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같은 구조는 아니지만 불교를 이해하는데 이것만큼 좋은 비유가 있을까 싶다

일단 게임에 비유해보자


#색즉시공 공즉시색

색즉시공 = 게임은 게임일뿐

공즉시색 = 게임인데 현실에 영향을 미침

공에 빠지면 불교에 푹 빠져버리거나(그게 행복하다는데 말릴 수 있을까) 

의미없는 삶을 살아야겠지

게임은 게임인데 다른 사람들은 사회가 정해준 게임을 벗어날 수 없지만

게임을 해킹한 사람들은 게임밖에서 자연을 마주할 수 있다

원시인들이 문명을 만든 것처럼 자기도 뭔가를 만들 자유가 생긴 거지

유저가 아니라 크리에이터가 됐다고 생각하면 될 거다


게임 캐릭터에 색수상행식을 대입해봐라

마치 자기처럼 생각하며 온갖 감정, 분별 등을 일으키지

그리고 그 게임을 지켜보는 나 자신을 바라봐야겠지

여기서 한단계 위로 올라가면

게임을 지켜보는 나 자신(메타인지, 무의식을 포함한 의식)을 바라보는 

나 자신(메타 의식)까지 확장할 수 있겠지

나에 대한 몰입(불교에서 삼매라고 하나?)을 넘어서

나에 대해 몰입하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몰입을 시도해볼 수 있어 보인다

그게 가능한지는 나도 모름, 겪어본 적이 없으니(무의식적으로 겪어봤을지도?)

만약 그게 가능해지면 그 윗단계에 도전해볼 수 있겠지

이런 상태에서 경험하는 것들의 진위를 판가름하는 것은 정말 어려워보인다

얄팍한 상상을 언급한다면 굉장히 허술할 것 같다

내가 스트레이트로 신약의 첫부분인 마태복음을 읽어봤는데

만약 그것이 허구라면 그걸 쓴 마태라는 사람이 성인이겠지

그정도로 허구일 가능성이 없다는 의미다

기적에 관한 부분은 판단유보해야겠는데

자연에 대한 기적이 아닌 사람에 대한 기적은 가능한 이야기겠지


#육도윤회와 현실 비유

지옥, 아귀계 = 교도소, 천상계에서도 여기로 떨어질 수 있다

축생계 =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계층(사회적 관점에서)을 떠올리면 될 거다

천상계. 인간계에 있더라도 여기로 떨어질 수 있다

수라계 = 깡패, 조폭, 군대(인간계와 겹침)

인간계 = 축생계 일부 + 중산층, 상류층

천상계 = 지배층(정치, 종교, 예술, 학술 등)

흔히 자유인이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들이다

아귀, 축생, 수라, 인간계에 있는 사람들이 천상계를 뒤집는 것을 혁명이라고 한다

인간계 이하를 나쁘게 굴리면 나쁜 결과(각종 문제, 저항, 혁명)를 얻고

좋게 굴리면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거다

그야말로 자업자득이다

천상계에서 축생계를 돕는(역량이 돼야겠지 도왔는데 더 나빠질 수도)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게 된다


물론 불교적 비유가 이렇다는 거지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은 멸시의 대상이 아니며

모든 계층을 평준화시키는 게 바람직할 거다

업보를 받고 있는 사람들은 충분히 참회하고 반성하게 만들어야겠으며

모두를 천상계에 수렴하게 만들어야지

모두를 축생계에 수렴하게 만들면 안되겠지(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좌파의 움직임)

좌파와 우파의 중간지점에서 고민해봐야 할 거다

AI는 현재 축생계의 왕에 가까우며 천상계에 들이는 것은 재고해봐야겠지

세상을 지옥계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아집

게임속 캐릭터를 나라고 이입하는 것

흔히 "게임인데 왜 그렇게 예민해"라는 소리를 듣는 상태

캐릭터, 아바타에 현질하는 심리와 연결된다

해탈했다면 "게임은 게임일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상태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우리가 해야할 게임이 공유되는 게임(현실)이라면

"게임은 게임일뿐"이라고 하기보다는(물론 그게 행복하다면 무관하겠지)

"이 게임을 어떻게 하면 가장 행복하게 즐길 수 있을까" 또는

"세상 게임 다 이상하고 재미없네, 사람들을 위해서 게임을 만들어 주자"

이런 생각들도 할 수 있을 거다

부처는 왜 게임일 뿐인 현실에 관여했는가

"사람들이 자기 게임을 만들 능력을 주자"라는 결론을 맞이했다고 봐야겠지




이런 식의 게임에 대한 비유를 하면 염려되는 부분이 있는데

인생을 진짜로 게임처럼 살 가능성이 있다는 부분이다

또는 게임은 게임일뿐이라고 생각하며 무의미하게 여길 수 있다는 것

이런 부작용을 없애고 싶다면 최초의 인류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좋겠지

그곳에서 세계를 정면으로 마주해보자

그리고 그 상태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생각해보자


위에서 언급했던 의식, 메타의식을 현상적인 "나"라고 간주해야겠지

부처의 설법조차 분별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알아야하고

그 분별은 뭔가 고정관념, 지식, 아집 등을 통해 일어난 것이 아니고

무분별지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고려해봐야 할 거다

무분별지라는 단어는 상당히 모순적인데

무분별은 분별안함(아이처럼)이며 지는 지혜라는 의미다

아이는 무분별지의 상태인가?

(물론 완벽히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직관이 쌓이고 있으니)

무분별지라는 것은 

아이(진여)와 같은 상태(무분별)가 돼서 + 분별(언어)을 빌려서 + 분별한 지혜

이 정도로 정의할 수 있어 보인다

아직까지 말장난 같기도 할텐데 
색즉시공이 곧 공즉시색이 되는 마법이 저 과정에 들어있는 것 같다
부처가 되고 싶다는 것은 인류를 구원하고 싶다와 동의어라고 생각된다
아이 같은 지혜를 가지면 아이 같은 마음도 샘솟게 되겠지
아라한은 아직 아이로 돌아가지 못한 부처라고 할 수 있겠지
마음이 탁해지면 도중에 탈선할 수도 있겠고
깨끗한 마음으로 정진하면 결국 부처에 이를 수 있어 보인다
내가 이해한 것은 지식적인 이해다
실제로 어떤지는 나도 잘 모른다
이젠 잡생각 좀 그만하고 내가 끝내야할 부분이나 빨리 끝내고 싶을 뿐...
가슴이 닫히고 머리가 너무 열리는 것은 불행한 느낌인듯
내 행복은 창작인데 너무 오랫동안 쉰 것 같고
슬슬 재개해야할듯... 
창작할 때를 떠올려보면 깊은 명상 상태와 비슷한 것 같다
물론 나는 깊은 명상에 들어본 적이 없다
창작할 때의 느낌으로 유추하는 것일뿐


설명할 때는 게임에 비유하는 게 쉽지만

현실은 현실적으로 살아야겠지

가슴이 너무 비어있다면 그걸 채울 방법부터 

고심하는 것이 최우선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