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지적인 흐름을 보면 혐오를 무조건 악마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야 말로 인류 전체에 대한 비생산적 혐오이지 않은가?
왜냐면 누구나 합리적이든 비합리적이든 무언갈 혐오한적이 있기 때문이지
사실 혐오란 게 반드시 나쁜 게 아님.
불쾌의 골짜기란 것이 존재하듯 인간은 생존을 불리하게 하는 것들(시체, 선사시대 경쟁 대상인 다른 인류 종, 생산활동 없이 소비만 하는 기형아)에 대한 혐오를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음.
즉 혐오는 생존을 위해 파괴하거나 기피해야 할 무언가에 대해 자연스럽게 가지는 감정임.
그러나 모든 진화의 산물이 반드시 최고의 결과를 낳지 않듯 그러한 감정의 대상이 반드시 사회에 도움이 안되고 쓸데 없으리란 보장은 없는 법이지
이건 실제 역사에서도 수 없이 많은 사례를 찾을 수 있음
그러나 혐오받아도 마땅한 것들에 대해선 반드시 혐오가 필요함.
인류가 질병을 혐오하지 않고 되는 대로 살았다면 의학이 발전됐을까?
2차대전의 원인을 제공한 나치즘을 증오하는 정서가 미국에 없었다면 2차대전이 독일의 승리가 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혐오 자체를 부정하기보단 그것의 방향과 세기를 합리화하고 불필요한 혐오를 합리적으로 제거하는 게 옳지 않을까?
혐오일반을 없애려고 하는 건 우리 몸에서 염증을 일으키는 기전을 아예 없애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그 경우 항원들이 우리 몸을 지배하여 바이러스 천국, 세균천국이 됨이 자명함
그 대표적인 예시가 유럽이라고 본다
- dc official App
"미국은 나치즘을 혐오한 것이 아니라, 나치즘의 구체적인 행동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참전하고 정당성을 획득한 것입니다. 자유와 평등을 기반으로 세워진 공화국이 그것과 정반대의 사상에 대해 자기의 사상적 생존에 불리한것으로 판단하지 않을 근거는 없거니와 실제로 미국인들은 나치즘을 혐오하고 증오했네. 그 예시가 바로 미국이 독일에게 저지른 학살이고 이래도 미국인들이 나치즘을 혐오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하겠나? 참고로 나는 이것 또한 자네처럼 혐오를 혐오하다가 저지른 만행이라고 보고 있네 - dc App
그리고 원시시대에 무리에 부담이 되는 구성원을 혐오하여 배제시켰다는 것은 근거가 있을까요? 그리고 그러한 근거없는 배제를 한 그룹이 약한 개체를 잘 챙겨서 신뢰를 형성하는 그룹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나요? 호모 에렉투스 이후 인간의 석기는 놀랍도록 발전하여 과거에 비해 더 큰 사냥감을 사냥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사냥시 부상이 흔했고요. 그래서 화석으로 보면 골절이 유합된 화석이 많이 나옵니다. 그것은 골절상을 입은 개체를 치료해서 살아 있을 때 뼈를 낫게 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자네는 혐오 그자체는 가져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거지? 반면 나는 그릇된 혐오를 가지면 안된다는 쪽이고?.. 그리고 혐오가 긍정적인 가치를 가지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건 그냥 선입관이 아닌가? - dc App
"혐오에 대한 정의나 사회적 합의는 명확합니다" 난 혐오의 사회적 정의와는 약간 다른 정의를 사용했는데 그 부분이 의사소통에 문제가 된 것 같군 - dc App
근거야 충분하지 우리의 진화적 산물인 혐오가 현대에도 남아있는 것을 보면 이미 원시시대 때부터 있었던 것이 자명하지. 그리고 생존에 방해가 되는 개체를 제외하려는 본능인 이미 현대에서도 나타나고 있지 않나? 흔하게 일어나는 사실을 도덕적 잣대에 따라 부정하지 말게 그리고 생존에 문제가 됨은 단순 강약의 문제가 아닐 뿐더러 약자라고 하더라도 생존에 도움이 되면 혐오는 생지기 않아. 약한 것과 생존에 방해됨은 어느정도 독립변수일텐데 고정관념 때문에 약함을 반드시 생존에 불리함으로 해석하지 않은겐가? 또한 부상자에 대해서는 회복하면 앞으로 도움이 될테니 혐오하여 배제하지 않고 미래의 이득을 위해 회복될 때까지 기다렸다는 반론이 가능하네만.. - dc App
아홉본째 문장을 언급했는데 혐오를 받아야 할 건 '악'이지 악이 아닌 감정일 뿐인 혐오가 아니야. 그러므로 내 주장이 모순됐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내 주장을 주의깊게 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일 반론의 차원에서 썼다면.. - dc App
토론 즐거웠네 난 삼겹살을 먹으러 가보겠네. 다음에도 같이 유의미한 의견을 나누자고! - dc App
제가 혐오를 싫어하는 이유는 그게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혐오가 발생하는 기전의 기저에는 나르시시즘이 있습니다. 나에게 피해를 입히는 자를 싫어하는 것은 혐오가 아닌 자연스러운 싫음의 감정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근거없는(이유없는) 싫음의 감정, 즉 혐오가 발생하는 것은 그러한 혐오가 있어야만 내가, 내 처지가 합리화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결코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치가 그토록 유대인을 혐오한 것은 내가(독일인이) 이렇게 된 것은 유대인 때문이야, 내 잘못 아니야 라고 말하고 싶은 나르시시즘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싫음과 혐오의 심리적 기전이, 뿌리가 다른 것입니다.
점심 맛있게 드세요.
음 하지만 생각해보게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상태가 아니라면 어찌하여 존재하는 건가? 파써넥스는 말했네 악하게 태어났지만 선함을 지향하는 게 선하게 태어났지만 타락하는 것보다 숭고하다고 자신이 악의 가능성을 타고 태어났다는 것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가진 악의 가능성과 투쟁하는 게 악을 몰아낼 진정한 방법이 아닐까? 자신이 가진 악의 가능성을 증오하고 부정하다간 더큰 악을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 dc App
음 차분하게 선과 악에 대한 제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어요. 먼저 선과 악에 대해서 말하려고 한다면 세상엔 두가지 관점이 있다는 것을 먼저 짚어보고 싶습니다. 하나는 가치지향적 관점, 또 하나는 가치중립적 관점입니다. 아마 알고 계실 수도 있지만 차분하게 말하려고 합니다. 가치지향적 관점은 말 그대로 가치를 담고 있는 판단준거입니다. 어떤 것이 바람직하다, 바람직하지 않다는 관점이죠. 가장 대표적으로 도덕을 꼽을 수 있어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과 바람직하지 않은 것에 대한 판단을 하고 사람을 사회화 시켜서 행위에 대한 내적 강제를 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도덕은 절대적이지 않아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지 않고 시대와 장소에 따라 바뀌는 것이죠
그와 반대로 가치중립적 관점은 바람직하고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옳고 틀림을 구분하는 준거입니다. 가치지향적인 관점처럼 스펙트럼화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선이 있고 그 선을 넘었는지 아닌지를 보는 것이죠. 대부분 법과 관련이 있고, 권리분석에 대한 개념입니다. 범죄 혹은 권리 침해의 요건을 명확하게 하고 그 요건을 충족시켰는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으로 외적 강제력을 가지고 있죠.
선과 악은 도덕적 개념입니다. 선과 악은 상대적인 것이기도 하며 악하다고 해도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면 강제할 수가 없죠. 뿐만아니라 돼지고기를 먹는 것은 이슬람에서는 악이지만 그 외의 사회에서는 악이 아니죠. 결국 선악은 가치중립적이며, 객관적이라기 보다는 가치지향적이며 주관적인 개념입니다. 그러한 선과 악에 대한 입장은 본인이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그게 사상의 자유고, 종교의 자유며, 양심의 자유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러한 자신만의 판단을 표현하는데는 문제가 달라집니다. 표현의 자유는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보다는 더 엄격한 잣대가 필요합니다. 타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죠.
혐오든 뭐든 자기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판단도 어렵고, 누가 뭐라고 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집단화 되고, 밖으로 표출이 되고, 여론이 되어 간다면 그 사회는 병드는 것입니다. 사람의 두려움이나 분노는 구체적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단지 출신이나 타고난 것을 이유로 뭉뚱거려져서 다뤄지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혐오입니다. 가치 지향적인 이유로 가치 중립적인 권리 침해까지 이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아침에 전장연이 지하철에서 시위를 한다고 합시다. 그 시위 현장에 있지도 않았지만 그 시위에 대해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댓글로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혐오입니다. 다른 것으로 설명이 안됩니다. 반면에 그 시위에 잡혀서 출근이 늦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현장에서 화를 내거나 욕을 합니다. 이것은 분노입니다. 불법의 여지가 있든 없든 헌법적으로 집회, 결사의 자유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내가 그 시위 때문에 내 권리를 침해받았다면 그 분노는 정당하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단지 주관적인 편견 때문에 타인의 권리를 부정한다면 그것은 정당하다고 볼 수 없으며 그게 바로 혐오라고 할 것입니다.
글을 차분히 읽어봤는데 같은 말을 반복하는 거랑 불필요하게 글이 길어지는 게 문제인 것 같아 한마디로 요약 가능한데 일부러 부풀리는 것 같아 그냥 양보할 수 없는 가치중립적 절대 인권을 가치지향적 혐오가 침해해서는 안된다로 요약가능할 것을 빙빙둘러서 이야기 하는 느낌이야 그리고 너가 쓴 글을 봤는데 상대방의 글을 잘못이해하고 동문서답하는 경향도 있어보여 가치지향적인 사상이나 감정이 합리적 이유 없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데엔 나도 동의 해 - dc App
아 죄송합니다. 늘어서 그런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늙어서
아 그리고 가치중립적인 권리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이지? 흥미로운 단어라서 알고 싶군 - dc App
'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궁금하면 한번 보세요. 아주 통찰력이 있는 책은 아닌데 재미는 있습니다.
그래서 그게 뭔지 설명을 해주게 - dc App
법적으로 객관적으로 보호받는 개인의 권리 입니다.
혐오, 두려움, 저항은 모두 거부감에서 기인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혐오는 주로 임의의 것에 대한 배제 또는 기피 태도를 유발하는 마음, 두려움은 주로 배제하기 어려운 것에 대한 기피 태도를 유발하는 마음, 저항은 주로 자신을 향하는 압력에 대한 반발의 성질을 지닌 배제 태도로 설명할 수 있다. 배제 및 기피는 거부적 행위에 해당한다.
어떤 혐오가 금기시되는 이유가 정해진 의무나 권리를 불이행하거나 침해하는 등의 정당하지 않은 거부적 행위이기 때문이라면 혐오 태도만이 아니라 공포 태도와 저항 태도도 충분히 금기시될 수 있다. 금기의 기준은 행위의 형태보다 행위의 정당성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4 "두려울 때 피하기만 한다는 말의 근거가 있을까요?" 두렵지만 저항하는 것이지 두렵기에 저항하는 것은 없네. 기본적으로 투쟁 대상에 대한 싫어함 즉 혐오나 증오가 있어야 싸울 생각이 드는 것이지 자네의 말대로 두려움이란 건 저항에 있어서 오히려 불필요한 감정이란 것이지. 수 많은 독재자들이 두려움을 무기로 사용했는데 만일 저항에 필요한 감정이 두려움이라면 왜 수많은 압제자들이 두려움을 저항을 없애는 무기로 사용했겠는가? - dc App
외상사절 - dc App
다른혐오는 모르겠는데 지금의 여혐은 순수하게 악마적임 왜냐하면 이유없이 생겨난 혐오이기때문
단순 여혐은 저 포도는 신 포도야 딱 이정도 수준의 혐오라고 봄 - dc App
다들 혐오를 현명하게 이용해서 생겨난 존재들이져? - dc App
그런 질문이야 말로 어리석은 혐오의 이용이라고 보네 - dc App
현명함과 어리석음은 너(나)는 되고 나(너)는 안되는 것 같은 것이다 라는 하나마나한 소리 길게 감사합니다 - dc App
근데 방금 너가 한 지적에도 그런 소리가 가능한 거 같은데.. 오류가 있어서 다시 달았네♡ - dc App
'혐오를 무조건 악마화'를 '혐오라면 무조건=모든 혐오' 및 '악마화=혐오시'로 해석할 경우 곧 '모든 혐오에 대한 혐오'인데 이는 모순된 논리이다. 따라서 해당 명제에는 혐오할 혐오에 대한 조건이 붙어야 한다.
조건을 '이 혐오를 제외한 불특정한 모든 혐오'로 가정할 수 있다. 그러나 혐오주의 반대론자가 병충해에 대한 혐오의 중단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반례를 제시함으로써 참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다. 따라서 악마화되는 혐오는 어떤 특정성을 가지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본문에 그 특정한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 및 해당 조건의 비합리성과 불필요성의 증명이 포함되어야만 본문의 논리가 완성될 수 있겠다.
날카로운 지적 고맙다 그러나 혐오와 악마화는 같은 게 아니다. 혐오는 일종의 감정상태이고 악마화는 비합리적이든 합리적이든 어떤 대상을 악의 축으로 규정함을 뜻함 그리고 혐오=악마화 라고 생각해도 본문에서 말했듯 내 생각이 아닌 그들의 생각임으로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건 글쓴이가 아니라 그들이 아닐까? - dc App
선이 곧 호의 가치이고 악이 곧 불호의 가치라면 악으로 취급하는 행위는 곧 혐오하는 행위라고 간주할 수 있겠다. 본문의 '혐오'를 감정이라는 분류로 제한하여 해석한다면 '혐오감에 대한 무조건적인 혐오감'이 되며 이 해석 역시 모순적이다. 따라서 '특정 대상에 대한'이라는 조건은 모순을 제거하기 위해 불가결하겠다.
'그들이 혐오를 무조건 악마화하고 있다'는 주장은 그들의 주장이 아닌 본문의 주장에 해당한다.
즉 너의 논리대로라면 악마화는 무언갈 불호임을 표명함으로 혐오와 같은 거라고 보는 거지? 그러나 내가 말했듯 악마화는 무언갈 악마로 규정함을 뜻한다. 즉 혐오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감정이고 악마화는 그 감정을 기반으로 의식적으로 악마라고 규정하는 것이지 이 숨은 논리를 찾지 못하고 단순 감정의 흐름만 집어 내서 혐오=악마화 라고 파악한 건 안타깝네 - dc App
그리고 난 '경향성이 있음'을 입증하기만 하면 됨. 왜냐면 난 주장의 존재가 있음을 주장했지 모든 혐오는 악마화해야 된다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니 - dc App
예시를 원하면 말해줄게. 할리퀸 어린선은 매우 심각한 피부 변형을 가지게 되는 유전질환임.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본능에 의해 그런 기형아들에게서 혐오를 느낄지언정 그 혐오란 감정은 그들을 괴물이라느니 신의 저주를 받앋다느니 하는 규정과는 구분될. 수 있음 - dc App
그리고 부차적인 반박도 예시를 들어볼게 만일 내가 중세 시대 때 신이 존재한다는 주장이 있음을 주장한다면 난 신이 존재한다는 근거와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는 걸까? 그냥 몇 장의 신학 논문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 dc App
어떤 주장을 펼치는 측에서 용어의 개념을 별도로 정의하지 않는 한 용어의 해석은 사전적 의미와 사회 통념에 준하여 해석한다. '혐오', '악', '-화', '불호'의 의미와 '악마'에 대한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가치를 참고할 필요가 있겠다.
그리따지면 혐오를 단순 호불호의 문제로 본 너도 잘못된 것이 아닐까? 사전적 정의와는 많이 다른데 너는 되고 나는 안되는 건 아니겠지? 그리고 상대와 토론 할 땐 상대방이 정의한 개념들과 그것들 사이의 모순을 지적해야지 상대방을 이기는 거란다 사전적 의미를 운운하면서 일치하지 않는다는 건 상대방이 제시한 개념 채계에 모순을 찾지 못했음을 뜻함 또한 많은 철학자들이 사전적 정의만을 따라서 자신의 철학을 전개하지도 않음. 칸트만봐도 초월을 사전적 의미 그대로 쓰진 않음 그리고 사전적 의미로봐도 혐오화 악마화는 구분된다 게이야.. - dc App
혐오와 악마화는 - dc App
혐오행위란 혐오감에 기반한 행위이다. 당신의 정의대로라면 악마화는 혐오감을 기반으로 한 규정이다. 규정은 정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정한다는 동사, 즉 행위이다. 따라서 규정함은 필연적으로 행위를 내포한다. 당신의 정의에 따라 악마화가 혐오행위에 해당함이 증명되었다. 이에 악으로 취급하는 행위는 혐오하는 행위라는 논리에 모순이 없음을 선언한다.
위 증명에 따라 당신의 예시는 가치를 잃는다. 그러나 예시의 논리적 결핍 역시 지적하고자 한다. 혐오감이 반드시 혐오행위를 수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예시의 규정 등 혐오행위는 혐오감을 전제한다. 즉 혐오행위로부터 혐오감을 구분지을 수 없다.
물론 혐오감으로부터 혐오행위를 구분지을 수는 있다. 다만 감정, 특히 타인의 내적 감정이라는 것은 추상적인 개념이기에 현실적으로 그 분별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외적 행위, 즉 표상이 관측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타인에 의해 악마화될 수 있는 혐오는 그 행위가 전제되었다고 해석됨이 현실적으로 타당하다. 감정만을 표적하는 논리의 전개는 실현성이 결여되었다.
다음 예시의 논리적 결핍을 지적하고자 한다. 경향은 '현상이나 사상, 행동 따위가 어떤 방향으로 기울어짐.'을 뜻한다. '집단 내에서 어떤 주장이 존재한다.'와 '집단 내에서 어떤 주장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동일한 주장이 아니다. 당신의 예시는 전자를 증명하기에 충분하지만 후자를 증명하기에 불충분하다. 기울어짐의 근거가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불호는 '좋아하지 아니함. 또는 미워함.'을 뜻한다. 혐오는 '싫어하고 미워함.'을 뜻한다. 사전적 정의로 해석할 때 모순은 발생하지 않는다. 당신이 정의한 개념에 따라 증명을 선언했다. 사전적 정의와 차별화될 정도의 설명과 비유, 맥락등이 본문에는 충분히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된다.
악은 '인간의 도덕적 기준에 어긋나 나쁨.'을 뜻한다. 나쁘다는 '좋지 아니하다.'를 뜻한다. 악마가 악을 상징한다는 통념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악마화를 혐오로 분류 가능함을 부정할 수 없다.
1 "혐오행위란 혐오감에 기반한 행위이다. 당신의 정의대로라면 악마화는 혐오감을 기반으로 한 규정이다. 규정은 정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정한다는 동사, 즉 행위이다. 따라서 규정함은 필연적으로 행위를 내포한다. 당신의 정의에 따라 악마화가 혐오행위에 해당함이 증명되었다." 당연한 것을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음. 오히려 글을 읽는데 너무 난잡한 기분이었다
2 "이에 악으로 취급하는 행위는 혐오하는 행위라는 논리에 모순이 없음을 선언한다."우리의 친구는 은근 슬쩍 단어를 바꿔쳤지만 쉽게 간파할 수 있네결론부터 말하지 악마화는 혐오행위가 맞네 하지만 혐오 그 자체는 아니야악마화란, 의지적으로 하는 혐오 행위는 그것의 원천인 비의지적 감정 즉 혐오감와 구분될 수 있다는 게 내 논리였지 악마화가 혐오행위가 아니라고 주장한적 자체가 없어이 둘의 차잇점은 비의지적이냐 의지적이냐 였고 핵심은 이것이었지. 이것이 언급 안된 것만 보더라도 자네가 내 주장을 대충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네결국 자네는 나를 "악마화는 혐오행위가 아니다" 라고 한 허수아비로 만들어 그에 대한 반론을 이어나가고 있는 거야나는 애초에 악마화를 규정 즉 행위라고 했었어.
2-2 "위 증명에 따라 당신의 예시는 가치를 잃는다."그러니까 "악마화는 혐오행위다"라는 증명이 할리퀸 어린선을 앓은 아이에 대한 혐오감과 그것을 전제하여 언어폭력으로서 부당하게 악마로 규정하는 것은 구분된다는 예시에 어떤 타격을 줄 수 있지?그러니까 감정과 행위의 구분을 "악마화는 혐오행위다" 라는 증명 하나만으로 어떻게 부술 수 있다는 거지?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궁금하네..그러니까 저 증명으로 혐오감을 느끼는 건 비자발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고 악마화를 하는게 자발적이고 의지적이라는 게 내 주장에 대한 반박이라는 거지?아니면 그냥 생각을 정리한 것으로 알겠다
3 "그러나 예시의 논리적 결핍 역시 지적하고자 한다. 혐오감이 반드시 혐오행위를 수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예시의 규정 등 혐오행위는 혐오감을 전제한다. 즉 혐오행위로부터 혐오감을 구분지을 수 없다." 혐오행위가 혐오감을 전제했기에 혐오행위는 혐오감과 구분지을 수 없다는 건 틀린 생각이야 그리 따지면 부모를 전제하는 자식은 부모와 구분지을 수 없게 되거든. 너가 시간적인 인과 관계를 밴다이어 그램식 포함관계나 귀납법, 연역법 이런 걸로 본 것 같네
4 "물론 혐오감으로부터 혐오행위를 구분지을 수는 있다." ? "혐오행위로부터 혐오감을 구분지을 수 없다" 라고 전문단에 말해서 좀 혼란이 오는데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이후 문단에서 후술 하리라 믿겠다
5 "다만 감정, 특히 타인의 내적 감정이라는 것은 추상적인 개념이기에 현실적으로 그 분별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외적 행위, 즉 표상이 관측될 필요가 있다." 너무 당연한 말이기에 필요 없는 말이겠지?
6 "따라서 타인에 의해 악마화될 수 있는 혐오는 그 행위가 전제되었다고 해석됨이 현실적으로 타당하다." 동어반복
7 "감정만을 표적하는 논리의 전개는 실현성이 결여되었다." 그리 따지자면 심리학의 상담도구들은 실현성이 없는 것일까? 감정만을 표적하는 논리가 심리학에서부터 인지과학, 신경과학에 걸쳐서 넓게 포진되어 있는데 내 논리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느라 의도치 않게 학문들을 무시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인간의 감정을 연구하고 그것에 기반하여 인간의 올바르지 않음과 정신질환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현실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이건 그냥 너의 고정관념일뿐인 것 같다
8 "다음 예시의 논리적 결핍을 지적하고자 한다. 경향은 '현상이나 사상, 행동 따위가 어떤 방향으로 기울어짐.'을 뜻한다. '집단 내에서 어떤 주장이 존재한다.'와 '집단 내에서 어떤 주장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동일한 주장이 아니다. 당신의 예시는 전자를 증명하기에 충분하지만 후자를 증명하기에 불충분하다. 기울어짐의 근거가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이거는 맞는 지적이라고 봐. 근데 근거가 없다면 "집단 내에서 어떤 주장이 존재한다" 이것도 증명불가능 아닐까?
9 "불호는 '좋아하지 아니함. 또는 미워함.'을 뜻한다. 혐오는 '싫어하고 미워함.'을 뜻한다. 사전적 정의로 해석할 때 모순은 발생하지 않는다."분명 너는 단어를 선택할 때 사회적으로 약속된 사전적 정의를 써야 한다고 했어 그에 대해 난 사전적으로 봤을 때 너의 혐오에 대한 정의는 부적절하다고 했지자 그럼 왜 그런지 살펴볼까?너는 "선이 곧 호의 가치이고 악이 곧 불호의 가치라면 악으로 취급하는 행위는 곧 혐오하는 행위라고 간주할 수 있겠다." 라고 했음(애초에 여기서 불호가 어떻게 악일 수 있냐는 상식적인 반론이 가능하다..그정도로 허술하게 쓰인건 인정하겠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악으로 취급하는 건 아니니깐)불호=안좋아함(a) or 미워함(b)혐오=싫어함(b) (여기서 안좋아함과
10 "당신이 정의한 개념에 따라 증명을 선언했다." 번역체로 글쓰면 가독성 떨어짐.
11 "사전적 정의와 차별화될 정도의 설명과 비유, 맥락등이 본문에는 충분히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된다." 이거는 너의 개인적인 느낌일뿐이고 사전적 맥락과 충분히 다르다고 느끼는 것도 내 기분일 뿐임으로 논외로 하자
12 "악은 '인간의도덕적기준에어긋나나쁨.'을 뜻한다.복붙했으면 띄어쓰기 해주셈 가끔 복붙하면 띄어쓰기가 반영 안되는 경우가 있음이것은 너의 뇌피셜에 불과함 선과 악의 가치도 그냥 근시안적으로 바라본거임현실에서 도덕원칙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면 인간의 도덕적 기준이란 건 서로 모순될 수도 있는 거임예를 들면 호주에서는 거미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불법이고 사람들도 충분히 악이라고 생각함 왜냐면 호주에서 거미는 위험한 동물이라 아이들이 친근감을 느끼다간 다칠 수 있기 때문임반면 그 이외의 국가들에선 거미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건 악이 아님.즉 어느 한 행위가 상호 모순적인 윤리체계들 사이에서 '선이냐 악이냐'가 갈릴 수 있는데 어떻게 단순히 도덕적 기준에 어긋났다고 해서 악이라고 할
13 "나쁘다는 '좋지아니하다.'를 뜻한다." 우리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돌산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요
14 "악마가 악을 상징한다는 통념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악마화를 혐오로 분류 가능함을 부정할 수 없다." 일부러 알아듣기 힘들게 쓴 것 같은데 간단하게 써주셈 어렵게 말하는 거 자체가 뭔가 좀 그렇다
지금 보니까 오타랑 문단 나누는게 좀 그렇다..ㅋㅋ 미안해..
9 보론
미워함은 구분됨 왜냐면 싫어하지도 좋지도 않은 낯선 사람을 상정할 수 있기 때문)네 주장대로라면 불호한다는 것은 곧 혐오한다는 것인데 혐오는 불호의 조건을 충족하지만 b가 아닌 a가 존재하기 때문에 '혐오를 단순히 호불호의 문제로 정의 내린 건 부적절'이란 내 지적은 타당한 것이됨.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이라면 어느 부분이 잘못되었다고 알려주길 바래뿐만 아니라 논리철학적으로 봐도 두 조건은 완전히 같지 않은 유종관계 때문에 사전적 의미에서 서로가 서로를 정의할 수 가 없음즉 = 관계가 안된다는 거지거기다가 국어적인 차원에서도 두 어휘는 서로 다른 뉘앙스를 가짐. 난 이부분을 지적하고 싶은 거임
(12 보론) 악이라고 할 수 있겠음? 뿐만 아니라 기존의 도덕적 가치에서 '선'이었던 행위였지만 현대의 경험과학에 의해 피해만 끼치고 전혀 도움이 안돼어 '악'으로 판명난 행위들이 너무 많기에 선과 악을 단순 도덕적 기준을 어기고 말고의 기준으로 삼는 건 부적절함.
(2 보론) 결국 넌 내가 한말을 그대로 배껴써서 내 말을 반박하고 있다는 착각을 한것이지 애초에 내 주장이 감정과 행위의 구분이었다는 걸 알았으면 이런 무의미한 동어반복을 피할 수 있었을텐데
당연한 것을 짧게 설명했더니 이해하지 못하여 길게 풀어 설명하였다. 댓글을 다시 읽으면 단어를 바꿔친 적 없이 이전에 제시했던 문장을 그대로 옮겼음을 확인할 수 있겠다. 구분이라는 용어는 당신이 사용한 구분의 용법대로 분리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혐오행위'의 피상적인 형태는 시간적인 인과관계로써 혐오 자체와 분리할 수 있겠지만 그 순간 그것은 혐오라는 개념으로 상징할 수 없는 그냥 '행위'에 불과하게 된다. '혐오행위'가 '혐오행위'로 상징될 수 있으려면 혐오감을 전제, 즉 혐오의 성질을 내포하고 있어야 성립된다. 자식의 존재를 긍정하면서 부모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
혐오행위를 긍정하면서 혐오감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 즉 혐오행위는 혐오감의 존재를 긍정하는 바, 모든 혐오감을 부정하는 동시에 어떤 혐오감을 긍정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고 시작부터 지금까지 핵심 논점은 이에 변함없다.
여전히 '혐오를 무조건 악마화'라는 논리가 곧 '모든 혐오에 대한 혐오'라는 논리를 내포하는 명제라는 추론에는 어떠한 모순도 발견할 수 없다. 처음의 댓글에서 완결된 논리를 혐오와 악마화는 구분된다는 논리로 호도하려던 시도도 악마화로부터 혐오만을 구분, 즉 분리할 수 없음으로 무산되었다.
당연한 말과 동어반복을 다른 접근으로 계속하는 것은 당신이 그 당연한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에 다름없다. 심리학 등의 학문이 표상의 관측과 해석을 전혀 거치지 않고 심상만을 표적한다는 주장은 스스로 숙고하기를 권한다. 이조차 가르침을 줄 의무는 없다.
당신에게 근거 능력을 분별할 수 있는 정도의 인지력까지 결여되었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겠다. 번역체의 기준도 잘 모르겠지만 표준 문법 체계에 어긋나는 문장도 아니다.
악마화는 혐오의 집합에 포함된다는 말이다. 여전히 알아듣기 힘들다면 이보다 명확히 설명하기 어렵다. 혐오가 불호의 집합에 포함되는 관계이므로 해석에 논리적 모순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처음 댓글이 논리적 무결성을 지녔다면 동어반복을 발생시키는 원인은 당신에게 있다.
1 "당연한 것을 짧게 설명했더니 이해하지 못하여 길게 풀어 설명하였다. 댓글을 다시 읽으면 단어를 바꿔친 적 없이 이전에 제시했던 문장을 그대로 옮겼음을 확인할 수 있겠다. 구분이라는 용어는 당신이 사용한 구분의 용법대로 분리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니까 니가 사용한 말에 대해서는 단어를 바꾸어 친 적이 없는데 나는 "혐오는 일종의 감정상태이고 악마화는 비합리적이든 합리적이든 어떤 대상을 악의 축으로 규정함을 뜻함" 라고 했음 난 감정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행위에 대해 말하니까 내 말을 바꾸어 쳤다는 거지.
2 "'혐오행위'의 피상적인 형태는 시간적인 인과관계로써 혐오 자체와 분리할 수 있겠지만 그 순간 그것은 혐오라는 개념으로 상징할 수 없는 그냥 '행위'에 불과하게 된다. 왜 단순 행위임? 마찬가지로 그냥 너의 느낌아님? 근거를 제시해줬으면 좋겠어 시간적 인과관계가 있다면 전제가 되는 감정과 분리된 하나의 행위일 리가 없음.니 논리대로라면 살인행위는 살인동기와 밸도의 행위에 불과한 거임?경찰 수사에서도 그러진 않을텐데"'혐오행위'가 '혐오행위'로 상징될 수 있으려면 혐오감을 전제, 즉 혐오의 성질을 내포하고 있어야 성립된다. 자식의 존재를 긍정하면서 부모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이것도 그냥 같은 말 반복하면서 엉뚱한 방향으로 논의를 전개하는 거임 이 문장이 없어도 니 뜻을 알 수 있겠어
3 "혐오행위를 긍정하면서 혐오감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 즉 혐오행위는 혐오감의 존재를 긍정하는 바, 모든 혐오감을 부정하는 동시에 어떤 혐오감을 긍정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고 시작부터 지금까지 핵심 논점은 이에 변함없다." 난 너보다 먼저 혐오행위는 혐오감을 전제했다고 했는데 왜 이것이 내 말을 반박하는 것이 되는 거지? 그냥 너가 하고 싶은 말을 내 주장에 대한 반박이라고 착각하고 쓴 게 아닐까? 이부분에 대해서는 우리의 생각이 일치하는 것 같은데
'그러나 내가 말했듯 악마화는 무언갈 악마로 규정함을 뜻한다. 즉 혐오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감정이고 악마화는 그 감정을 기반으로 의식적으로 악마라고 규정하는 것이지'가 당신이 정의한 혐오와 악마화임을 재확인시키겠다.
4 "당연한 말과 동어반복을 다른 접근으로 계속하는 것은 당신이 그 당연한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에 다름없다."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게 아니라 없어도 될 말을 글을 부풀릴려고 하니까 그렇지. 없어도 충분히 이해할만한 내용을 불편하게 쓰고 있으니까 그래 "심리학 등의 학문이 표상의 관측과 해석을 전혀 거치지 않고 심상만을 표적한다는 주장은 스스로 숙고하기를 권한다. 이조차 가르침을 줄 의무는 없다." 넌 "감정만을 표적하는 논리의 전개는 실현성이 결여되었다."라고 했음. 난 심리학이 '표상의 관측과 해석을 전혀 거치지 않고 심상만을 표적한다"는 주장을 한 적이 없고 니 주장인 "표상의 관측과 해석을 전혀 거치지 않고 심상만을 표적한다는 주장"을 인용하여 감정만을 설명하려고 하는 심리학 상담도구는 니
니 주장이니까 "표상의 관측과 해석을 전혀 거치지 않고 심상만을 표적한다는 주장"은 너의 주장인 거임? 실수라 믿는다.
5 "여전히 '혐오를 무조건 악마화'라는 논리가 곧 '모든 혐오에 대한 혐오'라는 논리를 내포하는 명제라는 추론에는 어떠한 모순도 발견할 수 없다." 혐오는 악마화와 구분된다는 내 주장을 무시하고 니 주장만 관철하니까 정당화되는 명제이지. 혐오와 악마화가 다르단 내 주장 내에선 틀린 명제임. 근데 넌 내 주장이 틀렸다고 했잖아 그럼 내 주장에 대한 모순을 지적해야지 왜 니 주장에 대한 모순이 없음을 지적하고 있음? "처음의 댓글에서 완결된 논리를 혐오와 악마화는 구분된다는 논리로 호도하려던 시도도 악마화로부터 혐오만을 구분, 즉 분리할 수 없음으로 무산되었다." 여전히 혐오는 감정이고 악마화는 행위라는 내 주장은 건재함. 넌 이것에 대해 악마화는 혐오행위라는 말밖에 한 적이 없지 혐오가 행위라고 한
적이 없지 혐오가 행위라고 한 적은 없음. 뭐가 무산되었음?
6 "'당신에게 근거 능력을 분별할 수 있는 정도의 인지력까지 결여되었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겠다. 번역체의 기준도 잘 모르겠지만 표준 문법 체계에 어긋나는 문장도 아니다." 근거가 없으니까 근거를 분별할 수 없다는 것이겠지 감정과 그 행위를 구분지을 수 없지만 바로 다음 문단에서 구분지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설명이 없으니까 혼란스럽다는 거야 내가 그런 인지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거야 모르겠다만 그리 따지면 친구야 너는 근거를 설명할 인지능력이 없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 되는 거 아니노?
7 "악마화는 혐오의 집합에 포함된다는 말이다. 여전히 알아듣기 힘들다면 이보다 명확히 설명하기 어렵다."게이야 논리논리 따지면서 왜 내가 쓴 글을 재대로 않읽음?혐오를 호불호의 문제로 정의한 네 주장은 논리학적으로 틀렸음을 말했는데 왜 악마화가 혐오의 집합이란 동문서답을 하고 있음? 너의 세계관에서는 그렇다는 것을 내가 인정할게 하지만 감정과 행위를 구분하는 내 세계관에서는 그렇지가 않고 거기엔 모순이 없다는 거야."혐오가 불호의 집합에 포함되는 관계이므로 해석에 논리적 모순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말이다."집합 A(혐오)가 그것을 포함하는 집합은 B(불호)에 속한다면 A의 조건은 B를 만족시킴그러나 A의 뜻을 B로서 정의하는 건 A가 아닌 것들이 B에 있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틀렸다는 걸
왜 이해못하고 엉뚱한 소리를함? 내가 언재 A가 B에 포함이 안됐다고함? A를 B의 조건으로써 정의하려는 네 시도가 잘못됐다고 한거임 즉 'A는 B를 만족한다' 와 'A의 정의는 B이다' 는 다른 거임 "처음 댓글이 논리적 무결성을 지녔다면 동어반복을 발생시키는 원인은 당신에게 있다."
이 말은 생략토록 하자
"'그러나 내가 말했듯 악마화는 무언갈 악마로 규정함을 뜻한다. 즉 혐오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감정이고 악마화는 그 감정을 기반으로 의식적으로 악마라고 규정하는 것이지'가 당신이 정의한 혐오와 악마화임을 재확인시키겠다." 그렇다면 비의도적으로 느끼는 혐오와 의도적으로 하는 악마화는 구분 가능한 것이겠노 근데 그걸 왜 여태까지 혐오=악마화 이고 혐오감과 혐오행위는 구별 불가능한 것이라고 함?
게이야 마음에 상처가 될 수 있는데 글을 못쓰는 것 같아. 사용하는 논리는 오류가 없고 깔끔한데, 읽기가 어렵고 번역체라고 느껴질 정도로 뭔가 편하게 읽히지가 않는다. 문법적으론 틀린게 없는데 잘 쓴 글은 문법적인 것도 지키지만 읽기 편하고 이해하기 쉬운 글임. 그리고 같은 말 반복하는 것도 논쟁에 있어서 사람이 할 말이 없을 때 그러는 거니까 상대방이 새로운거 꺼내면 새로운 걸로 반박해야 됨. 그렇지 않으면 왜 같은 말 반복하느냔 말에 대중들에 심리적 설득력이 떨어져 낭패를 볼 수도 있음. 또 동문서답하는 것도 좀 답답했음. 난 어떠어떠한 것에 대해 찬반이나 이외의 의견을 물어보는데 했던 말 또하고 엉뚱한 말하고 그래서 좀 그랬다. 물론 나도 "상대방이 이건 알고 있겠지!" 하고 설명해야 할 것을
건너 뛰거나 "이정도쯤은 상대방도 동의하는 것이겠지!" 하면서 합의 없이 논지를 전개해나가는 태도가 있음. 논리적으로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 것 같은데 내가 생각한 결점을 고치면 너 특유의 논리에 기반한 화법을 통해 논쟁에서 강해질듯 하다.
https://m.dcinside.com/board/philosophy/424719
답해줘서 고맙다. 나도 답글 달게 - dc App
본문 깔끔한데 왜 이렇게 반박이 많이 달린건지 잘 모르겠네 오히려 가공할만한 철학서들 읽어보면 더욱이 장황하게 늘어진 것들 태반인데 반해 이정도면 잘 쓴 것 같은데
211 게이의 반박의 핵심은 주장을 반박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단어의 쓰임이 집합론적으로 옳지 않다 와 사전적 의미와 일치 하지 않는다 이거 둔 뿐임 근데 그마저도 집합론이랑 사전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임 - dc App
걍 지젝 책 읽어보셈 왜 우리는 관용적이지않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변이 나와있음
그 책 이름이 뭐임? - dc App
동의하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