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한가지만 남겨야 된다면 깨달음이겠지

그 깨달음은 뭐에 대한 깨달음인가

결국엔 연기법이라고 할 수 있겠지

연기법을 이해하려면 뭐가 필요한가

공에 대한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겠지

공을 이해하려면 뭐가 필요한가

여기서부터 연기법과 순환되는 것 같다

연기법을 깨닫는 데 필요한 것이 공을 깨닫는 것이고

공을 깨닫는 데 필요한 것이 연기법이라고 할 수 있는듯

연기법은 결국 색으로 드러나는 거겠지(만유인력의 법칙과 사과가 떨어지는 것 간의 관계)


여기서 뭔가가 빠진 것 같은데

법칙과 현상을 이어주는 "나(의식이라고 부르자, 이것 자체로 법칙과 현상 덩어리)"라는 존재다

색을 특정한 생각(법칙과 현상의 3중 구조 = 우주가 1중, 의식이 2중, 생각이 3중)을 통해 

해석하는 의식(2중)이 없으면 법칙(1중)도 없는 거겠지


법칙과 현상 덩어리인 색은 1+2+3중 구조(하이라키)이고 

그것의 역이 공이라고 봐야겠지 3-2-1중 구조(역하이라키)

공을 보려면 색을 봐야하고

색을 보려면 공이 작동해야 한다

공은 이미 의식에 탑재돼 있다(=불성)

3중(생각)을 걷어내는 것이 비로소 어리석음을 면한 것이고

2중(의식)을 걷어내는 것이 해탈이고

1중(우주)을 걷어낸 상태가 곧 열반이겠지

의식을 가진 모든 것은 결국 열반에 들며 해탈한 상태로 열반하냐 

어리석은 상태로 열반하냐의 차이가 있다

어리석게 열반에 들면 그 카르마가 자기 주변에 남으며 현상계에서 윤회하겠지

연기법에 의하면 그것이 당연한 인과니까

의식이 윤회한다기보다는 카르마가 윤회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색과 공의 구분조차 공하다는 거지

단어를 만들어보자면 메타-공하다고 할 수 있어보인다

색즉시메타공 메타공즉시색

메타색즉시메타공 메타공즉시메타색

이런 구조가 성립되나? 

색에는 메타가 없다 색의 메타로 올라가면 공으로 넘어오지(그렇다고 똑같은 건 아니다)

공(b)즉시메타공 메타공즉시공(b)

이런 구조와 비슷할까


그래서 결론은

색과 공을 중도적으로 모으면

메타-공이라는 개념이 남는 것 같다

이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릴 것 같은데

(개념에 치우치는지, 현상에 치우치는지 등에 따라, 관점의 차이)

- 구조적 관점(무아, 우주가 곧 하나, 무아또한 공함)

- 현상적 관점(대승적 진여, 참나라고 불리는 것)

이렇게 나뉘는듯



이것이 부처의 주장으로 보이며

모두 맞는 말이긴 한데 부처의 마지막 행적이 자신의 주장들을 반박한 것 같다

공(힙, 쿨)하지 못하게 구업을 남기고 갔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비에서 비롯된 거지

그렇다면 불자들은 부처의 말을 따라야 하는가 행동을 따라야 하는가

이또한 공해보인다


적어도 내가 이해한 불교는 이렇다

공하다는 것은 nothing이 아니라 empty의 의미에 가까운데

그걸 채우는 것은 우리의 몫이겠지

부처는 우리가 그걸 잘 채울 수 있도록 비워줬다고 해석할 수 있다

기독교적으로 보면 세례를 받았다고 해야할까

회개했다고 해야할까

원죄를 탕감받았다고 해야할까


그렇게 깨끗해졌으면 앞으로도 깨끗하게 잘 채워나가야겠지

더럽히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