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필연이라는 것 자체가 인간의 관념일 뿐이고 세상은 그냥 있는 그대로 있음.
관념이란게 세상의 본질로서, 인간으로부터 떨어져 실재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인간의 정신속에 있는 거라고 볾 - dc App
무삭제게이(222.239)2024-01-01 10:33:00
답글
그런데 여기서는 님이 틀렸음. 우연과 필연의 사태성은 인간 관념 이전에 존재함. 우연과 필연은 그야말로 형이상학적 또 보편적 실재임. 실체라고 해도 좋음!
고독사(125.188)2024-01-03 01:36:00
답글
님의 말씀, "세상은 있는 그대로 있다." 이전에 우연이 존재했던 거임. 그걸 "필연적 사태라고 오해하는 게 바로 과학이며 형이상학임(이 부분 앞서의 오해보다 더한 오해의 여지가 많은 나의 견해일 뿐임).
고독사(125.188)2024-01-03 01:41:00
답글
"
고독사(125.188)2024-01-03 01:42:00
답글
'인간의 인식 이전의 세계가 우연히 존재했다'는 생각은 인간이 있기 전엔 불가능했음
세상이 우연이라는 것도 우연성이 세계의 본질로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생각일 뿐이라고 생각하네 - dc App
무삭제게이(222.239)2024-01-03 02: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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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은 선험 이전의 사태입니다. 즉 말이 안 되는 사태이므로 인식이 아니고 이해나 느낌조차 될 수 없습니다. 우연은 항상 인식한 것들의 잉여, 끝없는 나머지이거나 제일원인 앞의 영역입니다. 더이상 토달지 마십시오. 우연에 관한 논의는 무의미합니다.
고독사(125.188)2024-01-03 03:07:00
답글
우연의 느낌은 항상 사후적 느낌, 판단입니다. 그리고 인식이란 말을 함부로 쓰지 마십시오. 인식은 단순한 앎이나 감각과는 전혀 다른 말입니다; 우연은 그 단순한 감각보다도 더 원초적이며 불가해한 것입니다.
고독사(125.188)2024-01-03 03:14:00
답글
인식이 있기 전에 우연이란 관념이 있다는 소리인데 그렇다면 그것을 경험적을 증며할 수 있나? - dc App
무삭제게이(222.239)2024-01-03 23: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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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ㅡ우연은 항상ㅡ사건 이후적(경험 이후의) 판단이란 거죠. 그런 판단으로서 선존재의 가능성(느낌)일 뿐입니다. 우연으로서의 인간 존재를 어떻게 증명합니까?
고독사(125.188)2024-01-04 22:14:00
답글
인식 이전에, 또는 인식과 동시에ㅡ인식을 담지하는 그릇으로서ㅡ인간이라는 존재자가 있고, 인간 이전에 우연이란 가능성이 작동해서 인간이라는 인식 주체가 탄생한 겁니다.
고독사(125.188)2024-01-04 22: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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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을 앞세우면 존재 자체가 설 자리를 잃어요.(존재가 없는데 어떻게 그 존재에 대한 인식이 가능합니까?) 그래서 파르메니데스는 없음과 우연을 배제한 뒤에 출발했던 겁니다. 있는 것은 있고, 있는 것만 있으며, 그것은 반드시 그 자체로(홀로) 있고, 변하는 법이 없다. 이게 바로 일자(신)이며, 존재론적 실체(본질)입니다.
고독사(125.188)2024-01-04 22:24:00
답글
*여기서는 '담지하다'는 말보다 "담는"이 더 정확한 말일 듯합니다.
고독사(125.188)2024-01-04 22: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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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되는 말을 하는군.. - dc App
무삭제게이(222.239)2024-01-05 02: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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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은 인식의 영역이 아니므로 모순어법 자체가 성립할 수 없으며 모순 정리(정/반) 또한 불가능하다. 우연은 철학, 아니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항상ㅡ어떤 행위의ㅡ결과일 뿐이다. 우연을 가정한 모든 철학과 제학문은 학문이 아니다. 정신차려라 이 개만도 못한 무뇌아새끼야!
고독사(125.188)2024-01-05 02: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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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인식이전에 존재하고 인식에 넣을 수 없으면 어찌하여 여태까지 우연이란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지.. - dc App
무삭제게이(222.239)2024-01-05 02: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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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무)은 반드시 있는 듯한데 왜 없다고 해야 할까? 왜 '있는' 없을(무)를 억지로 '없다'해야 할까? 둘이 만나야 무한이 가능한데, 이를 어쩌면 좋을까? 이때에 만날 수 있는 사조가 아낙시만드로스이고 그의 무한정자apeiron입니다. 천천히 알아 보세요.
고독사(125.188)2024-01-05 02: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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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은 너(대상)와 나(관찰)의 만남(종합)입니다. 한데 없음(무)이나 우연(만남 없음)은 그런 관계성 자체를 부정하는 사태의 바깥의 사태이지요. 하나의 인과성은 하나의 인과법칙으로 맺음합니다. 거기에 둘의 사건이 개입하면 매한가지 하나의 인과성이거나 다른 사건의 발생일 뿐입니다.
고독사(125.188)2024-01-05 02:43:00
답글
*왜 있는 없음(무)"을" 억지로 없다고 해야 할까? 그건 없음이니까(동어반복이니까; 하나마나 한 소리이니까)!
고독사(125.188)2024-01-05 02: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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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결국 인외의 외물이 아니라 관념상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닌가? - dc App
무삭제게이(222.239)2024-01-05 02: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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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도 관념도 아니라구 씨발로마! 없는 거라구! 없는 데 어떻게 생겨났지?(왜, 인과성 없는 사건이 발생했으니까!) 그런 놀라운 경우, 불가해, 불가사의가 바로 우연의 말뜻(사전적 의미)이라구 인마!
고독사(125.188)2024-01-05 02:51:00
답글
그 우연의 유일한 혈족(암유적 표현)이 바로 무, 없음, 낫띵이라구 야야.
고독사(125.188)2024-01-05 02:53:00
답글
하시발 님 때문에ㅡ열받아서ㅡ결국 술사러 간다.
고독사(125.188)2024-01-05 02: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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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관념이 아니라면.. - dc App
무삭제게이(222.239)2024-01-05 02: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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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의미=인식(론)=관념(론). 이런 등식은 얼마든지 성립할 수 있겠네요. 처음부터 내 잘못이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없음이나 우연 따위)에 끝까지 침묵했wittgen"어야 하는데ㅡ우연 따위가ㅡ기어이 존재론의 한 자리를 요구한 데서부터 이 사달이 난 겁니다.
님의 말씀대로 관념=유물(론)이란 등식도 성립합니다. 인식론의 문제이니까. 인식론이란 말을 싫어했던 존재론자 칸트를 우리가 인식론자로 부르듯, 낱말은 처음 보는 사물처럼 다시 이름 붙이기 나름이죠. 그런데 이런 건 철학(그러니까ㅡ나의ㅡ관념상)의 문제이고 철학 바깥에는 우리와 만나기를 원하는 미지의 대상이 항상 존재합니다. 아직은 없는 것이지만 영원히 없지는
고독사(125.188)2024-01-05 03:39:00
답글
않은.
고독사(125.188)2024-01-05 03:39:00
답글
그보다 더 극단적으로는 아예 없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없음이 있다(≠)는 성립할 수 없으니까 이것은 단지 내 믿음의 영역일 뿐입니다. 내 믿음이란 것도 관념이지요? 나를 뺍시다, 믿음이란 말도 뺍시다. 그런 희뿌욤한 가능성(미지)은 있더라. 왜냐하면ㅡ다시ㅡ언어(논리) 세계에서는 있음의 대쌍으로서 없음이 빠지면 술어 세계가 성립하지 않으니까.
자끄 모노의 그런 질문은 이제 유치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우연과 필연의 이분법이라니!
필연적으로 필연의 연속이다. - dc App
우연적 필연 아닌가?
우연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 dc App
우연과 필연이라는 것 자체가 인간의 관념일 뿐이고 세상은 그냥 있는 그대로 있음. 관념이란게 세상의 본질로서, 인간으로부터 떨어져 실재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인간의 정신속에 있는 거라고 볾 - dc App
그런데 여기서는 님이 틀렸음. 우연과 필연의 사태성은 인간 관념 이전에 존재함. 우연과 필연은 그야말로 형이상학적 또 보편적 실재임. 실체라고 해도 좋음!
님의 말씀, "세상은 있는 그대로 있다." 이전에 우연이 존재했던 거임. 그걸 "필연적 사태라고 오해하는 게 바로 과학이며 형이상학임(이 부분 앞서의 오해보다 더한 오해의 여지가 많은 나의 견해일 뿐임).
"
'인간의 인식 이전의 세계가 우연히 존재했다'는 생각은 인간이 있기 전엔 불가능했음 세상이 우연이라는 것도 우연성이 세계의 본질로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생각일 뿐이라고 생각하네 - dc App
우연은 선험 이전의 사태입니다. 즉 말이 안 되는 사태이므로 인식이 아니고 이해나 느낌조차 될 수 없습니다. 우연은 항상 인식한 것들의 잉여, 끝없는 나머지이거나 제일원인 앞의 영역입니다. 더이상 토달지 마십시오. 우연에 관한 논의는 무의미합니다.
우연의 느낌은 항상 사후적 느낌, 판단입니다. 그리고 인식이란 말을 함부로 쓰지 마십시오. 인식은 단순한 앎이나 감각과는 전혀 다른 말입니다; 우연은 그 단순한 감각보다도 더 원초적이며 불가해한 것입니다.
인식이 있기 전에 우연이란 관념이 있다는 소리인데 그렇다면 그것을 경험적을 증며할 수 있나? - dc App
그러니까ㅡ우연은 항상ㅡ사건 이후적(경험 이후의) 판단이란 거죠. 그런 판단으로서 선존재의 가능성(느낌)일 뿐입니다. 우연으로서의 인간 존재를 어떻게 증명합니까?
인식 이전에, 또는 인식과 동시에ㅡ인식을 담지하는 그릇으로서ㅡ인간이라는 존재자가 있고, 인간 이전에 우연이란 가능성이 작동해서 인간이라는 인식 주체가 탄생한 겁니다.
우연을 앞세우면 존재 자체가 설 자리를 잃어요.(존재가 없는데 어떻게 그 존재에 대한 인식이 가능합니까?) 그래서 파르메니데스는 없음과 우연을 배제한 뒤에 출발했던 겁니다. 있는 것은 있고, 있는 것만 있으며, 그것은 반드시 그 자체로(홀로) 있고, 변하는 법이 없다. 이게 바로 일자(신)이며, 존재론적 실체(본질)입니다.
*여기서는 '담지하다'는 말보다 "담는"이 더 정확한 말일 듯합니다.
모순되는 말을 하는군.. - dc App
우연은 인식의 영역이 아니므로 모순어법 자체가 성립할 수 없으며 모순 정리(정/반) 또한 불가능하다. 우연은 철학, 아니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항상ㅡ어떤 행위의ㅡ결과일 뿐이다. 우연을 가정한 모든 철학과 제학문은 학문이 아니다. 정신차려라 이 개만도 못한 무뇌아새끼야!
우연이 인식이전에 존재하고 인식에 넣을 수 없으면 어찌하여 여태까지 우연이란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지.. - dc App
없음(무)은 반드시 있는 듯한데 왜 없다고 해야 할까? 왜 '있는' 없을(무)를 억지로 '없다'해야 할까? 둘이 만나야 무한이 가능한데, 이를 어쩌면 좋을까? 이때에 만날 수 있는 사조가 아낙시만드로스이고 그의 무한정자apeiron입니다. 천천히 알아 보세요.
인식은 너(대상)와 나(관찰)의 만남(종합)입니다. 한데 없음(무)이나 우연(만남 없음)은 그런 관계성 자체를 부정하는 사태의 바깥의 사태이지요. 하나의 인과성은 하나의 인과법칙으로 맺음합니다. 거기에 둘의 사건이 개입하면 매한가지 하나의 인과성이거나 다른 사건의 발생일 뿐입니다.
*왜 있는 없음(무)"을" 억지로 없다고 해야 할까? 그건 없음이니까(동어반복이니까; 하나마나 한 소리이니까)!
그러니까 결국 인외의 외물이 아니라 관념상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닌가? - dc App
물질도 관념도 아니라구 씨발로마! 없는 거라구! 없는 데 어떻게 생겨났지?(왜, 인과성 없는 사건이 발생했으니까!) 그런 놀라운 경우, 불가해, 불가사의가 바로 우연의 말뜻(사전적 의미)이라구 인마!
그 우연의 유일한 혈족(암유적 표현)이 바로 무, 없음, 낫띵이라구 야야.
하시발 님 때문에ㅡ열받아서ㅡ결국 술사러 간다.
뜻이 관념이 아니라면.. - dc App
뜻=의미=인식(론)=관념(론). 이런 등식은 얼마든지 성립할 수 있겠네요. 처음부터 내 잘못이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없음이나 우연 따위)에 끝까지 침묵했wittgen"어야 하는데ㅡ우연 따위가ㅡ기어이 존재론의 한 자리를 요구한 데서부터 이 사달이 난 겁니다.
노래나 들읍시다. https://youtube.com/watch?v=n1h1AOeVQ38&si=XNxwYpZ7QAwWCH_w
님의 말씀대로 관념=유물(론)이란 등식도 성립합니다. 인식론의 문제이니까. 인식론이란 말을 싫어했던 존재론자 칸트를 우리가 인식론자로 부르듯, 낱말은 처음 보는 사물처럼 다시 이름 붙이기 나름이죠. 그런데 이런 건 철학(그러니까ㅡ나의ㅡ관념상)의 문제이고 철학 바깥에는 우리와 만나기를 원하는 미지의 대상이 항상 존재합니다. 아직은 없는 것이지만 영원히 없지는
않은.
그보다 더 극단적으로는 아예 없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없음이 있다(≠)는 성립할 수 없으니까 이것은 단지 내 믿음의 영역일 뿐입니다. 내 믿음이란 것도 관념이지요? 나를 뺍시다, 믿음이란 말도 뺍시다. 그런 희뿌욤한 가능성(미지)은 있더라. 왜냐하면ㅡ다시ㅡ언어(논리) 세계에서는 있음의 대쌍으로서 없음이 빠지면 술어 세계가 성립하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