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년생이야

초6때 어머니는 희귀병 할머니는 암으로 돌아가시면서

빚 내서 병원비 내다가 파산했어. 아버지 사업도 접고.

지금은 월세 30짜리 집에서 아버지랑 둘이 살고 있고.

친가 외가 연은 다 끊겼어 사촌이고 뭐고 돈 없으면 나가리더라.


공부 열심히 했어. 국어교사 하고 싶었어.

대충 전교 20등쯤 했어. 장학금도 좀 탔지. 근데 기초생활수급자는 안 되더라 아버지 공장 다니시는데 소득이 많대. 덜 벌면 굶어죽어야 하니까 안 되고 뭐 아무튼.


근데 고2때 현타가 왔어. 내가 대학을 가도 대학 4년 군대 2년 임용고사 보고 발령받고 하면 20대 후반이야 당장 씨발 배고픈데. 그리고 등록금 다 대출받아서 내야겠고 알바하며 대학 공부하고 이럴 생각 하니까 아 이건 내가 꿈을 접는 게 맞겠구나.


어느정도로 좆같았냐면 중학교 때 일주일 정도 밥에 고추장만 비벼서 먹은 적이 있어. (이후 급식 반찬 남은 거 싸가고 했어.) 단체로 어디 가는데 버스비 천원이 없어서 선생님한테 울면서 말했어. 학교 갔다 오는 길에 빵집이 있었는데 2천원짜리 고로케가 너무 맛있어보였는데 먹을 수가 없었어. 그리고 깨달았지. 라면은 가성비가 그리 좋지 않아.


또... 돈이 없고 친척한테도 버림받고 하면 사람이 쪼그라들더라고. 대인기피증 생겼어. 편의점을 못 가겠더라. 치료를 위해 정신과에 찾아가봤지. 병원비 비싸. 그래도 뒤질 거 같아서. 너무 우울해서. 좀 다녀봤어. 일주일에 1시간씩 면담 치료 하는데 5만원이야. 생활이 더 힘들어졌고, 우울해졌지.


뭐 아무튼 그래서 교사는 현실적이지 않으니 공무원을 하기로 했어. 아버지한테는 난 공부가 너무 싫어서 대학 가기 싫다 뭐 이런 식으로 말씀드렸지. 학교공부 때려치고 학교에서 법공부 하니까 선생들이 지랄하더라. 꿈을 접은 게 썩 괜찮단 생각도 들었어. 저런 인종들이랑 같이 일하기는 쫌. 어... 수원 살아. 좋은 동네인데...


뭐 그래서 싱숭생숭해서 철학 공부나 했어. 니체 칸트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원래 책은 좀 읽었어. 아싸 찐따에 돈도 없어서 놀 줄도 모르고 친구도 없고 그래서 학교 공부 때려친다고 딱히 할 것도 없더라. 수능까지 책은 실컷 읽었지. 순수이성비판도 완독했지. 반 년인가 걸렸어.


내신은 떡락했고 수능은 국어만 1등급 나머지는 3~4... 남들 따라 원서는 내 봤지 존나 상향으로. 당연히 다 떨어졌고. 대학을 가고 싶긴 했어. 철학 재밌거든. 근데 뭐 돈 없으면 어쩔 수 없지.


아무튼 그렇게 고등학교 졸업했어.

그러고선 이제 공부를 하자. 했는데... 안 되더라? 책이 안 펴져.

게임이 재밌더라고. 그래서 그냥 놀자 하고 놀았어.


내가 백수가 되니까 생활이 좀 나아지더라. 이제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치킨을 먹을 수 있어! 와! 대단해! 이제 코노도 가고 싶으면 갈 수 있어! 최고야! 컴퓨터도 업그레이드! 무려 중고 3만원짜리 그래픽카드를 달았어!


근데 아버지가 연애를 시작했어.


그래 뭐 당신이 번 돈 당신이 쓰신다는데... 근데 아들은 싸이버거도 맘껏 못 먹는데 맨날 밖에서 저녁을 먹고 오시네...

뭐 어때 난 하루종일 게임하고 딸치는 것밖에 없는데. 청소 빨래 설거지 등은 내가 다 하지만 그게 뭐 별거라고 이 좁아터진 집에서...


그러다보니 내일모레가 크리스마스야. 난 12월 1일부터 오늘까지 3만원을 썼어. 머리 깎았고, 햄버거 한번 먹었고, 마트에서 소시지랑 해쉬브라운, 카레, 부대찌개 양념을 샀지.


난 11월엔 10만원을 썼어. 치킨 한번 먹었고 폰겜 월정액 만원짜리 하나 넣었어. 머리 깎고, 계란이나 양파 우유 등 뭐 식료품 샀지. 계란볶음밥은 싸고 여러 변화를 줄 수 있어. 예를 들어 굴소스 한스푼 넣으면 다른 요리가 된다고. 영양도 좋지.


그리고 오늘 얘기인데... 아버지가 수첩을 잃어버리셨대. 그래서 하나 사드린다고 만 원만 달라 했어. 지하철타고 서울 가서 버거킹에서 쿠폰 써서 햄버거세트 하나 먹고 수첩 3천원쯤 하면 만 원 나오지.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기 싫어서 바람 좀 쐬고 싶었어. 근데. 돈이 없다네.


그래 뭐... 가난은 익숙해... 만 원은 큰 돈이니까... 근데 아버지 이번 주말에 어디 다녀오셨더라... 아 그래 그 아줌마랑 1박2일로 강화도...


하......


화는 안 나지. 나는 고졸백수에 하루종일 게임만 하는 병신이니까. 아버지 아침에 나갈 때 아침밥 차려드리고 청소 설거지 빨래 하고 아버지 돌아오시면 등 긁어드리고 어깨 주물러드리고 뭐 그런 별 거 아닌 것들밖에 안 하는 존재니까.


나는 딱히 더 나은 삶을 바라지도 않고 딱히 살아가고 싶지도 않고 돈을 번다 해도 하고 싶은 것도 없으니까. 내가 화가 날 이유가 뭐가 있어.


단지 그냥... 그냥 수첩 하나 골라드리고 싶었어. 아버지 취향이 좀 까다로우시거든...


아... 눈물이 나냐 왜 자꾸.


자주 이래. 9월에는 머리 깎을 돈이 없어서 두 달 만에 머리를 깎았어. 간지러워서 가위로 옆머리를 짤랐는데 그게 티가 났나봐. 블루클럽 가거든. 거기 아줌마가 옆머리 만져보더니 가위로 잘랐냬...


돈이 없는 건 별 문제가 아니야. 하지만 면역력을 떨어뜨려. 그리고 힘을 빼앗지.


내 생각에 아마 나는 게임이라도 하면서 좆같은 걸 미뤄두고 있었나봐.


근데 점점... 못 버티겠어. 그냥... 별 거 아닌데.


요새는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잘 모르겠어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어. 멍 때리는 시간이 많더라.


나는 내가 언젠간 기운을 내서 공부를 다시 열심히 하고 취직해서 살아갈 줄 알았어.


근데 고등학교 졸업한 지도 이제 곧 1년이야. 더... 더 나빠지고 있어. 좋아졌다고 생각할 때도 있어. 학교 다니며 사람들이랑 부대끼던 것보단 낫지 하면서. 근데 이렇게 무슨 일이 있으면 말야, 많이 힘들어.


오늘은 좀 일찍 자야겠어.

우리 아버지 하루에 5시간 주무시거든. 내가 괜히 아무 쓸모도 없는 말을 하긴 좀 그렇지. 그냥 소주 한병 사다 마시고 자고 나면 기분은 괜찮아지니까.


근데 말야. 소주 참 비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