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원한다는건 나 스스로 "나는 그것이 없다는 스스로의 진술이다" 


무인도에 홀로 남게 되어 갑자기 콜라가 먹고 싶다면 그 순간 콜라를 얻을수 없기에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며 애가 타게 되지만


도심의 새벽에 콜라가 먹고 싶다면 돈을 챙겨서 편의점에 가야한다는 생각에 귀찮음이 몰려오게 된다. 





이때 무인도에서는 콜라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애가 타게 되고 도심의 새벽에서는 콜라생각이 나자마자 귀찮음이 몰려오게 된다.


이성적으로 계산후에 애가 타거나 귀찮거나 하는게 아닌 이성보다 먼저 무의식중에 떠오르게 된다는 말이다. 


이런걸 앎이라 부르고 있으며 이 앎은 이성을 거치기 이전에 먼저 오게 된다.


그리고 이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인도에 있는 상상 그리고 도심의 새벽의 모습을 상상하는 이미지 사고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글자만으로만 체감이 거의 되지 못한다.




우리는 언어로 사고를 한다고 여기지만 사실 언어만으로 사고할수있는 영역은 거의 없는 수준이다. 무의식중에 자신의 경험을 떠올려가며 사고하고 있다. 


이 글의 제목처럼 원하는 상태는 가슴이 타들어가는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내면 또 내면으로 들어가야 내가 하고 싶은것 할수있는것이 무언인지 알수있고 이성이라는건 그저 내면의 지침서로 바탕으로 좀 디테일하게 계획하는 영역정도에 해당한다.


숲과 나무가 있다면 내면이 숲이라는 말이다.





112는 맨날 쳐맞고 빵셔틀만 당해서 온라인은 자기모습이 안보일테니 센척하고 싶어 했지만 그딴건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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