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과 고통이 각각 어느 정도의 비율인지, 서로가 서로를 상쇄시킬 수 있는지 그딴건 중요한게 아니다.
애초에 그러한 논리는 수학적 자명성을 보여주지 않는 한,
낙천주의자들의 먹잇감으로 밖에 작용하지 않는다.
쾌락과 고통을 어떻게 엄밀하게 저울질 한단 말인가?


말하자면 그냥 고통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좋은게 아니라는거다.

고통이 삶을 의미있고 가치있게 만든다는건 개똥철학자들이나 좋아하는낙천주의적 망상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살아남아서 대를 잇는다.
삶의 고통을 충분히 느끼지 못했기에,
그들은 아무런 도덕적 반성 없이 삶의 고통을 재생산한다.
그들 스스로의 삶이 나쁘지 않았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히 이해할 수 있다.
나 또한 지금의 삶이 행복하다.
하지만,
그들의 결정으로 태어난 자녀도 그렇게 생각할거란 증거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어떤 존재를 만들 때, 그 존재가 고통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는거다.
당사자는 그러한 고통을 느끼면서 존재할 것에 동의할 수가 없는 우리 세계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고통을 감각하도록 어떤 생명체를 창조하는 것엔 생각해볼 거리가 많다.

우리는 태어나길 선택하면서 태어날 수 없다.
태어나길 선택하려면 이미 태어나야만 한다.

새로운 존재를 창조할 능력을 가진 우리는 이러한 세계의 특성을 차가운 이성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고통도 주고 싶지 않고, 새로운 존재도 만들고 싶은 것은 철없는 어린아이의 고집과도 같다.
우리는 그러한 고집을 멈추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