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책을 뒤적거리다 메모를 해뒀는데 내가 막연히 "나"라고 인지하던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한번 물어봅니다. 사고의 순서대로 메모 요약해옴
1)육체는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새로운 물질 구성을 가지기에 "나"의 본질이 아닙니다. 테세우스의 배의 역설을 고민해보다 제가 내린 결론은 "테세우스의 배" 라는것 자체가 각자의 편의대로 의미를 부여한 개념일뿐이라는 겁니다. 그렇기에 무엇이 원본인지 가리는것 자체가 무용한 짓이죠.
(테세우스의 배의 역설: 영웅 테세우스를 기리기 위해 아테네인들이 그의 배를 몇백년동안 유지 보수를 하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씩 교체하던 나무판자들을 모두 새것으로 교체했을때, 이 배를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를수 있는가? 그리고 낡은 배의 부품들을 다시모아 조립했다면, 두 배중 어느것이 진짜 테세우스의 배인가?)
2) 그러므로 내가 인식하는 "나"라는 것은 하나의 개념입니다. "나"는 내가 생각으로 만들어낸 하나의 "개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새 책을 읽어서 새로운 사고를 갖게 된 나, 혹은 사고를 입어 이전과 같은 정상적 사고를 할수 없게 된 나는 이전의 나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3) 그렇다면 타인에 의해 변화되고 성장하는 "나"의 본질은 세상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일까? 라는 마지막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타인과의 관계에 의해 자아의 정체성이 결정된다면, 타인에게 관측되지 않는 "나"는 존재하지 않는것인가? 만일 타인의 인지에 의해 자아 정체성이 확립된다면 "나"는 타인인가?
라는 결론에 다다라서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미궁에 빠졌습니다. 흠... 뭘까요?
- dc official App
애초에 ‘나’라는 말을 엄밀하게 정의해서 쓰는 것도 아닌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 늘어봐야 나오는거 없다고 본다. 옛날에나 이런걸로 투닥댔지. 아무런 실익이 없는 사유
이렇게도 저렇게도 될 수 있는 나 이겠네요 그럼.
딩연히 "나"의 모습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자기자신을 연속적인 하나의 개체로 보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지가 궁금하다는 겁니다. - dc App
習慣이거나 本能
습관이나 본능으로 자신을 "나" 라고 인지한다면, "나"는 무엇인가요? 육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새롭게 구성되고 생각또한 유동적으로 변합니다. - dc App
一旦 이 몸이 있고 그 마음도 있음
대단히 대단한 분 같습니다. 지금 사유의 전개가 근대철학에서 현대철학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네요. 피히테는 나의 자기 동일성, 그러니까 나는 나라고 인식하는 본질이 되겠죠. 자기동일성을 기억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식사 전의 나와 후의 내가 다르고 반려자나 자식을 만나기 전의 나와 후의 내가 다른 것처럼 사람은 끊임없이 변하게 됩니다. 사르트르는 이것을 "무"라고 부르고 인간은 본질이 없는 존재라고 하죠. 석가모니는 애초에 "제법무아"라고 하여 자아, 자성이라고 불리는 나의 본질은 없다고 했고요. 이러한 깨달음을 스스로 알아내신 것으로 보아 정말 대단한 분이 아닌가 합니다.
내가 중3 때 내린 결론은 '나'라는 건 결국 '나'라는 하나의 질서. 이 환경과 주체를 구분 짓는 자아는 어쩌다 생겨난 범주화 프로그램? 일종의 오류적 망상? 같은 걸로 봄. 그냥 투영되는 2차원 그림의 무의미한 얼룩을 굳이 대~충 구분 짓고 (사물명1)로 지칭한달까. 그런데 이 자아가 또 생명 중 일부의 자기 질서 유지에 그럭저럭 유리하게 작용한 거지.
의식의 본질을 따지는 문제 같기도 하네요. 정자 수준의 두뇌에서 아기 수준의 두뇌, 성인의 두뇌까지 그리고 뇌세포의 소멸과 생성의 반복. 과연 의식은 뭐고 나는 무엇일까. 현재의 나는 새 세포로 대체될텐데 어째서 의식은 미래에도 그대로일까. 철학으로 여러 이유를 생각해보아도 과학이 좀 더 발전해 의식의 근간을 밝혀내는 것보단 부정확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意識이라는 게 난 電氣 現象 같다고 보고 누구나 意識을 한다는 點에서 내가 죽더라도 意識은 누구나 똑같이 `가지고' 있으니까 安心되긴 하더군. 니가 나 아니냐 이거지.
이런 간단한 문제를 고민 하다니?
그렇게 간단하면 답을 알려주세요 ㅡ3ㅡ - dc App
끊임없이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능력을 얻으면서 살아가는 정신적인 것
생각의 주체, 행위자?
나를 인지 하는것은 타인으로서에 상호작용으로 올수도있고 자기자신의 생각으로 대입해서 올수도 있는거고 지금 사회에서는 인간밖에없는 사회주의라 타인과 소통,교류하지않으면 안되는, 타인에 대해 신경쓰고 시선에 맞추는 경향이있는거같아요 만약 타인에게 관측되지 않는 "나" 이여도 "나" 는 "나" 가 보고있다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나"의 본질은
타인이 아닌 결정권이 있는, 관측당하는, 끊임없이 생각하는 "나" 에게 있다생각합니다 그러니 본질은 결국 "나" 가 결정하는것.
“나”의 본질이 무엇인지가 궁금하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나”의 본질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어떤 단어나 문장으로써 그것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데, 먼저 저는 그것을 [영혼]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후로링님의 1)에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역시 육신보다는 정신적인 것이 “나”의 본질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 dc App
2) .‘사고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개념도 행동이 될 수 없고, 어떠한 발전도 진보가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사고는 본질적으로 실제적이다’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에 동의하는데요. 즉, 어떤 개념이라는 것도, 여러가지 요소들이 종합되어 형성되는 것이고, 그 요소들이란 것들도 어쨌든 더 윗개념인 무언가로부터 형성된 것이기에…님의 말씀처럼 개념을 “나”의 본질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이런 부분에서, 그렇다면 개념보다 상위의 것은 무엇일까? 위의 누군가의 말처럼 ‘사고’라는 것일까? 그럼 ‘사고’라는 것이 ‘나’의 본질일까? 생각해본다면, 사실 ‘사고’보다도 더 윗개념이 있지 않나요? 저는 ‘사고’를 지배하는 것이 사실상 [무의식] 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것은 뇌 과학에서, 우리가 삶 내내 하는 생각과 행동 전반에 무의식의 조종이 존재한다는 연구들에 기반한 생각입니다. 결론적으로 [무의식]이란 것이 사고를
관장한다면, [무의식]이 “나”의 본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무의식]은 과학적인 용어로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단어잖아요? 하지만 “나”의 본질과 “너”의 본질은 각각 성격이 좀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의식]보다는 [영혼]이라는 단어를 쓰면 더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 dc App
3) 극단적으로 사회가 존재하지 않게된다면, 더 극단적으로 “나”를 제외한 모든 것, 즉 “세계”가 존재하지 않게된다면, 그리고 남은 텅 빈 시공간에 “나”가 존재한다면 … 을 가정해서 생각해보면요. “세계”와 관계하며 존재하던 “나”가 가지고 있던 모든 총체적인 것들은 “세계”가 없어지고 난 뒤에는 흔들리고 무너지고, 또 다시 새로 형성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만큼 “세계”와 “나”는 분리시켜 생각하기가 힘들정도로 단단히 결합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세계”의 존재 유무에 따라 “나”의 근간이 흔들린다면, 그런 ‘세계와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것들’ 또한 본질이라고 보기에는 어렵지 않을까요?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본질이라는 것의 특성상 … 어떠한 경우에도 변하지 않아야 하잖아요. - dc App
그런면에서 … 그럼 “세계”와 “나”가 완전히 분리되었을 때의 “나”를 상정해서 생각해보면 … 과연 그런 “나”에게는 무엇이 남는가? … 그리고 그것들 중 무엇이 “나”의 본질일까? 저는 그것을 앞서 말했듯이 [영혼]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앞서 말했듯이 이 [영혼]이라는 건 [무의식]과 아예 같거나 적어도 아주 닮았다고 봅니다. - dc App
덧붙여서 이런 “나”의 본질인 [영혼]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것의 특성을 추측하고 하는 등등의 [영혼]에 집중하는 삶은 자아실현에 매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네요. 그런고로 맨 윗 댓글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상입니다. - dc App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dc App
나라는건 나의 상상으로 나오는 것, 모든 세계와 나는 동일함. 각자의 개체성조차 나의 상상으로 파생된 것
그러므로 나라는건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음 나라는 인식조차 존재하지만 존재하지않음
제가 종착한 결론과 비슷한거 같군요. - dc App
그게 세상이니까요
기억
기억이라고 생각함
스스로, 관념적으로, 주관/객관적으로 독립적이며 주체적일 경우 내 안의 장기가 다른 사람의 것이여도 "나" 자신이 "나"라고 믿고 행동하고 확고한 의지를 보인다면 그게 바로 진정한 "나"가 아닐까요?
'나'의 본질은 뇌라고 생각해요. 어떠한 지식을 사유하게 되어 이전과 다른 내가 되든, 불의의 사고로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게 되든, 그 모든 생각의 시작은 뇌이고, 우리 계속해서 변화하는 육체를 조종하는 것도 뇌이며, 우리가 살아오는 연속인 기억도 결국 뇌에서 사유하는 것이니 ㅇㅇ '나'를 '나'로서, '타인'을 '타인'으로서 인지하고 구분짓는 건
뇌의 관할이라고 생각되기에 ㅇㅇ
그러니까 그 뇌도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다른 구성물질로 이루어 지게 되는데, 여전히 우리는 물리적으로 완전히 달라진 나를 같은 객체로 인식하잖아요? "나"라는 것의 본질이 물리적인 무언가가 될수 없는 이유는 이를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인거 같아요. - dc App
생물은 생물마다 고유한 특성을 지닌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8백만년간 오로지 인간과의 짝짓기를 맺어 진화해왔다. 그렇기에 우리는 비슷한 진화심리가 박혀있다.
"나"는 오직 나라는 고유한 육신에 묶여 세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환경에 따라 시선이 다르다. 인종도 달라진다. 조금씩 비슷하지만 다르게 진화한다. 나라는건 결국 영화의 열린 결말과 같다. 나라는 고유한 육신에 묶여 바라본 삶의 시선 그것이 나다.
"나"라는 정의는 타자가 내릴 수도, 본인이 내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의는 수없이 내릴 수 있습니다. 가령 인터넷에서는 악플을 달지만 현실에서는 모범적인 학생인 A가 있다고 가정합니다. 타자가 A의 이중적 행동을 관찰하고 인지하면 A는 이중적인 인간으로 정의됩니다. 하지만 A가 성실히 공부하는 모습을 본 A의 어머니는 - dc App
A를 다르게 정의합니다. 이런 정의를 구별하는 기준은 한 상황을 두고 A가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한 본인 또는 타자에 의해 달라집니다. 그렇다면 타자마다 A에 대한 정의는 제각기 달라질 수 있습니다. A에 대한 정의가 책이라면 A의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겉모습은 책의 표지가 됩니다. - dc App
우리는 A를 쉽게 떠올리고 언급하기 위해 단순하게 특별한 인지적 노동 없이 사용할 수 있는 (특히 이름이나 얼굴 생김새)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A의 정의는 A의 의식적이고 자의적인 행동의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물체인 테세우스의 배는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요? - dc App
테세우스의 배는 목적을 가지고 생성된 물체입니다. 의식이 없고 의식이 없기에 의식적 존재인 인간의 의도에 따라 사용되는 것이 물체입니다. 본문에서 테세우스의 배는 테세우스를 기리고 추모하기 위한 목적을 지닙니다. 그렇다면 헌 테세우스의 배와 새 테세우스의 배 중 어떤게 테세우스의 배일까요? 그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 dc App
헌 테세우스의 배가 조금 더 목적에 부합하게 이용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헌 테세우스의 배를, 혹은 그 반대나, 둘 다 입니다. - dc App
혹시 논리적인 모순 내지는 문장에 오류가 있거나 납득하실 수 없는 점이 있으시다면 알려주세요. - dc App
지금까지 게이가 겪얶던 경험들이 우리 게이의 고유한 특수성을 만들었고 이게 "나"라고 생각함
타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타인 또한 '나'라는 것을 가지고 있고 타인의 '나'라는 것에 의해 또 다른 타인을 판단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나'와 '타인'은 가까워질 수는 있으나 N극과 S극 처럼 절대 합쳐질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나'라는 것은 자신의 경험과 생각에 의해 만들어 지는 것인데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가 과연 같은 것인가? 라는 질문은 되게 어렵게 느껴지네요...
타인과 부딪히고 살아가며 내가 타인과 다름을 인정할때 나 라는 개인범주가 생기는것임. 최초의 타인은 부모이고 부모와 내가 같지않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할때부터 자아가 확립되고 나아가 내가 되는것임
데카르트가 정신의 존재유무는 이미파악했으니 그 정신 자체가 자신이라생각함 나는 - dc App
인간이 집단 군중의식에 동조될때 나이면서도 내가 어쩌지 못하는 상태에 놓일때가 있지. 근데 그걸 의식 하면서 부터는 "이상한사람"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살면서 진짜 꼴리는 대로 사는 사람이 되기도 하지 그때 드는 생각은 진정한 나는 나인데 세상서 기피하는 나는 매우 불안정하고나 하고 어둠으로 사라진다
인연 또는 관계의 집합
기억의 축적?
기억또한 답이 될 수없음 테세우스의 배처럼 기억은 다른 기억들로인해 혹은 현재 처한 상황들로인해 곡해되고 왜곡됨 글쓴이의 질문에 역사상 가장 현명하게 답한게 고타마 싯다르타 즉 부처임 연기설에대해 고찰을 한번 해보는것도 좋을듯 거기에 작성자가 생각한 답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철학적 사고방식이 딱 맘에 들거임
정보의 총합을 인지하고 이해하는 상태 = 나
예를 들어, 스마트폰 = 내 것 = 나. 로 대체해서 생각할때, 스마트폰 케이스, 액정필름부터 시작해서 앱, 사진, 기록들, 포함 내가 인지할 수 있는 모든 정보들을 내가 의식하지 않고로 루틴화 시켜 사용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을때 내 것인 스마트폰으로서의 소유와 가치 인정, 스마트폰이 해체 분해 포맷되어 더 이상 내가 루틴화 할 수 있는 정보들이 사라졌을 때는 나, 또는 내 것이 아님. 사라진 정보들이 새 스마트폰으로 옮겨 갔을때 =후손=나... 라고 하느냐 하면 그건 아님. 외형도 다르고 앞으로 저장될 정보가 다르므로 이미 내가 아닌 것. 나는, 하나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테세우스의 배를 포함 유물론적 세포들들과 관념정 정신과 정보의 총합으로 이루어진 퍼즐, 씨줄과 날줄의 조합인 태피리스트가 나.
흩어진 구슬 = 내가 아님/ 실에 꿰어져 어떤 형태가 된 구슬 목걸이나 팔찌나 아무거나 형체미를 갖춘것 = 나/ 실을 잘라 구슬을 다시 재 조합해서 만들어진것 = 내가 아님... 나를 나로 인지하하게 하는 힘은 구슬(형체, 세포, 덩어리, 입자)을 꿰는 실(연결, 정보, 흐름, 에너지, 파동)에 있지만 구슬 자체도 나이므로 구슬+ 실= 만들어진 것이 '나의 본질' 이며 구슬 목걸이거나 팔찌거나 반지거나 그 밖의 모든 미적 요소를 갖춘 형상으로서의 쌓인 시간의 궤적이 '나' 이다.
모든거지 너를 구성하는 분자, 장기와 뇌 기억 가치관 모든게 합쳐져서 나라는 것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함
전 스스로에 대해서 내리는 스스로의 정의가 제 육신이 아니라 제 정신적인 것이 육신적인 것보다 스스로에 대해서 더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육신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노쇠해지고 육신의 수명이 다하면 눈에서 빛이 사라지고 죽게 되는데, 그 육신이 살아있을 적에 생각한 것과 마음에 둔 것은 손으로 잡을 수 없는 추상적인 개념이지만 그것이 내 스스로로부터 나온 불변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기에 육체가 아닌 정신적인 것이 내 스스로에 좀 더 가까운 개념이라고 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개체가 없다묜... 나라는 개체는 성립하지 않는다
뇌세포가 넘겨주고 넘겨받는 나라는 개념의 기억의 전달 단백질체 - dc App
"나"라는 것은 화자의 기준으로 화자를 뜻하는걸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