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험할 수 없는 것을 원한다고 말하는 것엔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죽어감"이다.
그래서 고통이 두려워서 죽음을 선호한다고 말하는 것엔 무언가 표현상의 문제가 있다.
그것은 마치 고통으로부터 구제된 상태를 경험하는 주체가 존재하는 것처럼 이해하게 만든다.
우리는 죽음을 통해 고통으로부터 구제되는 것이 아니다. 구제된 존재 자체가 애초에 없어지기 때문이다.
안락사를 원하는 이들은 "안락"을 원하는 것이다. 고통을 느끼지 않길 원하는 것이다.
존재하고자 하면 고통은 필연적이고 존재하고자 하지 않으면 더 이상 고통의 구제는 경험할 수 없다.
존재하고자 하면서도 고통은 느끼지 않을 수 있는가?
그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경험할 수 없는 것을 원한다고 말하는 것엔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죽어감"이다.
그래서 고통이 두려워서 죽음을 선호한다고 말하는 것엔 무언가 표현상의 문제가 있다.
그것은 마치 고통으로부터 구제된 상태를 경험하는 주체가 존재하는 것처럼 이해하게 만든다.
우리는 죽음을 통해 고통으로부터 구제되는 것이 아니다. 구제된 존재 자체가 애초에 없어지기 때문이다.
안락사를 원하는 이들은 "안락"을 원하는 것이다. 고통을 느끼지 않길 원하는 것이다.
존재하고자 하면 고통은 필연적이고 존재하고자 하지 않으면 더 이상 고통의 구제는 경험할 수 없다.
존재하고자 하면서도 고통은 느끼지 않을 수 있는가?
그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에피쿠로스!
고통조차도 나의 일부임을 알고 받아들임이 가능해질 때, 필요 이상의 고통이 무의미함을 알고 중도에 이르게 됩니다. 과함이 없는 상태는 마음 너머이며, 고통을 온전히 받아들이고자 할 때, 고통조차도 사랑스러운 것임을 발견합니다. 보편적 의식에서 일어난 불균형을 조정하기 위해 매순간 작동하고 있는 생기의 애씀과 노력이 바로 고통과 통증으로 나타나고, 이는 신의 의도와 부합하지 않는 사고와 행위를 조심스레 수정하라는 신의 자비로운 권고입니다.
개똥철학 거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