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는 유심론에 가까운가 유물론에 가까운가

내가 볼 때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 같다

중용, 공, 열반 등은 

실재론에 기반한(색즉시공) 관념론(공즉시색)

또는 관념론에 기반한 실재론적 해석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

둘은 나뉠 수 있는 것인가

이분법이라는 행위는 둘중 하나만 취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잘못된 이분법, 편견, 아집)

둘을 나눠서 각각 자세하게 보려고 나누는 거라고 봐야겠지


성선설, 성악설을 나누는 목적은 둘 중 하나를 취하고자 함이 아니라

둘을 각각 분석해서 그 결과값을 취합하고자 하는 것이 중도적 사고겠지

다만 대중을 위한 임시방편이라고 생각된다(논쟁에 의한 사고의 발전)

문제라면 대중이 무지할수록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는 거겠지

우리의 사고를 대중으로 치환시키면 생각이 무지할수록 극단으로 치우치고

깨달을수록 그 사고의 방향이 가운데로 모이는 것과 비슷한 거지

잼버리 행사를 좌파적 사고로먼 하거나 우파적 사고로만 진행할 수 있나?

현실은 실전이며 중도적 사고로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서론이 길어지니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자


개념정의부터 해야할 것 같다

#무

- 조건, 전제 = 유에 대한 인식(유만 있다면 무를 구분할 수 없다)

- 목적, 용도 = 유를 유라고 알게 해줌, 유는 무 위에 놓임(집에 집을 지을 수 없음)

- 성분 = 유를 제외한 모든 것, 아무것도 없다는 걸까 아니면 무만의 뭔가가 있을까

우리가 인식, 지각, 감각할 수 없는 어떤 것은 그자체로 무일까

인류에게 아직 발견되지 않은 어떤 동식물, 광물 등이 있다고 따져보자

그것은 무인가 유인가(양자로 따지면 관찰되지 않는 상태, 잠재성, 잠재성은 무인가 유인가), 

유를 제외한 모든 것에 속하는가(o)

그것이 무인가?(x)

- 구조 = 무라는 개념자체가 그 구조를 내포한다고 봐야겠지

유의 구조는 어떨까? 무한할 거다(우리가 변수를 정하는 행위는 유한하지만 무한함. 잠재성)

- 상태 = 존재하지 않는 상태

- 상위 일반명사 = 지식 - 개념


이런 식으로 유가 없이는 무가 성립되지 않지

세계에서 유라는 개념을 빼버리고 남은 것이 무다(우주를 기준으로 존재에 대한 여집합)


#유

- 조건 = ?? 존재하지 않지 않아야 한다, 오감에 포착돼야 한다(존재하지만 포착할 수 없는 것은?)

- 목적 = 이용, 사용, 활용

- 성분 = 우리의 언어(명사, 명사는 나머지 품사들이 작동하는 기반이다) 그 자체라고 봐야할듯

언어는 추상적이니 유라는 것도 추상적이겠지 무도 마찬가지

만물이 추상적이라는 소리가 아니며 만물을 인식하는 생각이 추상적이라는 거지

만물과 교감하는 순간 그건 더이상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일 거다

뭔가와 함께 있어도 그 대상을 추상적으로 대하는 상태라면 대상의 추상성과 함께 하는 거지

구체적일수록 그것과 함께 흐를 수 있을 거다(몰입)

- 구조 = 언어 그 자체(이성) + 구체성(직관) + 통찰(이성+직관=오성) 정도?

- 상태 = 언어 그 자체 + 잠재성(마치 원시인들에게 있어서의 지구처럼)

- 상위 일반명사 = 지식 - 개념


#무에 대한 언어적 고찰을 시도해보자

- what = nothing, 무의 개념정의

- which, 어떤 = 시간적인 무(사라짐, 인과), 공간적인 무(원래 없었고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듯), 

비교에 의한 무(a는 있고 b는 없음, 주로 형용사적인 무언가), 창조적 무(창조 이전, 빅뱅 이전),

의식적 무(어딘가에 있든 없든 일단은 없는 상태. 갓난아이에게 있어서의 화성)


이때 시간적인 무에서는 기억이 관여하는데 기억은 사실이 관여하지

강기억(강현실 기반의 기억), 증강기억(증강 강현실 기반), 약기억(약현실+증강 약현실 기반)

예를 들어 은행에서의 일을 기억한다면 위의 세가지를 동시에 기억하는 것

게임을 기억한다면 증강기억, 약기억(제외될 수 있음)밖에 없는 거지

공부할 때 뭔가를 확실히 외우고 싶으면 강기억을 추가해야겠지

시뮬레이션 행위도 머리속에서만큼은 강기억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혼합 강현실화)


- why, cause = 무가 없으면 유도 없으니까, 유가 없으면 무도 없으니까

- why, for = 무의 개념정의에서 목적 부분 참조

- how by = being(+been being), 유(+유였던 것)

- how way = to being, 유를 향해(무는 유를 향하고 유는 무를 향한다고 볼 수 있다, 엔트로피?)

- where = space

- when = forever(영구적 무), in a while(잠재적 유, 무가 언제까지나 무는 아니다)



무를 허공이라고 간주하고 이야기를 진행시켜보자

무라고 적고 허공이라고 읽는다라는 표현은 성립 가능한 명제인가(가능한듯)

세계를 관찰해보면

유는 무(허공)에 잠시 속한다(너네가 길을 걸으면 무가 유가 되고 유가 무가 되는 순환)

너네가 가만히 있더라도 이미 무를 품고 있다, 무에 할당된 그 공간을 점유하고 있지

새들은 인간이 점유하고자 갈망하는 무(하늘이라는 허공)를 품는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왜 날고 싶어 하는가? 

상당히 고차원적인 비유법으로 보이는데

더 높은 차원의 무를 점유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이미 점유하고 있는 무도 과거에는 그 당시보다 높은 차원의 무(이데아)였겠지

무를 향해 헤엄치는 행위가 창조적 행위에 해당하는듯

뭔가가 어떤 국소적인 무에 오랫동안 머무를수록

식물, 무생물, 무에 가까워진다고 할 수 있어 보인다


무와 유의 이분법이 마음에 안드니 이 두개념을 합쳐서 이름을 붙여보자

무와 유는 시간적으로 정지된 개념이겠지

우리는 정지된 세계를 사는 것이 아니다

유와 무를 합쳐서 뮤라고 부르는 것이 적당해 보인다

이 뮤가 불교에서 말하는 공 아닐까

지구에서부터 화성까지 뭔가가 무한하게 쌓여있다고 가정해보자

그것들을 무한이라고 부를 건가? 명백하게 유한이지

반면 생명이 꿈뜰대는 그 시점부터가 무한이다

무한이라는 말은 엄청나게 많다는 의미가 아니라 한정될 수 없다는 의미겠지

내가 감정적인 무언가를 말할 때마다 무한에 가깝다, 무한이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가시적(일시적)으로는 유한적일 수도 있지만 생명은 한정되지 않기 때문이지

특히 고차원의 의식을 가진 인류에게 한정된 무언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겠지

원시인들이 한정돼 있었다면 거기서 머물렀어야겠지

생명을 한정적(유물론이 이런 식이지)이라고 말하고 싶다면

태어난 그 순간부터 끝까지 예측해서 오차없이 모든 것을 맞춰야 할 거다

그게 가능할 때 생명에 대한 그런 식의 평가를 내릴 수 있겠지


컴퓨터 그래픽에 대한 경험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CG 프로그램을 띄우면 텅빈 뷰포트가 뜬다

너네가 아무 것도 안하면 그 뷰포트는 영원히 무의 상태겠지

반면 뭔가를 만들고자 한다면 그 뷰포트는 무한성을 가진다


너네가 가만히 있으면(흐르는대로 사는 것) 자연(신)에 의해 살게 되겠지

부처와 예수는 신을 거스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신 입장에서 보면 혁명에 가깝지(그 혁명조차 신에 의한 것일까)

원래대로라면 그냥 신을 따라서 흐르는대로 살아야할텐데 그걸 거부한 거지

이때 그 혁명이 신 입장에서 봐도 합리적이라면 넘어가겠고

그 혁명이 신(자연, 우주)을 헤친다면 교정(치료, 격리, 제거)된다고 봐야겠지

너네 몸을 우주로 간주하고 세포들을 인간으로 따져보면

면역세포 같은 것들의 혁명은 합리적이니 넘어가지만(권장되지만)

질병세포 같은 것들의 혁명이라면 교정돼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걸 놔두면 우주(생명)가 소멸하겠지

제대로 생겨먹은 자연(신)이라면 자신의 소멸을 방관하지 않을 거다

정신적으로 치유하든 물리적으로 치유하든 어떤 식으로든 치유하겠지


불교에 따르면

우리는 흐르기만 해도 자연에 의해 창조되고 있다고 여기며(소극적 창조)

운명에 맞서는 것은 적극적 창조 행위(폭동인가 정의로운 혁명인가)에 해당하겠지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문제나 일으키도록 살게 놔두는 것이 신의 뜻인가

그것이 그들 자신과 집단, 더 나아가서 신을 위한 길인가

정치적으로 운동이라는 행위는 세상에 정당한 혁명을 일으키는 행위로 봐야겠지

정당하지 못하고 사악하거나 비합리적이라면 운동이 아니라 폭동일 거다

엘리트들은 이 세상을 윤리적, 도덕적으로 운동시킬 의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다면 정당한 혁명을 기꺼이 받아들여야겠지

그것이 자연의 뜻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무와 무한, 유의 상관관계를 잘 생각해보길 바란다

유심론도 아니고 유물론도 아닌 유공론이다

관념론도 아니고 실재론도 아닌 관재론, 실념론이라고 할까

내 이런 행위가 폭동이 아니길 바랄뿐(마음이 편해지는 걸 보면 혁명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