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왜 내가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항상 드는 거지 학교에서 배웠던 것 내가 경험으로 깨달은 것들 저 너머에 훨씬 고차원적인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다 알 수 없는 것을 궁금해 하고 파헤치고 싶어 하는 것이 정상인가? 내가 뭘 위해 이렇게 궁금해 하고 있는 지를 깨닫고 싶다 항상 무언가를 갈구하는 이 기분이 너무 싫다 사실 알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든다 너희들은 뭘 깨닫고 뭘 알고 있으며 뭘 모르고 뭘 궁금해 하냐
댓글 11
너무 좋은 글입니다.
우와(121.175)2013-10-09 22:45:00
저도 고등학생 이지만, 중학교때, 어쩌면 중이병이요 어쩌면 사색하는 것으로 가끔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우와(121.175)2013-10-09 22:45:00
제시 베링이란 심리학자분은 이렇게 생각하더라구요. <남성 성기는 왜 이렇게 생겼을까?> <종교본능> <이상 성욕의 놀라운 과학>을 쓰신 분인데, 이분은 인간의 쾌락의 관점에서 이해합니다. 무언인가를 갈구하고 결국 얻어내는 과정에서 느끼는 '놀라움'이란 것이죠. 추상적인 언어들은 어떻습니까? 자신의 경험을 아름답게 표현해주는 무엇이죠. 인간은 털없는 가죽의 동물입니까? 아니죠. 이성적이고 사회적이며, 과학이라는 객관적 탐구로서 지식을 창출해내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우와(121.175)2013-10-09 22:49:00
이처럼 인간은 미적 관념을 가지고 있으며 질문을 통해 극복해나갑니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을 보고,느끼고,맛본것입니까? 아니요, 현실에서는 전혀 생각할수도 없는 '지구의 움직임'을 '상상'하여 중력을 '공간의 휘어짐'으로, 매우 고차원적으로 이해해낸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 고등학교 역사쌤은 자신의 대학생활에서의 니체를 회상합니다. 니체의 저작들을 읽어나가며, 비록 '고상한척'이라고 표현하셨지만 의지를 가지고 놀라움을 느끼고 경도한 것입니다.
우와(121.175)2013-10-09 22:53:00
이렇게 생각하면 알고 있는 것도 사실은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란 점이 저는 오히려, 그렇게 궁금해하는 불안자체가 흥미로워집니다.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해본 사람으로서, 이제는 인간 자체의 물음으로서 물음 즉 반복되는 질문자체를 궁금해 한것이죠. 그리고 이런 질문에 집착하는 것을 어느 철학자는 "철학자들의 질문집착증"이라고도 표현합니다. 제 생각에 당신은 남들처럼 소박한 실재론(보고 듣는대로 사물이 존재한다는 일상적인 관념)을 깨부술수 있는 용기를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에 관심이 있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우와(121.175)2013-10-09 22:58:00
저는 님께서 진솔하게 말한 것이 정말 좋습니다. <글쓰기를 두려워 하지 말라>의 저자는 글의 소박하면서도 깔끔함을 중요시 여깁니다. 여기 철학 갤러리 글들을 보십쇼. 댓글에는 "삶은 이런 것이야" "자아가 붕괴될것같다"이런 말들이 넘처납니다. 이런 글들을 보고 이해가 됩니까? 전문적인 글도 아닙니다. 온통 괴상한 단어들의 조합과 비논리적인 말들 투성이뿐입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을 글을 미숙하게 쓰는 사람으로 이해하고, 통찰력이 부족한 중이병으로 분류합니다. 중이병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질문하는 것을 중요시 여기지 않아요. 괴상한 단어들을 써서 "신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같은 말로 대답내리기를 즐겨 하는 겁니다. 이런 중이병적인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것은 당신이 질문의 순수함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와(121.175)2013-10-09 23:02:00
글을 너무 급하게 써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님의 게시글에 답변한겁니다. 당신의 생각에 대한 사고, 말장난처럼 얘기하자면 당신의 믿음에 대한 사고에 대해 긍정적 사고로 대답한 겁니다. 이같은 말들의 반복은 의미 없는것입니까? 아니면 당신의 '불안'조차도 하나의 답이자 신념입니까? 무신론자는 왜 '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라고 안하고 '신이 없다'라고 하는 것입니까? 저희 역사샘은 왜 "역사를 보면 말을 신중하게 할 수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까?
우와(121.175)2013-10-09 23:08:00
하지만 두렵기도 하다 감히 다가갈 수 없는 존재를 갈구하는 것 같고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건드릴 것만 같아서 그리고 끝내 답을 얻지 못할 때의 자괴감과 허무함을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망설임도 포함되겠지
익명(115.139)2013-10-09 23:08:00
지금 굉장히 멍하다 답변과 함께 질문을 할 줄이야 나는 그저 일반인일 뿐 댓글러가 얘기한 것처럼 신념을 깰 만큼 용기있는 것도 아니고 열정적으로 나의 궁금증에 답을 찾아내려 노력하지도 않는다
익명(115.139)2013-10-09 23:15:00
조금 이해가 안되실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리해서 말씀드릴께요. 이같은 질문은 사실 도움을 요청하는 겁니다. 만일 당신이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러면 마음이 어떻습니까? 매우 불안하고 우울하죠? 이렇게 물을 겁니다. "아 나 어떻게 살아가지? 애들이 무서워" 그런데 만일 당신 곁에 친구가 있다고 해봐요. "에이, 걱정할 것 없어. 학교폭력한 놈 신고해!!" 그러면 어떻습니까? 당신은 친구에게 질문을 던짐으로 '도움'을 요청한 것이고 만일 선생님이 "그래 학교폭력한 놈 혼내줄께! 앙갚음도 없게 할께"라고 하면 어떻습니까? 도움요청으로 답을 얻어가면서 당신은 학교폭력을 극복했고, 이 안도감, 즉 학교폭력 극복의 자신감도 회복할 수 있게 된겁니다.
우와(121.175)2013-10-09 23:29:00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지요? 이처럼 인간은 질문 해오는 습관이 발달하면서 타인에 의해 도움을 받고, 또 몰랐던 사실을 알게됨으로서 놀라움에 경도되기도 하는 거에요. 당신이 묻는 그 생각도 결국에는 하나의 질문이요, 생각과 도움을 요청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 질문하면서 생긴 불안은 극복될 수 있는거에요. 지금은 질문-불안에 단계에 있지만 언젠가 책을 많이 읽고, 선생님의 말을 하나하나 되새겨가면서 열심히 공부하시면 반드시 극복할 수 있을 거에요!!
너무 좋은 글입니다.
저도 고등학생 이지만, 중학교때, 어쩌면 중이병이요 어쩌면 사색하는 것으로 가끔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제시 베링이란 심리학자분은 이렇게 생각하더라구요. <남성 성기는 왜 이렇게 생겼을까?> <종교본능> <이상 성욕의 놀라운 과학>을 쓰신 분인데, 이분은 인간의 쾌락의 관점에서 이해합니다. 무언인가를 갈구하고 결국 얻어내는 과정에서 느끼는 '놀라움'이란 것이죠. 추상적인 언어들은 어떻습니까? 자신의 경험을 아름답게 표현해주는 무엇이죠. 인간은 털없는 가죽의 동물입니까? 아니죠. 이성적이고 사회적이며, 과학이라는 객관적 탐구로서 지식을 창출해내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인간은 미적 관념을 가지고 있으며 질문을 통해 극복해나갑니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을 보고,느끼고,맛본것입니까? 아니요, 현실에서는 전혀 생각할수도 없는 '지구의 움직임'을 '상상'하여 중력을 '공간의 휘어짐'으로, 매우 고차원적으로 이해해낸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 고등학교 역사쌤은 자신의 대학생활에서의 니체를 회상합니다. 니체의 저작들을 읽어나가며, 비록 '고상한척'이라고 표현하셨지만 의지를 가지고 놀라움을 느끼고 경도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알고 있는 것도 사실은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란 점이 저는 오히려, 그렇게 궁금해하는 불안자체가 흥미로워집니다.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해본 사람으로서, 이제는 인간 자체의 물음으로서 물음 즉 반복되는 질문자체를 궁금해 한것이죠. 그리고 이런 질문에 집착하는 것을 어느 철학자는 "철학자들의 질문집착증"이라고도 표현합니다. 제 생각에 당신은 남들처럼 소박한 실재론(보고 듣는대로 사물이 존재한다는 일상적인 관념)을 깨부술수 있는 용기를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에 관심이 있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저는 님께서 진솔하게 말한 것이 정말 좋습니다. <글쓰기를 두려워 하지 말라>의 저자는 글의 소박하면서도 깔끔함을 중요시 여깁니다. 여기 철학 갤러리 글들을 보십쇼. 댓글에는 "삶은 이런 것이야" "자아가 붕괴될것같다"이런 말들이 넘처납니다. 이런 글들을 보고 이해가 됩니까? 전문적인 글도 아닙니다. 온통 괴상한 단어들의 조합과 비논리적인 말들 투성이뿐입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을 글을 미숙하게 쓰는 사람으로 이해하고, 통찰력이 부족한 중이병으로 분류합니다. 중이병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질문하는 것을 중요시 여기지 않아요. 괴상한 단어들을 써서 "신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같은 말로 대답내리기를 즐겨 하는 겁니다. 이런 중이병적인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것은 당신이 질문의 순수함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글을 너무 급하게 써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님의 게시글에 답변한겁니다. 당신의 생각에 대한 사고, 말장난처럼 얘기하자면 당신의 믿음에 대한 사고에 대해 긍정적 사고로 대답한 겁니다. 이같은 말들의 반복은 의미 없는것입니까? 아니면 당신의 '불안'조차도 하나의 답이자 신념입니까? 무신론자는 왜 '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라고 안하고 '신이 없다'라고 하는 것입니까? 저희 역사샘은 왜 "역사를 보면 말을 신중하게 할 수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까?
하지만 두렵기도 하다 감히 다가갈 수 없는 존재를 갈구하는 것 같고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건드릴 것만 같아서 그리고 끝내 답을 얻지 못할 때의 자괴감과 허무함을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망설임도 포함되겠지
지금 굉장히 멍하다 답변과 함께 질문을 할 줄이야 나는 그저 일반인일 뿐 댓글러가 얘기한 것처럼 신념을 깰 만큼 용기있는 것도 아니고 열정적으로 나의 궁금증에 답을 찾아내려 노력하지도 않는다
조금 이해가 안되실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리해서 말씀드릴께요. 이같은 질문은 사실 도움을 요청하는 겁니다. 만일 당신이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러면 마음이 어떻습니까? 매우 불안하고 우울하죠? 이렇게 물을 겁니다. "아 나 어떻게 살아가지? 애들이 무서워" 그런데 만일 당신 곁에 친구가 있다고 해봐요. "에이, 걱정할 것 없어. 학교폭력한 놈 신고해!!" 그러면 어떻습니까? 당신은 친구에게 질문을 던짐으로 '도움'을 요청한 것이고 만일 선생님이 "그래 학교폭력한 놈 혼내줄께! 앙갚음도 없게 할께"라고 하면 어떻습니까? 도움요청으로 답을 얻어가면서 당신은 학교폭력을 극복했고, 이 안도감, 즉 학교폭력 극복의 자신감도 회복할 수 있게 된겁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지요? 이처럼 인간은 질문 해오는 습관이 발달하면서 타인에 의해 도움을 받고, 또 몰랐던 사실을 알게됨으로서 놀라움에 경도되기도 하는 거에요. 당신이 묻는 그 생각도 결국에는 하나의 질문이요, 생각과 도움을 요청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 질문하면서 생긴 불안은 극복될 수 있는거에요. 지금은 질문-불안에 단계에 있지만 언젠가 책을 많이 읽고, 선생님의 말을 하나하나 되새겨가면서 열심히 공부하시면 반드시 극복할 수 있을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