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살을 왜 할까요?
어차피 자살을 하던
늙어서 죽던.
사람은 언젠간 죽어야만 합니다.
늙어서 죽던, 자살로 죽던
남아있는 사람들은 '슬픔'을 표하는 것은 똑같지요.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것을 좋게 보진 않습니다.
특히, 자살은 더욱더 그렇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 어느나라보다
자살률이 세계에서 높은 국가 중 하나죠.
스스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자율적인 인간인 존재가 자기 마음대로
목숨을 거두지 못한다는 것이 꼭 나쁜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 학교 후배랑
한 여대생이 학교 옥상에서 떨어져 죽은 걸로
논쟁을 벌인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여대생이 떨어져 죽을 만해서 (어떠한 힘듦 때문에?)
자살했을 것 같으니,
그 여학생을 동조한다고 하니,
후배는
왜 인문학을 공부하는 선배(제가)는
여학생이 떨어져 죽은 것에 동조하느냐고
막 뭐라고 하던 기억이 나더군요.
그때 저는 막 인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시점이었고
그 후배가 주장하는 바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지만,
굳이 인문학을 공부했다고 해서,
자살에 대해 반대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물론, 인류애의 '사랑'이라는 표현을 빌리자면,
그 후배에 말이 백 번 맞겠지만요.
또 한 번은
한 철학 강의에서 사람들과 토론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나온 얘기는
'삶의 고통 때문에 죽는 자살과
삶의 무기력 때문에 죽는 자살의 차이가 있느냐'였습니다.
우리나라와 유럽 국가의 자살률을 비교해서
토론을 하는 내용이었는데,
그 때 당시
유럽의 자살률에 대해 생각을 해보지 않아서
딱히,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자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일종의 삶에 대한 반항인데 세계와의 연결을 일제히 끊는 것이기 때문에 회피적 반항이라 생각함 - dc App
옳고 그른가를 따져야 하나 개인에게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가혹하다고 생각함 - dc App
지금 현실과의 연결은 끝나지만,다른 세계와 연결도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것도 아닌 상태, 정말 일반 사람들이 말하는 어떠한 차원이나 종교적인 곳 등. 회피적 반항이란 표현을 쓰실 줄 몰랐네요. 보통은 그냥 포기라는 단어를 쓰는데요.
옳고 그름은 자살을 선택하는 당사자와 그 자살을 평가하는 사람들의 옮고 그름이겠죠. 자살하는 당사자는 자살이 옳지 못함을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는 환경과 선택을 단정 지을 때,'그른 옳음'을 선택한다고 생각해요.물론, 그르다는 판단이 크다면멈추겠지만요.사람들은 보통 평가하고 해석하는 걸 좋아하니 어떻게 든 가혹하게 보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자살 자체는 중립적이지. 어떤 의도로 자살했느냐가 중요하고.
자살은 많은 경우 이기적이라고 봐야겠지. 근데 이기적인 행동이 한둘이 아니니까 자살만 이상할 정도로 욕하는 건 형평성에 안 맞고 오히려 그게 이기적인 행동이 되겠지.
자살 자체가 중립적이라 하시면? 보통 의도는 고통을 수반하는 부정적인 면이 크지 않나요?
그런데 말씀대로, 어떠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단순히 자살하는 것은 선생님 말씀대로 이기적으로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더군요. 예를 들어 범죄 상황이 유력해지는 상황에서 자살하는 경우는요. 그렇게 아니라면, 대다수의 자살은 안타까운 면이 큰 것 같아요.
고통이 없는 행동은 없고, 생존 본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안락한 자살이 더 고통스러운 연명보단 낫다면 본인에겐 이로운 거겠지.
자살은 사람들이 본인들한테 득이 되기에 추켜세우는 희생적 자살이 아닌 한, 사람들이 죽음을 보는 것 자체를 혐오한다는 걸 알면서도 내 감정이 더 중요하다고 행하는 거니 이기적이기 쉽겠지
자살에 대한 적개심은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에 대한 적개심이 아니라 자살로 몰고가게 하는 비극에 대한 적개심이라고 볾이 옳다고 봄. - dc App
말씀하신대로 지금 대부분의 자살은 자살로 몰고가게 끔 하는 현 시대 상황이 좋지 않은 건 확실한 것 같아요. 그런데도, 딱히 달라질 경향이 안보이네요. 몇십년째 상위권인 대한민국이네요.
자살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길 때는 오직 죽고자 하는 결심과 죽음 자체의 망상에만 꽂혀서 세상 어떤 것도 나(죽음을 앞둔 자)와 별개의 사태로 여겨지죠. 그런데 결국 자살에 실패하고 그 시기가 지나면 거짓말처럼 일상성으로 복귀합디다. 자살시도를 경험하고 죽음 직전까지 가봤다고 해서 앞으로의 삶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건 아니지만 죽음 직전의 공포 만큼은 뼛속
깊이 각인되지요. 죽음과 죽음 비슷한 것을 경험한 사람일수록 죽음은 확실히 피하고 싶은 공포의 대상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여기의 삶은 죽음과 가장 멀리 떨어진 행위와 의식의 총체이거든요. "아침에 깨달은 자 오늘 저녁에 죽어도 좋다" 고 말하는 자를 저는 믿지 않습니다. 그는 죽음 비슷한 것도 경험해 본 일이 없는 자일 공산이 큽니다. 죽음 직전과
죽음 비슷한 것은 확실히 비일상성의 문제이고 경험인 듯합니다. 우울증에 걸려 맨날 잠을 자거나 매일 아무 소득도 목적도 없이 사는 자라도 그건 삶의 패턴일 뿐이지 결코 죽음의 형식과 흉내가 아니지요. 죽는다는 것은 무엇보다 두려움과 관련 있어 보입니다. 해서 죽을 수 있을(죽을 용기가 있을) 때 죽는 것이 최상의 결과인 것 같아요.
고독사님 항시 정성스러운 답변 고맙습니다. 말씀 중에 공자의 말인 "아침에 깨달은 자는 오늘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는 말은 저는 오히려 좋아하는 문구입니다. 물론, 저는 죽음의 경험은 없지만,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은 딱히 없거든요. 개인적으로 죽을 수만 있다면 50세 전후로 죽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하는 생각도 많이 합니다. 대신,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거죠. 왜 저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겠습니까? 저도 사람이라 아마 막상 죽으려고 하면 공포심이 들겠죠.
좀 더 생각해 볼게요.
그의 자살이 옳고 그른가에 관해서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은 님은 최상의 선택을 한 겁니다. 삶과 죽음에 관하여 많은 공부를 하더라도, 앞으로도 그런 질문에는 끝끝내 침묵하십시오. 타인의 죽음은 항상, 어떤 경우에도 내 판단 영역 바깥의 문제입니다.
네 말씀 고맙습니다. 하지만, 대답은 직접 하지 않더라도, 자살과 죽음에 대한 생각은 밖으로 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가지고 있을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제가 자살이나 죽음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해도, 여론이나 언론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문제인데, 과연 침묵으로만 일관할 수 있는 문제일까요?
좀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려고 한다면 어떻게든 죽음을 말리는 게 우선입니다. 그는 결국 죽겠지만, 그의 죽음을 한없이 지연시키고자 하는 게 그를 사랑하는 자의 의무입니다. 사랑은 오직 삶의 수단이고 가치입니다; 죽을 병에 걸린 환자의 경우, 그가 동의하는 것으로서 사회적 안락사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저도 사랑하는 사람이나 제가 아는 사람의 죽음은 적극 말리려고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죽음을 맞이 하는 제 경우라면 딱히, 제가 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도 저의 죽음을 제가 스스로 정하지 못하는 것에는, 왜 그래야 하는지 의문이 듭니다. 저도 사실상 안락사 합법화의 찬성하는 입장이거든요.
또한 선생님의 닉네임이 '고독사'라고 지으신 이유도 궁금하네요. 죽음에 대한 생각을 여러모로 많이 해보셨을 것 같은데요.
제 이름을 고독사로 지은 까닭은 결국 나는 혼자 쓸쓸히 죽을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는 선생님이 아닙니다. 누굴 가르쳐 본 일에 모두 실패했고, 앞으로도 누굴 가르칠 만한 재질이 못 됩니다.
그러시군요. 선생님이란 표현은 상대방의 대한 그저 존칭이라는 뜻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실패라는 것은 꼭 실패라고 볼 수 없는데, 그것을 통해 조그마한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게 꼭 실패라 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저는 어떠한 배움도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자살도 타살도 사고도 본질은 죽음인거같습니다
네 모든 것은 죽음이네요!
고독사는어떻게죽는것예요저도그렇게라도해서죽고싶어요알려주세요
저도죽고싶어요50세예요몸에병이걸려서요그런데어떻게죽ㅈ어야될까요알려즈세요제발이요
병으ㅜㅏ의사들우방법있을거예요져발저저ㆍㄹ녀즈서요
난 존중함. 왜냐면 삶은 유한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은 한정적이기 때문이야. 왜 태어났는가를 물어본다면 고생하고 고통받기위해 태어났다는 사람은 없을거야. 근데 내가 처해진 피할 수 없는 환경이 존재하고 그 환경을 벗어날 수 없다는 확신이 든다면, 그리고 타고난 기질이 고통에 대한 내성이 부족하거나 부정경향성이 강하다면.
그 사람은 고통에 대한 도피처로 충분히 죽음을 택할 수 있는거야. 사람은 꿈을 먹고 살아간다고 해. 근데 현생에 그 어떤 의미나 목적, 가능성조차 보이지 않고 앞으로도 내 삶은 이러하겠구나 그리고 내 나이가 더 이상 생물로서 가치있는 나이가 아니구나 라는 깨달음이 왔을때 사람은 절망에 대한 깊은 자각을 하게됨. 그렇게 죽음을 결심한 사람을 무슨수로 설득할까
사람이 먼저다.
사람이 모든 것을 알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무언가에 대해 정확히 알려면 역설적으로 다른 모든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걸 아는 인간이 없다면, 모든 판단은 감성이라는 비논리적인 판단에 의해 시작됩니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고통이 죽음으로 인도하는 것 입니다. 고통을 지울 수 있다면 삶으로써 존중하는 것이 최선이되 고통 뿐이고 해서 불가능하다면
스스로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맞습니다. 다만, 개인의 판단은 또한 완벽할 수 없기에 스스로조차도 대단할 수 없고 분야를 나누어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해 안락사를 시행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strange 대단이 아니라 재단인데 잘못 적었네요!
자살은 최종선택일 뿐 입니다. 국가는 세금 내는 노예가 줄어드니 막는거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