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주의의 절대성, 허무주의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프로타고라스의 이 선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에게 있어 실재하는 세계란
감각을 통해 인식되는 사본일 뿐, 실재일 수 없다
세계의 실재 여부와는 상관 없이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감각이라는 불완전성과 주관성의 여과를 거친
이차적인 세계 뿐이다

즉 감각의 개별적인 주체들은 다양한 이차 세계를 양산한다
이 수많은 세계는 동일할 수 없고 누구의 세계도 실재일 수
없다는 주장이 상대주의다
인간은 세계를 재단하고
세계라는 그 자체의 개념마저 인간의 작품이 된다
즉 인간이 실재 세계를 보는 방법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상대성은 동서를 불구하고
지속적이고 다발적으로 각지에서 주창되었다
소피스트로부터 니힐리즘에 이르기까지
도가로 부터 불교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회의주의와 불가지론이라는 부정적인 이름으로
때로는 소요유나 해탈 열반이라는 보다는 긍정적인 이름으로
인간의 고집과 편견을 무너뜨려왔다

자다가 마신 물이 알고보니 해골물이었다는
원효대사의 일화도 상대주의의 일환이다
감각의 차이가 다른 세계를 인지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과연 감각을 변화시켜서까지
해골물을 마셔야하는가?
고통을 잊고 모든 일체를 무던하게 받아들이고자
자신의 에고를 잊어야 하는가?
마치 해골물을 아메리카노처럼 마실 수도 있다는 듯이
말하는 그들이 과연 자아를 잊고 입을 다문 적이 있는가?

동양에서 상대주의라는 뜨거운 감자를 취급하는 전형적인 방법은
세계를 완전하게 인식하여 세계 자체가 되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세계를 위해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단언컨데 주체성은 잃고 주체는 잊지 못한
일부 불교와 인도철학은 실패했다
도가는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면 차라리 판단을 보류하자는 방법을 택했다
길을 모르니 걷다보면 길이된다는 식의 편안함을 취했다
그러나 마누라의 죽음 앞에서 대야로 드럼을 친 장자는
너무 자연스러움에 집착해서 오히려 인간의 본성을 거부하는
부자연스러운 고집을 택하며 외면당했다

반면 서양에서는 굉장히 인간적인 태도를 취했다
끝없이 회의하기도 하고 알 수가 없으니 닥치라고 하기도 했으며 태도를 고려하기 보다는 세계의 본질에 대한 탐닉의 즐거움만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대표할만한 것은 니체일 것이다
상대성 앞에서 허무를 느낀 많은 인간들이 회의에 빠진 반면
니체는 의미를 인간이 만드는 것이라면 오히려 그 의미를 극적으로 만들어 나가자고 주장한다 매우 인간적이다
초인이라는 단어는 오히려 부처에 어울리는 말이고
극인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세계의 본질이 백지라면
동양은 극도로 원색적인 수묵화, 여백의 미를 추구했고
서양은 뚜렷한 색감의 유화를 그린 것이다

상대주의는 오히려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는 절대주의에
스스로를 가둔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거나
모든 것이라도 할 수 있을 것처럼 만든다
그 얼마나 비인간적인가
허무라는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을
허무감이라는 더러운 뉘앙스로 채우거나
자기자신마저 빈 공간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극단적이지 않을 수 없다

상대주의는 인간의 편견을 부수는데면 족하다
그것은 방법론이 아니다
우리에게 감각이라는 도구 밖에 없다면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여야 할지 고민하는 펀이 현명할 것이다
본질에 대한 지향성과 진실에 대한 눈먼 편애는
완벽에 대한 결벽증을 유발한다
제 자신이 애초에 얼마나 완벽했길래 공주병에 빠젔는지 모를 일이다
그저 겸손하고 만족스럽게 우리의 감각을 사랑하는 방법 말고는
아무런 방법도 없다

말할 수 없더라도 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