 바는 아니지만, 통제가 깨진 상태에서 경미한 불균형이 생겼을 때,
최소한 그것을 다루는 지침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걸 앞서 표현한대로 말하면 이게 바로 프레임 워크다.
(내가 일일이 일베충의 반응방식을 기록하지 않는다는 거 알아둬라. 
 상황 통제 실패가 원인이고, 
 이에 대한 상황 통제 재시도의 방식이 일베식 스트래티지 인데, 
 3일에 한번 이런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는 거다. 그걸 일일이 쓰지는 않겠다는 거다. 이걸 알아두길 바란다.
 그리고 이게 반복되고 프로그램으로 잡히면 '일베식 프레임 워크'가 된다.
 잘 모르는 뉴비들은 바로 이것부터 접하고 들어온다. '킬킬'거리면 받아들이고, '아우 미친 새끼들'이라고 하면 거부한다. (단순하다.))


그리고 지금 말한 조직화/인지부조화는 뭐냐면
니가 지금 이런 일베식 스트레티지, 일베식 프레임 워크를 갖고 있다고 해보자.

근데 누군가가, 너한테 지적을 하는 거다.
"이런 미친 새끼들. 그런 거 하지마."


이 때
너는 이것을 지적당했기 때문에,
이 프레임 워크 자체의 통제를 마주치게 된다.

이 때 니가(일베충)이 이걸 포기할 수 있을까?
  



일베충이 이걸 포기한다는 건
상황 통제의 실패에서, 대안으로 내세운 스트래티지를 또 포기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안마저 포기된다는 것이다. 또 한번의 상황 통제 실패를 맞이하게 된다. (그 대응 자체도 사실 성공이라고 할 순 없는데, 나름의 불만은 씻어줬던 것이다. 3일에 한번 이러고 킬킬 거리면, 그나마 불안은 좀 덜했다는 얘기다. 근데 이것마저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거다.)

이 때
너는 그 상황 통제를 거부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면서 상대를 다시 상황 통제하게 되는데,

이번에 나타나는 차원은 좀 더 거대하다.



왜?
바로 이 스트레티지, 프레임 워크를 통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단적으로 간다. 토대의 통제로 간다.
그게 조직화로 간다는 것이고, 그것이 인지부조화와 연결된다. 왜? 상대가 통제하려고 할 때는 너의 인지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즉, 그건 안좋아, 이런 식으로 간다.) (물론 처음의 상황도 나의 인지를 건드린다. 내가 이것을 어떻게 해야되는지, 고민을 해야되기 때문이다. 근데 이번에는 대안으로 설정한 프레임 워크에 대해서 (인지된) 이것을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좀 더 인지를 건드리는 쪽으로 간다. 이번에는 작정하고 인지에 대해서 건드리기 때문이다. 그 앞선 상황은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인지를 지적하진 않은 것이다. 여자가 '뭘 봐?'이렇게 말했을 때는 니 인지까지 지적한 건 아니다. 니 행동에 대해서 말했다고 보는 게 더 적합하니까. 근데 이번에 니가 반박했다고 해보자. "보면 안되냐?" 근데 여자가 이것에 대해서 반박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 딴 생각을 왜 하냐고?" - 이 때의 지적방식에서 구별된다. 즉 미세할 수도 있는데, 앞에 것은 단순히 행동을 건드리는 차원이고, 뒤에 것은 니 행동의 기억과 전제를 건드리는 것이다.)

근데
이에 대해서
실제로 안좋다고 여길 수도 있으나
이걸 받아들이지 않기도 한다는 것이다.

설령
극단적인 경우
안좋은 게 뻔한대도 불구하고
그걸 받아들이지 않는 쪽으로 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기준같은 걸 초월해버린 상태다. 그냥 행동 자체가 그렇게 되버린다.)


다음을 보자.
우리의 신념 간에 또는 신념과 실제로 보는 것 간에 불일치나 비일관성이 있을 때 생기는 것으로, 인지 부조화 이론에 따르면 개인이 믿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 간의 차이가 불편하듯이 인지 간의 불일치가 불편하므로 사람들은 이 불일치를 제거하려 한다. 인지 부조화 이론에서 나온 결과 중 하나는 자신의 태도(나는 따분한 일은 좋아하지 않아)와 일치하지 않는 과제(적은 보수를 받고 무엇인가 따분한 일을 하기)에 참여하면 태도가 행동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이는 불일치에서 생긴 ‘부조화 압력’ (그 과제가 정말로 그렇게 따분하지는 않아) 때문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지 부조화 [cognitive dissonance] (실험심리학용어사전, 2008, 시그마프레스㈜)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 1957)가 제안한 인지 부조화 이론은 개인이 겪을 수 있는 인지적 요소 간 불일치 상황과 이에 따른 행동 혹은 태도의 변화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론이다. 이솝 우화의 '여우와 신 포도' 이야기는 인지 부조화 현상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다. 이야기 속에서, 여우는 높은 줄기에 달려 있는 포도를 먹고 싶어 한다. 그러나 결국 여우가 포도에 닿지 못하자, 여우는 '저 포도는 굉장히 셔서 먹을 만한 가치가 없을 거야'라고 생각해 버린다. 여우는 포도를 먹고 싶었지만, 자신의 능력으로는 포도를 가질 수 없었기에 이러한 부조화를 포도가 맛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통해 정당화 시킨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지 부조화 이론 (설득 심리 이론, 2012, 커뮤니케이션북스)

신포도가 대표적인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 되지 않을 때, 부조화를 생각으로 정리해버리는 것을 말하는데,
일베충식 스트레티지를 보자. 대개 여자를 까는 쪽으로, 욕을 세차게 하는 쪽으로 간다.
근데,
누군가가 이에 대해서 지적을 했다고 해보자. (상황 통제 시도)
그럴 때, 이것을 두고 '윤리'의 문제로 갔다고 해보자. "너 그게 사람으로서 할 말이니?" 이런 식으로 간 것이다.

이 때에
내 생각과 주변 환경은 일치되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하는 게 편하고 된다고 보는데, 저 쪽에서는 마치 닿을 수 없는 포도처럼 굴고 있는 것이다.
이 때 상대의 말을 받아들이면, 나는 여태껏 유지했던 포지션을 포기해야 한다. 그게 상대의 상황 통제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 통제가 실패하면 불만이 생긴다. 이게 앞에 계속 얘기했던 메커니즘이다. (아닌 경우도 있겠으나, 그건 통제 욕구가 없는 것으로 봐야 하는 게 마땅하다. 만약 통제 욕구가 있었다면 쉽게 상대의 쪽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니가 말싸움을 조금이라도 해봤다면 알 건데?)



그 때에
머리속에서
쟤가 문제다.

이런 식으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생각을 정당화시키는 쪽으로 가고, (그래야 상황 통제가 되므로)
상대의 생각은 까버리는 쪽으로 간다. (그래야 상황 통제가 되고, 상대가 상황 통제 하는 시도가 무산된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그 토대를 다시 강화하는 쪽으로 간다.
그래서 인지부조화는 조직화를 이루는데 기여를 한다.
그리고 이것은 프레임워크가 탄탄해지는데 기여하고
이것은 매번 상황을 마주할 때 통제의 실패에 대해서, 다시 대처하는 수단으로서 나타나게 된다. 그렇게 순환되고 반복됨으로써,

이것은 더욱 견고해진다.






이것을 깨려면
매트릭스처럼, 이 프레임 워크로 도저히 버틸 수 없는 강력한 버그를 만나서 각성을 하는 수 밖에 없다.


대표적인 예로,
아주 매력적인 여성을 만났는데,

일베충이 그 태도를 버리지 않으면, 도저히 접할 수 없는 상태의 여성이라고 해보자.
물론 완전 버리는 게 가능한가? 싶기도 하지만,

이 일베충이 그 여성을 만나려면
그 프레임 워크를 내려놓아야 된다.


상황 통제를 더이상 이런 프레임워크로 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 때
이 프레임 워크가 도리어 불행을 자처한다는 쪽으로 갈 때
(즉 이걸 버리기만 해도, 상황 통제가 저절로 되는데, 오히려 이것 때문에 더 안된다는 판단이 들어서
 뇌가 이득을 따지기 시작할 때)

프레임 워크의 교체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럴 때를 제외하고는 이것은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대표적인 경우가
일베식 프레임워크를 계속 썼더니, 너무 병신처럼 변하는 것 같다고 판단이 들어서,
스스로 그것을 끊어버리는 경우다. 게임 중독을 끊듯이 말이다.

전효성이 대표적이겠지.
민주화! 라고 썼다가 좆털리고 나서, 반성문을 쓴 경우처럼 말이다.
이제는 그런 식의 넷 용어를 웬만해선 못 쓸 거다.
아예 작정하고 가버리면 쓸 지도 모르겠지만,
만약 그것이 자기 연예계 생활에 보탬이 안된다는 데 판단이 든다면, 이젠 그런 용어를 쓰기가 꺼려지는 것이다.
(그 프레임 워크가 도리어 상황 통제에 장애요인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접근으로 볼 때,
일베충의 전환은 
상황 통제 실패에 대해서 대처하는 
프레임 워크의 전환에서,
또는 상황 통제 실패에 대한 정의의 전환에서 가능할 수 있다.

근데 이게 불가능할 거다.
왜?
상황 통제 실패가 주는 초조함과 비참함은 강도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이걸 극복하게 해주는 (설령 방법이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프레임워크는 쾌감에 따라서 중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걸 놓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문제는 이걸 깨뜨리는 것을 가능케하는, 프로그램이 개발될 때 가능해진다.

일베충을 깨고 싶다고?
정신차려라. 
니가 이런 통제실패에서 비롯된 더 강력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지 못한다면 불가능이다.

이것이 일베충들에게 쾌감을 주고, 자신감을 부여하고, 설령 파탄으로 간다 하더라도, 지침이 된다면,
일베충들은 이걸 포기할 수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글이 일베충식 스트래티지를 옹호하는 건 아니다. 다만 그렇다는 것이다.)





문제는 상황에 놓였을 때, 통제가 되냐 안되냐로 간다. 안되면 재시도를 하게 되는데, 그것 역시 실패할 수 있다.
이 상태는 지속적으로 불만이 누적되는 상태이고, 여기에서 방향이 결정된다. 결정을 요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에 어떤 프레임 워크를 설정하느냐. (니가 평소에 사색을 하는 이유가 뭘까? 잘 생각해봐라.)

이에 따라
일베충이 되기도 하고
안되기도 한다.
그리고 일베충이 되었다면, 그걸 전환시키는 방법은, 더 강한 프레임 워크가 나오는 것이거나,
스스로 그 프레임 워크에 대한 불만을 갖거나,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 경우인데, (마치 인셉션처럼 꽂혀야 된다.)

그게 일어나지 않는다면 전환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 글을 봄으로써 내 포지션을 보면 알겠지만, 나는 이런 프로그램 개발을 하지 않는다.)











글을 끝맺는다.
일베충의 탄생을 다루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 다룬 것은 '통제'를 다룬 것이다.
그리고 사실 사례로서 쓸만한 것으로 일베충을 다뤄봤다.

나머지는 스트래티지의 문제고
이건 관심있는 사람은 일베를 들어가던, 표창원의 분석을 보던,
다른 사람들의 분석글을 참조하던 해라.

근데 낱낱개로 열거되어있으면 결국 얻는 건 없다.
그것을 관통하는 원인이 뭐냐? 이게 관건이기 때문이다.


이건 니 머리로 하면 안된다.
하더라도 배경틀을 보고 가야 된다. 그건 관찰이다. 모방이다.
모방을 해야 한다. 실제 상황의 전개를 모방하는 것이다.

내가 모방한 것은 위에서 지금까지 쓴대로 다음의 3가지였다.

1. 상황 통제의 실패
2. 프레임 워크
3. 조직화&인지부조화





사견이고
다른 의견 가능하다.

일단 이렇게 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