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통 두려움을 극복하거나 직면하는 것에 있어 용기가 필요하다고 하잖아?
그렇다면 저 상황에서의 용기의 역할이 무엇일까? 바로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역할이겠지?
여기서 두려움을 이겨낸다는 것은 그 두려움을 통제해야하는 것으로 인식한다고 나는 생각해.
결국 이러한 인식은 두려움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되는 이질적인 것으로 보게 되는 토대가 된다고 봐.
따라서 나는 두려움을 극복하거나 직면하기 위한 용기 보다는, 순전히 두려워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봐.
왜냐면 전자의 경우는 극복과 직면이라는 매우 멋진말을 사용했지만 그 실상은 두려움을 겪는 것을 회피하는 것인 반면, 후자의 경우는 두려움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온전히 허용하기 때문이야.
물론 후자의 경우 수용이라는 단어를 통해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를 경험하는 것을 강조하기는 해. 즉,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와 같이 말이야.
그러나 나에게 있어 용기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수용에서 나타나는 어감보다 좀 더 그 대상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가 반영되는 것 같아.
뭐 그냥 그렇다고.
그렇다면 저 상황에서의 용기의 역할이 무엇일까? 바로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역할이겠지?
여기서 두려움을 이겨낸다는 것은 그 두려움을 통제해야하는 것으로 인식한다고 나는 생각해.
결국 이러한 인식은 두려움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되는 이질적인 것으로 보게 되는 토대가 된다고 봐.
따라서 나는 두려움을 극복하거나 직면하기 위한 용기 보다는, 순전히 두려워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봐.
왜냐면 전자의 경우는 극복과 직면이라는 매우 멋진말을 사용했지만 그 실상은 두려움을 겪는 것을 회피하는 것인 반면, 후자의 경우는 두려움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온전히 허용하기 때문이야.
물론 후자의 경우 수용이라는 단어를 통해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를 경험하는 것을 강조하기는 해. 즉,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와 같이 말이야.
그러나 나에게 있어 용기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수용에서 나타나는 어감보다 좀 더 그 대상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가 반영되는 것 같아.
뭐 그냥 그렇다고.
니가 먼저 해 봐 - dc App
저는 극복과 직면이 회피가 아닌 이겨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극복과 직면 또한 순전히 두려워하기도 하는것이고 님은 용기를 두개로 구분지어서 말했지만 저는 그것이 하나로 합쳐져 비로소 용기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
굿