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부정적인 기질이나 성향을 올바른 방향으로 개조하거나, 또는 그러한 기질적 요인에 좌우되는 빈도수를 줄이는 능력의 향상이다.

일단 플라톤의 견해에 따르면 잘 사는 것은 올바르게 사는 것이요 올바르게 사는 것이 곧 잘 사는 것인데,

그 올바르게 살게끔 해주는 능력을 인지적인 부분과 기질적인 부분으로 나눈다고 하면  결국 철학을 통한 인지훈련의 오랜 집적과 단련이 기질적인, 즉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하드웨어적 부분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철학도 내지 철학자들은 자기가 타고 난 기질적 성향 따위를 정당화하고 합리화 시키기 위해서 철학적 알고리즘을 이용해 오고 있으며 이것은 진리에 대한 또 다른 왜곡이라고 보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왜냐면 철학이란 진리에 대한 사랑이며 따라서 그 진리와 나 사이에 아무것도 개입되어서는 아니되고 나를 온전히 갖다 바칠 수 있는 각오가 되어있지 않고서는 그러한 사랑을 완성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철학을 자기자신을 위한 변명의 도구로 이용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니체나 쇼펜하워 등인데 그들은 결국 진리의 힘으로 스스로를 초월하는데 실패한 사람들이라고 난 생각한다.

자기 성향, 자기 개성에 대한 집착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죽는 날까지 특정한 편견과 독단의 체계로부터  끝끝내 해방되지 못했던 것이다.

진리에 대한 사랑보다 자기자신에 대한 사랑이 우세했다는 점에서 그들의 삶은 철학의 \"나쁜 사례\"에 해당된다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