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이란 그 본래 의미의 압축가능성에 있다고 본다.

더 이상 압축될 수 없는 상태가 바로 본질이다.

만약 인간의 정크 dna에 어떠한 유전 인자로 채워도 똑같은 인간이 만들어진다면 그 정크dna를 제외한 유효dna만이 본질이란 의미지.

마찬가지로 어떤 정보를 더 이상 압축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었을 때 본질이 된다는 의미.

하지만 이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게 문제. 어디까지가 유효정보고 어디까지가 잉여정보인지 알 수 없다는 것.

이를 예측 가능성의 문제에 대입시킨다면 허공에 떠도는 공기 분자하나가 빠진다고 미래는 달라지지 않지만 만약 인간의 시냅스 하나의 발생을 야기 시키는 분자 하나가 달라진다면 그 파급효과는 인간의 결정을 변화시킬 힘을 갖게 되는것.

그렇다면 공기중의 입자의 위치는 잉여 정보고 인간의 뇌같은 극도로 민감한 기계를 구성하는 입자의 정보는 유효정보인가.

이는 지극히 인간 중심의 해석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카오스 이론에 의하면 극히 작은 변화가 커다란 결과값의 차이를 가져오는 계가 존재한다. 또한 극도로 장기적인 미래에는 초기값의 극도로 작은 변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측갸능성의 문제가 아닌 다른 문제에선 본질이란게 뚜렷한 경우가 대체적으로 많다.

우리의 개슈탈트적인 부분이 아닌 표면적인 모든 행동들은 단 몇 줄의 비트로 저장될 수 있다. 이는 실제 세계를 구성하는 입자들의 위치와 운동량의 정보를 몇 구골배나 압축한거나 마찬가지다.

내가 디시에 적은 글은 그 과정에서 발생한 무한대에 가까운 불필요한 정보를 압축시킨, 본질에 가까운 정보라는 의미다.

하지만 때론 그 불필요하다고 여긴 정보가 본질에 전혀 예상치 못한 변화를 가져다 주곤한다. 디시에 글을 적는 행위는 단지 생각을 그대로 옮기는 행위가 아닌 전기가 필요하고 손가락이 필요하며 통신이 필요한 복합적인 행위이다. 이 중 하나라도 불만족한다면 불완전해지는 것이다.

심시티와 현실의 차이를 생각해보라. 심시티에서 나름의 사회를 이루어 살고 나름의 법칙이 있지만 여전히 현실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현실이 지나치게 압축되어 본질을 잃은 상태인 것이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현실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이 가능할까?

아마도 가능할 것이다. 우리의 세계엔 불필요한 정보가 지나치게 많다. 내일 내가 무얼 할지는 대기 중의 공기분자의 위치따위 내 방을 구성하는 콘크리트 입자의 구조따위는 아무런 상관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주에 비가 내릴지는 대기중의 공기분자 위치와 상관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집이 지진에 무너질지 아닐지는 내 방을 구성하는 콘크리트 입자의 구조와 상관 있을지도 모른다.

이같은 점에서 본질이라는 것은 시간에 종속되어 있으며 압축가능성이란 것은 얼마나 현실에 부합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