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 뇌를 촬영해보면
모든 부위가 비활성화되어있다 ( 내가 논문작성하고있음 현재 직접 연구함 )
한마디로 뇌가 비활성화 되서
자극에 둔감해지는걸
마치 욕심이 사리졌다고 자각할수있는거지.
인간이 본디 외부로부터 자극을 받으면
설정값대로 발현되기 마련인데 말이야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이란
고통을 잊는거라고 하는데
그 고통을 잊는 경지까지 올라가는게
난 자기 학대라고 보는거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공명영상법으로 뇌를 촬영할경우
뇌의 활성화를 알아볼수있는데
사랑과 분노는 같은 부위에서 발현된다
그니깐 사람이 사랑을 느끼면 분노는 느끼지못한다느거임.
절대 동시에 느낄수없는 감정이고
동전의 양면이라는거임. 앞과 뒤가 동시 나올수가없는..
근데 고통도 똑같은거임
고통을 느낄때 자극되는 부위는
사람이 쾌락 느낄때 자극되는 부위와 똑같다
그니깐 고통을 못느낀다고 수행하는 방법은
결국 쾌락도 덩달아 잃어버린다는거지.
난 이걸 자기 학대라고보는거다.
쉽게 설명해줘서 이해했다만, 한 가지 의문점이 있다. 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부위는 같을 때, 고통을 제거하려하면, 쾌락 또한 덩달아 제거된다. 그러므로 자기학대이다. 라는 논리인데, 왜 결론이 자기학대로 귀결되는지 모르겠다. 너가 정의하는 자기학대는 쾌락의 부제상태를 의미하는건가? 그렇다면 쾌락이 없는 평소상태는 자기학대이고, 반대로 고통과 쾌락이 모두 없는 것이 자기학대라는 건데, 잠자는 행위 또한 자기학대라고 말할 수 있는거아니냐. 결론 부분에서 좀 유보해보는게 어떻겟냐
윗 글은 논리적 타당성의 관점에서 적어봤고, 내 생각을 덧붙이면 이렇다. 너가 자기학대라는 개념을 사용할때, 그 조건으로는 불쾌 또는 쾌의 부제상태를 의미하고, 자기학대와 반대명제를 나는 행복이라는 키워드로 이해했다. 따라서 행복의 조건은 쾌의 상태임을 의미하는거지, 근데 이 설정에 놓고보면 쾌는 덕,선/ 불쾌는 부덕.악 이라는 경험주의 윤리학에 빠져드는거다. 그럼 너가 연구대상으로 삼는 스민들이 말하는 행복 또는 열반 또는 수행의 목적이 이 경험주의 윤리학의 관점에서 이뤄지는지 합리주의 윤리학에서 이뤄지는 검토해보는게 선행되야할 것 같다. 합리주의 윤리학은 쾌를 추구하는 행위의 지침이아니라 형이상학적 목적에 맞게 자기 수양이나, 행위의 기준을 삼는거니깐
뇌과학자라는 말부터 의심이간다. 이정도는 나도 지어내겠다.
뇌과학자가 여길 왜오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앞뒤가 안맞는데 병신새끼야? 뇌과학자맞냐? 니가 본문에서 고통과 쾌락은 동시에 느낄수 없다고 써놓고 왜 둘다 못느낀다고 결론지음? 이건 모순인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벨은 보통 난독증이아닌듯
설정값을 없앤다라.. 참 뭐라해야 할까.. 그 설정을 풍요롭게 하거나 바꾸는 훈련이 아니라 아예 없애버리는 훈련이라. 자기 학대라고 할 만 하네요
자기 학대라고 부르는거 자체가 이해안됨. 그리고 작성자가 말한걸 불교에서도 모르는 것이 아님. 불교에서 가장 주요한 명언 중에 하나가 "욕심이 없으면 고통도 없다"라는 말임. 불교가 처음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사람들이 고통받는 이유를 부처가 고민하다보니까 결국에 모든 문제는 욕심에서 기인한다고 아이디어를 얻어서 전개해 나간거임.
애초에 불교에서도 이런 매커니즘을 다 파악한 상태로, 즉 전제한 상태로 그 다음단계 사유 "그렇다면 고통을 없애기 위해 쾌락을 줄이게 맞는 행동인가?"에서도 사고를 이어나감. 실제로 불교서적들 읽어보면 여기에 대해서 많이 다루고 있다. 과연 고통을 담보로 해서 쾌락을 얻자는게 좋은 일인지 의구심을 던지는것. 그러다보니 불교 철학의 대부분이 "이 또한 부질없다,"라는 식의 전개가 많은거임.
니가 진짜 뇌과학자인지 망상종자 나부랭이인지는 모르겠다만, 니가 말한 연구는 불교를 엎기보다 오히려 불교 이론의 내적 합리성을 더욱 돈독하게 해줄 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