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석가모니가 인간이 느끼는 고통에서 벗어난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가 해탈한 뒤에 그것이 진정한 해탈인지 아닌지에 대한 점검을 진중하게 한 뒤, 깨달음을 확신하고 거기까지 올 수 있는 방법을 대중에게 설한 것이 불교의 시작점인 것이다.

석가의 언행 기록인 니까야를 보면 어디에도 윤회한다는 내용은 없다. 당시 해당 지역에 지배적이었던 사상이 윤회였기에 석가는 윤회를 방관한 것이지, 윤회는 불교의 핵심이 아니다. 석가는 신이 아니며 완벽한 인간도 아니다. 완벽한 인간은 존재할 수 없으며 완벽한 인간이 있다면 그는 신이다. 석가는 고통을 초월하는 하나의 방법을 알아낸 철학자일뿐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우리는 그가 해탈하게 된 사유, 해탈한 방법에서 지혜를 얻으면 되는 것이다.

석가의 순수한 깨달음은 각지로 퍼져가며 해당 지역의 사상이 개입되고, 여러 깨달은 이(자신의 주장)들의 의견이 개입되어 종교가 되었다. 이것은 석가의 순수한 깨달음과는 거리가 있다. 석가의 생각까지가 철학의 영역이라 생각한다.

종교는 믿음의 세계다. 논리가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없다. 순수한 믿음으로 행복을 찾고 이 못된 세상에서 구원 받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니 부처에게 우리 애들 수능 잘 보게 소원 빌고 절에 돈을 내고 개지랄들을 떠는 것이다. 석가가 이런 모습을 보면 배꼽 잡고 웃을 것 같다.

철학으로서의 불교는 석가의 언행을 담은 니까야까지로 봐야 하며, 윤회는 여러가지 요소가 더해지고 빠져 탄생한 불교라는 종교의 영역이므로 윤회를 비판하며 석가의 철학을 까내리는 것은 부적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