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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글 '혐오를 무조건 악마화'의 분석에 관하여' 에 대한 답 파트1 - 철학 갤러리

1 "행위를 통해 감정에 대해 말하고 있다. 따라서 바꿔치지 않았다."내 의견은 "혐오는 일종의 감정상태이고 악마화는 비합리적이든 합리적이든 어떤 대상을 악의 축으로 규정함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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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글 '혐오를 무조건 악마화'의 분석에 관하여' 에 대한 답 파트2 - 철학 갤러리

6 "이미 처음 댓글의 논리적 무결성으로 하여금 없어도 될 말인데 이를 실제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해할 수 있게 할지도 모르는 다른 방식으로 재서술할 따름이다. 외적 행위를 표상으로 대입하였으니 내적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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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댓글: '혐오를 무조건 악마화'를 '혐오라면 무조건=모든 혐오' 및 '악마화=혐오시'로 해석할 경우 곧 '모든 혐오에 대한 혐오'인데 이는 모순된 논리이다. 따라서 해당 명제에는 혐오할 혐오에 대한 조건이 붙어야 한다. 조건을 '이 혐오를 제외한 불특정한 모든 혐오'로 가정할 수 있다. 그러나 혐오주의 반대론자가 병충해에 대한 혐오의 중단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반례를 제시함으로써 참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다. 따라서 악마화되는 혐오는 어떤 특정성을 가지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본문에 그 특정한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 및 해당 조건의 비합리성과 불필요성의 증명이 포함되어야만 본문의 논리가 완성될 수 있겠다.


알아두면 좋은 지식:
/단어는 숫자가 아니다.
/'A=B'는 'A는 B이다'로 읽는다.
/'-시'는 '-감'이 아니다.
/'해석'은 '문장이나 사물 따위로 표현된 내용을 이해하고 설명함. 또는 그 내용.'을 뜻한다.
/'곧'은 '바꾸어 말하면'을, '바꿔 말하면'은 '먼저 한 말을 다른 말로 말하면'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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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1 - 처음 댓글의 논리에 대해 당신은 '혐오와 악마화는 같은 게 아니다', '혐오란 감정은 그들을 괴물이라느니 신의 저주를 받앋다느니 하는 규정과는 구분될 수 있음'이라는 논리를 반박으로 제시했다. 당신이 사용한 '구분'이라는 용어가 처음 댓글의 '혐오행위에 혐오감이 반드시 논리적으로 존재함'을 반박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니 '구분'이라는 용어는 '혐오행위에 혐오감이 반드시 논리적으로 존재하지는 않음'의 의미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개와 포유류가 구분된다'는 논리가 '개에 포유류라는 성질이 반드시 논리적으로 존재함'이라는 논리의 반박이 될 수 없다. 따라서 당신이 사용한 '구분'의 용어가 반박이 되기 위해서는 '구분'을 '개로부터 포유류라는 성질을 분리해 포유류가 아닌 개를 정의한다'는 개념의 '구분'으로 당신이 정의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그렇지 않다면 '혐오감과 혐오행위가 구분된다'는 논리는 처음 댓글의 논리에 반박에 사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것은 불가능하고 여태껏 그 불가능성을 설명했다. 혐오감으로부터 혐오행위가 반드시 논리적으로 존재하지는 않으므로 혐오감으로부터 혐오행위를 구분(분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혐오행위로부터 혐오감이 반드시 논리적으로 존재하므로 혐오행위로부터 혐오감을 구분(분리)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답2 - 답1을 참고할 수 있겠다. 혐오행위로부터 혐오감정을 분리할 수 없으니 혐오행위의 주체 역시 혐오감정과 분리할 수 없다. 따라서 '혐오를 무조건 악마화'는 '모든 혐오감정에 대한 혐오행위'로, '모든 혐오감정에 대한 혐오감정에 기반한 행위'로, '모든 혐오감정에 대한 혐오감정'으로, 최종적으로 '모든 혐오에 대한 혐오'라는 자기모순적인 논리가 유도되는 논리이다. 따라서 '혐오를 무조건 악마화'는 그 존재의 성립이 불가능한 모순된 논리이다. 이것이 처음 댓글의 무결한 논리이고 당신은 이에 대한 부정과 반박을 시도했다. 하여 당신의 부정과 반박이 성립 불가능한 이유를 설명했다.


답3 - 아니다. 행위(칼로 찌르는 짓)는 감정(살인의 의지)과 구분(분리)할 수 있다는 말이고 살인행위(살인의 의지를 가지고 칼로 찌르는 짓)는 감정(살인의 의지)와 구분(분리)할 수 없다는 말이다. 살인행위에서 감정을 분리할 수도 없지만 분리한다고 가정해도 그것은 더 이상 살인행위가 아니라 그저 행위가 된다는 말이다. 살인의 의지를 분리하면 살인행위가 살인행위가 아니게 되므로 분리할 수 없다는 말이다. '칼로 찌르는 행위=살인행위'라는 주장을 펼친 적이 없다. 다시 잘 읽을 필요가 있겠다.


답4 - 분리의 의미가 아니라 구별의 의미를 지닌 '구분'이 사용된 '혐오감과 혐오행위가 구분된다'는 논리는 '혐오행위에 혐오감이 반드시 논리적으로 존재한다'는 논리에 반대되는 근거로 기능하지 못한다. 즉 반박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은 반박으로 해당 논리를 구사했다. 당신이 구분을 분리의 의미로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추론하여 그에 대한 설명을 계속했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신이 제시한 논리가 처음 댓글의 논리를 반박하는 용도로 사용된 이유를 묻겠다.


답5 - 구분할 수 있어도 분리할 수 없다. 당신이 구분을 분리의 의미로 사용하지 않았다면 처음 댓글의 논리에 대한 반박은 성립하지 못한다. 물론 분리가 불가능하므로 분리의 의미로 사용했더라도 결국 반박은 성립하지 못한다.


답6 - '현실적 타당성을 따질 때, 외적 행위(표상)가 관측되어야만 내적 감정(심상)의 분별이 가능하다. 표상을 관측하는 과정이 부재한 심상의 분별은 실현 불가능하다.'라는 주장에 대해 당신은 '심리학의 상담도구들은 실현성이 없는 것일까? 감정만을 표적하는 논리가 심리학에서부터 인지과학, 신경과학에 걸쳐서 넓게 포진되어 있는데'라는 주장을 반박으로 제시했고 이에 따라 '심리학 등의 학문에는 표상을 관측하는 과정이 부재한 감정만을 표적하는 논리가 포진되었다'는 주장이 참일지에 대한 숙고를 권하자 당신은 스스로가 '표상의 관측과 해석을 전혀 거치지 않고 심상만을 표적한다'는 주장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 것이 이 논의의 자초지종인데, 당신이 반박으로 제시한 논리에 당신이 주장하지 않았다는 논리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당신이 반박으로 제시한 논리는 반박으로 성립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답6+ - 답6의 논의의 첫 주장은 '혐오를 무조건 악마화'하는 주체는 인간일 것이고, 인간이 타인의 심상(내적 감정)을 표적하여 그 감정을 혐오로 분별하고 악마화하는 행위가 실현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 혐오의 표상(외적 행위)을 관측할 필요가 있다는 추론 하에 '혐오(감정)를 무조건 악마화'의 혐오(감정)에는 그 혐오의 표상(행위)이 동반됨이 현실적으로 타당하고, '혐오는 감정이다.'라는 당신의 정의에 따라 당신이 주장하는 '감정과 행위는 구분된다'라는 논리에 기반한 반박은 '타인에 의한 규정이 실현될 수 있는 감정은 그 행위를 동반한다'는 실현성으로 하여금 그 반박의 가치가 희석된다는 논리로 주장되었다. '혐오를 무조건 악마화'가 실현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혐오에 행위가 포함되어야 현실적으로 타당하다는 논리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혐오(감정)과 행위의 구분은 별 의미가 없다는 논리이다. 그 논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