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

 

인간이라는 두루뭉실한 가면이 벗겨지기 때문이다

 

대화란 곧 인지적인 화폐이며 경험으로부터 학습된 것을 사용하는 행위이다

 

내가 <이런> 공감대를 줬을때 상대방이 <이런> 반응을 취하며 아다리가 맞았을때 공감대를 느낀다

 

그런데 철학자가 되면 대중의 삶이란 감성적인 곳으로 흘러 들어가며 대화는 <원하는 욕망을 숨긴> 가식적이고 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무래도 좋은 소리들을 앵무새처럼 조잘거리며 아무래도 좋은 소리들을 침묵을 견디지 못하여 떠든다 

 

대중의 삶을 보면 시시각각 변화하는 외부 환경의 즐거움에서 쾌락을 찾는다

 

무리에 의존적이고 보다 많은 사람이 좋아요를 누른 확장된 정보에 안식을 느끼며 사회적 시선과 미디어의 정보 속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대중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기 자신이라는 인식이 돌아왔을때에는 순간의 허무와 권태를 느끼며 고독에 몸부림 친다

 

무지에서 오는 고통에 무언가에 매달려 보려고 손발을 뻗으며 허공에서 요동치며 소리를 지른다

 

나만 외롭다 , 고독하다 , 허무하다 그리하여 또 다시 대중이라는 소용돌이 속에 손을 뻗고 몸을 담군다

 

스스로 쾌락과 권태의 메커니즘을 비판하고 사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조절이 안되는 과유불급을 범한 것이다

 

철학자에게 비판이란 오류를 찾는 분석과 분해이지만 대중에게 비판이란 주관적인 심상을 투여하여 어둡고 침울한 쪽으로 오판한 것을 말한다

 

대중은 논리보다 감성이 `극단적`으로 앞서기에 표면적인 정보에 자신의 감정적인 선호도(좋다,싫다, 나쁘다, 착하다)를 떠들기에 바쁘다

 

철학자는 사람들이 크게 떠드는 소문에 놀라지 않으며 자신이 알지 못하는 말할 수 없는 것에 침묵한다

 

그러나 대중은 소문의 자극에 침묵을 견디지 못하여 자신이 참/ 거짓의 유무를 모르는 소리도 진실인마냥 끊임없이 조잘거린다

 

철학자에게 삶은 한없이 진지한 것이고 의사결정의 순간은 언제나 무겁고 복잡하고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여 편하지 않다

 

그러나 대중에게 삶은 한없이 꿈처럼 가벼운 것이고 의사결정의 순간은 언제나 가볍고 편하고 자신을 의심하지 않아서 단순하다

 

삶이 무게에 역전이 일어날때

 

철학자에게는 스스로 복잡한 문제를 질문하여 단순한 답을 찾았을때, 무거운 의사결정을 미루지 않고 해결하여 그것을 학습하여 다음번에는 가벼운 의사결정으로 만들때

 

대중에게는 세상이 주는 문제에서만 남의 답을 찾다가 돌연 세상이 문제를 내지 않을때 (외부의 축이 끊겼을때), 미루었던 무거운 의사결정을 더 무겁게 하게 되는 순간이다

 

이렇게 대중과 철학자의 삶은 극과극이다 대중은 주위를 둘러보면 다수지만 철학자는 소수다

 

철학자는 고독한 삶을 살 수 밖에 없고 대중은 동류와 어울리며 평범을 지향하며 일상적으로 화목하게 사는 것이다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기에 철학자와 대중이 만나는 그 접점에 철학자는 대중에게 뻔하고 뻔한 연기를 할 수 밖에 없고  

 

그것은 자기 세계관과 결부되는 문제이기에 위화감을 느끼며 집단 속에서 어긋남과 고독을 느낀다  

 

그들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여 열등감에 고독을 느끼는게 아니라 자신의 기준에 그들이 미달하여 고독을 느끼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짐승이기에 철학자도 자신과 같이 삶을 사색하는 보균자를 찾고 싶어하고 대중을 멀리하게 된다

 

그리하여 주변 사람은 점차 멀어지고 사라지고 주변으로부터 이해 받지를 못한다

 

대중은 스스로 탐색하고 사유하고 창조하는 철학자에 대해서 현실과 괴리된채 시대에 맞지 않는 탁상공론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으로 본다

 

그들이 맹신하는 것은 사회적인 타이틀이 있는 전문가의 답이다 전문가의 답조차 아 그려러니 말지 자신의 것으로 체득하지 않는게 대부분이다

 

체득하는 것은 그저 몸에 좋은 것 , 미용에 좋은 것 , 좋은 것! 좋은 것 ! 감성적으로 좋은 것이다!

 

스스로 사유하는 사람은 적기에 고독한 길을 가야 되는건 어쩔 수 없다

 

혹여나 ..도착지가 틀려서 늪에 빠지고 지옥으로 떨어져도 가는 길은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