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아이가 번지점프대 위에 있다.
그의 손목에는 시계가 착용되어있으며 아이가 본 현재 시각은 정확히 - '오후 1:00분'
안전요원은 아이가 시계를 본 1:00분에 입을 열었다. 왈 “지금부터 20분후인 1:20분에 번지 합니다.“
아이는 시계를 바라본다.
초침은 마냥 빠르게 지나갈 뿐 도저히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이가 아직 도달하지 않은 사건들에 관해 1차적으로 두려운 이유는 시간은 멈추지 않고 언젠가 1시20분이란 상황속에 자신이 처해질것이며 뛰어내릴지 말지에 관한 선택의 기로에 설 것임을 ‘확신’ 하기 때문이다.
역으로 20분후에 뛰어 내리지 않는다고 결정했으면 1차적인 두려움은 제거되며 실행하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부차적인 문제들이 뒤따른다.
윗내용에서 아이의 '확신'은 어디서 나온 것 일까?
지금 아이가 처해진 상황만을 따오면 두려움의 전제는 ‘확신’이고 확신의 전제는 ‘시간은 흐른다’ 이다.
'시간이 흐른다'라는 표현은 상당히 애매하다. 물리학적으로 보면 이것은 엄연히 틀린 말이지만 아이가 인지하고 있는 한계내에서 시간은 분명히 출발점을 모르는 한점에서 도착지를 모르는 한점으로 흐르고 있다.
갖 태어난 아기, 아직 시간개념이 잡혀있지 않은 아이들은 '시간은 흐른다' 라는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다. 단지 주어진 상황만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영아들은 ‘인과’ 라는 개념이 완벽히 잡혀있지 않다.
소리(글)을 의미로 매칭 시키고, 생각은 그것에 한정되어진다. ‘생각은 자유롭다’ 라는 표현은 엄밀히 말하면 틀리다. 생각은 감각으로부터 의미를 매칭시키고 개념화한 의미내에서 자유롭다.
그럼 어느정도 자란 아이들이 시간을 정의하는건 현상의흐름이 재료가 되며 해가뜨고 해가지는 것, 눈앞에 보이는 엄마가 나처럼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던 시절도 있었을 것이고 나또한 언젠가 엄마처럼 성인이 될것이라는것등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추론하며 변화에 대한 인식을 할 때 시간은 개념으로써 떠오르며,
'현재는 과거의 전제로 부터 나온결과를 체험하며 내일의 추론은 오늘로 부터 이끌어진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즉 변화와 관련된 것을 인지하는 인간은 대부분 ‘귀납’을 따른다. 하지만 추리에 이르는 전제들은 항상 부족하기 마련이고 각각의 전제들 또한 추론에 평등하게 관여하지 않는다.
이 평등하지 않음으로 인해 자연스럽게도 한번 실수한 인간은 그실수로 인해 계속 똑같은 실수를 범할 확률이 높아진다.
ps. 2편도 시계를 보면서 번지점프를 하는 아이와 이어진다.
두려움... 두려움에는 막연한 두려움과 뚜렷한 두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잘 모를 때의 막연한 두려움과 확실히 알고 있을 때의 뚜렷한 두려움. 앎으로 인한 확신은 두려워해야 할 것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을 분별하게 하고요. 그런데 맹신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걸 두려워하게 하고, 정작 두려워해야할 것에는 심드렁하게 해서 낭패를 보게 하는게 아닌가 해요. 온전한 앎, 온전한 믿음이 중요한 이유라고도 할 수 있겠죠
갓난 아기에겐 인과라는 개념이 없을까요... '기저귀가 젖거나 배고플 때 울면 -> 보호자가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맘마를 준다' 라는 인과관계를 인식하고 있는거 아닐까요
두려움을 컨셉으로 잡았지만 얘기하고자 하는것이 두려움은 아닙니다
그런과정을 통해 인과의 개념을 터득하는 거죠
예 핵심과 무관하게 읽어내려가면서 떠오르는 생각들 그냥 끄적여보는거예요
그리고 완전 갖난 얘기들은 주객의 개념조차 없습니다. 보호자가 기저귀를 갈아봤자 불만족이 우는 행위로써 제거되었다. 라고 인지합니다 누가 처리해 주는게 아니라
차츰 주와 객이 분리되고 목적을 위해 요구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그것이 좌절되면 불만족으로 이어짐, 어린아이들이 무엇인가를 획득하고 싶을때 울어버리는것이 과거의 습성
어린아이에게 한정되어 진것은 아님 적절한 수단을 통해 무엇인가를 성취해본적이 드문 사람들의 불만족은 계속 오지만 현상을 유지하려는 관성은 모순을 일으키며 전형적인 무기력의 패턴
추천함
요약하면 확신할 수 있기 전까지 실수를 반복한다는 말이네, 그럼 어떻게 확신이 와서 실수를 중지하게 되는지도 설명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영어가 부엉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