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과 가치관이라는 개념을 붙듦으로서 나라는 환상을 만들어내고 사적인 자기가 운명의 주인공으로서 전면에 드러납니다. 오직 그만이 있는 곳에, 다른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마음의 차별상이 위치성을 더욱 강화시키는 습을 긍정하게 만들고 욕망이 일어나는 근원에 대한 무지를 불러옵니다. 올바른 이해와 앎은 해방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마음이 작동하는 원리를 알게 되면 그에 상관하지 않을 수 있게 됩니다. 욕망을 받아들이는 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거도 보편적 의식이라는 순수한 바탕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쾌락의 대립쌍인 고통을 수용하고자 한다면, 쾌락을 추구하는 일도 그릇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에 따르는 반작용에 대한 감수는 불가피한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쾌락만을 수용하고 고통을 피하려는 마음의 간사함
익명(49.172)2022-07-04 20:05:20
답글
이 욕망에 대한 선호를 만들어냅니다. 욕망이 문제가 아닙니다. 욕망을 부정하든 , 긍정하든, 욕망에만 붙들려 있는 마음의 집착이 문제입니다. 긍정과 부정을 넘어서는 것이 욕망으로부터의 참된 해방입니다. 죽음을 향해 달려 나아가고 있는 삶 속에서 무언가를 얻으려는 기대와 희망을 완전히 내려놓을 때, 사적인 자기라는 환상은 해체되고 욕망이 들어설 자리가 없어지게 됩니다. 몸과 동일시된 나라는 존재가 실체가 아님을 알 때, 몸과 관련된 일체에 대한 집착은 사라집니다. 몸을 가지고 사적인 자기를 지속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온갖 환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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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c App
신념과 가치관이라는 개념을 붙듦으로서 나라는 환상을 만들어내고 사적인 자기가 운명의 주인공으로서 전면에 드러납니다. 오직 그만이 있는 곳에, 다른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마음의 차별상이 위치성을 더욱 강화시키는 습을 긍정하게 만들고 욕망이 일어나는 근원에 대한 무지를 불러옵니다. 올바른 이해와 앎은 해방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마음이 작동하는 원리를 알게 되면 그에 상관하지 않을 수 있게 됩니다. 욕망을 받아들이는 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거도 보편적 의식이라는 순수한 바탕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쾌락의 대립쌍인 고통을 수용하고자 한다면, 쾌락을 추구하는 일도 그릇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에 따르는 반작용에 대한 감수는 불가피한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쾌락만을 수용하고 고통을 피하려는 마음의 간사함
이 욕망에 대한 선호를 만들어냅니다. 욕망이 문제가 아닙니다. 욕망을 부정하든 , 긍정하든, 욕망에만 붙들려 있는 마음의 집착이 문제입니다. 긍정과 부정을 넘어서는 것이 욕망으로부터의 참된 해방입니다. 죽음을 향해 달려 나아가고 있는 삶 속에서 무언가를 얻으려는 기대와 희망을 완전히 내려놓을 때, 사적인 자기라는 환상은 해체되고 욕망이 들어설 자리가 없어지게 됩니다. 몸과 동일시된 나라는 존재가 실체가 아님을 알 때, 몸과 관련된 일체에 대한 집착은 사라집니다. 몸을 가지고 사적인 자기를 지속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온갖 환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