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 보니 많은 이들이 한번쯤 생각은 해보았을 발상을 체계화한 것이 타르시어의 구경주의인 것 같다.
그런데 이 구경주의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첫째는
시간은 연속적인가 하는 문제이다. 시간의 단면은 무한히 나누어 지는가?
이는 무한 집합의 크기를 따지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인가 하는 점이다.
7초 동안과 1초는 다른 시간의 양을 지녔는가?도 문제이지만
두번째로
과연 바나나를 먹기 위해 손을 뻗는다는 것은 인생의 시간선 상에
바나나를 먹는 즐거운 한때을 영원히 추가하는 행위로 봐야하는가도 문제다.
다시말해 과거와 미래가 모두 동시에 존재한다는 시각이 사실이라면 현재하는 행동은 현재를 위한 것일까?
아니면 과거의 나를 위해 남겨두는 선물인가 하는 점이다.
세번째로
시간이란 애초에 존재하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시간의 존재성을 느끼지만 그저 기억만이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과거란 것은 존재하는 실재인가 하는 점이다.
즉 물리적으로 과거란 지역은 존재하냐는 매우 고질적인 문제 물론 이는 상대론적인 관점에서 시간이란 존재한다는 결론이 나왔으니
99.9999%의 경우 헛소리임으로 별로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네번째로
현재가 과거의 연속이라면 그 과거는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가 기억하는 그 과거의 모습인가 하는 점이다.
미래의 나에게 현재의 나는 고정된 사건이 일어나는 재현적인 현재일 뿐인가?
양자역학에서는 현재의 행위가 과거를 바꾼다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해 냈다.
즉 이 순간을 향해 흘러 오는 과거의 나는 우리와 동일한 인격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다른 경험을 한 인격들이 서로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즉 나의 타임라임은 수 많은 나라는 타자들의 연속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 증거로 우리는 현재가 아닌 과거와 미래의 상태를 감지할 수 없다.
과거가 내가 기억한 그대로인지 우리는 확인할 수 없고 미래는 또 다른 문제 점을 나타낸다.
다섯번째
내가 말한 진짜와 가짜의 논리라는 시각에서 보면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내가 되려는 의지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미래의 내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순간 순간 자신의 단면를 가짜라고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스스로라고 부르는 존재는 현재가 아닌 미래의 자신을 진짜 자신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말해 현재의 자신이 부정될 때 만이 에게이머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과거로 흘러가서 지나고 나서야 에게이머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지금 한 순간의 타르시어는 에게이머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그것은 분명히 에게이머지만 동시에 에게이머로 받아들일 수 없는 시점이 존재하는 어떠한 파동으로 승화 될 수 있다.
즉, 에게이머는 현존할 수 없는 파동이란 것이 에게이머 이론의 문제이다.
하지만 우리가 에게이머 이론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 때문에
위의 문제들는 더욱더 심화 될 수 밖에 없다.
모든 시간 상의 타르시어는 자신만의 고유한 타인라인을 가지고 여행하는 서로 별개의 객체이다.
이런 걸 신중하게 보는 친구들이 있구나;;; 왜 보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야 말로 당연하지 아니하고..
모든 위대한 철학자들은 다수가 별 볼일 없는 어중이 떠중이의 헛소리라는 비평을 받았으니..
모든 것은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이유이다.
공자도 말했듯이 사람이 셋이면 그 중에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지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고 반성하고 잘한 사람을 보고 반성하고 자신과 같다면 그대로 복습한다고..
ㄴ 맞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