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해방 주장하고 개방적인 성문화 주장했던 사람이 마광수이고
반대로 성에 대해 보수적인 성문화 주장했던 철학자가 다석 유영모다.
유영모는 금욕주의 주장했던 것이고
마광수는 개방적인 쾌락주의 주장했던 것인데
성에 대해서 둘이 말하는 게 전혀 틀려서 누구 말이 맞는 지 모르겠네.
성인 기준 나이도 유영모는 만40세 이하가 무슨 인생을 아냐고
공자가 불혹의 나이라고 주장한 만 40세 이상 부터를 성인으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에
(아마 늙지 않고 젊음 유지하는 노화방지 백신 개발되면 실현 가능해질 사상일 듯)
마광수는 이팔청춘이라고
원래 이몽룡과 성춘향이 섹스에 탐닉했던 나이도 15살 이라고
성인 기준 나이를 만16세 정도로 낮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래 그때 결혼하고 섹스하고
그랬었다고 현대에 성인 기준 나이가 너무 높아졌다고 주장했지.
성에 대해서는 개방적인 게 맞는 거냐, 보수적인 게 맞는 거냐?
유영모랑 마광수랑 주장한 게 너무 틀려서 누구 말이 맞는지 모르겠네.
마광수는 개방적이고 쾌락주의적인 성문화 주장했고
유영모는 보수적이고 금욕적인 성문화를 주장했다.
또 유영모는 만40세 이하가 무슨 인생을 아냐고 성인 기준 나이를 만40세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고
반대로 마광수는 이팔청춘이라고 원래 15,16살때 결혼하고 섹스 즐기고 그랬다고(과거에)
현대는 발육도 더 빠르니 성인기준 나이를 만16세 정도로 낮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즘 시대 분위기로는 마광수에 힘이 더 실리긴 하지..
성은 마광수나 유영모의 경우처럼 맞는건 없고 상대적인듯 인생관 성격 취향에 따라 나에게 맞는걸 선택하는거지
둘다 이해는감
난 보수적인 게 맞다고 봄
성은 좋고나쁨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은 그저 동물적 본성이 지니고 있는 생식의 차원입니다. 그리고 세계는 이러한 무한한 생식의 고리 연쇄로 돌아가는 원리로 설정되어 있지요. 성이라는 대상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는 주체가 스스로임을 알 때, 성에 대한 집착을 하는 것도, 내려놓는 것도 모두 자기 자신임을 알게 됩니다. 성이 스스로와 분리된 것으로 받아들여질 때, 성은 초월됩니다. 성적인 것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을 수 있는 이유는 성보다 더 크고 포괄적인 자기를 발견했기 떄문입니다. 성은 내 안의 일부일뿐, 진정한 내가 아닙니다. 성에 대한 집착이 성의 옳고그름을 따지는 그릇된 견해로 이어집니다. 내용이 아니라 맥락에 집중해야 문제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이 가져다주는 쾌락에 대한 집착이 동전의 양면처럼 고통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깨달으면, 쾌락과 고통도 순수히 받아들이게 됩니다. 쾌락을 긍정하는 순간에 시간 차 간격을 두고 따라오는 고통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마음의 간사함이 성에 대한 갑론을박을 만들어냅니다. 성 그자체로는 아무런 종의 보존 그 외에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그 외에 부여되는 가치는 모두 마음의 환상이 만들어낸 가치에 특별함을 부여하는 주체의 전적인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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