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유발하는 소유물(재산, 육체, 정신 등)의 상실 또는 죽음 이후에 부여될지 모르는 고통이 두려움의 원인으로 있을 것이다. 본디 스스로에게 소유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 또는 상실을 회피할 필요가 없다는 믿음 또는 죽음 이후에 고통이 부여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그 두려움을 잠들게 하리라.
철갤러 1(211.234)2023-12-14 09:53:00
답글
죽음 이후에 어떤 고통이 있을까요? '죽음 이후'에 부여되는 고통이라기보단 '죽음과 동시에' 또는 '죽음 직전'의 고통으로 바루는 게 마뜩해 보입니다; 그런데 제가 선원생활을 할 때 조업 중 실수로 바다에 빠진 일이 두 번이나 있어요. 게 중 한 번은 물풍sea anchor 줄에 발이 걸려 수심 십여 미터 깊이까지 딸려 갔죠. 일곱물의 거센 조류가 오히려
고독사(125.188)2023-12-14 10:58:00
답글
풍줄을 빨리 펼쳐서 운좋게 수면으로 떠올랐지만, 정말로 죽음 직전까지 갔습니다.(지금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아서 배를 십수년이나 탄 나는 바다 근처도 가지 않고 바닷속 영상조차 보기 힘들어 합니다.) 그때의 바닷속 나를 상세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바다물이 허파까지 들어차고 정신이 혼미해질 무렵 영겁인듯 찰나에 어머니 얼굴이 딱 한 번 떠오르더군요. 그리곤
고독사(125.188)2023-12-14 11:03:00
답글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며 무념무상 지경에 드는 듯했습니다. 하나님(예수님), 부처님을 단 한 번도 부르지 않았어요. 그래서 죽음이, 정확히는 죽음 직전이 정말로 고통이기만 할까는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자살할 용기는 없구요. 암튼 이것은 반드시 이러하다는 게 세상엔 존재하지 않을지도.
고독사(125.188)2023-12-14 11:07:00
답글
죽음이 반드시 고통을 수반하는 사건이지는 않습니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즉사하거나 고통을 차단하는 반응을 몸이 일으키기도 합니다. 죽음 이후에 부여될지 '모를' 고통이란 사후세계의 존재를 가정하고 구천을 떠돌거나 지옥에 떨어지는 등의 고통을 그 예시로 들 수 있겠습니다. 알 수 없지만 가정하고 기대하는 행위와 그에 따른 두려움의 발생은 가능합니다.
철갤러 2(1.227)2023-12-14 11:12:00
답글
네. 사후세계는 신 존재증명과 같은 거라서 부재 또한 증명할 수 없죠. 끄덕끄덕
고독사(125.188)2023-12-14 11:15:00
답글
211님 덕분에 기어이 낮술을 입에 대었습니다. 수심 깊이 추락한 그 때의 상흔은 아마도 평생을 갈 것 같습니다. 피한다고 피해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죠. 그런데 생각한 것보다 디시 철학 갤러리가 굉장히 수준 높군요. 맞설 수 있어서 영광이고, 고맙습니다.
고독사(125.188)2023-12-14 14:32:00
답글
211님은 쓰잘데없는 문장부호를 사용하지 않는군요. 그래서 두 번 세 번 읽어야 하겠지만, 그게 문법의 정석이고 정확한 언어 전달력입니다. 보기 좋네요.
고독사(125.188)2023-12-14 14:47:00
답글
인간의 몸으로는 정신력도 유한한 자원이므로 어떤 심리적 외상은 매우 극복하기 어렵고 극복하지 못하더라도 이상하게 여길 까닭은 없습니다. 당신의 남은 앞날이 심적 외상의 해소나 완화를 맞이하거나, 적어도 외상 후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상황을 맞닥뜨리지 않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삶에 무의미한 고통은 적을수록 좋으리라 여기는 마음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철갤러 3(211.234)2023-12-14 17:20:00
답글
그리고 어쩌면 그 상흔에서 어떠한 의미를 찾아내는 경우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담일지 모르지만, 어쩌다 보니 근래 이 장소에 들르게 되었을 뿐 언제 떠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나그네 같은 입장에 있습니다.
철갤러 3(211.234)2023-12-14 17:36:00
답글
위안과 격려의 말씀, 고맙습니다. 술 사고 안주(저녁밥 겸) 사느라 답글이 늦었습니다. 잠이 안 와서 밤새고 마신 낮술인데 결국 술이 술을 부르네요. 아무튼 서로 지나는 중에 인연되어 뜻밖의 좋은 말씀을 듣게 되어 기쁘고 또한 영광입니다. 근데 님은 객처럼 보이지 않고 제법 오랜동안 철학 커뮤니티를 맴돈 사람처럼 말씀하는 게 자연스러워요. 앞으로도 간간이
고독사(125.188)2023-12-14 18:36:00
답글
간간이 뵙시다. <=이걸 쓴 줄 알고 술을 마셨는 데, 항상 두서너 번 읽는 습관을 들여놔서 발견했습니다. 하마트면 큰 실수를(무성의한 사람이) 될 뻔 했습니다.
*ᆢ뜻밖의 좋은 말씀을 듣게 되"니"
고독사(125.188)2023-12-14 18:43:00
답글
큰 실수를 할 뻔 했습니다.
고독사(125.188)2023-12-14 18:48:00
답글
♥+across the universe
https://youtube.com/watch?v=CmlnO1EwCT4&si=oDdQmbT9NUkuvtEa
고독사(125.188)2023-12-14 19:01:00
답글
철학사를 위주로 탐구하거나 관련 커뮤니티에 입신하여 활동한 적은 없으나, 삶을 누리는 동안 삼라만상을 가리지 않고 사색하기를 즐기며 나름의 가치관을 정립하고 자연히 사색에 쓰이는 도구인 언어를 올바로 사용하고 다듬는 데에도 의식해 온 결과 그런 모습으로 비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철갤러 4(211.234)2023-12-14 19:29:00
답글
과장이거나 잘난체로 보이는 게 아니라, 지금 내겐 실제로 님(의 말씀)이 그렇게 보여요. 공부 많이 하셨군요. 생각공부에 맛들이면 정말로 헤어날 길이 없죠. 하나마나 한 소리인데, 일본의 가장 유명한(권위 있는) 칸트 전공자가 "철학이야말로 헤어날 수 없는 마약이다" 라는 상스러운 표현을 했죠. 동감합니다. 다만 중독의 나르시시즘을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고독사(125.188)2023-12-14 19:41:00
답글
철학이 실망스러운 내 존재 해소에 있어 얼만큼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으나, 철학이 메스암페타민에 버금가는 절망의 훌륭한 진통제 역할은 할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내 팔에 작대기를 꽂아 본 경험은 없지만, 나는 대구에서 가장 유명한 뽕쟁이를 내 집에 데려와 두 달 가까이 함께 살았습니다. 결국 카타르시스입니다.
고독사(125.188)2023-12-14 19:55:00
답글
스스로의 여러 면모를 긍정하는 마음 못지 않게 부정하는 마음 또한 같은 시간과 장소를 함께 거치며 오래도록 축적되어 왔으니, 이 서로 길항하는 마음들의 집합이 어느 한 쪽이 정신을 독차지하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어 주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철갤러 5(211.234)2023-12-14 19:59:00
답글
님은 철학을 하려고 태어난 사람이군요. 진중한 마음이 보이고 읽혀서 내겐 님의 답답한 문체가 오히려 멋져 보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살면 됩니다. 그리하면 저절로 어떤 생각의 절정, 분석의 끝에 다다를 겁니다. 술맛납니다. 술 좀 더 사올게요. 저녁은, 벌써 드셨겠지요?
고독사(125.188)2023-12-14 20:07:00
답글
자신에게 할당된 자원, 삶을 누리려 할 따름입니다.
철갤러 5(211.234)2023-12-14 20:11:00
답글
식사는 간단히 마친 참입니다.
철갤러 5(211.234)2023-12-14 20:11:00
답글
예, 인간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물은 운에 의해 생존이 좌지우지되는 운명론적 존재자일 뿐이죠. 다행히 100년만 버티면 다시금ㅡ신보다 위대한ㅡ아예 없음의 무한으로 복귀할 수 있으니, 존재자로서 사는 동안은 오로지 나의 쾌락만을 극대화하는 일에 몰두하십시오. 단, 우리는 도덕법칙이 옵션이 아닌 사람이니까 타인을 항상 염두에 두면서.
고독사(125.188)2023-12-14 20:48:00
답글
자신의 삶을 과장하며 드러내고픈 많은 사람이 노력과 운을 한데 묶으려 하던데, 애시당초 노력은 운(행운+불운)과 등치할 수 없습니다. 노력은 운과 전혀 별개의 사태이며, 사태성도 아닙니다. 제발 아홉 시 뉴스에 놀아나지 맙시다.
고독사(125.188)2023-12-14 21:00:00
답글
의식주는 물론이거니와 언어조차 홀로 차리지 못한 몸으로 타인과의 관계성을 등한시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자연과 인류 공동체를 향한 경의를 마음 한 켠에 품은 삶을 지내고 있습니다. 유한에서 무한으로 돌아가는 시점을 강제당하지 않는다면 보다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철갤러 6(211.234)2023-12-14 21:11:00
답글
님처럼 삶 자체를 긍정하는 사람은 보다 오래 살아야 하는데, 또 그렇지가 않죠.
고독사(125.188)2023-12-14 21:16:00
답글
https://m.youtube.com/watch?v=7xpq1qlEjl0
철갤러 6(211.234)2023-12-14 21:21:00
답글
옛날의 어떤 신비주의자는 자신이 죽을 날짜를 안 뒤로 더욱 더 삶을 긍정했다지요. 지금 님의 말씀은 지극히 칸트적 세계관이군요. 예, 나의 조건이 어떠하든 간에 사회의 훌륭한(필요한) 구성원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면 좋지요. 나는 그게 안 됩니다. 가면 갈수록 사회와의 불화는 심해지고 세상 모든 인간이 적으로밖에 보이질 않습니다.
고독사(125.188)2023-12-14 21:23:00
답글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있지만 마음먹기도 뜻대로만 되지는 않는 법입니다. 그럼에도 먹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먹으려 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철갤러 6(211.234)2023-12-14 21:30:00
답글
내가 태어나서 일곱 살까지 살던 집이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자택(내집=우리집)이었는데, 1981년, 내가 대구 시내의 국민학교에 입학한 후론 고향집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 고향집이 바로 지금의 수성학군이고 고향집을 포함한 논 열두 마지기, 밭 서른 마지기를 내가 중학교 들어가기 전에 울아부지 식구들은 다 날려 먹었죠.
고독사(125.188)2023-12-14 21:39:00
답글
예, 이제 와서 이런 말이 다 무슨 소용인가요.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말, 하려 했던 말은 일곱 살 무렵의 내가 송창식을 제법 그럴 듯하게 흉낼 내었고 특히 이 곡 가나다라마바사ᆢ를 아주 잘 불러서 부모 및 친지에게 칭찬을 받았더라던.
하긴 날려먹은 것도 아니네요. 땅을 판 그 돈으로 울고모들을 잘사는 집에 시집 보냈고 그 자식들은 하나같이 성공했으며, 울삼촌은 바라던 대기업 사장이 되었고 자식은 서울대 경제학과 탑을 끊었으니. 우리집 내 형제, 일가친척 가운데 셋방살이하는 놈은 나밖에 없습니다. 울엄마도 해외여행을 해봤는 데, 나는 원양어선을 타면서 대만 근처의 섬만 가봤을 뿐입니다.
고독사(125.188)2023-12-14 22:28:00
답글
누굴 원망하는 게 아니라 내 꼬라지가 그렇다는 겁니다. 이건ㅡ여전한ㅡ나의 철학에 대한 애정과 전혀 별개의 문제이므로, 나는 지금 횡설수설하고 있는 겁니다. 원망보다는 외로움이 더 큰 원인인 듯합니다. 이런 나의 추태를 용서해 주신다면 간간이, 세상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나의 칸트와 나의 철학적 단상으로서 그 빚을 갈음하겠습니다. 몹시 취했으므로 이제
고독사(125.188)2023-12-14 22:33:00
답글
비행기 모드로 돌입하겠습니다.
고독사(125.188)2023-12-14 22:36:00
답글
그것이 어떤 면이건 간에 우위에 있는 존재와의 비교가 삶에 의미를 불어넣는다면 비교를 반복해도 모자라지 않습니다. 인간의 육신으로는 닿을 수 없는 우위에 있는 존재를 상상하기도 합니다. 다만 자신에게 할당된 자원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철갤러 7(211.234)2023-12-14 22:42:00
답글
님 말씀처럼 니체의 권력의지는 그런 가소로운 인간세부터 자연을 넘어서 우주의 시작과 끝에 닿는 원초적 의미라고 김진석 교수는 말합니다. 공감하구요. 다만 나는 존재론적 권력의지, 곧 세계의 형식인 힘의 서열 구분 자체가 이제는 역겹기만 합니다. 그 모든 힘을 초토화할 초폭력은 아예 없음(무nothing, void) 뿐입니다.
고독사(125.188)2023-12-14 22:58:00
답글
우위에 있는 존재가 영향을 주는 존재이고 열위에 있는 존재가 영향을 받는 존재라면 인간계에서 절대 우위 존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문장이 우열관계를 가르려는 사고방식에 평온을 줄 수 있을까 합니다.
죽음이 유발하는 소유물(재산, 육체, 정신 등)의 상실 또는 죽음 이후에 부여될지 모르는 고통이 두려움의 원인으로 있을 것이다. 본디 스스로에게 소유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 또는 상실을 회피할 필요가 없다는 믿음 또는 죽음 이후에 고통이 부여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그 두려움을 잠들게 하리라.
죽음 이후에 어떤 고통이 있을까요? '죽음 이후'에 부여되는 고통이라기보단 '죽음과 동시에' 또는 '죽음 직전'의 고통으로 바루는 게 마뜩해 보입니다; 그런데 제가 선원생활을 할 때 조업 중 실수로 바다에 빠진 일이 두 번이나 있어요. 게 중 한 번은 물풍sea anchor 줄에 발이 걸려 수심 십여 미터 깊이까지 딸려 갔죠. 일곱물의 거센 조류가 오히려
풍줄을 빨리 펼쳐서 운좋게 수면으로 떠올랐지만, 정말로 죽음 직전까지 갔습니다.(지금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아서 배를 십수년이나 탄 나는 바다 근처도 가지 않고 바닷속 영상조차 보기 힘들어 합니다.) 그때의 바닷속 나를 상세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바다물이 허파까지 들어차고 정신이 혼미해질 무렵 영겁인듯 찰나에 어머니 얼굴이 딱 한 번 떠오르더군요. 그리곤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며 무념무상 지경에 드는 듯했습니다. 하나님(예수님), 부처님을 단 한 번도 부르지 않았어요. 그래서 죽음이, 정확히는 죽음 직전이 정말로 고통이기만 할까는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자살할 용기는 없구요. 암튼 이것은 반드시 이러하다는 게 세상엔 존재하지 않을지도.
죽음이 반드시 고통을 수반하는 사건이지는 않습니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즉사하거나 고통을 차단하는 반응을 몸이 일으키기도 합니다. 죽음 이후에 부여될지 '모를' 고통이란 사후세계의 존재를 가정하고 구천을 떠돌거나 지옥에 떨어지는 등의 고통을 그 예시로 들 수 있겠습니다. 알 수 없지만 가정하고 기대하는 행위와 그에 따른 두려움의 발생은 가능합니다.
네. 사후세계는 신 존재증명과 같은 거라서 부재 또한 증명할 수 없죠. 끄덕끄덕
211님 덕분에 기어이 낮술을 입에 대었습니다. 수심 깊이 추락한 그 때의 상흔은 아마도 평생을 갈 것 같습니다. 피한다고 피해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죠. 그런데 생각한 것보다 디시 철학 갤러리가 굉장히 수준 높군요. 맞설 수 있어서 영광이고, 고맙습니다.
211님은 쓰잘데없는 문장부호를 사용하지 않는군요. 그래서 두 번 세 번 읽어야 하겠지만, 그게 문법의 정석이고 정확한 언어 전달력입니다. 보기 좋네요.
인간의 몸으로는 정신력도 유한한 자원이므로 어떤 심리적 외상은 매우 극복하기 어렵고 극복하지 못하더라도 이상하게 여길 까닭은 없습니다. 당신의 남은 앞날이 심적 외상의 해소나 완화를 맞이하거나, 적어도 외상 후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상황을 맞닥뜨리지 않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삶에 무의미한 고통은 적을수록 좋으리라 여기는 마음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상흔에서 어떠한 의미를 찾아내는 경우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담일지 모르지만, 어쩌다 보니 근래 이 장소에 들르게 되었을 뿐 언제 떠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나그네 같은 입장에 있습니다.
위안과 격려의 말씀, 고맙습니다. 술 사고 안주(저녁밥 겸) 사느라 답글이 늦었습니다. 잠이 안 와서 밤새고 마신 낮술인데 결국 술이 술을 부르네요. 아무튼 서로 지나는 중에 인연되어 뜻밖의 좋은 말씀을 듣게 되어 기쁘고 또한 영광입니다. 근데 님은 객처럼 보이지 않고 제법 오랜동안 철학 커뮤니티를 맴돈 사람처럼 말씀하는 게 자연스러워요. 앞으로도 간간이
간간이 뵙시다. <=이걸 쓴 줄 알고 술을 마셨는 데, 항상 두서너 번 읽는 습관을 들여놔서 발견했습니다. 하마트면 큰 실수를(무성의한 사람이) 될 뻔 했습니다. *ᆢ뜻밖의 좋은 말씀을 듣게 되"니"
큰 실수를 할 뻔 했습니다.
♥+across the universe https://youtube.com/watch?v=CmlnO1EwCT4&si=oDdQmbT9NUkuvtEa
철학사를 위주로 탐구하거나 관련 커뮤니티에 입신하여 활동한 적은 없으나, 삶을 누리는 동안 삼라만상을 가리지 않고 사색하기를 즐기며 나름의 가치관을 정립하고 자연히 사색에 쓰이는 도구인 언어를 올바로 사용하고 다듬는 데에도 의식해 온 결과 그런 모습으로 비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과장이거나 잘난체로 보이는 게 아니라, 지금 내겐 실제로 님(의 말씀)이 그렇게 보여요. 공부 많이 하셨군요. 생각공부에 맛들이면 정말로 헤어날 길이 없죠. 하나마나 한 소리인데, 일본의 가장 유명한(권위 있는) 칸트 전공자가 "철학이야말로 헤어날 수 없는 마약이다" 라는 상스러운 표현을 했죠. 동감합니다. 다만 중독의 나르시시즘을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철학이 실망스러운 내 존재 해소에 있어 얼만큼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으나, 철학이 메스암페타민에 버금가는 절망의 훌륭한 진통제 역할은 할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내 팔에 작대기를 꽂아 본 경험은 없지만, 나는 대구에서 가장 유명한 뽕쟁이를 내 집에 데려와 두 달 가까이 함께 살았습니다. 결국 카타르시스입니다.
스스로의 여러 면모를 긍정하는 마음 못지 않게 부정하는 마음 또한 같은 시간과 장소를 함께 거치며 오래도록 축적되어 왔으니, 이 서로 길항하는 마음들의 집합이 어느 한 쪽이 정신을 독차지하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어 주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님은 철학을 하려고 태어난 사람이군요. 진중한 마음이 보이고 읽혀서 내겐 님의 답답한 문체가 오히려 멋져 보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살면 됩니다. 그리하면 저절로 어떤 생각의 절정, 분석의 끝에 다다를 겁니다. 술맛납니다. 술 좀 더 사올게요. 저녁은, 벌써 드셨겠지요?
자신에게 할당된 자원, 삶을 누리려 할 따름입니다.
식사는 간단히 마친 참입니다.
예, 인간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물은 운에 의해 생존이 좌지우지되는 운명론적 존재자일 뿐이죠. 다행히 100년만 버티면 다시금ㅡ신보다 위대한ㅡ아예 없음의 무한으로 복귀할 수 있으니, 존재자로서 사는 동안은 오로지 나의 쾌락만을 극대화하는 일에 몰두하십시오. 단, 우리는 도덕법칙이 옵션이 아닌 사람이니까 타인을 항상 염두에 두면서.
자신의 삶을 과장하며 드러내고픈 많은 사람이 노력과 운을 한데 묶으려 하던데, 애시당초 노력은 운(행운+불운)과 등치할 수 없습니다. 노력은 운과 전혀 별개의 사태이며, 사태성도 아닙니다. 제발 아홉 시 뉴스에 놀아나지 맙시다.
의식주는 물론이거니와 언어조차 홀로 차리지 못한 몸으로 타인과의 관계성을 등한시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자연과 인류 공동체를 향한 경의를 마음 한 켠에 품은 삶을 지내고 있습니다. 유한에서 무한으로 돌아가는 시점을 강제당하지 않는다면 보다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님처럼 삶 자체를 긍정하는 사람은 보다 오래 살아야 하는데, 또 그렇지가 않죠.
https://m.youtube.com/watch?v=7xpq1qlEjl0
옛날의 어떤 신비주의자는 자신이 죽을 날짜를 안 뒤로 더욱 더 삶을 긍정했다지요. 지금 님의 말씀은 지극히 칸트적 세계관이군요. 예, 나의 조건이 어떠하든 간에 사회의 훌륭한(필요한) 구성원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면 좋지요. 나는 그게 안 됩니다. 가면 갈수록 사회와의 불화는 심해지고 세상 모든 인간이 적으로밖에 보이질 않습니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있지만 마음먹기도 뜻대로만 되지는 않는 법입니다. 그럼에도 먹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먹으려 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내가 태어나서 일곱 살까지 살던 집이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자택(내집=우리집)이었는데, 1981년, 내가 대구 시내의 국민학교에 입학한 후론 고향집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 고향집이 바로 지금의 수성학군이고 고향집을 포함한 논 열두 마지기, 밭 서른 마지기를 내가 중학교 들어가기 전에 울아부지 식구들은 다 날려 먹었죠.
예, 이제 와서 이런 말이 다 무슨 소용인가요.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말, 하려 했던 말은 일곱 살 무렵의 내가 송창식을 제법 그럴 듯하게 흉낼 내었고 특히 이 곡 가나다라마바사ᆢ를 아주 잘 불러서 부모 및 친지에게 칭찬을 받았더라던.
담배사러 갑니다 https://youtube.com/watch?v=0PTp7ZXvVCU&si=2EZ7BbIdJUEI5ewS
하긴 날려먹은 것도 아니네요. 땅을 판 그 돈으로 울고모들을 잘사는 집에 시집 보냈고 그 자식들은 하나같이 성공했으며, 울삼촌은 바라던 대기업 사장이 되었고 자식은 서울대 경제학과 탑을 끊었으니. 우리집 내 형제, 일가친척 가운데 셋방살이하는 놈은 나밖에 없습니다. 울엄마도 해외여행을 해봤는 데, 나는 원양어선을 타면서 대만 근처의 섬만 가봤을 뿐입니다.
누굴 원망하는 게 아니라 내 꼬라지가 그렇다는 겁니다. 이건ㅡ여전한ㅡ나의 철학에 대한 애정과 전혀 별개의 문제이므로, 나는 지금 횡설수설하고 있는 겁니다. 원망보다는 외로움이 더 큰 원인인 듯합니다. 이런 나의 추태를 용서해 주신다면 간간이, 세상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나의 칸트와 나의 철학적 단상으로서 그 빚을 갈음하겠습니다. 몹시 취했으므로 이제
비행기 모드로 돌입하겠습니다.
그것이 어떤 면이건 간에 우위에 있는 존재와의 비교가 삶에 의미를 불어넣는다면 비교를 반복해도 모자라지 않습니다. 인간의 육신으로는 닿을 수 없는 우위에 있는 존재를 상상하기도 합니다. 다만 자신에게 할당된 자원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님 말씀처럼 니체의 권력의지는 그런 가소로운 인간세부터 자연을 넘어서 우주의 시작과 끝에 닿는 원초적 의미라고 김진석 교수는 말합니다. 공감하구요. 다만 나는 존재론적 권력의지, 곧 세계의 형식인 힘의 서열 구분 자체가 이제는 역겹기만 합니다. 그 모든 힘을 초토화할 초폭력은 아예 없음(무nothing, void) 뿐입니다.
우위에 있는 존재가 영향을 주는 존재이고 열위에 있는 존재가 영향을 받는 존재라면 인간계에서 절대 우위 존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문장이 우열관계를 가르려는 사고방식에 평온을 줄 수 있을까 합니다.
굿!
잘게요 ♥+용을 밟아 누르는 천둥을 상상하겠다 https://youtube.com/watch?v=p5TGgp8t440&si=OgOJX-M8QZla_ELT
상상이죠 상상 자체가 두렵게 만드는거죠.
예, 아마도.
♥+the less I know the better, tame impala https://youtube.com/watch?v=2SUwOgmvzK4&si=70nnBAfq0EEzgrHh
♥+overdrive, post malone https://youtube.com/watch?v=-eT8_6LnRdQ&si=KrVJGJNOsXOSNH9v
♥+cause im a man https://youtube.com/watch?v=hefh9dFnChY&si=3u2dKRUhu3AGcO68
♥+something real https://youtube.com/watch?v=wkCpiFc2olE&si=7bkiL3nEtCfx8tG8
♥+mannequin https://youtube.com/watch?v=OUXsXQ359pk&si=DTkYlAgMgQ9tsElk
♥+don wanna miss a thing https://youtube.com/watch?v=Us3cGQs0Q8A&si=f0aQ2Sp1P3zxKSn2
말을 하지 말고 생각을 하라고 이 병신새끼들아!!!!!!!!!!!!!!!!!!!!!!!
말이 철학함의 시작이고, 게 중 보다 정교한 말이 곧 철학의 전부입니다.
*대상과 현상에 관한v '보다 정교한 말.'
**우리는 대상과 현상을 말로밖에(몸짓도 말이다) 표현할 수 없고, 말(언어)로써 형상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