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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녀관계에 관한 존재론적 고찰 > 


  남녀 갈등이라는 거대한 맥락에서 세부적인 내용들이 넘쳐 흘러나오고 있다. 레드필 이론, 설거지론, 레디컬 페미니즘 등등 다양한 이론과 가설들이 저마다의 관점과 그에 따르는 이익을 반영하고 있음을 볼 때, 우리들은 남녀 갈등의 문제가 실상 마음이 만들어낸 이원성의 문제임을 간파해낼 수 있다. 선과 악, 옳음과 그름, 나와 너, 남과 여라는 서로 대립쌍의 문제를 둘러싼 치열한 공방전은 한쪽이 한쪽을 완전히 굴복시키기 전까지 끝나지 않는 엔드-게임과도 같으며, 이는 전체를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시야를 지닌 마음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부분이 전체를 위한 희생을 달갑지 않게 받아들일 때, 이러한 무지로부터 전체의 질서는 파괴되고 부분의 생존마저도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총체적 난국 속에서 남녀 갈등을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너무나 대상적이고 물질만을 향해 있는 대부분의 의식 수준은 영이라는 신성한 본질로부터 벗어나 있다. 육체에 갇히게 되어 마음껏 발산되지 못한 보편적 생명기운은 분열과 혼란을 피하지 못한 운명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이분법적인 사고에 익숙하고 일체를 대립적인 구도로 구분 짓는 마음이 외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주범이며, 현 남녀 갈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원성을 만들어내는 마음의 환영을 간파해낼 필요가 있다. 주체와 객체가 실상 하나의 근원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 때, 남녀 갈등은 비로소 화합의 길을 도모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게 된다. 악은 더 나은 선을 향한 발판이 되어주며, 물질과 혼란의 끝에서 어김없이 분리를 치유하는 신성의 빛이 마음 너머에서 밝아온다. 둘로 분열되어 있는 당신의 마음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대상적 세계를 인식하기 전까지 대립쌍이 만들어내고 있는 치열한 공방전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을 것이다. 


 마음은 사적인 자기 (이름과 형상을 지니고 있는 '나') 만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안과 밖을 하나로 연결해주고 있는 보편적 의식을 눈치채지 못한다. 생각과 감정을 '내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마음은 스스로를 행위자라고 착각하며, 생각과 감정이 일어나는 근원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대상에 너무나 몰두한 마음의 습은 생각과 감정이 일어나는 보편적 의식의 장을 알지 못한다. '내 것'이라는 소유의 관념이 들어설 때, 거기에는 사적인 자기를 향한 자기중심적 사고가 만연하며, 일체를 사적인 자기를 중심으로 한 손익 관계에서 생각한다. 만물을 이어주는 보편적 사랑을 알지 못하는 마음은 언제나 자기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물질만이 전부라고 믿는 형이하학적 세계관을 지지하는 분위기 속에서 여성은 더욱 세속적이고 감각적 욕망을 탐하는 존재로 전락한다. 비존재의 원리를 담고 있는 남성보다 존재의 원리를 반영하고 있는 여성이 보다 물질적인 유혹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생을 향한 집착을 반영하는 에로스의 힘이 너무나 강해져 죽음을 담당하고 있는 타나토스가 제 본연의 힘을 다하지 못할 때, 신적 지혜는 침묵하고 무지가 만연하다. 에로스와 타나토스, 상반된 두 힘의 적절한 균형과 조화가 상실된 상황 속에서 인간의 심신은 병들고 뒤틀린다. 동이 트기 직전인 새벽이 가장 어두운 때라는 것을 알고, 부디 스스로의 내면에 적절한 균형괴 조화를 회복하는 진실의 힘을 견지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Ep.01


 남녀 관계에서 마음이 작동하는 원리는 주체와 객체라는 구분에서 시작한다. 마음을 주려고 하는 자는 남자이고, 마음을 얻어내려는 자는 여자이다. 남자와 여자라는 구분이 들어선 순간부터, 이원성을 만들어내는 마음의 작업이 시작된다. 남녀관계에서 객체로 전락한 여성은 주체로서의 자유를 행사하지 못하는 제한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남성은 여성이 자기 자신의 의견에 순종하고 고분고분하게 따르기를 바란다. 여성은 주체인 남성과의 관계로부터 무언가 얻어낼 것이 있기 때문에 남성의 무리한 요구에도 언제나 수동적인 태도로 순수하게 따른다. 그 무언가는 단순한 성적 욕망이 아닌 물질, 돈, 정신적 만족 등 다양한 영역을 아우른다. 남녀관계는 하나이자 전부인 보편적 의식 속에서 생긴 균열이다. 그리고 이러한 균열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은 성욕에 의한 일시적 결합이 아닌 평등하고 동등한 관계로서의 회복을 가능케 하는 만물을 향한 신의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무한한 창조의 잠재력을 담고 있어 그 한계가 없는 보편적 의식을 성이라는 집단의 장에 속박하려는 시도가 바로 남녀관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속박의 실질적인 정체이다. 주체와 객체의 관계에서 객체로 규정받는 여성은 남성보다 언제나 관계로부터 채워지지 않는 갈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객체의 욕망은 주체보다 억압받는 상태에 놓이므로 여성은 대개 남성보다 욕구불만의 상태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여성이 남성과의 관계 속에서 언제나 까다로운 요구사항을 내세우며, 남성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은 여성이 행하는 모든 방식이 자유를 제한하는 간접적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 남성은 자기 자신보다 더 자유로움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이며, 실제로도 대개의 경우 남성은 육체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다. 자기 자신을 육체 속에 머무르게 해 놓고서 언제나 다른 대상을 향해 달려 나아가고 있는 남성을 여성은 무의식적으로 증오한다. 남녀 관계가 본질적으로 애증으로 얼룩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만남 초기에 여성만을 향해 있는 남성의 열정이 시간이 흐를수록 딴 곳으로 새어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점은 여성이 남성에게 자기 자신의 마음을 허락한 결정적 이유는 바로 남성이 담고 있는 내면의 열정과 자신감이라는 점이다. 한없이 매력적으로 비친 남성의 장점이 어느 순간부터 단점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남성과의 애착 관계를 형성할 때 즈음에, 남성은 더 이상 여성과의 관계에 열정과 흥미를 보이지 않게 된다. 이는 외부 대상을 향해 달려 나아가고 있는 남성의 의식적 자아는 이미 스스로가 완전히 이해하고 알게 된 것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신을 깨닫기 전까지 계속되는 남녀 관계의 엇갈린 운명은 아무리 진지한 만남일지라도 일체가 자기 자신과의 유희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지 못하게 한다. 신을 향하지 않는 마음은 언제나 역설과 모순을 담고 있다. 마음의 역설과 모순이 낳는 갖가지 환영과 미혹들은 궁극적으로 하나이자 전부인 신을 찾기 위함이다. 


Ep.02


 주체로서의 직접적 행위와 사고를 제한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여성은 언제나 남성과의 관계를 통해 충족되고자 하는 에로스적 충동을 억눌러야 하는 상황에 빈번하게 마주한다. 여성이 남성에게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주기를 바라는 심리는 스스로가 원하는 바를 모두 발설하는 것은 객체가 지니고 있는 신비주의의 매력을 상실해버린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상 중심적 사고를 지니고 있는 남성에게 매력은 언제나 미지의 것을 향한 호기심이다. 객체로서의 여성이 관심을 받기를 원하는 남성을 꾀하는 전략은 먹음직스러운 먹이로 보이는 것을 전제로 하며, 이는 남성의 호기심을 자극해야 하는 전략을 취해야 함을 의미한다. 하지 만남 성의 의식적 자아는 관계중심적이 아닌 대상 중심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므로 여성보다 실질적으로 관계에 기대하는 비중이 적을 수밖에 없다. 남성은 굳이 관계가 아니더라도 외적 대상과의 상호적 교류를 통해 스스로가 지니고 있는 충동을 해소할 수 있다. 남녀관계가 시간이 흐를수록 대개 여성에게서 남성으로 주도권이 넘어가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발생한다. 남성에게는 여성과의 관계가 최우선이 아니다. 스포츠, 운동, 취미, 게임 등으로 스스로가 지니고 있는 충동을 해소할 수 있는 남성은 관계는 부차적인 것이 된다. 발산되는 성질을 지니고 있는 남성의 의식적 자아는 수렴하고 있는 성질을 지니고 있는 여성의 의식적 자아에 비해 외적 대상으로부터 관심과 에너지를 요구하지 않는다. 여성의 경우는 이와 반대다. 여성은 관계로부터 친밀감을 공유하고 있다고 느낄 때, 욕구가 억압받지 않고 원활하게 해소된다. 여성을 향한 남성의 관심은 언제나 남성과 의존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객체로서의 여성에게 생존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며, 스스로가 떠안고 있는 종의 종속이라는 임무에 있어서 중대한 사안이다. 현대에 들어서 젊은 여성은 sns를 통해 불특정 다수로부터 무차별적인 관심 공세에 시달리는데, 이는 가뜩이나 세속적인 유혹에 취약한 여성의 마음을 완전히 들쑤셔 놓는 결과를 초래한다. 언제나 더 크고 더 많은 자극을 원하는 마음은 성적 판타지에 완전히 종속되어, 겹겹이 쌓여있는 환상에 더 많은 환상의 층을 쌓아 올린다. 실질적인 토대가 아닌 가상의 현실 속에서 쌓아 올린 불특정 대다수와의 관계는 여성의 마음이 본질적으로 원하는 친밀함을 채워줄 수 없기 때문에 여성은 관계를 지속할수록 더 많은 공허함에 시달리게 된다. 남성이 스스로가 지니고 있는 충동을 창조적으로 구현해내지 못하고 낭비될 때 느끼는 허무함은 여성이 현실 속에서 한 남자의 지속적인 관심과 주의를 받지 못할 때 느끼는 공허함과 동일하다.    


 Ep.03. 


 대개 여성이 남성보다 수다스러운 이유는 객체로서의 여성은 늘 해결되지 못한 욕구에 사로잡혀 있으므로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대화 속에서 서로 간의 공감을 통해 일정 부분 욕구를 해소한다. 이성과 지속적으로 친밀함을 주고받고 싶은 욕망이 한시도 쉬지 않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의존적인 마음을 만들어낸다. 한시도 생각과 감정을 내려놓지 않고 한사코 침묵을 거부하는 마음은 항상 표면에만 머물러 있어 적적함을 느낀다. 오직 재미와 감각적 쾌락만을 위해 소비되는 삶 속에서 인간의 존재는 채워지지 않는 결핍감에 시달린다. 스스로의 본성이 '사랑임'을 알지 못하는 존재에게 가상 세계로의 도피는 일상이 된다. 타자와 세계를 향해 닫혀있는 마음은 사랑의 부재에 따르는 무의식적 억압이 상당히 진행되어 있는 상태이다. 스스로가 억누르고 있는 욕망이 많을수록 말이 많고 부산스러운 행위를 보인다.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고 과도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만큼 존재의 본질로부터 멀어져 있음을 반증한다. 평화와 멎어있음, 고요와 안정감이 바로 환상이 제거된 실상 속에 거주하는 진정한 인간됨의 모습이다. 욕망은 좋고 나쁘지 않다. 다만 그 욕망이 올바른 방향을 위해 정진하는 데에 쓰이지 않을 때, 욕망은 삶 속에서 해로운 것으로 자리 잡는다. 


 여기서 우리들은 남녀가 서로를 향해 지니고 있는 욕망에 담긴 뜻을 해석해볼 필요가 있다. 남녀의 사랑은 단순히 성욕에 대한 충족 그 이상을 담고 있다. 이는 남녀의 관계가 궁극적으로 서로를 통해 향하고자 하는 동일한 목표에 대한 인식을 이끈다. 남자는 여자를 통해, 여자는 남자를 통해 자기 내면에서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온전한 인격체로서의 길로 나아간다. 서로가 서로에게서 바라고 원하는 것이 무언인지를 알고 기꺼이 상대를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려는 마음이 작금의 남녀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주체적으로 모색하게 한다. 사적인 자기만을 고집하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한 행위와 사고에 몰두해 있는 마음은 스스로의 개선을 힘쓰기보다 외부로부터 해결책이 제시되기를 바란다. 이미 외부로부터 어떠한 해결책을 바라는 마음 자체가 의존적이고 나약한 존재로 이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말이다. 알게 모르게, 현재 나라는 존재가 처한 상황은 모두 전적으로 내가 행한 선택에 따른 결과이다. 책임을 떠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주체와 객체라는 이원성의 환영을 푸는 열쇠다. 하지만 책임을 이행하는 과정 속에서 더 많은 환상을 품고 그러한 환상을 유지하기 위한 정보만을 수집했을 때, 남는 것은 사랑의 부재에 따르는 공허함과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이다. 남녀 모두가 만물을 향해 열려있는 마음, 다시 말해 '홀로 됨'의 상태에 머무를 수 없으면, 남녀 관계는 언제나 소유의 욕망으로 얼룩질 운명에 이를 수밖에 없다. 감정적 속박의 지옥을 낭만적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기에 바쁜 현대의 남녀관계 속에는 신뢰와 진실된 사랑이 없다. 따라서 남성은 언제나 여성을 향해 통제하고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시선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여성은 남성을 끝없이 의심하고 시험해야 하는 태도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한다. 그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쉽사리 남녀관계는 서로를 향한 증오로 물든다. 하지만 상대 이성을 향한 무분별한 비난은 결국 자기 자신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 일에 다름 아니다. 비난이 최초로 시작되는 곳은 외부가 아닌 내면임을 눈치채야 한다. 악은 대립쌍의 선을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훌륭한 영적 가르침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 선과 악 너머에 종의 종속으로부터의 해방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