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쇼와 천황은 일생에서 해양생물학 등 자신의 관심 학문 분야에 있어서 매우 큰 시간을 할애했고 큰 열의를 보였다.


반대로 그는 전쟁과 군사에 대해서는 무지식해 제이차세계대전 중 일본의 전쟁 기획 및 실행 과정에서 군부와 내각의 논의 결과에 순응하는, 타율적이지는 않으나 매우 수동적인 역할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전쟁 중 일본군의 재빠른 타지 진출과 같은 성과에 긍정적인 감상을 보였으며 그 기획에 있어서도 국제 신의상 옳지 못하다는 것을 인식하고도 그것이 황실과 국민에 초래할 결과에 대해서는 홀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전후 일본 국민이 전쟁으로 인해 입은 피해에 큰 인상을 받았고 국가의 정책 결정 방향으로서 전쟁을 멀리하는 평화의 유지를 강조했으며 특히 한국에 대해서는 한국의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자리에서 한국이 과거에 일본에 학문, 문화, 기술 등을 전했다는 점을 들고 자신의 치하에서 일본의 지배를 받은 것에 유감한 마음을 드러내면서 근린국과의 평화적 친선 관계의 유지를 추구했다.


그러나 군부와 내각의 주장에 대한 자신의 동의로 초래된 근린국과 일본 국민의 피해의 책임에 대해서는 타국의 주권을 해하고 영토를 빼앗은 것은 자신의 본의가 아니었으며 태평양 전쟁의 개전에 대해서도 내각과 군부의 결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당시 자신의 의도와 전쟁의 결과를 결부시키지 않으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