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나와 남을 살펴봐야겠는데
이때 남에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우주가 포함된다
때문에 나를 먼저 정의하고 나를 뺀 모든 것을 남이라고 간주해야겠지
불교적인 무아는 개인적인 관점에서 그렇게 여길 수 있는 것이고
자기와 동일한 관점을 지닌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진짜로 자기가 없어지는 경험을 할 수도 있겠지
부모와 자식의 관계, 서로 좋아 죽는 연인관계에서 이런 경험이 잠시나마 가능하다
자아가 사라지고 관계만 남는 거지
이런 상태가 좋을 수도 있지만 나쁠 수도 있다
자기가 잘 세워진 사람들은 무관하지만
자기라는게 거의 없는 사람들(사회에 묶인 사람들)은 더 나빠질 수 있지
올바른 자존감을 형성시킨 다음 무아로 넘어가야 부작용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사회에서 피식자가 되어버릴 수 있겠으며 이는 사회적 악순환을 만들 수 있겠지
누군가의 업보를 강화시키는 결과를 만들 수도 있을 거다
선악에 대한 지혜부터 갖춰야겠지
불교에서 뭐든 공하다, 업보만 있을뿐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일단 깨닫게 만드는 게 시급하니 나쁜 방편이라고 해도 일단은 쓰는 거겠지
그런 관점또한 또다른 아집에 해당할 거다
이부분은 설명하기가 상당히 어려운데
세상 모든게 뭘 어떻게 해도 무관하고 선악판단이 불필요하다면
왜 스스로의 불심을 유지하고 있는가부터 자문해봐야 할 거다
자아가 불교로 채워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으며
자등명은 어딘가로 갖다버리고 법등명만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상태에서 뭔가를 하면 좋다, 그러면 안된다는 분별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성찰해봐야할 거다
그 결론을 기반으로 하면 뭐든 공하다라고 말할 수가 없는 거겠지
자기모순이기 때문이다
불교라는 그 세계관에 갇히는 것조차 부처의 깨달음과는 거리가 있겠지
(불교조차 방편이라고 할 수 있어야)
깨달음이란 무엇일까
더이상 무지하지 않다는 거겠지
뭐에 대한 무지인가, 이 세상에 대한 무지를 모두 날려버려야 깨달았다고 말할 수 있을 거다
물론 나도 이게 정확하게 어떤 상태인지는 모른다
아직 무지하기 때문이지
부처가 아니라면 누가 이걸 알 수 있을까
부처의 말을 빌리자면 부처가 되고자 노력하는 것도 정답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거다
부처가 왜 깨달았고 왜 법을 설파했는지 그 마음을 짐작해봐야겠지
모두가 스스로의 꽃을 피우라고 설득하는 걸로 들린다
모두가 부처라면 그곳이 곧 극락이겠지
그리고 오로지 개인 입장에서만 보더라도 무아라는 것은
여러가지 나에 대한 평등을 이루는 과정이라고 해야겠지
나에게 속한 모든 것이 평등하다면 그 상태를 무아라고 부를 수도 있을 거다
개인과 자연의 관계와도 비슷한데
각자 지멋대로인 나들(내부적으로 보면 여러가지 내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과
하나로 통합된 나(지혜로 가득해야겠지)의 관계와 같다
통합 이전 상태가 아라한이고(아직 통합되지는 않았지만 통제할 수 있는 상태)
통합이 완료되면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로 간주될 수 있겠지
만약 이런 상태가 된다면 거의 열반상태(생불)라고 봐도 무방할듯
이런 상태가 되면 내부의 통합을 넘어서서 그것과 같은 방식으로 세계와의 통합이 이뤄질듯
불자들이 나쁜 습성의 자아가 우세하다면 그 균형을 맞춰주는 것이 우선이라는 이야기
나쁜 습성이 기반인 상태에서 선악이 없다는 식의 말을 듣는다면 자기합리화하게 될 거다
과연 그것이 악업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무지했다면 그 마음에 악의가 없었을테니 상관없겠지만 알았다면 자제해야겠지)
역지사지란
남을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최선에 해당할 거다
남을 돕기전에 자기부터 챙겨라(스스로를 도와라)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봐야 하는데
만약 내가 저 사람이라면 과연 내 도움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아무 생각없이 돕는다면 그 사람의 미래를 망치는 것일 수도 있지
물론 무지해서 그것이 최선이라고 여겼다면 선업으로 간주할 수 있을 거다
다만 알았다면 참회하고 다시는 안 그러도록 조심해야겠지
어떤 사람이 내 돈을 빼앗으려고 한다면 적선한 셈치고 그냥 눈감아줄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그 행위로 인해서 미래에 더 많은 죄를 짓고 돌아다닌다면
과연 그것이 그 사람을 도운 것인가?
그 피해자(가해자 포함)들은 누구의 업을 입었나
다시는 그러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있어야 남을 도와줬다고 말할 수 있을 거다
보통 무작위(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는 악업으로 계산되지 않지만
그것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면 참회해야겠지(해결법을 찾아야)
스스로 자각하는 순간 무작위도 업이 될 거다
(어쩔 수가 없어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어서, 더 나빠질 게 뻔해서 관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면)
업이 쌓이면 사회적인 평가 같은 것들보다
내면의 나를 통합하는 데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생계가 급하다면 물질적인 도움은 불가피하지만
돕는다고 돕는 것이 정말로 그 사람들을 돕는 것인지를 살펴봐야겠지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들어갈 돈이 출산에 들어가고 있는 느낌?
돈으로 출산율을 높이는 게 얼마나 근시안적인 해결법일까
다른 악순환들을 함께 고치면서 임시방편으로 그러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항아리 밑이 깨졌는데 물만 들이붓고 있는 거지
구멍은 더 커지겠고 결국 깨질 거다
남을 말로 설득하고자 할 때
만약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설득할 수 없는 상태라면
(자기가 자기를 설득하는 것은 자기를 돕는 거지)
남도 설득할 수 없을 거다
내 경험만이 아닌 남들이 겪을 수 있는 다양한 경험들을
공감할 수 있어야 꼰대 같은 소리를 안할 수가 있겠지
상대가 나라면 그런 꼰대 같은 소리를 듣고 싶은가
(부연설명이라도 누구나 설득될 정도로 성심성의껏 하던가)
요즘 머리가 무거워서 다소 정리가 안되는 글이지만
대충 떠오른 것들을 적어봤다
내용이 틀릴 가능성이 있어보이니 알아서 걸러 듣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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