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될까?를 고민했다.

그것에 대한 답은 이랬다.

니가 선택하는 것이 바로 너의 삶이다. 

그건 답이 아니다. 답이란 것은 뚜렷하게 나와야지. 니 하고싶은거 해라.? 이세상에서 제일 공허한 답이다. 그건 답이 없다는 말과도 같다.

그럼, 나는 범죄를 저질러도 되겠네? 그럼, 나는 지금 당장, 강도가 되야겠네? 그럼 난 지금 당장 죽어도 되겠네?

답을 찾기 위해서, 그래서 나는 질문을 바꿨다.

나는 무엇을 해야 되나? 어떻게 살아야 되나? 이런 나자신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 선택과는 무관하게 나자신이 할수밖에 없는 숙명이 있지 않을까? 이것이 나의 물음이였고, 이것에는 답이 존재할수있다.

나자신의 숙명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나라는 존재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논해야한다.

나는 무엇을 할수밖에 없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나는 무엇일 수밖에 없는가?를 논해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나자신의 원리에 대해서 부족한 나자신의 현존재의 인식속에서 스스로 만들었다.

이것이 나의 형이상학이다. 

그리고, 이형이상학이 어떻게 나의 현존재의 그모든 활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인지에 대해서, 그 인식론적 과정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인식론적인 운동과정이 어떻게 현존재내에서 다시, 실천으로 이행될수밖에 없는가?를 나 스스로 생각해서 만들었다. 이것이 나의 도덕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