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가 아니라 살인자를 판결하고자 한다. 희생자는 이미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살인자들의 판결을. 얼마나 찬동하고있소? 얼마나 고발하고 있소?“
내가 자주 보는 시집의 문장이다.
희생자는 살인자보다 앞서 판결 받은 이들이다.살인자는 희생자에 뒤이어 판결 받을 이들이다.
찬동과 고발의 관계는 어떨까.고발이 먼저 오고 찬동이 뒤를 따르면 그림이 좋다.찬동이 먼저 오고 고발이 뒤에 오면 그림이 썩 좋지 않다.조선에서의 일제의 만행은 한국인을 즐겁게 만들지만,베트남에서의 국군의 만행은 한국인을 불쾌하게 만든다.
찬동으로 얻는 만큼 잃는다.고발로 얻는 만큼 잃는다.
찬동하느냐 고발하느냐 스타일은 개인의 선택이지만잃는 걸 포기할 수는 없다.
사회성과 주관의 관계도 그렇다.노무현이 말했듯이 상대가 나한테 주면 내가 그만큼 베풀어야 한다.내 의지가 싫다해도 어쩔 수 없다.
정치세력과 여론은 자주 좀비에 비유된다.주관이 있기 어려운 장이다. 세계, 국가 단위에 정치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직장, 학교 모두 비슷하다.사람은 개보다도 개미에 가깝다.
그래서 개미가 칭찬이 되고 개가 욕이 된다.물론 그 반대의 표현도 쓰인다.언제 욕이 되고 언제 칭찬이 되나.개미처럼 이용되는 인간한번 물면 개처럼 놓지 않는 인간.무엇을 위해 인간은 개미처럼 살고,때로는 개처럼 집요해질까.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인간세상엔 남아 있는 개가 얼마 없다.개는 몽둥이로 패야 한단다. 내겐 한 사람의 죽음보다 개의 죽음이 아쉽다.
고발 당하지 않으려면 이 사실을 입에 담으면 안 된다.우루루루 몽둥이 들고 나 잡으러 온다. 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