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편되면 해외유학
안되면 서울대 철학과 같은 네임밸류 있는데로 가넴
그리고 실용적 기술하나 익히고 - dc App
무삭제게이(58.234)2023-12-20 22:14:00
수학 과학도 철학의 한 분야라 어차피 알아야 함
특히 수학의 기하학 과학의 자연과학은 철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관심있을때 흡수해 놔야 나중에 그물망처럼 연결됨
철갤러 1(27.119)2023-12-20 22:49:00
몰라도 된다. 우린 다 죽어 - dc App
철갤러 2(118.218)2023-12-21 04:23:00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4차 산업혁명은 이미 와 있는 듯한데 우리는 한 치 앞을 내다보는 것도 막막하기만 하죠. 이럴 때일수록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이 체계적인 생각 공부, 곧 철학일 터. 그러나 열 다섯 나이에 학업을 제쳐두고 벌써부터 철학공부에 매진하라는 응원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철학은 만학의 뿌리이자 줄기라서 모든 학문은 자연스럽게 철학과
고독사(125.188)2023-12-21 10:15:00
답글
연결되므로, 수학 공부를 하든 과학 공부를 하든, 무얼 하든 간에 그 대상에 관해서 열심히 생각하면 충분한 철학 공부가 될 것 같습니다. 단, 수학과 과학보단 문학과 철학이 내 적성에 맞는 경우도 있어놔서 하기 싫은 수학, 과학 공부를 억지로 하라는 말씀 또한 드릴 수 없습니다. 열 다섯이면 조급해 할 나이가 아니므로 차근차근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고독사(125.188)2023-12-21 10:23:00
답글
스스로 관찰해 보십시오. 열 다섯 나이에 석박 과정의 논문을 쓴 세기적 천재들이 있는가 하면, 나이 오십을 넘겨서야 겨우 생각다운 생각을 했는데 그게 또한 천재적 업적으로 남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평가는 또 타인의 평가이므로 자신이 만족한 결과로서 생의 과업을 완수한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문제에서는 그들의 천재성이 행운이라고만은 할 수 없을
고독사(125.188)2023-12-21 10:30:00
답글
것입니다. 같은 반 학우들은 벌써부터 이과/문과로의 진로를 선택했고 비싼 과외료를 지급하며 고교수학까지 선행학습 중인데 나는 기껏 소설책 따위나 읽고 있다니 하고 자괴감을 느끼는 경우라면 세르반테스나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위대한 문인의 삶도 있으니 미리 절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배운 만큼, 한 만큼의 능력을 반드시 발휘하게 돼 있습니다.
고독사(125.188)2023-12-21 10:41:00
답글
수학, 과학과 마찬가지로 문학, 예술 또한 타고난 재능의 영역이라서 역사에 남은 천부적 능력자는 손에 꼽힐 만큼 수가 적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천재들에 의해서만 물리를 이해하고 문리와 예술에 눈을 뜨는 건 아니죠. 천부의 소질은 미약하나 끊임없이 배우고 반복하여 인류사에 커다란 감동과 가르침을 남긴 이가 세상에는 훨씬 더 많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고교
고독사(125.188)2023-12-21 10:55:00
답글
입학이 뭔 대수인가 말하고 싶지만, 나보다 더 님을 사랑하는 부모님의 마음은 그럴 수가 없죠. 학군 좋은 고교에 입학하여 못하더라도 인서울 대학은 들어가야 장차 사람구실, 제대로 된 직업인 구실을 한다고 부모님과 선생님으로부터 수시로 충고를 강요받아 왔을 줄로 압니다. 그런데 이 또한 앞으로는 장담할 수 없는 시절이 되었습니다. 저출산과 그에 따른 이민자
고독사(125.188)2023-12-21 11:05:00
답글
수용으로 인해서 앞으로의 교육체계 나아가 직업군의 서열이 이전과 같지는 않을 겁니다. 학벌과 인맥 같은 위계문화는 천박한 자본주의를 살아 있게 하는 살과 뼈라서 앞으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겠지만, 인류는 항상 기술문명의 발전과 함께 문화형태도 변해 왔습니다. 과학기술을 거부할 수 있는 인간의 습관 같은 건 애시당초 존재하지가 않죠. 그러니 부모님의 사랑과
고독사(125.188)2023-12-21 11:15:00
답글
충고는 고맙게 받아들이되 결국 매순간의 선택은 오직 님의 몫이어야 합니다. 님은 시간의 부자입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쓴다는 건 부모님과 학교가 정해준 시간표 따라 산다는 말이 아닙니다. 스스로 고민하여 목적에 도달하는 과정의 풍요로움을 가리키는 거겠지요. 유급당하지 않을 만큼 학업 수준을 유지하면서 지금처럼 많은 인문학 독서를 하고 그만큼 자기 생각,
고독사(125.188)2023-12-21 11:23:00
답글
반성의 시간을 가진다면 바라는 바, 반드시 좋은 결과를 만들 겁니다. 문단 나누기가 되지 않아서 읽기 어려운 문장이 되었습니다. 난삽함을 걸러서 읽어 주십시오.
고독사(125.188)2023-12-21 11:25:00
답글
P.s. 내 나이가 오십입니다. 나는 나이 오십 살이 되어서야 겨우 이런 생각이나마 하게 되었습니다. 나도 중고교 시절부터 만화책, 소설책을 쌓아놓고 읽었는 데 님처럼 이런 진지한 고민을 해본 적이 없는 듯합니다. 그러니 님은 나이 오십이나 먹은 나와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가 가능한 열다섯 살 소년인 거죠. 님 스스로의 고민에 따른 오늘의 결과입니다.
고독사(125.188)2023-12-21 11:41:00
답글
P.2. 형편이 된다면 나도 조기 유학을 권합니다. 한데 유학할 형편이 되지 않는다면 매일 매시간 틈틈이 영어 공부, 어학공부는 해두십시오. 나이 들어 제가 후회하는 것 중 하나가 미처 배워두지 못한 탓에 읽고 싶은 영어 원서를 맘껏 읽지 못하는 겁니다. 영어로 된 인문학, 특히 철학책은 번역된 것보다 수천 수만 권이 더 많고 하나같이 수준 높은 것들입니다
고독사(125.188)2023-12-21 11:51:00
답글
영어로 서양철학을 공부하는 사람과 한국어 번역을 통해서 공부하는 사람은 그 지식 수준에서 하늘과 땅 차이 만큼 간극이 있습니다. 물론 지식(출처source)량의 많고 적음이 그의 철학 수준을 가늠하는 절대적 기준은 아니겠지만.
고독사(125.188)2023-12-21 11:55:00
답글
※당부의 말.
나는 철학자가 아니며 어떠한 인문학적 성과를 세간에 내놓은 일이 없습니다. 앞으로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정체는 뭔가. 자발적 무직자이며 자발적 알콜 중독자입니다. 따라서 나의 윗 댓글은 철학 및 인문학과 아무 상관없는 자의 말이므로 진지하게 읽거나 숙고할 필요가 없습니다. 타인의 어떤 말도 나의 기준 삼지 말고 편하게 사셔야 합니다
고독사(125.188)2023-12-21 12:45:00
답글
*앞으로v도
고독사(125.188)2023-12-21 12:46:00
열 다섯 살 내 친구에게 추천합니다.
[인간의 우주적 초라함과 삶의 부조리에 대하여, 최성호] 도서출판 필로소픽.
고독사(125.188)2023-12-21 13:00:00
나에게는 꿈이 하나 있지
논두렁 개울가에
진종일 쪼그리고 앉아
고독사(125.188)2023-12-21 13:03:00
답글
밥 먹으라는 고함소리도
잊어먹고
고독사(125.188)2023-12-21 13:03:00
답글
개울 위로 떠가는
고독사(125.188)2023-12-21 13:05:00
답글
지푸라기만
바라보는
열 다섯 살
고독사(125.188)2023-12-21 13:06:00
답글
소년이 되어보는
ㅡ꿈, 서홍관.
고독사(125.188)2023-12-21 13:07:00
답글
시는 단어의 배치, 행의 배열, 즉 행간이 중요한데 중간에 한 단락이 튕겼습니다.(수전증으로 인해 뜻하지 않게ㅜㅠ)
고독사(125.188)2023-12-21 13:10:00
답글
*'단락'이 아니라 한 문장
고독사(125.188)2023-12-21 13:13:00
일본의 요즘 10대들 그러니까 m과 z로 불리는 이후 세대에게서 다시금 순문학 열풍이 불고 있답니다. 덩달아 고전 읽기도 유행이구요. 순문학과 고전이 만화책이나 웹소설보다 반드시 유익할 까닭은 없지만, 한쪽으로 치우친 세태의 자발적 반동이란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보기 좋습니다, 열 다섯 내 친구님!
♥+스물 하나 열 다섯, 신지훈
https://youtube.com/watch?v=OALCHp9cT7I&si=xfyt3PDAsH5_g_rm
고독사(125.188)2023-12-21 15:39:00
답글
곰곰이 씹어 보니 나의 댓글은 나이 쉰 살의 쉰내나는 편견으로 가득하군요. 아마도 내가 사춘기인가 봅니다.
♥+나의 사춘기에게, 볼빨간 사춘기
https://youtube.com/watch?v=3gMAEZCOFtE&si=xPV5p_0JySqv53Dp
고독사(125.188)2023-12-21 15:49:00
답글
내 여동생의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에요. 곧 해가 바뀌어 중학생이 되겠죠. 얘가 볼빨간 사춘기의 안지영을 세상에서 가장 좋아해요. 조카 덕에 알게 된 가수이고 노래인데, 나도 안지영의 팬이 되었어요. ♥+우주를 줄게, 볼빨간 사춘기
https://youtube.com/watch?v=uq8zbeiFY-U&si=-sLBOvUBeQGmeUgb
고독사(125.188)2023-12-21 15:59:00
답글
철학도 좋은 거지만 열 다섯 무렵엔 시를 많이 읽으세요.(이것도 꼰대짓인가?) 시는 나이 들면 도저히(?),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린 삶일수록 시적 감각과 익숙해져야 해요. 하이데거의 그 어려운 철학은 수학 철학이 아니라 언어 철학이에요. 게 중에서도 의미론이지요. 시적 감각의 영역입니다. 상징성의 영역입니다.
고독사(125.188)2023-12-21 16:22:00
답글
"말할 수ㅡ말로 표현할 수ㅡ없는 것(비트겐슈타인)" 에 일상 언어의(또는 접미사-적) 상징성을 부여함으로써 가능한 말의 세계로 불가능성을 소환하는 게 바로 시의 역할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의 후기는 하이데거의 아류일 뿐입니다.
고독사(125.188)2023-12-21 16:31:00
답글
동일률이 실제로 증명될 수 없듯, 화용론은 의미론의 대쌍일 수가 없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전부 형식논리가 만들어 낸 가짜의 세계입니다. 그런 점에서 칸트의 물자체ding an sich도 성립할 수 없어요. 그게 무엇이든 간에(심지어 봉사의 경우에도) 거기 있는 것은 있는 것일 수밖에 없으니까.
고독사(125.188)2023-12-21 17:05:00
간단명료하게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철학밖에 없습니다. 나처럼 어줍잖은(그러나 그럴듯한) 말로써 온갖 가능한 개념(망상)어를 만드는 짓과 비트겐슈타인의 논고tractatus처럼 '언어' 세계의 한계를 명확히 하는 것.
고독사(125.188)2023-12-21 16:52:00
답글
그런데 언어세계의 한계witt가 곧바로 형이상의 종말을 의미하는 건 아니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하는 진짜 형이상이 있습니다. 예컨대 우연, 무한 따위.
고독사(125.188)2023-12-21 16:55:00
훌륭한 스승을 찾아가지야지. 왜 헛소리하는 놈들한테 왔니????????????????????????
형편되면 해외유학 안되면 서울대 철학과 같은 네임밸류 있는데로 가넴 그리고 실용적 기술하나 익히고 - dc App
수학 과학도 철학의 한 분야라 어차피 알아야 함 특히 수학의 기하학 과학의 자연과학은 철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관심있을때 흡수해 놔야 나중에 그물망처럼 연결됨
몰라도 된다. 우린 다 죽어 - dc App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4차 산업혁명은 이미 와 있는 듯한데 우리는 한 치 앞을 내다보는 것도 막막하기만 하죠. 이럴 때일수록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이 체계적인 생각 공부, 곧 철학일 터. 그러나 열 다섯 나이에 학업을 제쳐두고 벌써부터 철학공부에 매진하라는 응원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철학은 만학의 뿌리이자 줄기라서 모든 학문은 자연스럽게 철학과
연결되므로, 수학 공부를 하든 과학 공부를 하든, 무얼 하든 간에 그 대상에 관해서 열심히 생각하면 충분한 철학 공부가 될 것 같습니다. 단, 수학과 과학보단 문학과 철학이 내 적성에 맞는 경우도 있어놔서 하기 싫은 수학, 과학 공부를 억지로 하라는 말씀 또한 드릴 수 없습니다. 열 다섯이면 조급해 할 나이가 아니므로 차근차근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스스로 관찰해 보십시오. 열 다섯 나이에 석박 과정의 논문을 쓴 세기적 천재들이 있는가 하면, 나이 오십을 넘겨서야 겨우 생각다운 생각을 했는데 그게 또한 천재적 업적으로 남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평가는 또 타인의 평가이므로 자신이 만족한 결과로서 생의 과업을 완수한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문제에서는 그들의 천재성이 행운이라고만은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같은 반 학우들은 벌써부터 이과/문과로의 진로를 선택했고 비싼 과외료를 지급하며 고교수학까지 선행학습 중인데 나는 기껏 소설책 따위나 읽고 있다니 하고 자괴감을 느끼는 경우라면 세르반테스나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위대한 문인의 삶도 있으니 미리 절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배운 만큼, 한 만큼의 능력을 반드시 발휘하게 돼 있습니다.
수학, 과학과 마찬가지로 문학, 예술 또한 타고난 재능의 영역이라서 역사에 남은 천부적 능력자는 손에 꼽힐 만큼 수가 적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천재들에 의해서만 물리를 이해하고 문리와 예술에 눈을 뜨는 건 아니죠. 천부의 소질은 미약하나 끊임없이 배우고 반복하여 인류사에 커다란 감동과 가르침을 남긴 이가 세상에는 훨씬 더 많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고교
입학이 뭔 대수인가 말하고 싶지만, 나보다 더 님을 사랑하는 부모님의 마음은 그럴 수가 없죠. 학군 좋은 고교에 입학하여 못하더라도 인서울 대학은 들어가야 장차 사람구실, 제대로 된 직업인 구실을 한다고 부모님과 선생님으로부터 수시로 충고를 강요받아 왔을 줄로 압니다. 그런데 이 또한 앞으로는 장담할 수 없는 시절이 되었습니다. 저출산과 그에 따른 이민자
수용으로 인해서 앞으로의 교육체계 나아가 직업군의 서열이 이전과 같지는 않을 겁니다. 학벌과 인맥 같은 위계문화는 천박한 자본주의를 살아 있게 하는 살과 뼈라서 앞으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겠지만, 인류는 항상 기술문명의 발전과 함께 문화형태도 변해 왔습니다. 과학기술을 거부할 수 있는 인간의 습관 같은 건 애시당초 존재하지가 않죠. 그러니 부모님의 사랑과
충고는 고맙게 받아들이되 결국 매순간의 선택은 오직 님의 몫이어야 합니다. 님은 시간의 부자입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쓴다는 건 부모님과 학교가 정해준 시간표 따라 산다는 말이 아닙니다. 스스로 고민하여 목적에 도달하는 과정의 풍요로움을 가리키는 거겠지요. 유급당하지 않을 만큼 학업 수준을 유지하면서 지금처럼 많은 인문학 독서를 하고 그만큼 자기 생각,
반성의 시간을 가진다면 바라는 바, 반드시 좋은 결과를 만들 겁니다. 문단 나누기가 되지 않아서 읽기 어려운 문장이 되었습니다. 난삽함을 걸러서 읽어 주십시오.
P.s. 내 나이가 오십입니다. 나는 나이 오십 살이 되어서야 겨우 이런 생각이나마 하게 되었습니다. 나도 중고교 시절부터 만화책, 소설책을 쌓아놓고 읽었는 데 님처럼 이런 진지한 고민을 해본 적이 없는 듯합니다. 그러니 님은 나이 오십이나 먹은 나와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가 가능한 열다섯 살 소년인 거죠. 님 스스로의 고민에 따른 오늘의 결과입니다.
P.2. 형편이 된다면 나도 조기 유학을 권합니다. 한데 유학할 형편이 되지 않는다면 매일 매시간 틈틈이 영어 공부, 어학공부는 해두십시오. 나이 들어 제가 후회하는 것 중 하나가 미처 배워두지 못한 탓에 읽고 싶은 영어 원서를 맘껏 읽지 못하는 겁니다. 영어로 된 인문학, 특히 철학책은 번역된 것보다 수천 수만 권이 더 많고 하나같이 수준 높은 것들입니다
영어로 서양철학을 공부하는 사람과 한국어 번역을 통해서 공부하는 사람은 그 지식 수준에서 하늘과 땅 차이 만큼 간극이 있습니다. 물론 지식(출처source)량의 많고 적음이 그의 철학 수준을 가늠하는 절대적 기준은 아니겠지만.
※당부의 말. 나는 철학자가 아니며 어떠한 인문학적 성과를 세간에 내놓은 일이 없습니다. 앞으로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정체는 뭔가. 자발적 무직자이며 자발적 알콜 중독자입니다. 따라서 나의 윗 댓글은 철학 및 인문학과 아무 상관없는 자의 말이므로 진지하게 읽거나 숙고할 필요가 없습니다. 타인의 어떤 말도 나의 기준 삼지 말고 편하게 사셔야 합니다
*앞으로v도
열 다섯 살 내 친구에게 추천합니다. [인간의 우주적 초라함과 삶의 부조리에 대하여, 최성호] 도서출판 필로소픽.
나에게는 꿈이 하나 있지 논두렁 개울가에 진종일 쪼그리고 앉아
밥 먹으라는 고함소리도 잊어먹고
개울 위로 떠가는
지푸라기만 바라보는 열 다섯 살
소년이 되어보는 ㅡ꿈, 서홍관.
시는 단어의 배치, 행의 배열, 즉 행간이 중요한데 중간에 한 단락이 튕겼습니다.(수전증으로 인해 뜻하지 않게ㅜㅠ)
*'단락'이 아니라 한 문장
일본의 요즘 10대들 그러니까 m과 z로 불리는 이후 세대에게서 다시금 순문학 열풍이 불고 있답니다. 덩달아 고전 읽기도 유행이구요. 순문학과 고전이 만화책이나 웹소설보다 반드시 유익할 까닭은 없지만, 한쪽으로 치우친 세태의 자발적 반동이란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보기 좋습니다, 열 다섯 내 친구님!
친구, 노래 한 곡 들을까요?
♥+나는 나, 주주클럽 https://youtube.com/watch?v=auQw-EjMy8M&si=078y5elyLTthO04U
♥+스물 하나 열 다섯, 신지훈 https://youtube.com/watch?v=OALCHp9cT7I&si=xfyt3PDAsH5_g_rm
곰곰이 씹어 보니 나의 댓글은 나이 쉰 살의 쉰내나는 편견으로 가득하군요. 아마도 내가 사춘기인가 봅니다. ♥+나의 사춘기에게, 볼빨간 사춘기 https://youtube.com/watch?v=3gMAEZCOFtE&si=xPV5p_0JySqv53Dp
내 여동생의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에요. 곧 해가 바뀌어 중학생이 되겠죠. 얘가 볼빨간 사춘기의 안지영을 세상에서 가장 좋아해요. 조카 덕에 알게 된 가수이고 노래인데, 나도 안지영의 팬이 되었어요. ♥+우주를 줄게, 볼빨간 사춘기 https://youtube.com/watch?v=uq8zbeiFY-U&si=-sLBOvUBeQGmeUgb
철학도 좋은 거지만 열 다섯 무렵엔 시를 많이 읽으세요.(이것도 꼰대짓인가?) 시는 나이 들면 도저히(?),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린 삶일수록 시적 감각과 익숙해져야 해요. 하이데거의 그 어려운 철학은 수학 철학이 아니라 언어 철학이에요. 게 중에서도 의미론이지요. 시적 감각의 영역입니다. 상징성의 영역입니다.
"말할 수ㅡ말로 표현할 수ㅡ없는 것(비트겐슈타인)" 에 일상 언어의(또는 접미사-적) 상징성을 부여함으로써 가능한 말의 세계로 불가능성을 소환하는 게 바로 시의 역할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의 후기는 하이데거의 아류일 뿐입니다.
동일률이 실제로 증명될 수 없듯, 화용론은 의미론의 대쌍일 수가 없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전부 형식논리가 만들어 낸 가짜의 세계입니다. 그런 점에서 칸트의 물자체ding an sich도 성립할 수 없어요. 그게 무엇이든 간에(심지어 봉사의 경우에도) 거기 있는 것은 있는 것일 수밖에 없으니까.
간단명료하게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철학밖에 없습니다. 나처럼 어줍잖은(그러나 그럴듯한) 말로써 온갖 가능한 개념(망상)어를 만드는 짓과 비트겐슈타인의 논고tractatus처럼 '언어' 세계의 한계를 명확히 하는 것.
그런데 언어세계의 한계witt가 곧바로 형이상의 종말을 의미하는 건 아니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하는 진짜 형이상이 있습니다. 예컨대 우연, 무한 따위.
훌륭한 스승을 찾아가지야지. 왜 헛소리하는 놈들한테 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