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사에는 수없이 많은 논쟁거리, 떡밥이 있었습니다.

-인간은 경험적으로 인식하느냐, 선천적으로 인식가능성을 갖고 있어 연역적으로 인식하느냐

-우주는 무한한가?

-세상은 인과론에 묶여 있는가? 자유의지가 가능한가?

-아름다움은 보편적으로 인식가능한가?


위에 두개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세번째는 실천이성비판, 네번째는 판단력비판을 통해 진선미에 관한 논쟁이죠.


그 외에도

-자연상태는 어떤 상태인가?(서양에서는 사회계약론, 동양에서는 인성론)

-권력은 양도가 가능한가?(직접민주주의, 대의민주주의)

-순수한 예술은 가능한가?

-기억은 긍정적인가?

-객관적인 사물은 존재하는가?

-마음은 존재하는가?


등등 수없이 많은 동서양 철학의 떡밥들이 있죠. 이미 대충 해결된 부분도 있고 전혀 해결되지 못한 것도 있는데 자유의지에 관련한 것은 사실 해결되었다고 보기도 어렵고 해결 가능성도 없거나 요원해보입니다.


전에도 글을 쓰거나 댓글을 달아본 적이 있습니다만 다시 한번 정리해보면 자유의지에 관련된 이슈는 세상은 인과론에 묶인 결정론이냐? 자유의지가 가능하냐?라는 것입니다. 자유의지는 직관적으로 누구나 인식하기 편한 것이기 때문에 그 반대개념인 결정론을 알아보는 것이 이해하기 편할 것입니다.


인과론은 다 알다시피 원인이 있어 결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핵심은 우연은 없고 필연적인 것만 있다는 것이죠. 어떤 댓글에서 어떤 분이 아주 좋은 정보를 주셨듯이 고전역학적 관점입니다. 수레에 힘을 가하면 움직이고, 물에 열을 가하면 온도가 올라가는 것. 어떠한 현상은 그 현상을 일으키는 원인에 의하여 발생하는 것이며 우연히 물의 온도가 올라가거나 수레가 움직이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도 마찬가지로 뭔가 선택을 하고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주어진 정보를 통해 정해진 결과를 보이는 것이라는 관점이죠.


인과론, 결정론은 상당히 불쾌한 부분이 있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행동을 선택 조절하는 것이라 외부 환경에 의해 결정되어져 있다는 것이니까요. 인간이 이룩한 모든 것은 이미 결정되어져 있던 것을 묶인 실타래 풀듯이 그냥 풀어온것에 불과하다는 사실. 인간이 이룩한 역사와 투쟁에 대한 폄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 인간 자체를 낮게 평가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결정론은 사실 종교와 관련이 있습니다. 스토아학파에서 운명론을 주장하기는 하지만 운명론은 결정론과는 다릅니다. 스토아학파는 거대한 운명에 인간이 맞설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마차에 묶인 개처럼 인간의 의지로 난관을 극복할 가능성(개줄의 길이만큼)을 긍정하니까요. 제가 봤을 때 처음 결정론적인 입장은 기독교철학에서 시작합니다. 전지전능한 신의 권위아래 인간은 한낱 짐승과 같습니다. 짐승은 본능에 따라 행동하지 이성이나 판단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인간도 마찬가지죠. 그러므로 인간의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는 관점이 가능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인간의 악행 역시 결정되어진것이라는 모순 때문에 인간은 자유의지라는 저주받은 선물을 신으로부터 받았고, 자유의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신의 심판을 받는다는 스탠스를 취하게 됩니다.


이러한 자유의지, 결정론을 칸트가 정리합니다. 모든 것은 인과론에 따라 이루어지지만 어떤 행동, 계열의 시작은 자유가 관여한다고 합니다. 버스기사가 시동을 켜고 연료를 엔진으로 분사해서 차량을 앞으로 전진시키고 브레이크를 밟아 멈추고 사람을 태우는 것은 모두 인과론에 따라 진행되지만, 버스기사가 직업을 선택하여 출근하는 것은 자유의지라는 것이죠.


하지만 정신분석학에서는 버스기사가 버스기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교사, 부모, 어른들로 부터 주입받아온 초자아에 불과하지 자유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구조주의에서는 버스기사가 버스기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은 자유의지로 선택했다기보다 본인이 그 직업을 선택하도록 사회가 결정 혹은 강요한 것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자유의지, 인과론은 단지 서양에서만의 떡밥은 아닙니다. 인과론에 얽혀 살아가는 존재라는 입장은 인도 브라만교에서도 주장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중은 전생의 업에 따라 세상에 태어났으므로 태어난 신분에 따라 세상을 살고 후생을 위해 업을 쌓아야한다는 입장이었고 그 기본은 결정론까지는 아닐지라도 인과론에 따른 교리였습니다. 하지만 석가모니는 인과론이 아닌 연기론을 주장합니다. 연기론은 cause and effect라는 인과가 아닌 condition에 의해 발생한다는 뜻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 프라티트야-삼무파다라고 하는 연기론은 수없이 많은 조건과 우연에 의해 세상은 발생하고 소멸한다고 하는 것이죠. 낮은 신분으로 태어난 것은 필연적인 산물이 아니라 단지 우연에 의해 발생한 일일 뿐. 인과에 얽매이는 것이 아닌 자신이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 되어 자신의 인생을 일궈나가야 한다는 것이죠. 천상천하 유아독존, 나는 세상에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인 것입니다.


말이 길어지고 있는데,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얼추 도식화해보겠습니다. 철학은 들뢰즈가 말했듯 나무 이미지와 리솜의 이미지 두가지 철학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나무 이미지는 수직적 철학이고, 리솜의 이미지는 수평적 철학이라고 볼 수 있겠죠. 수평적 철학의 대표인 에피쿠로스, 스피노자, 니체, 실존주의 등은 대체로 자유의지와 우연을 긍정합니다. 특히 에피쿠로스학파의 루크레티우스는 세상의 본질은 클리나멘이라고 불리는 우연이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반대로 수직적 철학, 그러니까 일자를 위한 철학,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 형이상학은 우연보다는 필연에 방점을 두는 편이죠.


사실 결정론만 존재하는지 자유의지가 있는지는 증명이 불가능합니다. 적어도 지금 까지는요. 뭐 간단하게 증명하려면 타임머신을 만들어서 현재의 선택이 아닌 다른 선택이 가능했는지 보면 알 수 있겠죠. 하지만 불가능하고 또 심지어 우리 삶에 결정론과 자유의지는 직접적으로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과론과 자유의지가 내포하는 관점입니다. 모든 것은 인과론에 묶여 있다고 하면 우리의 노력은 폄하될 것이고, 인간의 죄를 처벌하는 것에 큰 제한이 있습니다. 행동을 선택할 수 없는데 그 행동에 대한 댓가를 치루는 것은 넌센스니까요. 반대로 자유의지에만 너무 방점을 두면 인간은 인간의 모든 행동에 책임을 져야하는 가혹함이 생깁니다. 그러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여러 정황들을 놓치기 쉬우니까요.


어차피 증명할 수도 없고 직접적으로 실익이 없는 논쟁이므로, 어떤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는것이 더 좋은지에 대한 판단이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